Chapter: 9. 밤바다.한참 달리던 영웅이는 피곤한지 차에 그대로 박혀 쪽잠을 잤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어느새 어두워진 바다로 뛰어갔다. 차가운 바람에도, 그저 캄캄한 어둠밖에 보이지 않은 바다에도 좋았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고, 어두운 터라 도진이의 큰 키 말고는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막상 당사자는 어두운 것이 불만인 듯 볼멘소리를 했지만.“안 보여.”“뭘 모르네. 밤바다가 더 이뻐.”“어째서.”“한 번에 집어삼킬 것 같으니까.”나의 대답에 도진이는 한참 대꾸 없이 묘한 눈빛으로 컴컴한 바다만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잔잔하게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무엇에 그리 화가 났는지 씩씩거리는 바람 소리가 나를 감쌌다.이 고요하지 않은 고요함.이것이 너무 좋았다.옆에 있는 존재감을 뿜어내는 녀석의 존재도 잊을 정도로 푹 빠져 한참이나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무슨 생각해?”그토록 좋아하는 고요함은 오래가지 못했다.도진이의 목소리가 공중에 붕 뜬 것처럼 울렸다.대답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마치 바다에 잠긴 것만 같았다.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도진이를 바라봤다.어두웠기에 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 새카만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다.어둠에 익숙해진 건가?얼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손길은 바람에 엉킨 머리칼을 정리했다.“기분 전환은?”허리를 약간 숙이고 마주한 큰 눈망울에는 내가 담겨 반짝였다. 그러고는 곧 가늘게 접혀 ‘네 속마음 따위는 다 알고 있다.’라고 말하듯 눈웃음을 지었다. 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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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배우 이 도 진.“… 제 도장은요?”자리에 앉으며 묻자, 대표님은 어색하게 웃으며 어색하고 과장된 웃음을 흘렸다.“아하하…! 그게 말이지!”“저 마지막 스케줄 끝난 지, 이제 2주 됐고… 잡다한 거 마무리하면… 이제 겨우 쉴 타이밍 생긴 거예요.”“알지 알아. 그 점은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를 첫 모델로 해서 서로 윈윈한 브랜드잖아. 아무리 이 바닥이라고 한들 나름의 의리는 지켜야지. 그쪽 브랜드에서 너를 그렇게 원해.”생글생글 웃는 대표의 모습을 보니, 애초에 나의 말을 들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후…….”눈치를 살피던 대표가 슬쩍 서류를 내밀며 브랜드 대표와 했던 이야기를 상세하게 꺼내며 서로 나쁜 것이 없다며 다시 한번 설득하는 것에 나 역시 나쁠 것은 없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말이 더 길어질 게 뻔했다.“대표님.”그 틈을 타, 시나리오들도 몇 개 건네던 대표가 더욱 생글생글 웃으며 왜 그러냐며 물었다.“저 대표님이랑 8살 때부터 지금까지 문제없이 지냈잖아요.”“응? 그, 그랬지?”대표님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사고 친 적도 없고, 쓸데없는 스캔들이나 소문 난 적도 없어요. 펑크 낸 적도 없고 웬만해선 대표님 말… 다 들었어요.”“그랬지! 너처럼 자기 관리 철저한 애, 못 찾을 거야! 그 부분은 나도 복 받은 거라 생각해~! … 그런데 갑자기 왜?”“… 저랑 한 약속… 잊지 않으셨죠?”나의 물음에 이번엔 생글생글 웃던 얼굴이 완전히 굳어졌다.“잊… 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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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착한 동생.중학생 때,네 몸에서 나는 향이 좋다고 딱 한 마디 했는데. 그 이후, 한국에 런칭되지도 않은 향수를 자신이 직접 모델이 되어 런칭하고는 주기별로 주던 향수.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착실한 동생.“고마워.”나의 말에 미묘하게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것은 아마 나나 아빠만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복 받은 녀석.세상에는 자기 기분 하나 들여다봐 주는 사람도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이도진은 아마 그런 기분은 평생 느껴보지 못하겠지.“이번 주말에 촬영 있어.”“알았어.”“같이 가.”“… 어? 뭐?”“같이 가자고.”뜬금없는 말에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지금 내 옆에 앉은 게 내가 아는 이도진이 맞나?혹시 촬영으로 영혼이 바뀌어서 왔던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던가…그런 건 아닐까?“차 안에 있어. 간단한 거라 금방 끝나.”그럼 그렇지.내가 그렇게나 부끄러운 건지, 어릴 적부터 함께 가면 안 되냐고 졸라도 절대, 단 한 번도 데리고 간 적이 없던 녀석이 순순히 같이 가자고 한 것이 이상하기는 했다.“그럼 나는 차 안에만 있으라고?”“거기서 조금 더 가면 바다 있어. 바다 보러 가자.”혼자가.라고 말하고 싶었는데.“바다 좋아하잖아.”요즘 너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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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빌어먹을.“너 말도 없이 어디 다녀왔어?”가뜩이나 머리가 지끈지끈 울리는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내게 다그치는 도진이의 모습을 보니 혼이 나갈 것만 같았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괜한 사람에게 풀게 됐다.“걱정 마. 내가 이 집에서 나가도 아무도 네 가족인 거 몰라!”“그런 뜻이 아니라….”“지금, 아무 말도 못 해! 머리 아파! 쉬고 싶어!”앞을 가로막는 도진이를 거칠게 밀치고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몸을 던졌다. 얼굴을 이불에 파묻으니, 헛웃음이 났다. 아마 어린 시절 서은율이 보면 기절할지도 모른다.어떻게든 도진이와 말 한마디 더하기 위해 새우잠을 자던 서은율은 어디 갔나?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발 그만두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나에게 곡 주기로 한 거, 약속 지켜야지.’그리고 홍시혁에게 곡을 준다는 약속도 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홍시혁은 대체 무슨 생각이람?진심인지 장난인지 여전히 구분할 수가 없다. 홍시혁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머리가 또다시 지끈지끈 울렸다.그래, 이 녀석은 정말로 변함이 없다. 단순해 보이고 기분이 고스란히 다 드러나는 주제에 막상 속내를 알기는 힘들었다.원래 연예계에 종사하는 놈들은 다 이런 건가?아니면 내 주위의 놈들이 이런 걸까?‘약속해! 네 이름 걸고 해!’‘알았어. 알았다니까. 괜찮은 게 나오면… 그때….’‘앗싸!!!’하지만 마지막이 좋지 않다고 한들, 함께 있었던 시간이 즐겁지 않은 게 되는 건 아니다.빌어먹게도,내 인생에서 이도진을 제외하고는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광고?”“그게… 대표님이… 그… 나를 노려봐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는데….”소파베드에 머리를 젖힌 채 바라보자, 영웅이가 새파랗게 질려 시선을 피했다.“내가 분명 활동 쉰다고 말했는데.”“아니, 뭐… 그렇긴 한데, 뭐! 그렇다고 너 평생 놀고먹을 생각이야?! 아래에서 치고 오는 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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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홍시혁과 서은율.들떴다.그래,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정확했다.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거울을 보며 잘생긴 얼굴에 취하기도 전에 동생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이미 익숙했기에 머리를 매만지며 새카만 휴대폰 화면을 빤히 바라봤다.“어디 가는데?”“몰라도 돼.”내 대답이 퍽 수상했는지, 노려보는 눈초리가 한결 진해졌다. 하지만 더 이상 사고 치지 않겠다고 약속한지라,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채 듣기도 전에 ‘반짝’이며 전화가 울리는 것에 다급히 나가자, 뒤에서는 인사 대신 험한 욕이 나오고 있었다.그건 지금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6년?정말로 우연을 빙자한 만남 때, 그토록 보고 싶던 동창은 자신의 눈을 겨우 바라보며 심호흡하고 있었다.그때도, 지금도.“변했네.”“… 뭐가?”“아! 네가 변한 게 아니라 이도진이 변한 건가?”일부러 그 속을 후벼 팠다. 역시 제대로 먹힌 건지 씁쓸하게 웃는 얼굴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6년 만에 본 동창은 머리가 짧아졌고, 아마 일에 찌든 삶을 지내고 있던지 퀭해 보이기도 했고 어딘가 아파 보이기도 했다.그 개자식은, 돈을 그렇게 벌면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짧은 머리, 잘 어울리네.”“너도.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나의 말에 결국 짜증이 났는지, 눈썹이 움찔하는 것에 조금 기뻤다.“그리고 조금… 단정해지고 어른스러워졌네.”겨우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누르며 뱉는 목소리는 감추려고 해도 떨림이 묻어 있었다. 게다가 여전히 시선은 뜨거운 커피잔에 고정되어 있다.그것이 기쁘지 않다.“율아, 너 왜 노래 안 해?”그래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기다리고 있었는데.”“아….”“어떻게든 성공해 보이겠다고, 노래하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했잖아.”뜨거운 커피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옛일을 꺼내 또박또박 말하자,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아주 미세하게.좋았는지 나빴는지조차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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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이도진과 서은율. 이도진, 서은율….성도 호적도 피도 다르지만, 같은 집에서 사는 ‘가족’ 같은 거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 엄마는 여느 날 평소와 달리 한없이 행복하게 웃었다. 그런 엄마에게 ‘기쁜 일이 생겼어?’ 물은 내게 엄마는 ‘은율이에게 새아빠가 생겼어.’라고 말을 하며 데리고 간 곳에는 원래 살던 낡은 집과는 다르게 처음 보는 커다란 집, 그리고 그만큼 커다란 아저씨… 아니, 나의 새아빠.아빠의 옆에서 무표정으로 나와 엄마를 바라보던 도진이는 나보다 두 살 더 어렸지만, 그 뚱한 표정이 잘생겨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처음 생긴 좋은 집, 커다란 아빠, 잘생긴 동생에 나는 들떴었다.‘도진아!’대답은 없었다.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졸졸졸 따라다녔다. 그런 내가 귀찮았던 도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나를 밀쳤는데, 하필이면 계단이라 나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그 와중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내 눈에 보인 것은 나를 보고 새파랗게 질려 놀란 이도진의 얼굴이었다.나는 그 와중에 ‘쟤도 저런 표정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어찌 됐든 그날 이후, 내게 미안한 건지 조금은 마음을 열었는지 이도진의 그 바운더리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그 작은 손으로 나를 꽉 잡기도 했다.‘아이고, 같은 학년이 되어버렸네.’생일이 빠른 도진이와 여러 가지 형편으로 시기를 놓쳐 1년 늦게 학교에 가게 된 나는, 같은 학년으로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와 은율이가 가족인 것을 몰랐다. 그것은 반도 다르고 굳이 말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쯤 엄마가 도진이만 데리고 한참 돌아다녔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아빠, 엄마랑 도진이는 어디 간 거야?’‘하하! 이제 곧 볼 거야.’안 그래도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TV를 틀자, 그 네모난 곳에서는 도진이가 나왔다. 그것이 몹시 신기해 한참 쳐다보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을 기점으로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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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부. 소녀와 소년, 그리고 신부 - 06 「 그래요.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훌륭한 신부가 될 거예요. 제가 장담하죠. 」익숙한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차가운 손의 온기가 심장을 압박했다. 두 손에 흥건히 묻은 피와 떨어진 낡은 리볼버와 담배, 그리고 손안에서 붉게 빛이 나는 루비. 나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커헉!”재빠르게 상체를 들어 올려 숨을 몰아쉬었다. 가파르게 오르는 가슴팍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고, 무의식적으로 손바닥을 바라보자 두 손은 깨끗했다. 물을 마시며 창가로 향하자, 해가 막 떠올랐다. 아름다웠다. 나의 스승은 이 풍경을 몹시 사랑했다. 그래서 종종 잠이 덜 깬 퀭한 눈으로 그 옆을 지키고는 했다.“젠장.”혀를 길게 차며, 창밖 너머를 바라보자, 소년은 어울리지 않게 호수 근처 꽃밭에서 꽃을 고르고 있었다.“얼씨구.”이번에는 헛웃음이 나왔다. 바로 어제 자신을 노려보던 두 눈과 상반된 행동이 퍽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소년이 신중하게 고르고 고르던 꽃의 행방은 곧바로 알게 됐다.“신부님, 안녕! 잘 주무셨어요?”소녀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꽃이 유달리 생기 넘쳤다.“꽃, 이쁘죠?”내 시선이 그 꽃에 꽂힌 것을 눈치챘는지 싱그럽게 웃으며 자랑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평범한 소녀와 같은 모습이었다.***“미쳤어!?”소녀의 제안에 먼저 소리를 지르는 소년은 눈빛이 강렬하게 타올랐다.그리고 그 강렬하게 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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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부. 소녀와 소년, 그리고 신부 - 05결국 해답은 찾지 못하고 대화를 마쳤다.저택의 구석에 자리를 잡고 담배를 꺼내 물자, 유달리 맑은 공기 사이에 뿌연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 오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혀를 찼다.지금 이 상태를 보고하게 된다면 본부에서는 소녀를 더 이상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당연히 죽이라고 할 테지만, 그건 서류만 대충 보고 받는 본부 놈들이라 쉬이 말을 하는 것이지 자신처럼 소녀를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된다면 아마 그들도 혼란에 빠질 것이다.만약 소녀를 죽여야 된다면, 찝찝하다.그것도 어린, 아니 어려 보이는 소녀를 죽이는 것이라면 더욱.“여기선 자제하지?”톡 쏘는 미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소녀를 찾으러 왔던 소년이 어디 있다 나타난 건지, 뚱한 얼굴로 연기를 날리며 다가왔다. 소년의 붉은 눈동자는 소녀의 금빛 눈동자와 달리 적대심이 가득했다.신부가 된 이후, 또 처음 겪는 일이었다.“… 둘이 무슨 말을 한 거야.”아무래도 이 소년은 예의를 배우지 못했나 보다.하기야 이 넓은 곳에 제대로 된 어른은 없다.이 거대한 저택에 둘이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소녀의 행동을 떠올리니 납득은 됐다.실없는 웃음이 나왔다.“왜 웃는 거야! 젠장!”눈치는 좋은 건지, 창백하던 소년의 피부에 붉은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나를 올려보는 그 눈빛은 여전히 강렬했다.“신부는 뭘 먹고 다니길래 이렇게 큰 거야!?”소년이 할 말은 아니었다.이제 막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암만 봐도 잘 관리한 어른의 몸이 아닌가?단지 나는 키가 조금 더 클 뿐.괜히 발을 구르고는 홱 지나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았다.특히 냉정하고 무정해 보이는 외모와 더욱 상반됐다.“가지고 있던 총, 어디서 난 거지?”생각해보니 소년이 가지고 있는 총은 아주 오래된 옛날 총이었다.그것을 어디서 구한 건지 궁금했다.나의 물음에 소년은 삐딱하게 서서 반항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대답했다.“받은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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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부. 소녀와 소년, 그리고 신부 - 04인적이 드문 숲속, 맑고 투명한 호수와 호수가 사람을 삼켜도 아무도 모를 듯한 고요한 대저택. 그리고 이 저택의 주인인 것 같은 소녀. “그러니까, 내가 그리 적은 나이가 아니라니까요?”“그리고?”눈앞의 고기를 썰며 묻자, 무슨 의미냐고 묻는 듯이 두 눈이 동그래져 나를 바라봤다. “이곳에 온 뒤로 나온 말들이 전부 나를 놀라게 했거든. 또 뭔가 남았나 싶었지.”“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던데?”“놀란 거야.”지금 나의 말에 재밌는 부분은 없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까르르 웃으며 먹기 좋게 썰린 고기를 입에 넣는 소녀를 보며 잘 익은 고기를 입안에 넣자 고기는 살살 녹아 목구멍을 넘어갔다.“그럼,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인가?”“뭐든.”“나는 악마를 퇴치하기 위해 다니는 신부야.”“네.”“알고 접근한 거지?”“당연하죠.”쥐고 있던 나이프를 ‘탁’ 소리 나게 올려놓자, 소녀는 나의 뜻을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듯 제법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를 이곳에 데리고 이유를 모르겠는데?”“다른 악마들이 궁금해서요. 실제로 다른 악마를 본 적은 없거든요.”반짝이는 눈망울에 골머리가 아파졌다. 그래, 악마를 다섯 번이나 퇴치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보통 악마는 ‘물건’을 매개체로 봉인하고 있었고 막대한 돈을 받고 그것을 지키는 이들과 지금 눈앞의 소녀는 영 다른 모습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데.”대게 봉인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사람 혹은 신부도 느끼지 못할 힘이 흐른다. 그렇기에 매개체를 두고 있는 인간은 악몽을 매일 꾸거나, 생기를 잃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데 이 소녀는 그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인간의 몸에 직접 악마를 봉인했는데도 말이다. “확인해 보면 되지 않아요?”소녀의 말에 입을 꾹 닫았다. “제정신인가?”겨우 호흡을 가다듬고 묻자, 소녀는 역시나 꺄륵꺄륵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기 일이 아닌 듯 고기를 앙 물며 만족한 표정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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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부. 소녀와 소년, 그리고 신부 - 03“내 옷이 문젠가?”“아마도.”“기껏 새로 산 옷인데.” 당연히 그 옷만이 아니라, 귀에 걸린 그 반짝이는 귀걸이도, 새카만 머리에서 빛이 나는 머리의 끈도 한몫할 것이다. 가볍게 몸을 휘둘러 긴장을 푼 것은 효과가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닿을 뻔한 발은 공중에서 몸을 뻗은 소녀로 인해 그대로 낙사할 뻔했지만, 인간은 자신의 목숨에 위험이 다가오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금이었다. “후우.” 거칠게 숨을 내뿜었다. 소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나도 모르게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요즈음 어떤 악마나 시체를 봐도 요동치지 않았던 심장이 오래간만에 요동쳤다. 짜증이 가득 담긴 눈으로 소녀를 노려보자, 해가 떠오르는 듯이 반짝반짝한 금빛에 멈췄다. 그 금빛은 눈을 가늘게 휘어 웃으며 작은 손으로 회중시계를 흔들고 있었다. “보물이라고 했잖아요?” 보물이지.하지만, 까딱했다가 둘 다 땅에 머리부터 처박아 죽을 뻔한 것은 생각하지 않는가?요동치는 자기 심장과 달리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에 결국 입을 꾹 닫고 다리를 움직였다.신부로서 한밤중 도망자 신세라니.이런 경우는 또 신선했다.이런 기묘한 경험을 하게 해준 소녀를 바라보자, 여전히 회중시계를 빤히 바라보며 작은 손가락으로 루비를 톡톡 건들고 있었다. 그것이 그렇게 탐나는 건지 빤히 보고 있는 모습이 기가 찼다. “그렇게 탐내도 못 줘.”“신부님의 보물을 탐낼 생각은 없어요.”“그렇다고 하기엔 손길이 불순한데.”“그보다 나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해요?” 옆구리에 가방처럼 매달린 것이 퍽 불만이었나보다.아니, 불만이라고 하기에는 여태 다리를 흔들거리며 잘 매달려 있지 않았나?지금도 말만 그렇지 내릴 생각은 전혀 없는 주제에. “네 짧은 다리로는 한참 걸릴 거야.”“그러지 않아도 돼요. 곧 올 때가 됐거든요.” 소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되묻기도 전에,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눈부심에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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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부. 소녀와 소년, 그리고 신부 - 02“뭐?”혹시 지금 시비를 거는 건가?물론 내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건 자각하고 있다.하지만 그것이 이런 소녀에게(심지어 처음 만난 사이에) 듣게 된 것이 여간 충격이 아니었다.“신부님, 저를 꽤 어리게 보시는 거 같은데… 저, 그렇게 어리지 않아요.”“내가 봤던 앙큼한 소녀들은 모두 짠 듯이 그런 말을 했지.”“음… 진짠데.”여기서 소녀와 말장난을 더 했다가는 그나마 남은 기력도 모조리 사라질 판국이다(당연하지만 도망치는 게 아니다.). 잘게 숨을 쉬고는 대충 손을 펄럭이며 소녀를 등지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억상 다음 마을은 그나마 가까이 있으니, 저녁쯤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탁. 탁. 탁. 탁.터벅터벅한 무거운 발걸음 뒤에 가벼운 소리가 따라왔다.이번에는 정말로 위험을 감지했다.“마을로 돌아가. 왜 날 따라와?”“난 마을 사람이 아닌걸요!”“뭐?”그제야 다시 훑어본 소녀는, 확실히 그 시골에서는 구할 수 없는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다.금빛의 눈동자와 어울리지 않는 새카만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걸이도 그 옷값에 지지 않을 기세로 반짝이고 있었다.“제안 하나 할 게요!”이 당돌함은 부에서 나오는 당돌함인가?“시끄러워. 네 갈 길 가.”“그러지 말고! 저의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보디가드를 해주세요!”“난 몸값이 비싸. 딴 녀석을 알아봐.”“나쁘지 않을 텐데? 악마의 매개체를 찾고 있는 거 아닌가요?”두어 발짝 앞서던 걸음이 그 말에 멈췄다.“알고 있냐?”이번은 분명하다.이 소녀는 알고 있다.“난 손해 보는 거래를 싫어해.”“손해 보지는 않을 거예요.”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눈을 가늘게 뜨며 야시시하게 웃는 소녀는 짓궂었다.***“신부님은 생각보다 무능력하네요.”“이럴 땐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게 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말하는 거야.”소녀가 가고자 한 곳은 그다지 먼 길은 아니었다.다만, 뒤에서
Terakhir Diperbarui: 2026-07-17
Chapter: 1부. 소녀와 소년, 그리고 신부 - 01 나는 아직 그때의 판단이 옳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6번째 악마를 봉인하기 위해, 만났던 소녀와 소년의 이야기이다. ***- 똑똑날카로운 소리가 안과 밖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숨정도는 쉬어도 되는데, 숨도 쉬지 않고 나를 주시하는 시선들에 괜히 덩달아 숨을 삼켰다. 몇 번이나 두드려도 들려오지 않는 대답은 나의 인내를 시험했다. 나의 인내는 담배 한 개비 피울 정도이기에 손에 쥔 리볼버를 강하게 쥐고 억지로 문을 부수고 안으로 총구를 겨눴다. “음?”밖의 사람들이 요란스러운 것과 달리 안은 한적했다. 아니, 한적하다고 해야 하나? 먼지가 가득 쌓인 낡은 건물 한가운데서 썩은 밀가루 포대를 뒤적이던 생쥐를 보아하니 밖의 사람들이 온갖 소란을 떠는 것과 달리 아무 일도 없어 보였다. 괜히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이 푹 빠져 잘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뒤에서 숨죽인 사람들을 보며 안심하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자, 사람들은 안의 생쥐를 보고 그제야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바쁠 텐데 미안하네, 하지만 요 며칠 주위가 하도 소란스러워야지….” “충분히 이해합니다.”인자한 표정을 하는 것은 이제 도가 텄다. “그래서, 젊은 신부님께서 이 시골구석까지 오게 된 이유가 뭔가?” “악마의 매… 아니, 계약자를 찾고 있습니다. 혹 아시는 게 있을까요?”최대한 정중한 말투로 물었다. 하지만 영감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필시 무언가 아는 것이 있는 얼굴이었다. “한 달을 꼬박 찾고 있습니다.” “당신이 항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퇴치사….” “맞습니다. 제가 그….” “프란치스코?” “…… 그는 제 동기입니다. 전 레이븐이라고 합니다.”민망함에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리는 영감을 보며 다시 한번 이름에 악센트를 주며 말하자, 노인은 몇 번이나 알겠다고 대답한 뒤에 새하얀 수염을 문질렀다. “확실한 건… 우리 마을에는 없네.”그리고 기대했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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