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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아내의 완벽한 실종

버림받은 아내의 완벽한 실종

Oleh:  잎새Tamat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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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만 졸업하면 나와 결혼하겠다 약속했던 소꿉친구는 내 졸업식 날, 우리 집안의 가짜 딸인 한고운에게 청혼했다. 그리고 만인의 존경을 받던 명망 높은 불자 고태현은 그 청혼이 성공하자마자 보란 듯이 세상이 떠들썩하게 내게 구애해 왔다. 결혼하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내게 지극정성을 다했고, 뼛속 깊이 스며들 정도로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우연히 그가 친구와 사적으로 주고받는 밀담을 엿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태현아, 고운이 커리어도 이제 안정 궤도에 올랐는데 너 한수연이랑 그 쇼윈도 부부 짓은 언제까지 할 작정이야?” “어차피 고운이랑 결혼하지 못할 바엔 옆에 누가 있든 상관없어. 무엇보다 내가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한수연이 고운이의 행복을 훼방 놓지 못할 테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보물처럼 간직해 온 불교 경전의 낱장마다 한고운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고운이가 부디 집착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 모두 평안에 이르기를.] [고운이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루고 그 사랑에 어떠한 아픔도 없기를.] ... [고운아, 이번 생에 너와 나는 인연이 닿지 못했으니, 부디 다음 생에는 부부의 연을 맺어 나란히 걸을 수 있기를.] 지난 5년간 품어왔던 헛된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은밀히 가짜 신분을 준비했고, 완벽한 익사 사고를 꾸며냈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영원히, 우리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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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제1화

위장 죽음을 위한 마지막 조율을 끝내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이틀 뒤면 나는 모두의 바람대로 영원히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때 문밖에서 은은한 우드향이 흘러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고태현이었다.

그는 나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상냥하게 물었다.

“방금 누구랑 통화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화실 일 때문에.”

나는 목소리를 한결 자연스럽게 하려고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고태현은 내 정수리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조용히 말했다.

“요즘 왜 이렇게 바빠? 저녁에는 위에 부담 안 가게 담백한 음식으로 준비해 줄게.”

고태현과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어느덧 5년, 그는 한결같이 다정하고 살뜰하게 나를 뼛속까지 아끼고 보살펴 주었다.

세간에서는 속세를 등졌던 불자가 한 번 정에 빠지면 평생 일편단심이라 일컬었다.

나 역시 그것이 내게 허락된 완전한 행복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결혼은 결코 나의 행복이 아니라, 그가 한고운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한 기만적인 보살핌에 불과했다는 것을.

고태현은 내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불쑥 한마디를 얹었다.

“참, 내일 한씨 가문에서 축하 연회를 연대. 한고운이 임신하기도 했고 해외 전시회에 출품하게 된 것도 기념할 겸 말이야. 당신은 가지 마. 내가 대신 선물만 전해주고 얼른 돌아와서 같이 있어 줄게.”

“하지만 그 전시회에는 나도...”

하지만 그는 내 말을 가로막았다. 다정한 눈빛이었지만 거역할 수 없는 압도감이 실려 있었다.

“전시회는 신경 꺼. 당신 늘 아기 원했잖아. 이번 기회에 요양하면서 임신 준비나 하자.”

나는 눈을 내리깔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고태현과 결혼하고 오랜 세월 동안 우리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저 인연이 닿지 않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그저 그가 원치 않았을 뿐이었다.

어쩌면 전시회에 나가지 못하게 한 것도 내가 한고운의 앞길을 가로막을까 봐 두려웠던 탓이리라.

그는 내 마음이 이미 까마득한 나락으로 가라앉았음을 눈치채지 못한 듯, 고개를 숙여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모레는 당신 생일이잖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뒀어. 부디 고운 꽃길만 걷길.”

고운 꽃길만 걷길...

나는 그 말을 나직이 곱씹었다. 문득 그 글자들이 유난히 귀를 찔러댔다.

그는 늘 축복을 빌어줄 때마다 늘 ‘고운’이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이 순간에야 그 속에 숨겨진 실체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전해준 축복은 단 한 번도 나를 향했던 적이 없었다.

“좋아. 생일날 나도 따로 준비한 게 있으니까, 꼭 시간 비워두고 온전히 내 옆에만 있어 줘.”

고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수연이 뜻대로 해야지.”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고태현, 그동안 나를 아끼는 척 연기하느라 참 고생 많았겠어.’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던 나는 내 몸을 감싸 안은 고태현의 팔을 조심스레 밀어내다 그만, 그가 늘 지니고 다니던 보리수 염주를 건드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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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위장 죽음을 위한 마지막 조율을 끝내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이틀 뒤면 나는 모두의 바람대로 영원히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그때 문밖에서 은은한 우드향이 흘러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고태현이었다.그는 나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상냥하게 물었다.“방금 누구랑 통화했어?”“아무것도 아니야, 화실 일 때문에.”나는 목소리를 한결 자연스럽게 하려고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고태현은 내 정수리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조용히 말했다.“요즘 왜 이렇게 바빠? 저녁에는 위에 부담 안 가게 담백한 음식으로 준비해 줄게.”고태현과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어느덧 5년, 그는 한결같이 다정하고 살뜰하게 나를 뼛속까지 아끼고 보살펴 주었다.세간에서는 속세를 등졌던 불자가 한 번 정에 빠지면 평생 일편단심이라 일컬었다.나 역시 그것이 내게 허락된 완전한 행복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하지만 이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결혼은 결코 나의 행복이 아니라, 그가 한고운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한 기만적인 보살핌에 불과했다는 것을.고태현은 내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불쑥 한마디를 얹었다.“참, 내일 한씨 가문에서 축하 연회를 연대. 한고운이 임신하기도 했고 해외 전시회에 출품하게 된 것도 기념할 겸 말이야. 당신은 가지 마. 내가 대신 선물만 전해주고 얼른 돌아와서 같이 있어 줄게.”“하지만 그 전시회에는 나도...”하지만 그는 내 말을 가로막았다. 다정한 눈빛이었지만 거역할 수 없는 압도감이 실려 있었다.“전시회는 신경 꺼. 당신 늘 아기 원했잖아. 이번 기회에 요양하면서 임신 준비나 하자.”나는 눈을 내리깔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고태현과 결혼하고 오랜 세월 동안 우리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그저 인연이 닿지 않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그저 그가 원치 않았을 뿐이었다.어쩌면 전시회에 나가지 못하게 한 것도 내가 한고운의 앞길을 가로막을까 봐 두려웠던 탓이리라.그는 내 마음이 이미 까마득한 나락으로 가라앉았음을 눈치채지 못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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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바닥에 떨어진 팔찌를 집어 든 순간, 손끝에 닿은 염주 알의 감촉이 이상했다. 매끄러워야 할 표면이 미세하게 까끌거리고 있었던 것이다.희미한 불빛을 빌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 하나하나마다 글자가 새겨져 있음을 발견했다.고운.그 찰나, 내 안의 마지막 기대마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이튿날 아침, 나는 고태현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같이 한씨 저택에 가자.”그의 얼굴이 순간 눈에 띄게 굳어졌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했다.“그래, 그럼 가서 선물만 전하고 바로 돌아오자.”고태현이 나의 동행을 내심 불편해하며 혹여나 한고운에게 방해가 될까 전전긍긍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그러나 나는 그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한 번 더 보고 싶었을 따름이었다.내일이면 이곳에서의 삶을 완전히 정리할 테니까.한씨 저택은 한고운의 임신과 해외 전시회 입선이라는 겹경사를 축하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그 소란스러운 사람들 틈에서 한고운은 마치 주인공처럼 중심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에워싼 채 이번 출품작이 대상까지 거머쥘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유명 서예가 ‘일편고운’의 친필 휘호까지 곁들여진 작품은 최고의 걸작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그때 내가 들어서는 것을 본 한고운의 얼굴색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녀는 찰나의 동요를 지우고 이내 가면 같은 평온함을 되찾았다.입가에는 우아한 미소가 걸려 있었으나, 쏟아내는 목소리에는 날 선 비아냥이 묻어났다.“언니도 왔네? 요즘 많이 한가한가 봐?”나는 그녀의 도발을 무시한 채, 전시장 한가운데 걸려 있는 그림에 시선을 고정했다.너무나 익숙해서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듯 아프게 만드는 작품이었다.그것은 몇 년 전 내가 완성한 뒤 고이 간직해 온, 세상에 단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나만의 그림이었기 때문이다.‘내 그림이 왜 여기에 있지? 어떻게 이 그림이 한고운의 출품작이 된 거야?’의문이 꼬리를 물던 찰나,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다가온 한고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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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고태현은 내 기색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챘는지 흠칫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먼저 제안을 건넸다.“우리 지금 나갈까? 어디 조용한 데 가서 머리 좀 식히자.”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그럼 요트 타자. 밤바다 구경도 하고 갔던 김에 내일 일출까지 보고 오지 뭐.”차에 올라타자 고태현은 내일 일정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네 생일 서프라이즈를 미리 준비해 뒀어. 이번에 바쁜 일들만 다 끝나면 우리 아이 가질 계획도 세워보자, 어때?”나는 그저 묵묵히 들으며 시선을 창밖으로 던질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차가 출발하자마자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를 받는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고 목소리에는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나는 그를 돌아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급한 일 있으면 먼저 가 봐.”그는 잠시 망설였다.“수연아, 나...”“괜찮아. 나 먼저 요트에 가서 기다릴게.”발신자의 이름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를 저토록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홀로 요트에 오른 나는 휴대폰을 꺼내 한고운의 SNS 피드를 열었다.방금 올라온 듯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성공의 순간을 함께해 주고 야식까지 사다주며 특별히 말동무가 되어준 사람. 늘 곁에서 보살펴 줘서 고마워.]밑에 달린 댓글들은 가관이었다.[남편분이 정말 지극정성이시네요!][이게 바로 진정한 사랑꾼의 정석이지!]하지만 내 시선은 엉뚱하게도 사진 구석에 찍힌 손 하나에 못 박히듯 고정되었다.손목에 감긴 그 보리수 염주는 너무나 익숙했다. 바로 고태현의 것이었다.나는 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의외로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한고운이었다.“이 늦은 시간에 언니가 웬일이야? 설마 태현이 찾는 건 아니지?”한고운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조소가 진하게 묻어 있었다.“포기해, 오늘 밤 태현이는 안 들어갈 테니까. 어쩌겠어, 우리 착한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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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고태현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고 갈라진 목소리로 다그쳤다.“그럴 리가 없어! 분명 나랑 같이 가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생일을 앞두고 있는데, 멀쩡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그런 짓을 해!”비서는 어두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었다.“대표님, 당시 현장 선원의 말에 따르면 사모님께서 혼자 승선하셨고 심경이 무척 불안정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말도 안 돼!”고태현은 비서의 말을 가로막으며 저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안 믿어! 그 사람이 왜 혼자 배를 타? 선원도 나한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단 말이야!”비서는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선원이 밤새도록 대표님께 연락을 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표님의 휴대폰이... 계속 꺼져 있었다고 하더군요.”고태현은 황급히 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화면은 과연 까맣게 꺼져 있었다.서둘러 전원 버튼을 누르며 한고운을 돌아보는 그의 눈빛에는 서늘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네가 껐어?”한고운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다급하게 변명했다.“내가 왜 네 휴대폰을 꺼! 실수로 눌렸거나 배터리가 나간 거겠지. 어떻게 나한테 그래?”서러운 듯 울먹이는 말투는 마치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았다.고태현은 더 대꾸하지 않고 곧장 부두를 향해 질주했다.달리는 차 안, 그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죄책감이 역력했고 두 눈동자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으로 심하게 흔들렸다.현장에 도착하니 요트는 이미 정박해 있었고 경찰들이 선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곧 경찰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고태현 씨 되십니까. 아쉽게도 선내에서 사모님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진술과 영상 분석 결과 자발적 투신으로 확인됩니다만, 해당 유역의 유속이 빨라 시신 인양조차 불확실한 상태입니다.”“대체 왜 뛰어내린 거지?”고태현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중얼거렸다.“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는데...”“혹시 최근 들어 우울증 증세나 정서 불안을 보이진 않았습니까?”경찰의 추궁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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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내가 어디로 꼭꼭 숨어버렸는지, 그리고 앞으로 남은 평생을 기꺼이 외롭게 늙어가기로 완벽하게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다.새로운 도시에 정착한 직후, 나는 타인과의 소통을 완전히 단절했다.장을 보거나 집을 구하고 심지어 공과금을 정산할 때조차 최대한 짧은 말로만 해결했다.이웃들은 나를 싹수없고 유별난 인간으로 취급했고 이내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바라던 바였다.나는 그간 모아둔 돈으로 아이들 대상의 아담한 미술 학원을 차렸다.한때는 내게 주어진 재능이 화려한 전시회 조명 아래서 수많은 이들의 박수갈채를 끌어내기 위한 도구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조용히 단순한 선을 그리며 때 묻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싶을 뿐이었다.그렇게 평온한 일상이 한 달쯤 흘렀을 무렵, 사망 위장 서비스를 대행해 준 업체 직원이 나에게 연락해 왔다.“고태현 씨가 최근 한수연 씨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습니다.”“나를요?”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싸늘하게 덧붙였다.“난 이미 죽은 사람인데 나를 찾아서 뭘 어쩌겠다는 거죠?”“화실에도 찾아갔고 예전 인맥들까지 수소문하려 애쓰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보안 유지가 완벽해서 꼬리를 잡힐 일은 전혀 없습니다. 전해 듣기로는 사고 이후 극심한 죄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유속이 워낙 급한 지역이라 생존율이 제로에 가깝다는 경찰의 통보를 받고도, 직접 현장을 수차례 뒤지며 사람까지 고용해 추적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던 모양입니다.”나는 마치 남의 사정이라도 듣는 양 무심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묵묵히 들었다.“한수연 씨.”직원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였다.“예약 업로드해 두셨던 SNS와 영상들이 고태현 씨에게는 가장 끔찍한 악몽이 되었습니다.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게시물들이 그의 방관과 위선을 낱낱이 폭로했고 대중 앞에서 그의 체면을 완전히 짓밟았으니까요. 명예는 이미 실추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한수연 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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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고태현은 이제야 지난날을 추억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이미 그 모든 기억을 뒤로하고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선생님, 뭐 보고 계세요?”옆에 있던 주세준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나는 다급히 휴대폰 화면을 끄며 나지막이 대꾸했다.“아무것도 아니야. 세준이 선 연습 아직 덜 끝났는데? 얼른 자리로 돌아가서 완성해야지.”“선생님.”녀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 안색을 살폈다.“기분 안 좋은 일 있으세요?”나는 멈칫했다가 얼른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냐, 네가 잘못 본 거야.”주세준이 제자리로 뛰어간 후 나는 꺼진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솔직히 말해 기분은 엉망이었다. 그 하찮은 인간들의 비참한 말로 때문이 아니었다. 그 소식들이 끈질기게 내 발목을 잡아, 거짓과 배신으로 얼룩졌던 끔찍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나를 강제로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며칠 뒤, 작업실에서 한창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낯선 젊은 남자가 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섰다.그의 품에는 화려한 장미 꽃다발이 안겨 있었다.“안녕하세요, 저는 세준이 삼촌 주도훈이라고 합니다. 이건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이에요.”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조심스러운 기색이 실려 있었다.“세준이가 선생님 수업을 무척 좋아해서요, 감사의 뜻으로 준비한 작은 성의입니다.”나는 그 화사한 꽃다발을 무표정하게 응시하다 고개만 살짝 끄덕였을 뿐 받아들지 않은 채 담담하게 선을 그었다.“개인적인 선물은 사절합니다.”예상치 못한 냉담한 반응에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으나 이내 무안한 듯 손을 내렸다.“아, 죄송합니다. 그런 규칙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괜찮아요.”나는 이젤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덧붙였다.“다음부턴 안 그러셔도 돼요.”그는 더 구차하게 매달리지 않고 주세준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다 돌아갔다.그러나 그날 이후로 그가 방문할 때마다 그의 손에는 과일이나 과자 같은 자잘한 간식거리가 들려 있었다.그럴 때마다 그는 다정한 눈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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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도전해 봐요. 선생님의 재능은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발할 자격이 충분하세요.”그날 밤, 나는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붓을 아주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이윽고 캔버스 위로 잔잔한 바다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은 첫 새벽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반짝이는 물결 위로 나의 투명한 실루엣이 가만히 일렁였다.마지막 붓질을 마치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이 그림은 주도훈을 위한 것도,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작품이라는 것을.전시회 당일, 내 작품은 심사위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재능이 마침내 세상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증명된 순간이었다.나는 이것이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조용한 첫걸음이라 믿었지만, 이 ‘복귀’가 나의 평화로운 일상에 얼마나 거대한 파도를 불러올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어느 날 수업 시간, 나는 아이들에게 색채 조합을 설명하고 있었다.화실 창가로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아이들이 고요히 붓을 놀리는 모습에 공간 전체가 오랜만에 잊고 지냈던 평화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바로 그때, 화실 문이 거칠게 젖혀지며 누군가 안으로 들이닥쳤다.“한수연!”고개를 든 나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거칠게 문을 열고 들이닥친 불청객은 어이없게도 한고운이었다. 무겁게 부푼 배를 억척스럽게 내민 그녀의 얼굴은 초췌함을 넘어선 맹렬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녀의 두 눈에는 지독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내 이럴 줄 알았어! 네가 죽긴 왜 죽어! 나를 이 지옥에 처박아놓고, 너 혼자 고상한 척 여기 숨어 있었던 거야?”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이들을 등 뒤로 가로막고 차갑게 물었다.“한고운, 여기까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내 질문에 한고운의 입가에 조롱 섞인 실소가 번졌다.“어떻게 찾았냐고? 네 화풍을 내가 모를 리가 있나! 예전에 선생님이 늘 네가 나보다 잘 그린다고 치켜세웠잖아. 내가 그 세월 동안 네 그림을 얼마나 샅샅이 뒤져봤는데, 네 기법 따위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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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한고운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납게 덤벼들었다.나는 조건반사적으로 등 뒤의 아이들을 감싸 안았으나 미처 몸을 피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에 옷자락을 꽉 붙잡히고 말았다.날카롭게 뻗어 나온 손톱이 내 팔을 사정없이 긁고 지나가며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그만해!”내가 비명을 질렀으나 눈이 뒤집힌 한고은은 나를 바닥으로 거칠게 밀쳐 쓰러뜨렸다. 사방에서 겁에 질린 아이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때 주세준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쪼르르 달려오더니 고사리 같은 작은 주먹으로 그녀를 퍽퍽 때리기 시작했다.“우리 선생님 때리지 마요!”작은 아이에게 뜻밖의 일격을 당하자 잠시 멍해져 있던 한고은은 이윽고 광기에 휩싸여 더욱 무섭게 화를 냈다.“쥐방울만 한 게 감히 나를 때려!”그녀가 주세준의 뺨을 갈기려 하자, 나는 황급히 기어와 아이 위로 몸을 덮쳐 손찌검을 대신 맞아냈다.어깨에서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아이들을 품에 꽉 껴안은 채 소리쳤다.“그만하라고! 한고운,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법의 처벌을 면치 못할 줄 알아!”한고운은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며 조소했다.“한수연, 잠시는 도망칠 수 있어도 영원히 피할 순 없어! 오늘 여기서 네 인생을 완전히 조져주마!”바로 그때, 입구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주도훈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그는 앞뒤 잴 것도 없이 거칠게 한고은을 붙잡아 내팽개치듯 떼어놓았다.한고은은 몇 번 버둥대다가 고개를 돌려 그가 주도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피식 비열한 비웃음을 흘렸다.“어머, 한수연. 얼마나 됐다고 벌써 딴 놈을 꼬셔 낸 거야?”그녀는 조롱 가득한 눈빛으로 나와 주도훈을 번갈아 훑어보더니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내가 고태현한테 진작 말했거든. 너는 걔한테 애초에 관심 따위 없다고. 봐, 내 말이 맞지? 벌써 이렇게 너를 챙기는 놈이 들러붙어 있잖아. 정작 고태현은 멍청하게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이게 바로 네 진짜 모습인데 말이야.”주도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내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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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하지만 고태현은 한고운의 절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로지 나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한 애원이 담겨 있었다.“수연아, 내 말 좀 들어줘. 나 정말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널 외롭게 두고 소홀히 했어. 제발 나한테 한 번만 기회를 줘.”“기회?”나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고태현, 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잘못했어. 너를 외롭게 버려두지 말았어야 했고 다른 사람들 말을 무작정 믿지 말았어야 했어. 모든 게 다 내 탓이야. 다 고치고 속죄할 테니까 제발 나를 용서해 줘...”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지며 비굴할 정도로 애원조로 변했다.“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그 모습을 본 한고운은 얼굴이 흙빛으로 질려 다급히 끼어들었다.“태현아, 너 나만 사랑한다고 했잖아! 너...”“입 다물어!”고태현이 매섭게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의 눈빛에는 전에 본 적 없는 시퍼런 살기가 서려 있었다.“내가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네가 앞으로 무슨 짓을 하든 이제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한고운은 마치 뺨을 호되게 얻어맞은 사람처럼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억울함에 치를 떨며 소리쳤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전부 잊은 거야? 그리고 저년, 벌써 다른 놈이랑 눈 맞아서 살고 있단 말이야!”그 말에 내 가슴은 쿵 하고 내려앉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대꾸했다.“고태현, 난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야. 나를 정말 죽은 사람이라 치고 이제 서로를 좀 편하게 놓아줘.”“싫어!”고태현은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절망적으로 부르짖었다.“수연아, 싫어! 나를 마음껏 미워하고 원망하고 때리고 욕해도 좋으니까 제발 네가 세상에 없다는 말만큼은 하지 말아 줘. 제발 예전처럼 돌아와 주면 안 될까?”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고 찢어지게 아팠지만 나는 지독하리만치 냉정한 목소리로 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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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의 눈동자에는 애원과 비굴함이 가득 차 있어서 내 곁에 머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든 양보할 기세였다.그때 주도훈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은근한 날이 세워져 있었다.“고태현 씨, 두 분 사이에 과거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쪽 곁에 남을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수연 씨의 의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본인 입장만 절박하게 호소하고 계신데 정작 수연 씨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뭔지 깊이 생각은 해보셨습니까?”고태현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입만 벙끗거릴 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나는 그를 물끄러미 직시하며 단호하게 못 박았다.“고태현, 이유가 무엇이었든 지난 5년의 세월은 이미 끝났어. 내가 설령 살아 있다 한들... 당신은 더 이상 내 선택지가 아니야.”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서서히 가셔 갔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우리가 함께했던 과거 전부를 부질없는 실수로 치부하게끔 날 모질게 만들지 마. 아니면 내가 정말 죽어 없어져야만 날 완전히 놔줄 거야?”“제발 그런 말 하지 마!”그가 내 말을 황급히 가로챘다. 그의 눈에 짙은 슬픔이 고였고 목소리에는 간절한 애원이 섞여 있었다.“수연아, 내가 다 잘못했어. 정말로 잘못했어. 네가 무사할 수만 있다면 다시는 그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내 곁을 떠나지만 않는다면... 네 삶에서 완전히 물러나 줄게.”그의 절박한 눈빛에 나는 찰나의 순간 주춤했으나 이내 나지막하게 응수했다.“좋아. 그렇다면 날 온전히 놓아주길 바라.”그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숙였다. 마침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그가 거친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미안했다.”그러고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은 영락없이 넋이 빠져나간 빈 껍데기 같았다.폭풍이 휩쓸고 간 화실에서 주도훈은 놀란 아이들을 하나하나 다정하게 다독이고 혹여 다친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핀 후에야 내 앞으로 다가왔다.“괜찮으세요?”그의 물음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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