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남편의 첫사랑이 불치병에 걸렸다. 남편은 하지율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지율아, 채아한테 남은 날이 얼마 없어. 그러니까 네가 참아.” 그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첫사랑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하지율이 정성껏 준비한 결혼식까지 임채아에게 양보해야 했다. 다섯 살 된 아들이 남편 첫사랑의 다리를 꽉 붙잡았다. “엄마는 예쁜 누나보다 하나도 안 예뻐요. 왜 예쁜 누나가 우리 엄마가 아니예요?” 하지율은 두 사람을 위해 이혼 합의서를 던져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나중에 남편과 아이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데... 전 남편은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이었고 아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율아, 정말 우릴 버릴 거야?” “엄마, 진짜 우릴 버릴 거예요?” 그때 한 잘생긴 남자가 하지율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여보, 여기서 뭐 해? 아들이 배고프대.”
Voir plus정시온은 원래부터 강한 아이라서 좀처럼 눈물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그런 정시온이 울고 있다는 사실에 하지율은 곧바로 다급하게 물었다.“시온아,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었어?”정시온은 훌쩍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이모... 저, 곧 떠날 것 같아요. 거기로 가면... 이제 다시는 이모를 못 만날지도 몰라요...”하지율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떠난다고? 어디로?”정시온은 울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요즘 집에 낯선 사람들이 계속 찾아와요. 아빠는 제 친아빠가 아니고, 자기들이 제 친가 쪽 가족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를 ‘진짜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어요. 아빠는 절 보내려고 하지 않는데... 그 사람들은 매일 집으로 찾아와 아빠를 괴롭히고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정시온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잔뜩 묻어 있었다.“저는 가기 싫어요. 하지만 아빠한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정말 아빠가 제 친아빠가 아니라면... 그냥 돌아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하지율은 눈꺼풀이 가볍게 떨렸다.‘시온이 친부 쪽 가족이라면... 주씨 가문이라는 뜻이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왜 갑자기 주씨 가문에서 시온이를 데려가려고 하는 거지?’하지율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시온아, 울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이모가 지금 바로 갈게.”상대가 수적으로 우세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지율은 나현우와 강원희는 물론, 실력이 뛰어난 경호원들까지 데리고 정씨 가문으로 향했다.연경 그룹에서 하지율의 입지가 높아질수록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었다.게다가 이곳은 연씨 가문의 영향력이 닿는 M국이었다.적어도 M국에서만큼은 하지율이 정기석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정기석이 그동안 하지율을 여러 번 도와줬으니, 이제는 하지율이 그 은혜를 갚을 차례였다.하지율은 사람들을 이끌고 빠르게 정씨 가문에 도착했다.하지율은 처음에는 정시온을 데려가려는 사람들이 무력을 사용할 생각으로 찾아온 줄 알았다.하지만
주용화는 언제나 분위기를 깨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하지율의 기대를 누구보다 잘 헤아렸고 바라는 반응과 인정도 아낌없이 건넸다.그래서 하지율은 늘 주용화가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해 준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를 품에 안은 채 온기를 나눴다.그러다 하지율이 먼저 입을 열며 고요한 침묵을 깼다.“화야 씨... 지금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주용화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괜찮아요.”하지율은 고개를 들어 조각 같은 주용화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화야 씨,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병이 더 심해진 거 맞죠? 전에 서재에서 기록하고 계시던 일지도... 병과 관련된 내용이었던 거예요?”주용화의 눈빛이 깊어졌다.주용화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살짝 숙여 하지율을 바라보며 옅은 웃음을 띤 채 말했다. 하지만 깊은 눈동자에는 차가운 기색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지율 씨는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누가 이상한 이야기라도 했나요?”하지율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주용화가 이렇게 빨리 눈치챌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하지만 이미 여러 번 주용화에게 속마음을 들켜 본 하지율은 예전처럼 무턱대고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하지율은 침착하게 말했다.“화야 씨, 저 그렇게 둔감하지 않아요. 화야 씨가 말해 주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고요.”하지율은 말을 마치며 주용화의 손을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 목소리도 한결 부드럽고 다정해졌다.“만약 소현 씨가 제안한 치료 방법이 효과가 없다면 다른 치료법을 함께 찾아봐요. 더 뛰어난 전문의를 찾아보는 것도 좋고요. 화야 씨, 저희 이제 곧 결혼하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거고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저는 언제나 화야 씨 곁에 있을게요. 끝까지 함께 병을 치료해 나가요. 네?”주용화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칠흑처럼 짙은 검은 눈동자는 그저 조용히 하지율만 바라보고 있었다.하지율도
손 수술을 받은 뒤로 하지율은 오랫동안 직접 요리를 하지 못했다. 특히 주용화를 위해 식사를 챙기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하지율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채소를 다듬고 재료를 손질한 뒤 하나씩 볶아 나갔다. 어느새 집 안에는 따뜻한 음식 냄새가 가득 퍼졌다.마지막 요리까지 식탁에 올려놓은 하지율은 시간을 확인했다.‘화야 씨도 이제 곧 오겠지...’그렇게 생각한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주용화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본 주용화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식탁 앞으로 다가섰다. 하나하나 음식을 살펴본 주용화가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오늘은 어떤 음식을 준비해 주신 거예요?”주용화는 분위기를 깨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평소 같았으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하지율의 손을 걱정해 절대로 부엌에 서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하지율이 정성껏 음식을 다 준비한 이상, 하지율을 위한다는 이유로 마음을 상하게 할 말을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하지율은 주용화가 조금도 놀라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화야 씨, 또 경호원한테 제 일정을 미리 들으신 거예요?”주용화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지율 씨 반지에 있는 위치 정보를 보고 알았어요.”“...”하지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그게 그거잖아요.’하지율은 작게 투덜거렸다.“앞으로는 화야 씨한테 서프라이즈도 못 하겠어요.”주용화는 다가와 하지율을 품에 안았다.“저는 지율 씨만 볼 수 있으면 하루하루가 서프라이즈예요.”하지율은 더는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다.“우선 식사부터 해요. 조금 있으면 음식이 다 식겠어요.”“그래요.”식사하는 동안 하지율은 주용화의 병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두 사람은 평소처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저녁을 마쳤다.식사를 마친 뒤 하지율이 주용화를 바라보며 말했다.“화야 씨, 잠깐 저를 따라오실래요?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주용화는 하지율을 따라
강병주와 심다희의 일은 일단 모두가 만족할 만한 방향으로 마무리됐다.하지만 하지율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유소린은 하지율의 표정을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지율아,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원래도 선배랑 다희를 이어 주려고 했었잖아.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하게 됐으니 좋은 일 아니야?”하지율은 고개를 저었다.“두 사람이 서로 좋아해서 함께하게 된 거라면 분명 좋은 일이었겠지. 그런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한 선택이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마냥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어.”유소린은 하지율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금세 알아차렸다.하지율과 고지후 역시 처음에는 서로 사랑해서 시작한 관계가 아니었다. 상황에 떠밀려 맺어진 관계였기에 서로에 대한 마음도 없었다.유소린이 부드럽게 말했다.“그래도 선배랑 다희는 우리 둘 다 오래 봐 온 사람들이잖아. 두 사람 인품은 누구보다 믿을 수 있고. 무엇보다 선배나 다희는 과거 문제도 없잖아. 고지후랑 임채아 때처럼 골치 아픈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다희 입장에서도 선배와 결혼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인 건 맞아.”유소린은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잊지 마. 지금 연정미는 다희 새언니가 될 사람이잖아. 게다가 아이까지 가졌고. 혹시라도 연정미가 다희 오빠한테 무슨 말이라도 하면 다희만 곤란해질 수도 있어. 그런 걸 생각하면 이번 일은 오히려 잘된 거라고 봐.”하지율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간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그런데도 이상해.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번 일은 뭔가 석연치가 않아.”유소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뭐가?”하지율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나도 잘 모르겠어. 딱 집어서 설명은 못 하겠는데... 자꾸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유소린은 화제를 돌리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됐어. 이제 남 일은 그만 신경 쓰고, 너랑 화야 씨 결혼식이나 차질 없이 준비해야지.”주용화 이야기가 나오자, 하지율의 표정은 오히려 더 어두워졌다.오랜 세월 가장 가까운 친구로 지내
경호원들이 하지율을 둘러싸고 밀려드는 인파를 막아섰지만, 누군가 물건을 던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하지율은 무언가가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느꼈다.달걀이 얼굴에 닿기 직전, 한 실루엣이 불쑥 앞을 가로막았다.곧이어 하지율의 시야에 들어온 건, 화야의 손에 잡힌 달걀 몇 개였다.하지율이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화야가 다시 달걀을 던졌다.달걀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던 한 젊은 여성의 얼굴에 떨어졌다.“꺄악!”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쌌다.순간 현장은 얼어붙었다.하지율은
“아무리 권세가 대단하다고 해도 해외에서 나댈 수는 없으니까요.”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임채아가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다른 건 참을 수 있지만... 선생님을 공경하지 않는 건... 전 정말 용납이 안 됩니다.”그러면서 지난번 대회장에서 하지율을 마주쳤을 때, 하지율이 현성 대가에게 눈곱만큼도 예의를 보이지 않았던 일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곧이어 하지율에 대한 남은 호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레이나가 콧방귀를 뀌었다.“저런 인물이 무대에서 활개를 치다니, 음악가의 수치와 다름없
그날 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연정미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몇 번이나 그대로 잠들 뻔했다.그러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문 쪽에서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꾸벅꾸벅 졸던 연정미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어서 곧바로 몸을 바로 세우고 문 쪽을 바라봤다.밖에서는 손형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보현 오빠, 어제 정미한테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아서 무슨 일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되어서 보현 오빠한테까지 연락할 수밖에 없었어요.”단보현이 말했다.“내가 사람 시켜 조사해보니 연정미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은 여기였어.”손형서
손형서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메뉴판을 주용화 앞으로 내밀고 저도 모르게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얘기했다.“화야 씨, 뭐 마실래요?”주용화는 메뉴판을 받지 않고 말했다.“연정미 씨 말로는 여기 라테가 대표 메뉴라던데요. 라테로 할게요.”손형서의 미소가 미세하게 굳었다.“정미가... 왜 그걸 화야 씨한테 말했죠?”이 카페는 연정미가 예전부터 자주 오던 곳이었다.주용화가 태연하게 답했다.“지난번 같이 식사했을 때 들었어요.”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그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둘은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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