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지훈은 압박감에 질식할 것 같은 감독실의 공기 속에서, 오히려 차분하게 타오르는 투지를 느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류 감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리고 그의 옆에 선 이현성 역시, 흔들렸던 눈빛을 다잡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드시 승리로 보답하겠습니다.”
감독실을 나온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심장은 같은 목표를 향해 뜨겁게 뛰고 있었다.
리그 최강의 팀, 스톰 바이퍼스. 그들을 상대로 펼쳐질 운명의 복귀전.
그것은 단순한 한 경기가 아니었다. 몰락했던 천재의 완전한 부활을 선포하고 무명의 분석가를 최고의 자리에 올릴, 새로운 전쟁의 서막이었다.
“그래서, 감독님이 데려온 ‘퍼포먼스 디렉터’라는 분이 이분이라고?”
다음 날 오전, 최강 라이
지훈은 말하며 맞은편의 기계 스위치를 눌렀다. ‘피융-’ 소리와 함께, 기계에서 노란색 테니스공이 날아왔다. 시속 60km. 일반인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느린 속도였다.“자, 잡아보세요.”하지만 고글을 쓴 이하준에게, 그 공은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갑자기 발밑에 나타났다. 그는 허둥대며 손을 뻗었지만, 공은 그의 손을 비웃듯 지나쳐 갔다.“젠장!”두 번째 공, 세 번째 공도 마찬가지였다. S급 운동 능력을 가진 그의 몸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눈이 뇌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자, 그의 완벽한 피지컬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그는 연달아 공을 놓치고 결국 화를 이기지 못하고 고글을 벗어 던졌다.“이딴 걸로 뭘 어쩌라는 겁니까!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그게 지금 선수님의 눈 상태입니다.”지훈의 차가운 한마디에 이하준의 움직임이 멈췄다.“고글을 쓰지 않은 평소에도, 선수님의 눈과 뇌는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 지금과 같은 오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고속으로 날아오는 야구공을 볼 때만요. 그러니 몸이 공포를 느끼고 멋대로 반응하는 겁니다. 이 훈련은 망가진 그 시스템을… 강제로 재부팅하는 과정입니다.”지훈은 바닥에 떨어진 고글을 주워 다시 그에게 건넸다.“다시 하죠. 이번엔 공을 잡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공이 어디서 나타나서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 궤적을 예측하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눈으로 보려 하지 말고 머리로 보세요.&rdq
이하준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지훈은 그의 동요를 놓치지 않고 시스템이 알려준 진실의 창을 열었다.“공이 흐릿하게 보일 때가 있지? 특히 변화구처럼 회전이 많은 공은 순간적으로 여러 개로 겹쳐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타이밍을 놓치고 그러다 보니 공에 대한 공포심이 생긴 거야. 맞아?”“……!”이하준은 마치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사람처럼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지훈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그는 그저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그 증상들은 지난 2년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가 미쳐가는 건가’라고 생각하며 혼자 끙끙 앓았던 비밀이었다.지훈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2년 전 여름이었나. 원정 경기에서 외야 수비하다가 다이빙 캐치하고 펜스에 머리 부딪친 적 있지? 가벼운 뇌진탕 증세가 있었지만, 넌 괜찮다고 하고 다음 날 바로 경기에 나섰고. 모든 건 그때부터 시작됐어.”이하준의 눈이 절망과 충격으로 크게 흔들렸다.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 당시에는 약간 어지러운 정도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사고.하지만 지훈의 말을 듣는 순간, 모든 퍼즐 조각이 섬광처럼 맞춰졌다. 자신의 타격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던 시기와, 그 사고의 시점이 정확하게 일치했다.“어떻게… 당신이 그걸 어떻게…”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가시 돋치지 않았다.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나는 의사가 아니야. 하지만 네 병의 원인을 알고 그걸 고칠 방법을 아는 유일한 사람
이현성의 완벽한 부활이 KBO 리그 전체를 뒤흔든 다음 날. 강지훈은 류승환 감독과 함께 다시 이천의 2군 구장을 찾았다. 어제의 열광과 스포트라이트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인 것처럼, 2군 구장의 공기는 한적하고 평화로웠다.하지만 지훈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새로운 계약, 그리고 새로운 사냥감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었다.“저 녀석입니다.”류 감독이 굳은 표정으로 실내 연습장의 한 타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한 청년이 홀로 배팅머신을 상대로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다.떡 벌어진 어깨, 군살 하나 없는 허리, 탄탄한 하체. 누가 봐도 완벽한 운동선수의 피지컬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하준. 라이온즈가 팀의 10년을 이끌어갈 재목으로 점찍고 역대 최고 계약금을 안겨주었던 천재 유망주.“피지컬은 리그 최상급입니다. 스윙 스피드, 파워, 주력, 수비 능력…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죠. 고교 시절에는 ‘나무 배트를 든 이치로’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까요.”류 감독의 목소리에는 짙은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지훈은 말없이 이하준의 연습을 지켜봤다.배팅머신이 공을 쏘기 전, 이하준의 연습 스윙은 물 흐르듯 부드럽고 간결했다.교과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벽한 폼이었다. 하지만 기계가 ‘핑-’ 소리와 함께 공을 쏘아 보내는 순간, 그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부드럽던 스윙 궤도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공을 피하려는 듯 움츠러드는 어깨, 경직된 허리, 불안하게 흔들리는 하체. 그의 배트는 공이 지나간 한참 뒤를 힘없이 돌았다.‘퍽!’결국 그는 연달아 헛스윙을 하다가 날아오는
‘강지훈… 좋아. 네가 누군지, 내가 바닥까지 다 파헤쳐주지. 감히 내 것을 빼앗아 가?’그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이제 와서 이현성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어떻게든 저 강지훈이라는 놈을 끌어내리고 이현성을 다시 자신의 통제하에 둬야만 했다. 그의 비뚤어진 욕망이 새로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클럽하우스의 소란이 어느 정도 진정될 무렵, 지훈은 다시 류승환 감독의 호출을 받았다. 이번에는 혼자였다.감독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까보다 한층 더 무겁고 진중한 공기가 흘렀다.류 감독은 책상에 앉아, 지훈이 들어와 맞은편에 앉기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장기판의 다음 수를 고민하는 노련한 승부사처럼, 지훈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려는 듯 지그시 바라봤다.“대단하더군.”긴 침묵을 깬 것은 류 감독이었다.“내 30년 야구 인생에서 오늘 같은 경기는 처음 봤소. 죽었던 선수가 그것도 저런 괴물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그는 책상 서랍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지훈 앞으로 내밀었다.“자네 정체가 뭐든, 과거가 어떻든 이제 상관없소. 우리 팀은 자네의 능력이 필요하오. 이건 구단에서 제시하는 정식 코치 계약서요. 직함은 새로 만들어주겠소. ‘1군 컨디셔닝 총괄 코치’. 신인 코치로서는 KBO 역사상 최고 대우를 약속하지.”류승환 감독의 파격적인 제안이었다.선수단 전체의 몸 상태를 책임지는 중책이자, 신인에게는
2년 전, 야유와 비난 속에 마운드를 내려가야 했던 투수는 이제 영웅이 되어 팬들의 환호를 받고 있었다.두 명의 타자를 가볍게 범타로 처리하고 마침내 마지막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 타자는 다시 빅토르였다.오늘 경기, 두 번의 타석에서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던 빅토르의 눈에는 오기와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는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 분명했다.이현성은 숨을 골랐다. 그의 체력은 한계에 가까웠지만, 정신력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초구, 157km/h. 오늘 경기 최고 구속이었다. 빅토르의 배트가 늦었다.2구, 바깥쪽 꽉 찬 슬라이더. 파울.3구, 지친 그가 던질 수 있는 마지막 전력투구. 그는 온몸의 힘을 쥐어짰다.“쐐애애액-!”157km/h. 하이 패스트볼. 빅토르의 눈에는 분명 공이 보였지만, 그의 몸은 반응하지 못했다. 그의 배트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공은 이미 강민호의 미트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스트라이크 아웃!”경기 종료.이현성은 마운드 위에서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9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15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신으로 기억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귀전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선수들이 모두 마운드로 달려 나와 이현성을 헹가래 쳤다. 류승환 감독은 덕아웃에서 조용히 박수를 쳤다. 그의 얼굴에 마침내 미소가 번졌다.경기가 끝나고 수훈 선수 인터뷰를 위해 방송사 카메라가 이현성을 비췄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에, 아나운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ldq
그는 이현성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할 시간이었다.1회 초, 바이퍼스의 공격.플레이볼이 선언되고 1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KBO 최고의 리드 중 한 명으로, 끈질긴 승부와 빠른 발이 장점이었다.포수 강민호는 사인을 냈다. 지훈과 약속했던 그대로, ‘바깥쪽 낮은 패스트볼’.이현성의 첫 번째 공이 홈플레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전광판에 찍힌 구속, 153km/h. 타자의 방망이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두 번째 공. 같은 코스, 154km/h. 타자는 간신히 커트해 파울을 만들어냈다.세 번째 공. 강민호는 사인을 바꿨다. ‘몸쪽 높은 코스.’ 타자의 허를 찌르는 역 투구였다. 155km/h의 공이 타자의 가슴팍을 파고들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피했다. 하지만 공은 스트라이크 존 상단에 정확히 꽂혔다.“스트라이크 아웃!”삼구삼진. 경기 시작 단 1분 만에, 이현성은 자신의 귀환을 알리는 첫 번째 포효를 내질렀다.2번 타자마저 무기력한 뜬공으로 잡아낸 후, 마침내 타석에는 3번 타자, 빅토르가 들어섰다. 올 시즌 타격 3관왕이 유력한, KBO 리그를 지배하는 절대자. 그의 등장만으로도 경기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강민호의 손바닥에 땀이 찼다. 그는 지훈의 분석을 떠올렸다.‘초구,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 정말 이런 괴물 타자에게 초구부터 변화구를 던져도 될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하지만 그는 마운드 위의 이현성을 보았다. 이현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플랜대로 가자’는 신호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