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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Autor: 오월이
해인의 시선이 얼마 전 배달원이 두고 간 고양이 사료에 머물렀다.

해인은 태상과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태상을 깊이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나와 정 선생님을 해치려고 사람을 보낸 사람이 예태상인가?’

하지만 해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예태상이 한 짓이라면, 예태상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대체 뭐지?’

‘복수?’

‘그렇다 해도 우리 엄마를 죽게 만든 사람은 예태상의 아버지였잖아!’

‘예태상에게 나를 원망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

프라이빗 클럽.

희정이 룸의 문을 밀고 들어왔다.

“갑자기 왜 불렀어?”

희정의 시선이 서진에게 닿았다. 표정에는 참을성 없는 기색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서진은 희정이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일에 이미 익숙했다.

서진도 잘 알고 있었다.

희정이 자신과 얽히는 건, 결국 부탁할 일이 있을 때뿐이라는 걸.

하지만 서진은 희정을 사랑했다.

그러니 더 많이 내주어야 했고, 희정의 모든 면까지 품어야 했다.

서진은 희정에게 앉으라는 눈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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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06화

    차장섭은 아무리 희정이라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할 걸로 알았다.하지만 희정은 태연히 말했다.“나는 잘못한 거 없어.”차장섭은 귀를 의심했다.“아빠는 내 아버지면서도 내 뒤에서 날 지켜 주지 않잖아. 나는 살길을 하나 더 마련하려던 것뿐이야.”“나 자신을 지키려는 게 뭐가 잘못인데? 천서진 한 명으로는 부족해. 나를 받쳐 줄 사람을 여럿 만들어야 해.”말도 안 되는 궤변에 분노한 차장섭은 희정의 뺨을 거세게 후려쳤다.“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그래서 네 몸까지 팔았다는 거야?”“서진이는 네 남편이야! 오늘은 너희가 결혼한 첫날인데, 남편의 사촌과 뒹굴고 왔다니! 서진에게 미안하지도 않아?”희정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결혼하기 전부터 서진에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어. 그래도 나와 결혼하겠다고 매달린 건 서진이야.” “내가 결혼해서 소원을 이뤄 줬으니 오히려 걔가 나한테 고마워해야지.”뒤틀린 논리에 차장섭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가슴이 크게 들썩거렸다. 심장 부근을 움켜쥔 차장섭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희정을 가리켰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희정아, 너는 정말 구제할 길이 없구나! 네가 직접 서진한테 사실대로 말해!”차장섭의 온몸은 분노로 떨렸다.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희정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타이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차장섭조차 딸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느꼈다.희정이 헛웃음을 흘렸다.“사실대로 말하라고? 그 뒤에 내가 어떻게 될지 아빠도 알잖아. 나를 아예 수치스러운 죄인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아빠는 내 아버지잖아. 왜 단 한 번도 내 편에 서서 지켜 주고 감싸 줄 수 없는 건데!”차장섭이 단호히 말했다.“네가 잘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네 아버지니까 잘못된 길에서 끌어낼 책임도 있어!”차장섭은 핸드폰을 꺼내 서진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희정이 저지른 일을 서진에게 알릴 생각이었다.모든 걸 보고도 자신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차장섭이 실제로 서진의 번호를 누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05화

    희정은 서둘러 건훈을 밀어냈다.“이제 그만해. 서진이 곧 돌아올 거야.”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씻고 몸에 남은 흔적을 처리해야 했다. 오늘 밤 서진이 자신에게 손대지 못하도록 핑계도 마련해야 했다.불륜을 들키면 희정도 천씨 집안에 더는 머물 수 없었다.건훈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쫄기는. 알았어, 가. 앞으로 기회는 많으니까. 형수님, 다음에도 또 놀러 와.”건훈은 희정의 엉덩이를 세게 한 번 때렸다.‘형수님’이라는 호칭에 희정의 얼굴이 붉어졌다.침대에서도 건훈은 몇 번이나 같은 호칭을 불렀다. 몰래 관계를 맺는 데서 오는 자극을 즐기는 듯했다.희정은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그제야 건훈이 자신의 옷을 가운데부터 두 동강 내서 다시 입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개를 돌린 희정이 건훈을 매섭게 노려봤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건훈의 옷장에서 흰 셔츠 한 장을 꺼내 몸에 걸쳤다.하의는 아무것도 입지 못했지만 셔츠가 충분히 길어서 몸이 드러나지는 않았다.단지 가장 안쪽에 자리한 이곳에는 이 두 채의 집만 있어서, 평소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이 모습으로 나가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건훈의 집 문을 조심스럽게 연 희정은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주변을 살피며 옆 집으로 돌아갔다.지문으로 잠금을 풀고 문을 열려는데, 뒤에서 믿을 수 없다는 차장섭의 목소리가 들렸다.“희정아, 너... 어디에서 나온 거야?”차장섭은 희정의 신혼집에서 멀지 않은 벤치에 계속 앉아 있었다. 희정이 건훈의 집에서 수상한 모습으로 나온 뒤 몰래 제 집 문을 여는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누가 보더라도 희정이 방금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 모습이었다.차장섭의 목소리를 듣자 곧바로 희정의 몸이 굳어지면서,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솟았다.몸을 돌리자 분노로 가득한 차장섭의 눈이 보였다.“아빠, 왜 여기 왔어?”희정은 남자 셔츠 한 장만 걸쳐 하얀 허벅지를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04화

    차장섭의 표정은 더없이 참담했다. 날마다 공무에 매달리느라 자신이 희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그래도 결혼하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잘못을 부추기며 한패거리가 된 것이다.해인이 차분히 말했다.“이 말씀을 드리는 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셨으면 해서예요. 제 시아버님은 일을 처리할 때 상대의 사정을 봐주지 않아요.”“유호 씨도 자신을 해친 사람을 놓아주지 않을 거고,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해인은 말을 마친 뒤 차장섭을 깊이 바라보고 병원을 떠났다.차장섭은 복잡한 눈으로 해인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봤다.해인이 무엇을 경고했는지 분명히 알았다. 언젠가 해인과 희정이 서로를 죽이려 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실은 해인은 애초에 희정을 자매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차장섭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서 말했다.“차 준비해.”비서가 의아하게 물었다.“어디로 가시려고요?”“희정이를 만나러 간다.”30분 뒤 차장섭이 탄 차는 희정의 신혼집이 있는 주택단지 앞에 멈췄다.운전기사와 비서는 단지 밖에서 대기했다.차에서 내린 차장섭이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오는 내내 희정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서진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서진은 자신과 희정이 함께 있지 않고, 희정은 집에서 쉬는 중이라고 답했다.‘왜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아?’차장섭은 오늘 반드시 희정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결국 기사와 비서를 먼저 돌려보낸 뒤 집 옆의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그 시각, 옆집 안에서는.희정과 건훈이 뜨겁게 뒤엉켜 있었다.희정은 건훈이 요구하는 자세마다 순순히 맞춰 줬다.흥분한 건훈은 희정이 입고 있던 옷까지 갈기갈기 찢었다.여자를 다루는 데 익숙한 건훈은 수많은 방법으로 희정을 몰아붙였다. 모두 희정이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것들이라, 몸이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서진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희정은 오히려 낯선 자극에 흥분했다.정신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03화

    해인은 핸드폰에 저장된 이안의 사진을 도수희에게 보여 줬다.도수희는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아기가 정말 예쁘다. 이마도 반듯하고 볼도 통통하니 복스럽게 생겼어.”도수희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사진만 바라봤다. 이 시간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은 듯했다.해인을 단 하루도 직접 키워 보지 못했는데, 어느새 딸의 아들이 이렇게 자랐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했다.도수희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해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다.“해인아, 네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여.”도수희의 손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평범한 부유층 부인들처럼 곱게 관리된 손이 아니었다.해인은 잠시 멈칫하다 도수희의 손바닥에 가만히 뺨을 기댔다.“그러니까 빨리 나으셔서 제 아이도 좀 봐 주세요.”해인이 먼저 살갑게 기대 오자 도수희는 놀란 눈을 했다. 하지만 곧 얼굴 전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그래, 그래. 꼭 몸을 잘 챙길게.”모녀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애정이 두 사람 사이를 조용히 흘렀다.지금 도수희의 체력은 갓난아기와 비슷했다. 잠에서 깨 있어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잠들었다.도수희가 잠든 것을 확인한 해인은 병실 밖으로 나왔다.차장섭은 복도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해인이 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말했다.“방금 의사에게 확인했어요. 한 달 안에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대요. 그 시기를 놓치면 기증 신장이 나와도 소용없다고 했어요.”몸에도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오랫동안 병을 앓으면서 기력과 정신력이 심하게 소모됐다.도수희가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도수희의 상태를 계속 살폈기에 차장섭이 지금의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도수희는 딸이나 사위에게 장기를 기증받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말했다.차장섭도 딸과 사위의 신장 기증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환자의 보호자인 차장섭이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해인이 기증을 고집해도 진행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02화

    한편 B시청 청사에서는 중요한 국제회의를 막 마친 차장섭이 희정의 결혼식장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비서가 급히 달려와서 알렸다.“시장님,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따님의 결혼식이 취소됐습니다.”차장섭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취소됐지? 무슨 일이 생겼어?”“예식이 열린 호텔에 갑자기 불이 났습니다. 결혼식장 장식도 전부 불에 타서 더는 예식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하객들도 모두 대피했습니다.”차장섭은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훨씬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부녀 사이에 갈등이 있더라도 이런 일을 듣고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핸드폰을 꺼낸 차장섭이 희정에게 전화해서 위로하려고 했다.비서가 다시 말을 꺼냈다.“아, 조금 전 사모님을 돌보는 간병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모님께서 결혼식장에 찾아가 따님께 면사포를 씌워 주려고 하셨는데, 따님이 화를 내며 경호원에게 사모님을 내보내라고 했답니다.”“뭐라고? 그럼 화재가 났을 때 수희는 무사히 빠져나왔어?”차장섭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지면서 희정에게 전화를 걸려던 손길도 멈췄다.‘희정이가 너무 심했어.’몸이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병든 몸을 이끌고 결혼식장까지 찾아가 면사포를 씌워 주려고 한 것은 새어머니로서 건넨 도수희의 진심이었다.마음을 받아 줄 수는 없어도 경호원에게 내쫓으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비서가 안심시키듯 말했다.“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모님께서 떠난 뒤에 불이 났습니다.”차장섭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내 아내가 몰래 결혼식장에 갔는데 간병인은 왜 미리 알리지 않은 거야? 가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쩔 뻔했어?”도수희의 상태는 최근 조금 나아진 것처럼 보였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그럴 뿐이었다.신장 기능이 망가진 탓에 약으로 간신히 생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의사는 서둘러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어느 날 잠든 뒤 다시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그나마 다행인 점은 장기이식 대기자 명단에서 앞에 있던 두 환자가 세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01화

    희정을 신혼집에 데려다준 서진은 천호선의 전화를 받고 다급히 집을 나섰다.결혼식장에서 불이 난 것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수습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였기에 부자는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상의하려는 듯했다.넓은 신혼집에는 희정 혼자 남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집 안에 있고 싶지 않았다. 희정은 웨딩드레스를 벗어 두고 집 밖으로 나갔다.신혼집이 있는 단지는 고급 주택가였고, 주변에는 울창한 나무가 늘어서 있었다.바로 옆집에는 서진의 이종사촌이 살았다. 서진 어머니 쪽 친척이었다.예전에 서로 의지하며 지내자는 뜻으로 두 사촌은 나란히 붙은 집을 샀다.희정이 집 앞을 지나가자, 진건훈은 자신도 모르게 몇 번이나 시선을 보냈다.건훈의 눈길이 희정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두 눈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 욕망이 드러났다.건훈은 혀끝으로 볼 안쪽을 밀면서 건들거리는 태도를 보였다.“형수, 혼자야? 우리 형은?”희정이 무심하게 대답했다.“집에 없어. 서진이한테 볼일 있어?”건훈도 조금 전 결혼식장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솔직히 서진과 희정의 결혼식이 엉망이 된 모습을 보자 속이 꽤 시원했다.어릴 때부터 서진은 모든 면에서 건훈보다 뛰어났다. 어머니는 늘 두 사람을 비교했고, 집까지 형과 나란히 붙은 집을 사야 한다고 고집했다.실제로 건훈과 서진은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오늘 결혼식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린 건훈이 조롱과 구경하는 재미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쯧, 멀쩡하던 결혼식이 그렇게 끝났으니 많이 아쉽겠네. 결혼식은 평생 한 번뿐이잖아.”“그런데 하늘이 두 사람이 인연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어떻게든 갈라놓는다는 말도 있더라. 오늘 일이 그런 경고일 수도 있지 않을까?”희정은 눈썹을 찌푸리며 뜻밖이라는 듯 건훈을 바라봤다.건훈은 명문가 자제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망나니였다. 집안 형편은 좋지만, 제대로 된 일은 하지 않고 날마다 놀고 마시는 데만 관심을 뒀다.외동아들이라 부모도 건훈을 지나치게 감싸고 돌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4화

    예주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미묘한 빛이 스쳤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오빠가 해인 언니한테 너무 잘해 주는 거죠. 언니가 그걸 몰라주는 거예요.”그 말에 태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예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아까 그 진주 목걸이 말이에요...”태겸은 대답하지 않고 해인 옆자리에 앉았다.곧 첫 번째 경매 물품이 무대 위에 올려졌다.진주 목걸이였다.윤기 좋은 진주들이 조명 아래에서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해인은 한눈에 마음이 갔다.시작가는 4억 원. 해인은 망설임 없이 패들을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3화

    이소정의 안색이 단번에 굳어졌다.“사설탐정? 사설탐정을 써서 태겸이를 조사했다는 거야? 해인아, 그런 건 하면 안 되지. 부부 사이에 상처만 남겨.”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란이 서재 안까지 전해졌다.문이 열리며 고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인을 보자 자연스럽게 음성이 누그러졌다.“해인이, 왔구나.”고민건을 바라보던 해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우리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은 저분처럼 머리가 희끗해졌을까?’그해, 두 회사가 공동으로 추진하던 대형 프로젝트가 있었다. 원래는 고민건이 직접 협력사와 만나기로 되어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2화

    밖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해인은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잠시 뒤, 현관문이 열리며 태겸이 들어왔다.실내로 스며든 발소리는 조심스러웠고, 점점 가까워지다가 해인 등 뒤에서 멈췄다.이어 단단한 남자의 팔이 해인 뒤에서 감겨 왔다.해인의 허리가 갑자기 조여 들었다.“여보...”태겸의 입술이 머리칼 위로 내려앉았다.낮고 거친 숨이 섞인 남자의 목소리였다.“여보, 나 진짜 보고 싶었어.”밤공기를 머금은 태겸의 체온이 전해지자 해인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해인은 그대로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1화

    달빛이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버려진 제약 공장 안, 강해인의 몸은 거칠게 꼬인 밧줄에 묶여 있었다.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기댄 채, 여자의 가느다란 손목은 높이 들어 올려진 채 벽에 고정돼 있었다.그리고 뒤에서 다가온 남자가 해인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얇은 여자의 허리가 남자의 손아귀 안에서 움츠러들었고, 남자의 입가에는 음습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강해인 씨. 아무도 몸값을 들고 안 오면, 그땐 미안하지만 말이야.”해인의 뒤쪽에서 벨트를 푸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해인의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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