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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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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s by 유가현

가장 잔인한 축복

가장 잔인한 축복

네 번의 인공수정 실패. 지수에게 남은 것은 서늘해진 침실과 남편 도진의 서늘한 연민뿐이다, 유난히 몸과 마음을 갉아먹었던 이번 시술마저 실패로 끝난 날, 지수는 절망 속에서 남편의 품을 파고 든다, 사랑은 식었을지언정 이 상실감을 함께 나눠줄 유일한 사람이라 믿었기에. "나 당신 아이 가졌어" 지수가 아이를 잃고 울부짖던 그 시각, 도진은 결코 원하지 않았던 곳에서 피러난 새생명의 소식을 듣는다. 가장 비극적인 날 찾아온 가장 잔인한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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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6화. 사면초가(四面楚歌)
CB 대표실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강도진은 책상 위에 놓인 아스테리아의 공식 서한을 노려보며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루체른과 원석 공급 계약을 파기한 지금, 브랜드 신뢰도를 위해 고개를 숙이고 다시 아스테리아의 문을 두드려야만 했다.과거 아스테리아는 CB에 시장가의 70%라는 파격적인 특혜 가격으로 원석을 공급해 왔었다. 하지만 돌아온 그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시장가보다 20% 인상된 금액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도진이 서류를 집어던지며 포효하자, 태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워 올렸다.“대표님, 하지만 아스테리아 측에서 보낸 세부 조항을 보셔야 합니다. 우리가 최근 블랙 다이아몬드 독점 입찰에 성공한 것을 감안해, ‘VVIP 우대 할인’ 명목으로 10%를 차감해 주겠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시장가보다 10% 높은 금액으로 계약을 진행하겠다는 뜻입니다.”“우대 할인?”도진이 실소를 터트렸다. 겉으로는 대단한 혜택을 주는 척 생색을 내고 있지만, 실상은 시장가보다 10%나 비싼 값에 원석을 넘기겠다는 교묘한 폭리였다. 과거에 받던 공급가와 비교하면 CB가 감당해야 할 원가 부담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태준은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예전에 루체른과 함께 저희 회사의 원석 공급을 위해 비공개 입찰을 했던 프랑스 공급사, ‘오렐리 주얼리’에 연락해 보는 건 어떨까요? 거긴 최소한 시장가에 원석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겁니다.”도진은 태준의 말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서류의 가장 마지막 장에 붉은 직인과 함께 찍힌 서슬 퍼런 공문 한 줄을 바라보았다.
Last Updated: 2026-07-03
Chapter: 145화. 덫의 서막
도진이 블랙 다이아몬드 VVIP 쇼케이스 준비로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수진은 진우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수진을 기다리는 것은 차가운 기계음뿐이었고, 진우는 수진의 연락을 받지 않고 그녀의 최근 동향을 샅샅이 조사했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그러자 독이 오른 수진에게서 결정적인 미끼가 날아왔다. 아이들 문제로 상의하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현수와 현지. 진우의 유일한 역린이자 전부인 아이들의 이름이 나오자, 진우는 그제야 차가운 눈을 빛내며 수진이 일방적으로 정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약속 장소로 향하며 진우는 수진의 자료를 다시 상기했다. 수진은 도진의 모친인 김미자에게 임신을 핑계로 30억 원을 받았고, 진단서 사건 이후 그 돈을 당장 돌려주어야 하는 처지라는 점이었다.‘이혼 후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여자가 갑자기 만나자고 한 이유가, 결국 그 30억 때문이었군.’수진은 장미처럼 화려하게 빛나던 예전의 모습이 아닌, 온통 어울리지도 않는 명품으로 도배한 추한 임산부의 모습으로 진우를 기다리고 있었다.“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마주 앉은 수진은 차가운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뻔뻔하게 본론을 꺼냈다.“당신, 현수랑 현지한테 애착 많잖아. 솔직히 강도진은 제 핏줄도 아닌 애들한테 관심도 없어요. 내가 두 아이 양육권, 당신한테 순순히 넘겨줄게요.”진우는 대답 없이 팔짱을 끼고 수진을 응시했다. 그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수진이 침을 삼키며 본색을 드러냈다.“대신, 나 이혼할 때 위자료 한 푼 못 받고 나왔잖아. 그 위자료 셈 치고, 깔끔하게 50억 줘요. 그럼 나도 애들 문제에서 완전히 손 뗄 테니까.”자신의 친자식들을 삼십억 빚을 탕감하고 남은 돈을 챙길 ‘담보’로 던지는 여자. 진우는 속에서
Last Updated: 2026-07-03
Chapter: 144화. 검은 유혹
‘새로운 태양’ 프리미엄 라인의 디자인으로 겨우 강도진의 신뢰를 되찾은 수진은, 다시 그의 카드를 손에 쥐게 되면서 물질적인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백화점 명품관을 돌며 닥치는 대로 긁어대던 영수증만이 그녀의 얄팍한 자존심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쇼핑백이 쌓여갈수록 마음 한구석의 무거운 돌덩이는 도리어 커져만 갔다.도진의 부모, 강 회장 부부에게 받았던 30억 원. 그것이 여전히 수진의 발목을 단단히 옥죄고 있었다.다행이라면 도진의 입김 덕분인지 김미자가 당장 돈을 돌려달라고 사납게 재촉하지는 않는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진의 무정자증 진단서가 세상에 공개된 이후, 아이의 친부에 대한 추잡한 의문은 유령처럼 수진의 뒤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있었다.게다가 수진을 가장 미치게 만드는 것은 도진의 애매한 태도였다.그는 여전히 자신의 집과 수진의 처소를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라인 준비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수진을 찾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배도 불러오는데 회사 출근해서 스트레스받지 마. 특별한 일 없으면 집에서 쉬어.”배려를 가장한 도진의 말은 수진의 귀에 날카로운 배제(排除)로 들렸다.‘이래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내가 어떻게 이지수를 몰아내고 이 자리까지 왔는데……! 왜 아직도 나는 떳떳한 안주인이 아니라 내연녀라는 더러운 꼬리표를 달고 있어야 하지?’수진은 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손톱을 거칠게 물어뜯었다. 불안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올랐다.‘설마 강도진, 그 인간…… 내 디자인만 쏙 빼먹고 날 버리려는 건 아니겠지?’‘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니야, 이 아이는 강도진의
Last Updated: 2026-07-02
Chapter: 143화. 가짜 왕좌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선주문 오픈 30분 만에 10피스 모두 계약 완료되었습니다!”비서실장의 흥분 섞인 보고에 강도진은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붉은 액체가 크리스탈 잔벽을 따라 부드럽게 감돌았다.아스테리아의 블랙 다이아몬드 낙찰 소식을 대대적으로 터뜨린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안젤라이트 이미테이션’ 사태로 바닥을 치던 CB의 이미지는 하룻밤 사이에 ‘세계 유일의 원석을 보유한 독점적 하이엔드 브랜드’로 탈바꿈했다.물론 아직 원석은 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진에게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그는 한수진이 급하게 뽑아낸 디자인 시안을 바탕으로, 일반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넣은 샘플 피스를 제작했다. 그리고 상위 0.1%의 VVIP들만을 은밀히 초청해 프라이빗 프리오더 세션을 연었다.‘눈부신 화이트 다이아몬드가 박힌 이 자리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완벽한 블랙 다이아몬드가 세팅될 겁니다. 오직 전 세계 딱 열 분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입니다.’도진의 유려한 화술과 샘플의 화려함에 매료된 자산가들은 앞다투어 지갑을 열었다. 아직 실물조차 존재하지 않는 보석에 수백억의 선주문 대금이 쏟아져 들어왔다.“완판 소식, 곧바로 2차 보도자료로 배포해. 그리고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한 보급형 라인 샘플링도 이번 주 내로 대중에게 공개한다고 홍보하고.”도진이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곁에 선 태준을 바라보았다.“봤지, 태준아? 프리미엄 라인으로 희소성을 증명하니까, 대중성은 알아서 따라오는 거야. 주춤했던 ‘영원한 사랑’ 주문량도 예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됐다더군. 시장은 이렇게 흔드는 거다.”“……네, 대표님. 대단하십니다.”태준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도진은 승리에 도취해 있었지만, 태준의 손에 든 태블릿에는 수많은 독소 조항이 가득한 계약서와, 당장 메워야 할 대출 이자 그래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선주
Last Updated: 2026-07-02
Chapter: 142화 공개입찰
태준은 손에 든 아스테리아의 블랙 다이아몬드 공개 입찰 초대장을 말없이 응시했다.‘안젤라이트’ 이미테이션 사태는 하이엔드 브랜드 CB의 근간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영원한 사랑’을 출시했을 때만 해도 CB는 ‘청혼 선물로 무조건 받아야 하는 브랜드’라는 공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새로운 태양’ 라인은 ‘상류사회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모두가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되어버렸다. 희소성을 잃고 대중성을 얻었다는 도진의 자평과는 달리, 그것은 브랜드 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의미했다.태준은 도진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 믿으며, 프리미엄 라인으로 ‘희소성’을, 파인 주얼리로 ‘대중성’을 동시에 잡으려 하는 모습이 마치 벼랑 끝에서 춤을 추는 것만 같아 불안했다.입찰장의 공기는 서늘했다. 도진은 넥타이를 거칠게 다듬으며 태준에게 나지막이 지시했다.“이사회 승인액 300억은 어제 송금 완료했지?”“네, 대표님. 그리고… 대출 건도 처리되었습니다.”태준의 목소리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기존 거래 은행들은 CB의 부실한 재무 상태를 이유로 대출을 거부했다. 결국 도진은 RV투자사가 최근 인수한 은행의 문을 두드렸고, 그곳에서 도진이 보유한 CB 주식 30%를 담보로 200억을 승인받았다. 도진은 그것이 자신의 탁월한 사업적 수완이라 믿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태준의 눈에는 그저 진우가 파놓은 거대한 덫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파멸의 행보로만 보였다.도진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태준이 건넨 서류에 머물렀다. 사라 킴이 내건 투자의 조건이었다. 1년 이내에 블랙 다이아몬드 프리미엄 라인 10피스를 모두 판매하고 납품할 것. 실패한다면 CB의
Last Updated: 2026-07-01
Chapter: 141화 가짜 '새로운 태양'
도진은 채준영이 세공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족스럽게 어루만졌다. 이 사람과 계약만 성사된다면 ‘새로운 태양’의 프리미엄 라인으로 선보일 블랙 다이아몬드 세트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당장 채준영과 계약 진행해. 혹시 원하는 조건을 이야기한 건 없나?”태준은 태블릿에서 채준영에게서 온 메일을 도진에게 보여주었다.“다른 건 없었습니다만, 현재 김인식 장인의 공방에서 이지수 씨의 블랙 다이아몬드 세공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품과 같은 날짜에 자신의 작품이 공개되기를 원한다고 하더군요.”“뭐? 지수가 한 디자인을 김인식 장인이 직접 세공하고 있다고? 그 여자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자신이 Z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리고 그 장인은 고집이 대단해 보이더니 꼭 그런 것도 아니군. 제대로 된 작품도 알아보지 못하고!”도진은 태준의 말을 들은 뒤부터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말들을 내뱉었다. 누군가에게 답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불쾌함을 거칠게 쏟아내는 것에 불과했다. 태준은 묵묵히 도진의 분풀이를 받아내며 감정을 죽였다.“좋아. 채준영이 원하는 날짜에 작품만 완성된다면 그렇게 해준다고 약속해. 이번 기회에 이지수에게 현실을 알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태준은 계약서 작성을 위해 태블릿을 챙겨 사무실을 나갔다. 지수와 이혼 후 더욱 흔들리는 CB의 위상, 그리고 도진의 비이성적인 행동에 태준은 깊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날 오후, 태준은 CS팀에서 올라온 보고서와 SNS상의 여론을 확인하던 중 경악할 만한 사실을 발견하고 다급하게 도진의 사무실로 향했다.“대표님, 이거 확인해 보셔야겠습니다.”도진은 태준이 넘겨준 자료를 시큰둥하게 바라
Last Updated: 202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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