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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s by w_kbo

내 친구의 남자였던, 그에게 향하다.

내 친구의 남자였던, 그에게 향하다.

"20년 지기 친구의 전 남친, 그리고 나의 새로운 프로젝트 파트너. 우리는 함께 '향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 10년 차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혜연. 새로운 프로젝트 '카페 블루밍'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재회한 남자, 프리랜서 조향사 강상수. ​그는 20년 지기 절친인 소영의 전 남자친구. ​"당신은 지금 어떤 향기가 나나요?" ​비즈니스 파트너로 다시 만난 두 사람. 카페 공간을 채울 단 하나의 향기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혜연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굴레에 갇혀 잃어버렸던 '진짜 나'의 모습을 발견해 나갑니다. ​우정과 사랑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 그리고 가족과의 갈등을 넘어 각자의 꿈을 찾아가는 치열한 성장통.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전문직 로맨스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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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잉크 자국 같은 진실 #2
갑자기 목이 메어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스튜디오 안의 공기가 아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정돈된 카운터 뒤에 숨겨진 이 어지러운 작업실이야말로 상수의 진짜 얼굴이었다. 내가 어제 그에게 던졌던 가시 돋친 말들이, 마치 부메랑이 되어 내 심장을 짓이기는 것 같았다. ‘운이 좋았다’는 그의 말은 타인에게 동정을 구걸하지 않으려는 고독한 자존심이었고, 소영을 향한 마지막 배려였다는 사실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어... 혜연 씨?”​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상수가 한 손에 편의점 커피 두 잔을 들고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내가 서 있는 위치와 손에 든 서류들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얼굴이 붉어지며 황급히 다가왔다.​“아, 그게... 제가 정리를 좀 못 해서요. 이쪽은 손님이 들어오시는 곳이 아닌데.”​상수는 허둥지둥 서류들을 뭉쳐 서랍 속으로 밀어 넣었다. 평소의 어리숙한 모습이었지만, 이제 내 눈에는 그 어리숙함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파도와 싸워온 흔적이 너무나 명확했기에.​“연락도 없이 와서 죄송해요. 도면 수정본이 나와서...”​내 목소리가 평소보다 떨렸다. 상수는 여전히 서류를 숨기느라 내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뒷머리를 긁적였다.​“아니에요. 제가 전화를 못 받아서 그렇죠. 근데... 왜 그렇게 보세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그는 멋쩍은 듯 웃으며 내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그가 건넨 따뜻한 캔커피의 온기가 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바닥에는 아까 내가 밟았던, 그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먼지 묻은 서류 가방이 놓여 있었다.​“아니요. 그냥... 상수의 스튜디오 향기가 참 좋아서요.”​내 입에서 처음으로 ‘강상수 씨’가 아닌 ‘상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상수는 내 호칭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듯 그저 헤헤, 하고 바보같이 웃었다.​“좋다니 다행이네요. 혜연 씨
Last Updated: 2026-07-10
Chapter: 잉크 자국 같은 진실 #1
어젯밤 술자리에서 상수가 내뱉은 말은 차가운 얼음 조각처럼 내 가슴 한구석에 박혀 녹지 않았다.​“운이 좋았죠. 답답해서 회사를 나왔고, 마침 교양 수업 때 배운 게 생각나서 시작했는데... 이게 여기까지 왔네요.”​그의 목소리는 담백했고, 표정은 지나치게 평온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이 내게는 기만처럼 느껴졌다. 누구는 정답을 맞히기 위해 밤을 새우고, 설계도 위의 선 하나에 목숨을 거는 치열한 생존을 이어가는데. 그는 마치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맡겼더니 우연히 꽃밭에 도착했다는 식의 태도였다.​‘운이 좋았다’는 말만큼 노력하는 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단어가 또 있을까. 나는 그가 미웠다. 소영이가 말했던 무책임한 전 남친의 모습이 그 ‘운’이라는 단어 뒤에 교묘하게 숨어 있는 것 같아 속이 뒤틀렸다. 그래서 나는 더 차갑게 굴기로 했다. 그가 가진 그 가벼운 행운을 비웃어주는 것이, 내 정당한 설계도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으니까.​다음 날 오후, 협업 중인 ‘블루밍 프로젝트’의 수정 도면을 전달하기 위해 상수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미리 연락을 했지만 상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평소라면 그냥 돌아갔겠지만, 묘한 오기 같은 것이 나를 움직였다. ‘얼마나 대단한 운으로 스튜디오를 꾸려가는지 똑똑히 봐주지.’​스튜디오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낡은 경첩 소리가 정적을 깨우며 스튜디오 내부로 나를 안내했다.평소 상수가 손님을 맞이하던 깔끔한 카운터 너머,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그의 진짜 ‘현장’이 보였다.​“강상수 씨?”​대답은 없었다. 대신 비좁은 창틈으로 들어온 오후의 햇살이 먼지와 섞여 금빛 실타래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작업실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내가 상상했던 ‘운 좋은 조향사’의 공간과는 전혀 다른 광경을 마주했다.​작업대는 지독하게 어지러웠다. 수백 개의 작은 갈색 병들이 번호표를 달고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앞에는 깨진 시험관과 쏟아진 향료 자국들이 얼룩
Last Updated: 2026-07-10
Chapter: 낙오된 자의 조향 #2
형 재현이 없는 낮 시간, 나는 오피스텔 거실 한복판에 주저앉아 먼지 쌓인 조향 키트를 꺼냈다. 대학 시절 교양 수업 때 호기심으로 샀던 그 작은 병들. 사회가 나를 부정하고, 소영이 나를 외면할 때 오직 이 병들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처음으로 섞어본 향은 '비'였다. 창밖으로 내리는 우울한 진눈깨비 냄새를 재현하고 싶었다. 시더우드 오일 몇 방울에 흙내음이 나는 패출리를 섞었다. 코끝을 찌르는 그 축축하고 서늘한 향기를 맡는 순간, 나는 3년 만에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최 부장의 호통 소리도, 불합격 통보 메일도, 형의 시선도 닿지 않는 나만의 방어막이 형성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향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형의 눈치를 보느라 향이 강한 베이스 노트들은 베란다 창틀 뒤에 숨겨두고, 재현이 잠든 새벽에만 몰래 꺼내 시향지에 묻혔다.형은 가끔 집안에서 나는 기묘한 냄새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야, 너 요새 이상한 냄새 안 나냐? 무슨 숲속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지하실 냄새 같기도 하고." 나는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형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낙오된 자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낸 마지막 생존의 향기였으니까.​하지만 소영에게 그 모습은 최후의 타락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통해 내 마지막 비상구마저 폐쇄하려 했다. "오빠, 정신 차려. 이게 돈이 돼? 이 냄새 나는 병들 가지고 놀면 누가 돈을 줘?"​그날, 좁은 나의 방에서 수화기 넘어로 들리는 그녀의 이별 통보를 들었다. 8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이별은 단 3분 만에 통화로 끝났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영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칼날에 베이는 순간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듣고 있어? 우리 여기까지 하자고.”​그 짧은 문장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을 때,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때 내가 느꼈던 그 감정—그건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8년 동
Last Updated: 2026-07-10
Chapter: 낙오된 자의 조향 #1
“혜연 씨에게 말했었죠. 답답해서 회사를 나왔다고.”​맥주잔 표면에 맺힌 차가운 이슬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테이블 위로 낙하했다. 어젯밤 술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던 혜연 씨의 눈동자가 잔상처럼 떠오른다. 그 눈은 나를 향한 애정이라기보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난해하고 지저분한 도면을 보는 듯한 날카로운 탐색의 빛에 가까웠다. 단 한 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그녀의 인생에서, 나라는 존재는 아마도 설계도 위에 멋대로 튄 시커먼 잉크 자국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그녀는 내 전향을 두고, 마치 세상의 질서를 어긴 반칙을 목격한 사람처럼 묘한 멸시와 당혹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시선을 견디며 차마 진실을 뱉어내지 못했다. 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운이 좋았다’는 말은 사실, 비겁하게 숨어든 생존자의 비명이었고, 내 비참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의 방부제였다.​사실은 말이죠, 혜연 씨. 나는 선택해서 나온 게 아니었어요. 나는 세상에 의해 밀려난 거였습니다.​20대 후반, 남들처럼 평범하고도 치열하게 들어갔던 그 대기업에서 나는 3년이라는 세월을 유령처럼 버텼다. 매일 아침 6시 30분, 지하철의 숨 막히는 인파 속에서 나는 이미 나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누군가의 팔꿈치가 내 옆구리를 찌르고, 타인의 불쾌한 땀 냄새가 내 셔츠 깃에 배어들어도 나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저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무채색의 부품, '강 사원'이라는 기호로만 존재할 뿐이었다.​내 책상 위에는 늘 똑같은 각도로 정렬된 파일철들이 나를 감시하듯 서 있었다. 당시 내 직속 상관이었던 최 부장은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내 보고서의 내용보다 오타 하나, 자간의 간격 하나에 더 집착했다.​“강상수 씨, 이 폰트 뭐야? 우리 팀 가이드라인 몰라? 자네는 3년이나 다녀놓고 아직도 기본이 안 되어 있나?”​최 부장이 내던진 서류 뭉치가 내 발등 위에 떨어지던 날의 감촉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종이 모서
Last Updated: 2026-07-10
Chapter: 틈, 혹은 불협화음의 서막 #2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방어벽을 쳤지만, 오후의 클라이언트 미팅에서 보여준 상수의 모습은 그 벽을 비웃듯 무너뜨렸다. 그는 혜연의 차가운 금속 소재와 직선적인 가구 배치 위로, 마치 안개처럼 부드럽게 스며드는 향기를 제안했다. 클라이언트는 감탄했고, 미팅은 완벽한 성공이었다.미팅이 끝나고 향한 맥주집. 민지는 이미 분위기에 취해 두 사람을 대놓고 엮기 시작했다.​“상수 씨, 우리 혜연이가 어릴 때부터 1등만 해서 연애를 좀 못 해요. 걔가 도면은 완벽하게 그려도 사람 마음은 잘 모르거든요. 고지식함의 결정체랄까? 근데 오늘은 좀 풀어지네? 너 맥주 한 잔에 얼굴이 그렇게 빨개지면 어떡해?”“민지야, 제발 그만해!”​혜연이 테이블 밑으로 민지의 발을 걷어찼지만, 이미 차오른 술기운은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홍당무가 된 얼굴로 맥주잔만 들이키는 혜연을, 상수는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자, 상수 씨. 솔직히 말해봐요. 우리 혜연이 첫인상, 진짜 재수 없었죠? 너무 빡빡해서 숨 막혔죠?”​민지의 짓궂은 질문에 혜연은 차라리 이 자리가 꺼지길 바랐다. 하지만 상수는 잔잔한 웃음을 띠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첫인상은… 세상에서 제일 빈틈없는 사람처럼 보였어요.”​그의 시선이 혜연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고정되었다.​“그래서 더 궁금했습니다. 저 단단한 방패 뒤엔, 도대체 어떤 맘이 숨어 있을까 하고.”​상수의 그 말은 단순한 호기심의 선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혜연이 정성껏 쌓아 올린 성벽의 가장 약한 지점을 정확히 겨냥한 직격탄이었다. 혜연은 타오르는 얼굴을 감추려 차가운 맥주잔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축축한 습기가 마치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 같았다."어머, 작가님 멘트 장난 아니다! 혜연이 방패가 아니라 유리창이라니까? 속이 다 보여!"민지가 짓궂게 웃어댔지만, 혜연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직 제 앞에 앉아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응시하는 상수의 눈빛만이 비현실적으로 선
Last Updated: 2026-07-10
Chapter: 틈, 혹은 불협화음의 서막 #1
박혜연의 삶은 톱니바퀴가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스위스제 시계와 같았다.​새벽 5시 30분.창밖의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암막 커튼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기 직전, 알람이 울리기 정확히 1분 전 눈을 뜨는 것. 그것은 혜연이 10년 동안 스스로에게 부여한 유일한 훈장이자 자부심이었다. 6시 정각에 시작되는 한강 변 조깅은 폐부 깊숙이 차가운 공기를 집어넣어 잡념을 털어내는 의식이었고, 7시의 정확한 영양 배합 단백질 셰이크는 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연료 주입이었다. 8시 00분, 사무실 지문 인식기에 손가락을 올릴 때 느껴지는 그 짧은 기계음은 그녀가 오늘도 완벽한 '박 과장'으로 접속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부모님은 항상 “우리 혜연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커서 참 기특하다”며 친척들 앞에서 입버릇처럼 자랑을 늘어놓곤 했다. 혜연은 그런 ‘완벽한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을 자신의 정체성이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세상의 거친 파도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단단하고 차가운 방패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랬다.​하지만 오늘 아침, 그 견고하던 톱니바퀴 사이에 고운 모래알 같은 것이 끼어들었다.​어젯밤 폐건물 공사 현장, 그 먼지 구덩이 속에서 맡았던 낯설면서도 매혹적이던 샌달우드 향기가 문제였다. 잠결에 뒤척일 때마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그 서늘한 나무 냄새가 혜연의 무의식 저편을 자꾸만 헤집어 놓았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평소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기’라는 금기를 깨고 만 것이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평소 기상 시간을 30분이나 훌쩍 넘긴 뒤였다.​“아, 진짜… 박혜연, 너 왜 이래!”​헝클어진 머리칼만큼이나 마음도 어지러웠다. 주방으로 달려가 하얀 단백질 가루를 셰이크 통에 담으려 했지만, 초조함에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툭, 하고 미끄러진 스푼이 바닥에 부딪히며 하얀 가루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검은색 대리석 바닥 위로 흩어진
Last Updated: 202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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