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강서이는 민도하의 청혼을 7년 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건 침묵뿐이었다. 결국 강서이는 결심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민도하에게 고백하고, 청혼하겠다고. 하지만 그날, 우연히 듣게 된다. 민도하의 마음속에는 오랫동안 잊지 못한 첫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첫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위 기꺼이 버리고, ‘내연남’이 될 각오까지 되어 있다는 걸. 이 세상은 거대한 첫사랑의 무대였다. 강서이는 민도하의 사랑을 조용히 인정하고 내려왔다.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자기 마음에 갇힌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모두가 말한다. “강서이, 또 삐졌네.” “조금 있으면 돌아오겠지.” “...” 민도하 역시 그렇게 믿었다. 7년 동안 길들인 ‘강아지’는 도망가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도망칠 수 없는 쪽은 강서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음을. 세상은 강서이를 두고 비웃는다. “7년 동안 공짜로 이용만 당했네.” “...” 하지만 민도하만 알았다. 정작 공짜로 이용당한 쪽이 자기라는 사실을.
View More알고 보니 큰돈을 들여 이 고서화를 낙찰받은 건, 노아리를 대신해 민두해의 환심을 사려던 것이었다.어쩐지 그렇게 아낌없이 돈을 쓰더라니.“그래도 이 그림한테 화풀이하실 건 없잖아요. 꽤 비싼 건데, 버리면 너무 아까워요.”강서이는 그저 이 고서화가 아까울 뿐이었다.“그럼 네가 좀 처리해라. 중고 거래 앱에 올려서 천 원에 팔아 버려. 눈에 거슬리게 여기 두지 말고.”민두해는 정말로 싫어했다. 강서이가 오지 않았다면 이 고서화는 내일 쓰레기장에 처박혔을 게 뻔했다.“그건 너무 밑지는 거예요.”“밑지긴. 원래 버릴 건데, 천 원이라도 건지면 남는 장사지.”강서이는 부자의 사고방식에 도무지 공감이 안 될 때가 있었다.그리고 이제는 알 만했다. 민두해는 정말로 이 고서화를 버릴 사람이었다.강서이가 절충안을 하나 궁리해 냈다.“회장님, 이렇게 하시죠. 제가 전문 감정사를 불러 이 고서화 감정을 받아볼게요. 값이 얼마로 나오든, 그 값을 제가 계좌로 보내 드릴게요.”“그 고서화가 마음에 드니? 그럼 그냥 가져가.”민두해는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강서이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그냥 받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사겠습니다. 회장님께서 주신다고 하면 안 받겠습니다.” “게다가 제가 말씀드린 방식대로면 회장님도 밑지시는 거니까, 그냥 주시는 거나 다름없습니다.”민두해도 강서이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알았다.선물로 그냥 주겠다고 하면 강서이는 절대 받지 않을 사람이었다.그래서 민두해가 먼저 물러섰다.“알았다. 네 말대로 하자.”강서이는 민두해와 진정차를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서 작별을 고했다.진인자는 약뿐 아니라 강서이가 먹을 음식도 잔뜩 챙겨 주었다.과일과 평소 만든 새우만두 같은 간편식들이었다. 진인자는 꼭 식사를 챙겨 먹으라고 했다. 건강에 안 좋다고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강서이는 매번 이 집에 오면 먹고 또 받아 가기만 하는 것 같아서 괜히 민망해졌다.진인자는 오히려 즐거워했다.“서이 씨, 시간 나
강서이는 최대한 빨리 민씨 저택으로 도착했다.정문을 들어서자 민두해가 아직도 마당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날은 곧 어두워질 참이었고, 기온도 낮보다는 뚝 떨어져 있었다.밤바람이 정원의 나뭇잎을 스쳐 서걱서걱 소리를 냈다.강서이가 큰 소리로 불렀다.“회장님.”민두해는 넋이 나가 있어서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강서이가 조금 더 다가가서 다시 불렀다.“회장님.”“아, 서이야.”민두해가 그제야 조금 반응을 보였다.강서이는 그때야 민두해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정말 살이 쫙 빠져 있었다.“왜 안으로 안 들어가세요? 바람이 찹니다. 감기 걸리실 수 있어요.”강서이가 민두해 앞에 쪼그려 앉으면서 참을성 있게 말을 건넸다.“몰랐네.”민두해는 그제야 날이 저물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제가 모시고 들어갈게요.”“그래.”강서이가 민두해의 휠체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가자, 진인자가 주방에서 반찬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진인자는 강서이를 보자 눈이 환해졌다.“서이 씨 왔네요. 마침 잘됐어요. 식사도 다 됐으니까 바로 드시면 됩니다.”“먼저 손 씻으러 가시죠.”강서이는 익숙하게 가방을 소파에 던져 놓고는 민두해를 밀어 손을 씻으러 갔다.저녁상은 푸짐했다. 전부 진인자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었다.강서이가 있어서 민두해도 억지로나마 좀 들었다.진인자는 이게 요즘 들어 근래 민두해가 가장 많이 먹은 식사라고 했다.“회장님, 식사는 제대로 하셔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몸이 제일 중요합니다.”강서이가 타이르듯 말했다.민두해는 한숨을 내쉬었다.“요즘 들어 마음은 있는데 몸이 안 따라 줘. 나이가 들어 그런지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정신도 통 집중이 안 돼. 회의할 때도 자꾸 딴생각에 빠지고.”민두해는 예전에 아주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다리를 다친 건 물론이고, 머리도 크게 다쳐서 수술도 여러 차례 받았다.의사는 머리를 지나치게 쓰면 극심한 두통이 올 수 있다고 했다.그래서 민두해는 몸이 회복된 뒤 경영
강서이는 의아했다.“약혼 청첩장까지 돌렸는데 아직 장소도 안 정했어요?”부사장이 웃으며 설명했다.[그게 아니라요, 노아리 본부장님이 결혼식장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해서, 민 대표님이 같이 가서 식장 안을 다시 손보고 계신 거예요.]거기까지 말한 부사장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부러움이 묻어났다.[민 대표님이 노아리 본부장님을 얼마나 애지중지하시는지 강 대표님은 모르실 거예요. 소설 속 재벌 남주가 현실로 튀어나온 격이라니까요.]강서이의 관심은 그런 데 있지 않았다. 부사장에게 물었다.“그럼 부사장님네 양 사장님은요? 아직 휴가가 안 끝나셨어요?”[아... 아직 모르세요?]부사장이 좀 머뭇거렸다.“뭘요?”부사장은 이미 공개된 소식이니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강서이도 협력사 대표라 앞으로 마주칠 일이 많을 테니, 아예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양정원 사장님은 노아리 본부장님과 경영 방향이 안 맞아서 팀을 통째로 데리고 영승반도체에서 나가셨어요.]“언제 일이에요?”‘왜 아무런 소문도 들리지 않았을까?’[바로 이번 주 월요일이에요.]부사장이 날짜를 짚어 주었다.강서이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경매가 있던 바로 그날 아니야?’양정원은 영승반도체의 핵심 인물이었다. 영승반도체가 정식으로 설립되기 전부터 민도하와 함께 고생한 사람이었다.근무 연차도 상당했다. 공도 세우고 궂은일도 도맡은, 영승반도체의 기둥 같은 존재였다.‘그런 사람을 민도하가 그렇게 쉽게 내보냈다고?’‘내보내고도 그 첫사랑을 데리고 신나게 경매장을 누비며 돈을 펑펑 썼다고?’강서이는 이제는 민도하가 다중인격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접었다.차라리 민도하가 딴사람에게 몸을 빼앗겼거나, 아니면 환생이라도 한 게 아닐까 싶었다.민도하의 몸에 들어간 사람은 노아리밖에 모르는 호구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민도하, 정말 대단해!’강서이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노아리는 성이남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눈빛에는 기대가 어렸다.성이남은 원래 계속 따라붙으려고 했지만, 노아리의 눈빛과 마주치자 들어 올리려던 손을 도로 내렸다.더는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결국 그 고서화는 100억 원에 낙찰되었다.남유환마저 감탄을 금치 못했다.“도하 저 녀석, 스케일이 너무 크잖아요. 예물만 200억 원이면 예단은 얼마나 더 하려는 겁니까? 친구들 숨 좀 쉬게 해 줘야죠.”낙찰된 두 점 모두 자신과는 무관한 걸 확인한 강서이는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곧이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남유환에게 인사를 건넸다.“전무님, 저는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저도 볼일이 있어서요.”남유환도 곧바로 일어섰다.“전무님은 아직 아무것도 안 사셨잖아요.”“사고 싶은 게 남한테 넘어갔으니 강 대표님이랑 똑같죠. 참 신기하죠? 우리 둘 다 빈손이네요.”남유환의 재치 있는 말에 강서이가 웃음을 터뜨렸다.“그러네요. 꽤 신기하네요. 그럼 같이 나가시죠.”남유환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곧장 강서이를 따라붙었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 봐 발걸음도 빨랐다.경매장을 나선 강서이는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남유환의 차는 반대편 주차장에 있었지만, 강서이를 따라서 계속 걸었다.“강 대표님, 어차피 만난 김에 식사라도 하시죠.”“오늘은 안 돼요. 볼일이 있어서요. 다음에 하시죠.”예상대로 강서이는 정중히 거절했고, 남유환에게 인사를 건넨 뒤 차를 몰고 떠났다.처음부터 끝까지 5분도 걸리지 않을 만큼 깔끔했다.남유환은 멀어지는 강서이의 차를 바라보며 묘한 허전함을 느꼈다.사실 남유환은 강서이에게 솔직히 말하고 싶었다. 마음이 있으니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하지만 지난 7년 동안 자신이 강서이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남유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었다.두 회사의 협력 관계가 아니었다면, 강서이는 남유환과 말 한마디도 길게 섞지 않았을 것이다.서태우를 대하는 것처럼.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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