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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언어의 예고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30 08:13:26

이우와의 만남은 그날 저녁, 뜻밖의 장소에서 이뤄졌다.

갤러리 오프닝 행사. 검정 슈트를 입은 이우는 군중 속에서 유리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가가자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검찰 보고, 넣으셨다면서요.”

“생각보다 정보가 빠르시네요.”

“그만큼 관심 있는 분야라서요.”

“회장님 얘기예요? 아니면 그 사람이 지워버린 여자에 대한?”

이우는 웃지 않았다. 다만, 눈을 한 번 감고, 다시 떴다.

“그 둘은…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죠.”

전시된 작품 앞, 두 사람은 나란히 섰다.

캔버스엔 반쯤 지워진 얼굴 하나.

형체는 흐렸지만 눈만은 살아 있었다.

“그 사람이 보낸 청첩장, 당신도 알고 있었죠.”

유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물었다.

이우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 종이는, 입막음이었어요. 무언가 약속하겠다는 게 아니라, 말하지 말라는 방식의 포장.”

“언니는 그걸 믿었던 걸까요?”

“그건 당신이 더 잘 알겠죠. 당신 언니였으니까.”

유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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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위험한 여자   50. 당신을 지키는 일, 그게 나의 전부입니다

    “이건 단순한 협박이 아니에요. 윤시훈, 그 사람은 저한테 감정을 가장해서 계속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어요.”유리는 이우의 사무실, 책상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전날 밤 이후, 한숨도 자지 않은 얼굴.하지만 눈빛은 오히려 더 맑았다.이우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은 정보를 흘려서 상대가 직접 움직이게 만드는 걸 즐기는 인물입니다.”“그러니까…지금 이 순간도,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겠죠.”“맞습니다.그래서 지금부터는 유리 씨가 아니라, 제가 움직이겠습니다.”이우는 손에 들린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유리는 그것을 받아들고 첫 장을 펼쳤다.거기엔 ‘고발’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익명 제보자 명의로 구성된 문서.시훈의 재단 자금 불투명성, 복지 센터 내부 인사 개입, 가짜 후원 기록.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엔 유진의 사고와 관련된 인물 리스트가 있었다.“이걸... 진짜 내보낼 거예요?”유리는 묻는 동시에 자신도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이건 명백한 선언이 될 겁니다. 그 사람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요.”이우는 조용히 덧붙였다.“지키는 것엔 이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누군가를 정말 지키고 싶을 땐, 그 사람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요.”유리는 잠시 눈을 감았다.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서약처럼 들렸다.“…지금 이우 씨 옆에 있는 이 감정, 거짓 아닌 거 맞죠?”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처음엔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심입니다.”그 말은 유리의 감정을 완전히 흔들었다.하지만 그녀는 그 흔들림을 꾹 삼키고, 서류를 손에 쥐었다.“그럼, 이제 나도 움직여야겠네요.”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그 사람한테 줄 충격은, 같이 준비해요.”이우는 미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시각. 시훈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우가 움직였다는 사실을 듣고 있었다.“이우가? 조유리 씨의 센터 관련 고발 문서를 준비 중이라네요.”보좌관의 말

  • 너무 위험한 여자   49. 무너진 흐느낌 끝에

    보낸 사람: 윤시훈. 영상 파일 첨부됨.유리는 손을 떨며 핸드폰을 들었다.이우는 그녀의 눈빛을 읽고 핸드폰을 가로막았다.“지금은, 그걸 보지 마십시오.”“…하지만 그 안에…”“그 사람이 만든 ‘두 번째 상처’일지도 모릅니다. 확인하는 순간, 그 사람이 원하던 감정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유리는 핸드폰 화면에서 영상을 다시 눌렀다.이우의 말대로 지금은 보지 말아야 할 타이밍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클릭하고 있었다.영상이 시작됐다.흐릿한 야간 조도. 멀리서 흔들리는 헤드라이트.그리고 흙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여자.유진이었다.숨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움직이는 손이 보였다.마치 누군가를 향해, 뭔가를 짚으려는 듯한 손짓.그리고 그 순간. 프레임 안으로 누군가의 다리, 검은 정장이 들어왔다.천천히 조유진 앞에 앉아 무릎을 꿇고, 얼굴을 숙였다.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 실루엣은 유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너무 잘 알고 있는 윤시훈이었다.“언니가, 봤어… 그 사람 얼굴을…”유리는 혼잣말처럼 중얼이며 입을 틀어막았다.화면 속. 시훈은 조유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리고 웃었다. 단 한 번, 아주 짧게.하지만 그 웃음은 기억을 꿰뚫는 독처럼 새겨졌다.영상은 거기서 끊겼다.유리는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떨어뜨렸다.이우가 곧바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었다.그리고 유리의 어깨를 붙잡았다.“괜찮으십니까?”“아뇨.”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이우의 셔츠 자락을 잡았다.“이젠 괜찮지 않게 해도 돼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강해지려 하지 않아도 되죠?”이우는 말없이 그녀를 안았다.그의 품 안에서, 유리는 터져버린 감정을 애써 참지도 않았다.“이우 씨… 내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아니요. 하지만 저는, 유리 씨가 어떤 얼굴을 해도 그 안에 있는 진심은 믿을 수 있습니다.”그 말은 울음을 멈추게 했고, 다시 울게 만들었다.그날 밤, 이우는 조용히 시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당신이 건드린

  • 너무 위험한 여자   48. 숨기면 안 되는 감정, 외면하면 안 되는 진실

    차 안은 조용했다. 이우는 운전대 위에 손을 얹은 채,가로등을 따라 번지는 불빛을 천천히 지나쳤다.조수석에 앉은 유리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하지만 그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의 감정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조유리 씨.”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괜찮으십니까?”“…괜찮아질 거예요.”그 말에 이우는 핸들을 조심스레 돌리며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지금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하지만, 그 일이 당신을 혼자 있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것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조용한 맹세 같았다.유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차 안의 어둠 속에서, 이우의 눈동자는 또렷했다.거기에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신념이 있었다.“나중에 말할게요. 그 사람이 시훈 씨가…뭘 말했는지, 내가 뭘 들었는지.”“기다리겠습니다.”그는 그렇게 대답했다.그 짧은 말이, 유리의 마음을 더 무너뜨렸다.‘기다리겠다’는 말은 모든 감정을 존중하는 자세였다.유리는 창밖을 바라봤다.어둠 속 도시 풍경은 자신의 마음 같았다.무언가 말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것 같은 감정.하지만 말하는 순간 무너질까 두려운 감정.그 틈에서 그녀는 입술을 떨며 말했다.“…이우 씨.”“네.”“혹시 내가 지금 이 순간 당신한테 기댄다면, 당신은 나를 받아주실 수 있으세요?”이우는 답하지 않았다.대신 차를 멈추었다.그리고, 유리를 바라보았다.그 시선엔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무엇보다 지금부터의 모든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는 유리는 한숨처럼 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말했다.“그 사람이… 조유진 언니가 죽던 날, 그 순간의 얼굴을 보여줬대요. 언니한테, 일부러.”이우의 눈빛이 바뀌었다. 숨이 얕아졌다.“그 단추… 부검 당시 입에서 나온 걸 그가 갖고 있었어요.”“…….”“그걸, 내 앞에 꺼냈어요.”이우는 핸드폰을 꺼냈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입력하며 조용히 말했다.“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지금부터는 그를 직

  • 너무 위험한 여자   47. 다시 시작되는 밤

    유리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기억 저편에서 떠오르던 불안한 조각들이 모두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왜요… 왜 그런 짓을 했어요…”시훈은 한참 침묵하다,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당신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전 당신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모든 걸 계획했어요.”유리는 의자에서 일어나려다 순간 균형을 잃고 주저앉았다.“조유진 씨가 당신의 언니가 아니라면 제가 여길 이렇게까지 망치지 않았을 겁니다.”“…….”“하지만, 당신의 슬픔을 통해 당신의 마음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난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그게 사랑이라고 말하려는 거예요?”시훈은 웃지 않았다.“사랑이란, 그 사람 안에서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미쳤군요.”“네. 그게 제가 가진 유일한 진심입니다.”유리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한때 따뜻한 후원자였고,지금은 비틀린 감정을 포장한 잔혹한 설계자였다.그녀는 입술을 떨며 말했다.“언니가…당신 얼굴을 보고 죽었다고요?”“네.”“그걸…당신은 일부러 그 순간을 만들어놓고, 그녀가 기억하게 만든 거군요.”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움직임은 섬뜩할 정도로 매끄러웠다.“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 나라는 것, 그게 내 존재를 가장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방법이었어요.”유리는 핸드폰을 다시 들어 녹음을 멈췄다.그리고 손에 쥔 그것을 그대로 테이블 위에 던졌다.“이걸로 당신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안 될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보여드린 건 단지 서곡일 뿐이니까요.”“당신…지금 이 모든 걸 왜 말하는 거죠?”“당신이 날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순간 유리는 그 자리에 서서 탁자 너머의 시훈을 향해 외쳤다.“나는 당신을 단 한 번도 선택한 적 없어요.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당신이 혐오스러워요!”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에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하지만 시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괜찮습니다. 사랑은 처음

  • 너무 위험한 여자   46. 시작은 침묵이었고, 그 끝엔 진실의 그림자가 있었다

    시계 초침 소리가 병원 대기실보다 더 건조하게 울렸다.호텔 9층. 조용한 미팅룸. 탁자 위엔 차가 식었고, 햇살도 들지 않았다.유리는 앉아 있었고, 시훈은 문 앞에 서 있었다.이 장면은 너무 정갈해서 마치 준비된 연극 같았다.그녀는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시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저를 여기로 부르신 이유가 뭔가요?”목소리는 단단했지만, 긴장이 묻어나는 결.하지만 유리답게 그 결조차 조용하게 곧았다.시훈은 웃지 않았다.“차 한 잔 하시죠. 커피보단… 오늘은 진저티로 준비했습니다.”“마시지 않겠습니다.”“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는 들어주시겠죠?”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손끝으로 테이블을 아주 천천히 톡톡 두드렸다.세 번. 규칙적인 리듬.그건 유리가 깊은 생각을 시작할 때 보이는 신호였다.시훈은 그것까지 읽는 듯 천천히 맞은편에 앉았다.“조유리 씨는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제 성격 분석하려고 부르신 건 아니겠죠.”“분석요? 아뇨, 전 이미 오래전에 끝냈습니다.”“…무슨 말씀이시죠?”시훈은 테이블 아래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그 안엔 유리의 대학 시절 출석 기록,가족관계, 졸업 논문 주제,심지어 대학교 앞에서 마지막으로 주문했던 커피 취향까지 있었다.라떼에 시나몬 가루를 싫어했던 조유리.미세하게 써놓은 이력은 마치 누군가의 일기처럼 섬세했다.“이걸 왜…”“제가 조유리 씨를 처음 본 건, 서울법대 1학년 2학기, 교양 철학 수업이었습니다.”“…….”“그때부터였습니다. 이상하게 눈에 밟히더군요.”“스토킹입니까?”“스토킹은 관심의 저급한 방식이고, 저는 항상 ‘관찰’에 가까운 거리에서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천천히 들여다봤죠.”유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마음속에선 정체 모를 찬물이 머리 위로 끼얹어지는 듯한 불쾌감이 밀려왔다.그 불쾌감은 곧 ‘알고 있었다는 공포’로 뒤바뀌었다.“유진 씨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놀라지 않으셨죠.”

  • 너무 위험한 여자   45. 흔들리는 새벽녘

    이우는 새벽 2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핸드폰에 뜬 한 줄 메시지.'센터 앞에 누가 있었어요. 방금 도망쳤어요.'보낸 사람은 은서였다. 그리고, 유리였다.그는 바로 차를 몰았다. 강남의 불 꺼진 센터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경찰차 한 대가 도착해 있었다.문은 일부 파손됐고, 안에는 아무것도 도난당한 게 없었다.하지만 더 무서운 건, 그 모든 흔적이 마치 ‘누군가의 경고’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유리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이우가 다가가도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무섭지는 않으셨습니까?”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 눈엔 피로보다 깊은 감정이 들어 있었다.“…무서웠어요.”그리고 이어지는 한 마디.“근데 더 무서운 건… 이제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예요.”이우는 말없이 그녀 옆에 앉았다.긴 침묵이 흐른 뒤, 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이러려고 센터 연 게 아닌데요…”“…조유리 씨가 만든 곳입니다. 어떤 흔들림이 와도 유리 씨가 있는 한, 이곳은 무너지지 않습니다.”“그 말, 진심이세요?”“물론입니다.”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그 말 하신 김에 제 마음도 받아주시면 안 돼요?”이우의 눈빛이 흔들렸다.“…그건,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때…”“이젠 그런 말 듣기 싫어요.”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계속 밀어내면서 계속 옆에 있는 거, 저한텐 더 잔인해요.”잠시 정적이 흘렀다.그리고 유리는 천천히 이우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올렸다.“저, 이우 씨가 있어서 살아남았어요. 근데 이젠, 이우 씨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요.”그녀의 눈동자는 맑았다. 슬픔이 아닌, 확신이 담겨 있었다.이우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말로는 붙잡을 수 없는 감정이 지금 이 순간, 손끝에 전해지고 있었다.그 시각. 시훈은 어두운 회의실 안에서 CCTV 영상을 재생하고 있었다.영상엔 누군가 센터 앞에서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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