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는 류여진이 다섯 푼에 사 온 하녀였다. 류여진이 혼인 당일 도망치자, 내가 대신 꽃가마를 타고 세자 심인혁에게 시집갔다. 혼인 후 나는 내 신분을 잊고 세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거문고와 바둑, 그림, 글공부를 열심히 배웠다. 또한 류여진의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흉내 내며, 명문가 아가씨인 척했다. 도망친 류여진만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계속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차 마시는 예절을 배우러 찻집에 갔다가 심인혁이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여진이가 돌아왔는데, 넌 왜 아직도 그 천한 계집을 내쫓지 않는 것이냐?" 심인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여진이는 저택에 갇혀 지내는 걸 싫어하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할 가짜가 아직은 필요하거든." "게다가 우리 어머니 성격이라면 여진이를 가만두지 않으실 것이다." 친구가 다시 물었다. "그 계집이 아이까지 낳으면 나중에 내쫓기 힘들지 않겠느냐?" 심인혁이 비웃었다. "첫날밤에 이미 임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약을 먹였으니, 설아는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노비 문서도 내 손에 있으니, 언제든 팔아치우면 그만이다."
View More잔혹한 진실이 심인혁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그가 소중히 여겼던 은인이 사실은 그를 납치했던 장본인이었고, 그가 존경하던 형은, 사실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했다."쿨럭—"심인혁의 입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류여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아닙니다! 저는 세자의 아이를 가졌으니, 저를 함부로 건드리면 안됩니다!"나는 차갑게 웃으며 그녀의 볼록한 배를 쳐다봤다."아이라고요? 정말로 아이를 가지신 것이 맞습니까?"나는 소리 높여 말했다."폐하, 소인은 태의원의 의원께서 이 자리에서 직접 류씨의 맥을 짚어, 사실인지 거짓인지 밝혀 주시기를 청합니다!"황제의 허락을 받은 의원이 다가와 류여진의 맥을 짚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폐하, 류씨의 맥은 평온하며 아이를 가진 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류여진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분명히…"나는 담담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임신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약을 마셨다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아니면 배에 넣은 솜 베개를 어느 가게에서 샀는지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류여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황제는 크게 분노하여 즉시 류여진과 심도윤을 감옥에 가두고 가을에 처형하라고 명했다.그리고 세자 심인혁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죄로 세자의 지위를 빼앗기고 관직에서 쫓겨났으며, 세자부의 모든 사람은 평민으로 강등되었다.높은 세자였던 심인혁은 한순간에 아무것도 없는 죄인의 아들이 되었다.연회가 끝나자 그는 미친 듯이 궁 문 앞에서 나를 막아섰다."설아야, 내 말 좀 들어보거라! 일부러 안 구한 게 아니다! 난…"나는 자신의 추한 면모를 드러내는 낯선 사람을 보듯 차갑게 그를 내려다보았다."심 공자님, 예의를 지켜 주십시오."그는 내가 차갑게 거리를 두는 말투에 상처를 받은 듯, 눈에는 고통과 후회가 가득했다."설아야, 내가 정말 잘못했다. 돌아와 주면 안되겠느냐?""내 곁으로 돌아오거라. 세자비 자리도 다시 네게 돌려 주마. 이
그 후 나는 서진명이라는 가명으로 남장을 하고 소진우를 따라 변방으로 향했다.나는 국공부의 살림을 맡으며 배운 경영 지식으로, 그를 위해 군사들이 먹을 식량을 마련하고 전쟁에 필요한 돈을 모았으며, 심인혁의 서재에서 몰래 배운 전술과 전략으로, 적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이길 계책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반년 후, 변방에서 승리를 거두었다.소진우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돌아오자, 황궁에서는 그의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가 열렸다.연회에서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태자를 도운 조력자인 나를 거듭 칭찬했다.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황제는 심인혁을 바라보며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심인혁, ‘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구하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나무패를 하사받은 후로 네 상점들의 매출이 곤두박질쳐 망하기 직전이라더구나.""어찌 된 일이냐? 짐의 하사품이 불만인 것이냐, 아니면 이전의 모든 것이 다 속임수였던 것이냐?"심인혁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 서둘러 무릎 꿇고 빌었지만,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류여진은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바로 그때, 나는 소진우의 뒤에서 걸어 나와 얼굴의 가면을 벗었다."폐하, 세자께서 폐하의 은혜에 불만을 품으신 것도 아니고, 폐하를 속이려 한 것도 결코 아닙니다.""단지 그 상점들의 진짜 주인이 바뀌었을 뿐입니다."순간 연회장은 정적에 휩싸였다.심인혁의 손에 들린 술잔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설아냐? 살아 있었구나, 그럴 줄 알았다…"나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상석에 앉은 황제를 향해 조용히 몸을 굽혀 예를 표했다."소인 류설아, 폐하를 뵙습니다. 부디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나는 준비한 증거들을 올렸다."폐하, 예전에 상점을 운영하며 강남에 농사가 잘되지 않아 먹을 것이 부족했을 때 해결하려 힘을 보태고 여러 계책을 올린 사람은 소인이었습니다. 지금의 세자비 류여진이 아닙니다!"류
심인혁은 사람을 시켜 남자를 쫓아냈고 류여진은 방에 가둬버렸다.그는 혼인을 끝내고 싶었다.그런데 그때, 류여진이 입을 막으며 헛구역질을 했고, 불려 온 의원이 맥을 짚어보더니 그녀가 임신했다고 말했다.심인혁은 멍해졌다.그는 득의양양한 류여진의 얼굴을 보며 기쁨은커녕 강렬한 구역질과 허무함을 느꼈다.그 순간 심인혁은 나를 떠올렸다.그는 혼인 첫날밤, 직접 내게 건네주었던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는 약이 생각났다.심인혁은 처음부터 류여진의 아이만을 원했었다.그런데 지금 그는 류여진 같은 천한 계집은 자신의 아이를 가질 자격조차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세자부의 대를 잇기 위해, 가문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심인혁은 결국 이 분노를 참아냈다.두 사람은 그날 이후 겉으로는 부부였지만, 마음은 완전히 돌아섰다. 류여진은 임신했다는 이유로 점점 더 제멋대로 행동했다.심인혁이 친구들과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논다는 소식이 들리자, 류여진은 곧장 그곳으로 찾아가 난동을 부렸고, 그 일로 그녀는 온 경성 귀족 여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심인혁은 그녀를 더욱 멀리했고, 서재에 틀어박혀 내가 남긴 물건들을 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내 옷을 묻어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며, 내 이름을 끊임없이 불렀다."설아야… 내가 미안하다…""설아야… 제발 돌아오거라…"하지만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의 손으로 죽여 버린 한낱 허상에 불과했다.나는 불길 속에서 죽을 줄 알았지만, 다행히 태자가 보낸 사람들 덕분에 연화와 함께 구출되었다.그 불에 타 버린 두 구의 시신은, 그저 공동묘지에서 가져온 이름 없는 시신일 뿐이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침상에 누워 있었고 온몸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연화가 내 침상 곁을 지키고 있었고,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태의가 내 맥을 짚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마님, 아이를 가지신 지 두 달이 되셨습니다."순간 나는 벼락을 맞은 듯했다.그날
심인혁과 류여진은 원하던 대로 혼인을 올렸지만 혼인 생활은 엉망진창이었다.류여진은 그가 상상하던 속세에 물들지 않은 선녀 같은 여인이 아니었다.그녀는 돈을 물 쓰듯 썼다.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내가 3년 동안 애써 모아 둔 세자부의 재산 절반 이상을 써 버리고, 쓸모없는 보석과 장신구만 한가득 사들였다.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말했다."저는 세자비이니 품위와 격식은 갖춰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망신을 당하는 건 오라버니입니다."그녀는 오만하고 제멋대로였다. 집안 살림을 맡을 권한을 두고 시어머니인 김정순과 끊임없이 다투었고, 여러 차례 김정순을 화병으로 몸져눕게 했다.세자부 전체가 류여진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었고, 하인들의 원성이 자자했다.심인혁은 늦게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고, 밤마다 서재에서 잠을 잤다.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3년 동안 마음속에 품고 그리워했던 첫사랑이, 막상 환상이 깨지고 보니 이토록 추하고 속물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그리움이 깊어질수록 지금의 류여진이 증오스러웠고 자신도 미웠다.보름 뒤, 류여진의 사촌 오빠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건달들을 데리고 세자부 대문 앞에서 난동을 부렸다.그 남자는 동네 깡패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류여진을 보자마자 마구 잡아당기며 소리쳤다."여진아, 나랑 약속했잖느냐, 잠깐 돈만 챙겨서 돌아오겠다고! 어떻게 나를 두고 다른 사람한테 시집을 갈 수가 있느냐?"류여진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다급히 부인했다.마침 밖에서 돌아오던 심인혁이 이 광경을 목격했고, 그의 안색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남자는 심인혁을 보자 더욱 기세등등해졌다."이 새파랗게 생긴 놈아, 잘 듣거라. 여진이는 이미 내 여인이고, 우리 사이에는 아이도 있다!""헛소리 하지 말거라!"류여진이 비명을 지르며 반박했다.그 말을 들은 심인혁의 마음에 의심이 피어올랐다."류여진, 날 속인 것이냐?""아닙니다, 오라버니. 혼인 첫날밤에 제가 처녀임을 증명하기 위해 침상에 깔아두었던 천에 피가 묻어 있었던 것을 잊으신 겁니까?"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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