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저 친구요? 그냥 엑스트라잖아요. 대사 있는 역할인데..."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지금 사람 구할 시간도 없잖아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감독은 현준에게 다가왔다.
"이봐요. 본인. 고향이 어디예요?"
"네? 저... 전남 순천입니다."
"사투리 쓸 줄 알아요? 진짜처럼?"
"네. 쓸 줄 압니다."
현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찾아온, 대사가 있는 역할의 기회였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강지한 앞에서.
"이리 와봐요."
조감독에게 이끌려 민준은 모니터 앞에 서 있는 김진태 감독 앞으로 갔다. 김 감독은 날카로운 눈으로 민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네가 뭘 할 수 있는데?'라고 묻는 것 같았다.
"네가 엑스트라 이현준이라고?"
"네, 감독님."
"대사 있는 연기, 해본 적 있나?"
"학교 다닐 때 연극은 해봤습니다. 현장에서는..."
현준이 말을 흐리자, 김 감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됐고. 여기 대본. 딱 5분 준다. 이 '덕보'라는 인물이 돼서, 내 앞에서 연기해봐. 어설프면 바로 촬영장에서 쫓아낼 줄 알아."
김 감독이 던진 대본을 현준은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들었다. 대사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응축되어 있었다. 죽음의 공포, 동료를 잃은 슬픔, 장군에게 모든 것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
현준은 눈을 감았다. 5분. 그에게는 5분도 길었다. 대본을 읽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덕보'라는 인물이 살아 숨 쉬기 시작했다.
그는 순천의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었다. 왜군에게 가족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 군에 입대했다. 성격은 우직하지만 겁이 많다. 오늘 아침, 정찰을 나갔다가 동료들이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는 것을 목격했다. 겨우 혼자 살아남아 이곳까지 달려왔다.
눈을 떴을 때, 이현준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괴물의 탄생
"준비됐나?"
김 감독의 목소리에 현준, 아니 덕보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초점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고, 온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멀쩡히 서 있던 청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목소리마저 완벽한 전라도 사투리 억양에, 살짝 눌리고 갈라진 톤이었다. 현장에 있던 모든 스태프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강지한 역시 팔짱을 낀 채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현준은 김 감독을 이순신 장군이라 생각하고, 그 앞에 '쿵' 소리가 나게 무릎을 꿇었다.
"장군님! 장군님! 크... 큰일 나부렀소!"
그의 첫마디에 현장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진짜 절박한 사람의 외침이었다.
"저... 저어그, 뭍 쪽 말이오! 숲 속에 왜놈들이... 시커멓게 깔려있당께요! 아따, 우리 정찰조는... 나 빼고 다 죽어부렀소!"
말을 하면서 그는 당시의 참혹한 광경이 떠오르는 듯 몸서리를 쳤다.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흙바닥을 적셨다. 그는 대본에 없는 디테일을 추가했다.
자신의 팔뚝을 붙잡고 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떠는 손,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꺽꺽거리는 호흡.
"놈들이... 틀림없이 야습을 할 것이오! 우리가 매복한 걸 다 알고 있더랑께요! 어서... 어서 피해야...!"
마지막 대사를 외치며 그는 결국 오열을 터뜨렸다. 동료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이제 곧 모두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뒤섞인, 처절한 울음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오열하는 현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김 감독은 입을 살짝 벌린 채 굳어 있었고, 조감독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하는 표정이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강지한이었다.
"하..."
그는 짧은 탄성과 함께 작게 박수를 쳤다.
"감독님. 이 친구, 물건인데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 감독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현준 입니다."
어느새 덕보에서 빠져나온 현준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의 눈은 다시 평소의 차분한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허... 기가 막히는군. 10년 동안 엑스트라만 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소속사는 있나?"
"없습니다."
김 감독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 외쳤다.
"좋아! 너, 오늘부터 덕보다. 의상팀! 쟤한테 맞는 옷 빨리 가져오고, 분장팀은 얼굴에 상처 좀 더 그려! 그리고 촬영 준비 다시 해! A팀, 방금 그 감정 그대로 간다!"
감독의 외침에 촬영장은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준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스태프들에게 이끌려갔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동료 엑스트라들은 부러움과 시기가 뒤섞인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촬영이 재개되었다. 강지한, 즉 이순신 앞에 선 현준은 조금 전의 연기를 재현했다. 아니,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카메라가 돌자 그의 몰입도는 극에 달했고, 그의 처절한 연기는 강지한의 연기마저 끌어올리는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강지한은 현준의 눈을 보며 진짜 비통함과 분노를 느꼈고, 그의 연기는 더욱 깊어졌다.
"컷! 오케이! 와... 한 번에 오케이!"
김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낱 엑스트라의 연기에 현장이 감동하는, 전례 없는 순간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엉망이 된 분장을 지우며 현준은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추가된 출연료가 든 봉투를 손에 쥐었지만, 돈보다 더 가슴 벅찬 무언가가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강지한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현준 씨라고 했죠? 오늘 연기, 정말 인상 깊게 봤어요."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영광이었습니다."
"혹시, 끝나고 시간 좀 괜찮아요? 같이 저녁이라도 하면서 얘기 좀 하고 싶은데."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가, 이제 막 이름 있는 역할을 처음 맡아본 엑스트라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하고 있었다.
"네? 아, 네! 시간 괜찮습니다!"
현준이 얼떨결에 대답하자, 강지한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 차, 저기 검은색 밴이에요. 준비 끝나면 그쪽으로 와요. 아, 그리고."
강지한은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 하이에나의 후각같은 시각, 연예부 기자 강소영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현준의 10년간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마침내 유의미한 '단서'를 발견했다.그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였다. '품행이 방정하고 성실하나, 내성적인 성격으로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음.' 평범한 기록이었지만, 3학년 2학기 출결 상황에 길게 이어진 '무단결석' 기록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유는 '가정 사유'라고만 적혀 있었다."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그녀는 날짜를 기억해두고, 당시의 지역 신문 기사들을 미친 듯이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귀퉁이에 실린 작은 교통사고 기사를 발견했다.빗길 교통사고로 일가족 3명 사망, 10대 아들만 기적적으로 생존...기사에는 피해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 날짜와, 생존한 아들의 나이가 현준의 결석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했다."......이거였나."강소영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거대한 비밀의 첫 번째 조각을 맞춰낸 예감에 휩싸였다. 그가 가진 공허함, 타인과 섞이지 못하는 성격,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꿰뚫어 보는 듯한 기묘한 능력. 그 모든 것의 시작이, 어쩌면 이 끔찍한 사고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팀장님, 저 며칠 휴가 좀 쓰겠습니다. 이현준 씨 고향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깨어난 자의 공포이틀 뒤, 이현준은 자신의 오피스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약 기운 때문인지, 며칠을 내리 잔 듯 온몸이 무거웠다. 희미한 기억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폐창고의 비릿한 냄새, 날카로운 송곳의 감촉, 그리고... 누군가의 공포에 질린 비명.
이창욱 감독이 다급하게 컷을 외쳤다.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송곳을 든 채 미소 짓고 있는 현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했지만, 너무나도 위험한 연기였다.그런데, 현준은 멈추지 않았다.그는 감독의 컷 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송곳을 든 채 상대 배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그의 눈은 현실과 연기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선 듯 공허하게 빛나고 있었다."선... 선배님...?"가장 먼저 이상을 감지한 박성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선배님! 촬영 끝났습니다! 정신 차리세요!"하지만 현준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괴물이, 마침내 주인의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괴물이 주인을 삼킬 때"......선배님?"박성철의 목소리는 물에 젖은 솜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이현준, 아니, 남규만의 세상에는 오직 눈앞의 '장난감'과, 그것을 완벽하게 망가뜨리고 싶은 순수한 욕망만이 존재할 뿐이었다.그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송곳이, 공포에 질린 상대 배우의 눈동자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현장의 공기는 납처럼 무겁게 얼어붙었다. 이창욱 감독조차 감히 '컷' 이후의 말을 잇지 못했다. 모두가 직감했다. 이것은 연기가 아니다. 통제 불능의 광기다. 배우가 자신의 배역에 완벽하게 잡아먹히는, 가장 끔찍하고도 영광스러운 파멸의 순간이었다."안 돼...!"김동진이 뛰쳐나가려는 찰나, 그를 막아선 것은 안성현이었다.
하지만 이 변화는, 현준에게 또 다른 종류의 압박감으로 다가왔다.이전에는 그를 증명해야 한다는 '투쟁심'이 그의 연기를 불태웠다면, 이제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모두가 그의 연기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고, 그의 작은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 감탄사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역시... 현준 씨 연기는 국보급이야.""저 눈빛 좀 봐. 어떻게 사람이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있지?"칭찬의 홍수 속에서, 현준은 오히려 더 깊은 고독 속으로 침잠했다.그들은 '이현준'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규만'이라는 괴물을 보고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준은,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더욱 완벽한 괴물이 되어야만 했다.로드 매니저 박성철은 그런 현준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균열의 징조"선배님, 식사는 안 하십니까?"촬영이 없는 날, 현준의 오피스텔을 찾은 박성철은 식탁 위에 그대로 놓인 음식을 보고 물었다. 현준은 소파에 앉아, 태블릿PC로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아, 괜찮아. 배가 별로 안 고프네."현준의 대답은 평소와 같았지만, 박성철은 그의 눈이 모니터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그가 보고 있는 것은 낡은 흑백 영상이었다. 1940년대에 행해졌던,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정신외과 수술에 대한 기록 영상이었다.얼음송곳 같은 기구를 환자의 눈구멍으로 집어넣어 뇌의 일부를 끊어내는, 끔찍하고 야만적인 수술."선배님... 왜 이런 걸 보고 계십니까?""재미있어서."
* 5분의 쓰나미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그날 밤, 드라마 '복수의 코드' 12회가 방영되었다.스타 컴퍼니의 회의실에는 김동진과 홍보팀 전원이 모여, 실시간 시청자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모니터 앞을 지키고 있었다. 반면 현준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TV를 켜지 않은 채 남규만에 대한 자료를 읽으며 평소와 같은 밤을 보내고 있었다.드라마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마침내 현준이 등장하는 5분이 시작되었다.실시간 톡 게시판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엥? 저 배우 누구? 처음 보는데.▷ 그냥 행인 아니냐? 되게 평범하게 생겼네.▷ 강지한이랑 붙는 씬인데 신인한테 너무 큰 역할을 준 거 아닌가?초반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의 존재감 없는 연기에, 시청자들은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강지한의 목에 볼펜을 겨누는 바로 그 순간.게시판이, 폭발했다.▷ !!!!!!!!!!!!!!!!!!!!!!!!!!!!!▷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와 나 지금 현실로 소름 돋았어. 저 눈빛 뭐야??????▷ 방금 연기임? 진짜 죽이려는 거 아니었음???? 강지한 표정 ㄹㅇ 찐이던데▷ 아니 저 평범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살기가 나옴? 배우 이름 뭔데!!!! 빨리 알려줘!!!!▷ 와... 존재감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목 따는데... 진짜 킬러 같다. 카멜레온이냐고...단 1분 만에, 실시간 톡 게시판은 '이현준'이라는 세 글자로 도배되었다. 그의 이름은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악했다. 2위는 '복수의 코드 킬러', 3위는 '아수라 이현준'이었다.단 5분
그는 분명히 세트 중앙에 서 있었지만,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배경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남규만'의 압도적인 존재감과는 정반대의, 소름 끼치는 '무(無)존재감'이었다.강지한이 연기하는 주인공이 긴장된 얼굴로 들어서고,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현준은 강지한의 불꽃 튀는 연기 앞에서, 그저 평범하고 무미건조하게 대사를 내뱉었다."...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입니다."그의 목소리, 표정, 자세... 그 어디에도 특별한 점은 없었다. 드라마 감독의 미간이 좁아졌다. '뭐야, 저게 다야? 역시 별거 없잖아.'바로 그 순간이었다.강지한의 등 뒤로 다가간 현준은, 그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목표를 제거하는 데는... 1초면 충분하죠."그리고 그는, 대본에도 없던 행동을 했다. 그는 품속에서 볼펜 한 자루를 꺼내, 눈 깜짝할 사이에 강지한의 목젖 바로 아래 급소를 찌르는 시늉을 했다.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빠르고 간결해서, 마치 수천 번은 반복한 암살자의 몸짓 그대로였다.강지한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 살기를 느끼고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의 눈동자가 공포로 격렬하게 흔들렸다.현준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볼펜을 품에 넣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강지한을 향해,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오직 '업무'가 끝났다는 만족감만이 담긴, 프로페셔널한 미소였다."......컷..."드라마 감독은 '컷'을 외치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넋을 잃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모니터 속에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위험한, 완벽한 '킬러'가 서 있었다.'남규만'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이었다.
* 뜻밖의 지원군김동진의 휴대폰이 낯선 번호로 울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여보세요.""김동진 실장님 되십니까? 저, 배우 강지한입니다."강지한. 이현준이라는 원석을 처음으로 발견해주었던, 바로 그 톱스타였다. 김동진은 놀라움을 감추며 정중하게 답했다."아, 강지한 배우님. 오랜만입니다. 어쩐 일이십니까?""하하, 실장님이야말로 요즘 정신없으시겠어요. 온통 이현준 씨 얘기뿐이던데."강지한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즐거움이 묻어 나왔다."어제 인터넷에서 그 현장 썰, 저도 봤습니다. 그걸 보고 확신했죠.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고. 그 친구, 진짜 괴물이 맞았다고 말입니다.""과찬이십니다.""과찬이라니요? 사실, 제가 오늘 실장님께 염치없는 부탁을 하나 드리려고 전화를 했습니다."강지한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현재 시청률 20%를 넘나드는 국민 드라마 '복수의 코드'에 주인공으로 출연 중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에 촬영할 에피소드에, 모든 판을 뒤흔드는 미스터리한 킬러 '조커' 역할이 딱 한 회 등장한다는 것이다."원래는 다른 배우가 맡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하차하게 됐습니다.단 한 씬, 등장 시간은 5분 남짓이지만 임팩트가 어마어마한 역할입니다. 감독님도 지금 대체할 배우를 못 찾아서 골머리를 앓고 계시고요."강지한의 목소리에 흥분이 실렸다."그래서 제가... 감독님께 이현준 씨를 강력하게 추천했습니다. '아수라'가 개봉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잖습니까. 그전에, 이 친구의 진짜 실력을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서요. '이현준'이라는 이름에 대한 모든 의심을, 단 5분 만에 잠재워버릴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