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첫 질문은 뜬금없었다. 이름이나 경력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너'라는 존재의 본질을 묻고 있었다.
"......이현준입니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야."
이창욱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네가 연기한 그 '괴물'. 어디서 꺼내 온 거지? 네 안에 원래부터 살고 있었나? 아니면 어디서 훔쳐 오기라도 한 건가?"
예술가의 언어였다. 그는 현준의 연기를 기술이나 테크닉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창조의 영역이자, 어쩌면 빙의(憑依)처럼 보이는 영역이었다.
현준은 잠시 침묵했다. 자신의 기이한 능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저 역할에 몰입했습니다'라는 상투적인 대답은 이 거장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재능의 본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저는... 비어 있습니다."
"...비어있다고?"
"네. 제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무언가를 담기가... 조금 쉬운 것뿐입니다."
그것이 현준이 이해하는 자신의 전부였다. 그는 텅 빈 그릇이었고, 대본이라는 주문을 통해 다른 영혼을 담아내는 일종의 매개체였다. 그의 대답에 이창욱 감독의 눈이 처음으로 강렬하게 빛났다.
"하... 그래. 그거였군. 비어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채울 수 있다... 그래서 네 연기에는 '연기'가 없었던 거야. 그냥 그놈 자체가 되어버렸으니."
이창욱은 무릎을 탁 쳤다. 그는 평생을 찾아 헤맨 배우를 마주한 구도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현준 씨. 오디션은 합격이야."
김동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이창욱의 다음 말은 그 미소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네에게 '남규만'의 아역을 줄 생각은 없어."
감당할 수 없는 기회
"네? 감독님, 그게 무슨..."
김동진이 당황해서 되물었다.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는데, 역할을 줄 수 없다니. 거장의 변덕에 놀아난 것인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현준 역시 멍한 표정으로 감독을 바라보았다.
이창욱은 두 사람의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듯, 잠시 뜸을 들인 후 폭탄을 터뜨렸다.
"아역이 아니라, 성인 '남규만'을 맡아줬으면 해."
"......"
"......"
순간, 방 안의 시간이 멈췄다. 김동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성인 '남규만'. 그것은 영화 '아수라'의 타이틀 롤이자,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기 잘한다는 톱스타들도 모두가 탐내던 바로 그 배역. 그것을 방금 전까지 엑스트라였던, 필모그래피 한 줄 없는 이 신인에게 맡기겠다고?
"가... 감독님, 농담이시라면..."
"난 내 영화 가지고 농담 안 해."
이창욱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원래 이 역할, 강지한 배우에게 주려고 했었어. 지명도나 연기력이나, 가장 유력한 후보였지. 하지만 오늘 아침까지도 계속 무언가 찜찜한 게 남아있었어. 강지한은 '완벽한 사이코패스 연기'를 보여주겠지.
하지만 나는 '연기'가 필요한 게 아니야. 나는 진짜 '괴물'이 필요해. 카메라 앞에서 웃고 있어도, 관객들이 저놈의 영혼은 울고 있구나, 혹은 비어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진짜배기."
그는 현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찾던 그 괴물을 여기서 만났고."
이것은 파격, 그 이상의 사건이었다. 충무로의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없었던, 전무후무한 캐스팅이었다. 김동진은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일생일대의 기회. 하지만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였다.
정신을 차린 김동진이 이성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감독님. 감독님의 안목과 결정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주연 배우가 완전한 신인이라면, 투자사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당장 투자금을 회수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이건 영화 전체를 엎을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입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야."
이창욱은 김동진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투자자들이 믿는 건 돈이지, 배우 이름 석 자가 아니야. 내가 이 영화로 돈을 벌어다 줄 거라고 믿게 만들면 그만이야. 그리고 그걸 위해선, 이현준이라는 완벽한 무기가 필요하고. 내 이름 석 자를 걸고서라도, 나는 이 친구를 주인공으로 밀어붙일 생각이야."
거장의 고집과 확신 앞에, 김동진은 더 이상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는 현준을 돌아보았다. 정작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현준은,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한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10년간의 무명 생활 끝에 찾아온 기회라고 하기엔, 그 크기가 너무나도 거대했다.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창욱은 가방에서 묵직한 서류 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로 던졌다. 영화 '아수라'의 전체 시나리오였다.
"일단, 이걸 가져가서 읽어봐."
새로운 전쟁의 서막
"그리고 내일, 다시 여기로 와. 진짜 '아버지'를 만나게 해줄 테니."
"'아버지'라니요?"
김동진이 묻자, 이창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영화 속에서 '남규만'을 끝까지 추격하는 베테랑 형사 '오기철' 말이야. 그 배우와 함께 대본 리딩을 진행할 생각이다."
김동진은 숨을 삼켰다. 영화 '아수라'의 또 다른 주인공, '오기철' 역에 어떤 배우가 캐스팅되었는지는 업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거론되는 단 한 사람의 이름.
"설마... 안성현 선배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맞아. 안성현."
안성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 수십 년간 스크린을 지배해 온 살아있는 전설.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연기의 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런 대배우와, 이제 막 엑스트라를 벗어난 신인이 파트너로 연기를 해야 한다니.
"물론,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건 아니야. 네가 안성현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을 수 있는지, 나도 확인을 해봐야겠어. 그 배우는 상대가 누군지, 연기로 납득 시켜주지 않으면 절대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이거든."
* '이현준'을 되찾는 연습"숙제를 내드릴게요."첫 상담이 끝날 무렵, 윤세리가 말했다."아주 간단해요. 하루에 한 번, '이현준'의 감각을 깨우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그녀가 내준 숙제는 연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하나, 매일 다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그 맛과 향의 차이를 노트에 적어볼 것.둘, 버스를 타고 창밖 풍경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세 가지를 그림으로 그려볼 것.셋, 서점에 가서 아무 책이나 한 권 골라, 소리 내어 한 페이지를 읽어볼 것.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이현준'을 웃게 만드는 것을 찾아볼 것."현준 씨는 지난 10년간, 그리고 최근 몇 달간 너무 많은 타인의 삶을 살아왔어요. 이제 다시 '이현준'의 삶으로 돌아오는 연습이 필요해요.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세요. 당신의 몸이, 당신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걸 다시 기억하게 만들어 주세요.“다음 날부터, 현준은 숙제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저 사람은 어떤 약점을 가졌을까' 분석하는 남규만의 시선이 튀어나왔다.하지만 그는 의식적으로, 윤세리의 말을 떠올리며 커피의 쓴맛과 우유의 부드러움에 집중하려 애썼다.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삐뚤빼뚤하게나마 노트에 그렸다. 서점에서 동화책을 골라, 낭독 부스에서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처음에는 수치스러웠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피식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아주 조금씩, 세상과 다시
* 하이에나의 후각같은 시각, 연예부 기자 강소영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현준의 10년간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마침내 유의미한 '단서'를 발견했다.그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였다. '품행이 방정하고 성실하나, 내성적인 성격으로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음.' 평범한 기록이었지만, 3학년 2학기 출결 상황에 길게 이어진 '무단결석' 기록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유는 '가정 사유'라고만 적혀 있었다."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그녀는 날짜를 기억해두고, 당시의 지역 신문 기사들을 미친 듯이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귀퉁이에 실린 작은 교통사고 기사를 발견했다.빗길 교통사고로 일가족 3명 사망, 10대 아들만 기적적으로 생존...기사에는 피해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 날짜와, 생존한 아들의 나이가 현준의 결석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했다."......이거였나."강소영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거대한 비밀의 첫 번째 조각을 맞춰낸 예감에 휩싸였다. 그가 가진 공허함, 타인과 섞이지 못하는 성격,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꿰뚫어 보는 듯한 기묘한 능력. 그 모든 것의 시작이, 어쩌면 이 끔찍한 사고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팀장님, 저 며칠 휴가 좀 쓰겠습니다. 이현준 씨 고향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깨어난 자의 공포이틀 뒤, 이현준은 자신의 오피스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약 기운 때문인지, 며칠을 내리 잔 듯 온몸이 무거웠다. 희미한 기억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폐창고의 비릿한 냄새, 날카로운 송곳의 감촉, 그리고... 누군가의 공포에 질린 비명.
이창욱 감독이 다급하게 컷을 외쳤다.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송곳을 든 채 미소 짓고 있는 현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했지만, 너무나도 위험한 연기였다.그런데, 현준은 멈추지 않았다.그는 감독의 컷 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송곳을 든 채 상대 배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그의 눈은 현실과 연기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선 듯 공허하게 빛나고 있었다."선... 선배님...?"가장 먼저 이상을 감지한 박성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선배님! 촬영 끝났습니다! 정신 차리세요!"하지만 현준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괴물이, 마침내 주인의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괴물이 주인을 삼킬 때"......선배님?"박성철의 목소리는 물에 젖은 솜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이현준, 아니, 남규만의 세상에는 오직 눈앞의 '장난감'과, 그것을 완벽하게 망가뜨리고 싶은 순수한 욕망만이 존재할 뿐이었다.그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송곳이, 공포에 질린 상대 배우의 눈동자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현장의 공기는 납처럼 무겁게 얼어붙었다. 이창욱 감독조차 감히 '컷' 이후의 말을 잇지 못했다. 모두가 직감했다. 이것은 연기가 아니다. 통제 불능의 광기다. 배우가 자신의 배역에 완벽하게 잡아먹히는, 가장 끔찍하고도 영광스러운 파멸의 순간이었다."안 돼...!"김동진이 뛰쳐나가려는 찰나, 그를 막아선 것은 안성현이었다.
하지만 이 변화는, 현준에게 또 다른 종류의 압박감으로 다가왔다.이전에는 그를 증명해야 한다는 '투쟁심'이 그의 연기를 불태웠다면, 이제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모두가 그의 연기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고, 그의 작은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 감탄사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역시... 현준 씨 연기는 국보급이야.""저 눈빛 좀 봐. 어떻게 사람이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있지?"칭찬의 홍수 속에서, 현준은 오히려 더 깊은 고독 속으로 침잠했다.그들은 '이현준'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규만'이라는 괴물을 보고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준은,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더욱 완벽한 괴물이 되어야만 했다.로드 매니저 박성철은 그런 현준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균열의 징조"선배님, 식사는 안 하십니까?"촬영이 없는 날, 현준의 오피스텔을 찾은 박성철은 식탁 위에 그대로 놓인 음식을 보고 물었다. 현준은 소파에 앉아, 태블릿PC로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아, 괜찮아. 배가 별로 안 고프네."현준의 대답은 평소와 같았지만, 박성철은 그의 눈이 모니터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그가 보고 있는 것은 낡은 흑백 영상이었다. 1940년대에 행해졌던,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정신외과 수술에 대한 기록 영상이었다.얼음송곳 같은 기구를 환자의 눈구멍으로 집어넣어 뇌의 일부를 끊어내는, 끔찍하고 야만적인 수술."선배님... 왜 이런 걸 보고 계십니까?""재미있어서."
* 5분의 쓰나미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그날 밤, 드라마 '복수의 코드' 12회가 방영되었다.스타 컴퍼니의 회의실에는 김동진과 홍보팀 전원이 모여, 실시간 시청자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모니터 앞을 지키고 있었다. 반면 현준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TV를 켜지 않은 채 남규만에 대한 자료를 읽으며 평소와 같은 밤을 보내고 있었다.드라마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마침내 현준이 등장하는 5분이 시작되었다.실시간 톡 게시판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엥? 저 배우 누구? 처음 보는데.▷ 그냥 행인 아니냐? 되게 평범하게 생겼네.▷ 강지한이랑 붙는 씬인데 신인한테 너무 큰 역할을 준 거 아닌가?초반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의 존재감 없는 연기에, 시청자들은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강지한의 목에 볼펜을 겨누는 바로 그 순간.게시판이, 폭발했다.▷ !!!!!!!!!!!!!!!!!!!!!!!!!!!!!▷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와 나 지금 현실로 소름 돋았어. 저 눈빛 뭐야??????▷ 방금 연기임? 진짜 죽이려는 거 아니었음???? 강지한 표정 ㄹㅇ 찐이던데▷ 아니 저 평범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살기가 나옴? 배우 이름 뭔데!!!! 빨리 알려줘!!!!▷ 와... 존재감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목 따는데... 진짜 킬러 같다. 카멜레온이냐고...단 1분 만에, 실시간 톡 게시판은 '이현준'이라는 세 글자로 도배되었다. 그의 이름은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악했다. 2위는 '복수의 코드 킬러', 3위는 '아수라 이현준'이었다.단 5분
그는 분명히 세트 중앙에 서 있었지만,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배경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남규만'의 압도적인 존재감과는 정반대의, 소름 끼치는 '무(無)존재감'이었다.강지한이 연기하는 주인공이 긴장된 얼굴로 들어서고,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현준은 강지한의 불꽃 튀는 연기 앞에서, 그저 평범하고 무미건조하게 대사를 내뱉었다."...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입니다."그의 목소리, 표정, 자세... 그 어디에도 특별한 점은 없었다. 드라마 감독의 미간이 좁아졌다. '뭐야, 저게 다야? 역시 별거 없잖아.'바로 그 순간이었다.강지한의 등 뒤로 다가간 현준은, 그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목표를 제거하는 데는... 1초면 충분하죠."그리고 그는, 대본에도 없던 행동을 했다. 그는 품속에서 볼펜 한 자루를 꺼내, 눈 깜짝할 사이에 강지한의 목젖 바로 아래 급소를 찌르는 시늉을 했다.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빠르고 간결해서, 마치 수천 번은 반복한 암살자의 몸짓 그대로였다.강지한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 살기를 느끼고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의 눈동자가 공포로 격렬하게 흔들렸다.현준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볼펜을 품에 넣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강지한을 향해,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오직 '업무'가 끝났다는 만족감만이 담긴, 프로페셔널한 미소였다."......컷..."드라마 감독은 '컷'을 외치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넋을 잃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모니터 속에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위험한, 완벽한 '킬러'가 서 있었다.'남규만'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