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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금소
“민 대표!”

소파 중간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이 호통을 치면서 지팡이로 바닥을 힘껏 내리찍었다. 노인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뒤 어두운 얼굴로 민성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한테 제대로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아이들 사이의 일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 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우리 진씨 가문에서는 그동안 민씨 가문을 많이 도와줬어. 진운 은행의 자금이 없었다면 민씨 가문은 일찌감치 파산했을 거야.”

상대방이 자신의 목숨줄을 틀어쥐자 민성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진씨 가문의 은혜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성현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그는 수치도 모르고 도움도 안 되는 민하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의 돈줄을 끊어버리려고 하다니.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정략결혼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은 무를 수 없어.”

진태원은 민성현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단호히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몸 간수도 제대로 못 하는 가벼운 여자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언어장애가 있는 건 둘째 치고 저 아닌 다른 남자랑 잤잖아요.”

진서우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가문의 이익을 위해 자신에게 민하윤과의 결혼을 강요할까 봐 걱정되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손주며느리가 바람을 피워서 할아버지 손주가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길 바라세요?”

처음에 진서우는 민하윤과의 결혼에 못 이기는 척 동의했다. 민하윤은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쁜 보기 드문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서우는 민하윤에게 언어장애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점이 진서우는 창피했다.

아마 민하윤과 잠자리를 가지더라도 민하윤은 신음조차 낼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진서우는 민하윤보다 조금 더 오픈 마인드인 민하윤의 동생 민희수를 좋아했다.

진서우는 민희수와 소꿉친구였는데 얼마 전 술김에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고, 민희수는 울면서 진서우에게 결혼하자고 했다. 솔직히 진서우는 조금 불안했다. 그러나 누구와 결혼하게 되든 어차피 정략결혼일 뿐이니 민하윤만큼 예쁘지 않은 민희수와 결혼하게 되어도 별로 상관없었다.

그리고 눈치가 빠르고 걸핏하면 싸늘한 표정을 짓는 언어장애인 민하윤보다 민희수와 결혼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진서우는 민하윤과 파혼하기 위해 어젯밤 일부러 판을 짰다.

민희수가 집요하게 감시하지만 않았다면 진서우는 민하윤이 다른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내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좋은 일을 자신이 아닌 남이 누린다는 건 배 아픈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진서우는 그 기회를 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민하윤과 잠자리를 가진 남자가 부럽기도 했다.

진서우는 음흉한 눈빛으로 민하윤의 흰 피부를 바라보며 어젯밤에 일어났을 일들을 상상했다.

진서우의 속내를 꿰뚫어 본 민희수는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민희수의 마음속에서 증오가 끊임없이 자라났다. 민희수는 민하윤이 평생 재기할 수 없게 할 생각이었다.

“언니, 어서 서우 오빠한테 사과해야지.”

민희수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다들 정신을 차렸다.

진태원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결혼은 계획대로 진행할 거야. 민씨 가문에 딸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야.”

그 말에 모든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거실에 나란히 서 있는 민하윤과 민희수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파혼하겠다고 악다구니를 쓰던 진서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치 떼를 쓰던 아이가 사탕을 받고 조용해지듯 말이다.

민희수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부끄러운 듯 송해정의 뒤에 숨었다. 민하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보였다.

민하윤은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의 약혼자와 민희수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고, 그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거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 의논이 분분했다. 민씨 가문의 그 일은 비밀이 아니었다.

민씨 가문에서는 아이를 잃어버렸던 적이 있는데 당시 송해정의 정신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었다. 그들은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보육원에서 민하윤 또래의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민씨 가문 사람들 모두 그 아이를 애지중지했고 그 아이에게 민희수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런데 십여 년 뒤, 갑자기 경찰이 찾아와 그들의 실종된 친딸의 DNA가 유전자 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 발견됐다고 알렸다.

그 일로 도시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체면을 지키기 위해 민씨 가문에서는 밖에서 떠돌며 고생했던 친딸을 집으로 데려온 뒤 대외적으로 앞으로 민씨 일가에는 딸이 두 명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친딸을 데려왔다고 해서 입양한 딸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거기서 끝났다면 꽤 그럴싸한 아름다운 결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씨 가문의 친딸 민하윤은 그동안 갖은 고생을 했고, 17살 때 양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큰 충격을 받아 실어증에 걸리고 말았다.

외모든, 분위기든, 자태든, 몸매든 민하윤은 모든 방면에서 민희수를 가뿐히 이겼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실어증에 걸려서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민씨 가문과 진씨 가문이 정략결혼을 할 거라는 것도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민씨 가문은 몇 년 전 자금줄이 끊겼었는데 당시 진씨 가문에서 거액의 자금을 제공하여 민씨 가문을 위기에서 구했다.

민씨 가문이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진씨 가문 덕분이었다.

두 집안은 사업 거래가 잦았고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집안 어른들은 정략결혼을 하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 진서우와 결혼할 사람은 민희수였다. 민희수와 진서우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서 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씨 가문에서는 이익의 확실성을 중요시했기에 며느릿감으로 민하윤을 더 선호했다.

사실 진씨 가문에서는 민씨 가문이 갑자기 등을 돌릴까 봐 걱정되어 진짜 민씨 가문의 피를 가진 민하윤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민하윤의 추문을 모두가 알게 되었으니 더는 며느리로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민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이익은 유지해야 했기에 진태원은 한 걸음 양보하여 양녀인 민희수를 며느리로 받아줄 생각이었다.

“희수는 아직 어리니 2년 뒤쯤으로 미루죠.”

줄곧 말이 없던 송해정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이 사랑하는 막내딸을 위해 나섰다.

민하윤은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의 친모를 바라보았다. 민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정략결혼이 결정되었을 때 그녀의 의사를 물은 사람은 없었다. 이 결혼은 오로지 두 가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민하윤은 그 탓에 원하지도 않는 결혼을 해야 했다. 그런데 민하윤이 아닌 민희수로 상대를 바꾸자고 하자마자 바로 안 된다면서 나서는 것을 보니 우스웠다.

민하윤은 자조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민하윤의 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친부모님마저 그녀를 혐오했고 자연스럽게 민희수를 편애했다.

누가 민씨 가문의 친딸일까?

민하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눈앞의 민희수를 바라보았다. 민하윤이 민씨 가문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민하윤의 부모님은 민희수가 서운해할까 봐 걱정되어 민희수에게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사실 민하윤의 생일이 민희수보다 이틀 늦었지만 그런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민하윤은 민희수만큼 부모님의 환심을 잘 사지 못했고 심지어 말도 할 줄 몰랐다. 17살이 되어서야 민씨 가문으로 돌아왔으니 그들 사이에 가족애 따위는 없었다.

심지어 민하윤의 방은 아주 작은 데다가 가정부의 방 옆에 있었다. 반대로 민희수는 아주 크고 예쁘게 꾸며진 방을 가졌다.

민하윤은 매달 식비가 10만 원뿐이었고 매일 버스를 타고 등교해야 했다.

반대로 송해정은 민희수의 안전이 걱정된다고 일부러 운전기사를 시켜 민희수를 픽업했고 가정부는 매일 민희수를 위해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다. 그러다가 집밥이 질리면 호화로운 5성급 호텔로 가서 밥을 먹었고 신용카드도 마음껏 긁었다.

민하윤이 기숙사를 운영하는 공립학교를 다닐 때 민희수는 명원의 사립학교를 다녔다.

민하윤의 옷장 안에는 양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낡은 옷 몇 벌뿐이었지만 민희수에게는 예쁜 옷들과 명품 가방들이 가득했다.

민희수가 성년의 날 선물로 빨간색 스포츠카를 받았을 때 민하윤의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두 사람의 생일은 불과 이틀 차이였다. 부모님은 매년 민희수를 위해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열었지만 민하윤을 위해서는 생일 케이크 하나 준비해 준 적이 없었다. 아무도 그녀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고 축하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송해정은 민희수가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는 건 원하지 않으면서 갑자기 낯선 남자와 결혼하게 된 민하윤의 기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민씨 가문의 진짜 딸은 과연 누구일까?

누가 봐도 사랑 가득 받는 민희수일 것이다.

민하윤의 부모님은 친딸인 민하윤을 사랑하지 않았고 진서우와 민희수는 민하윤 몰래 바람을 피웠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욕받이가 된 건 다름 아닌 민하윤이다.

이곳에서는 민하윤의 존재 자체가 웃음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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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a Comments (2)
goodnovel comment avatar
happyhomejoa
뭐야. 자기핏줄을 천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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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경
흥미진진 합니다 작가님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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