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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해줘
사랑한다고 말해줘
Author: 금소

제1화

Author: 금소
“아파?”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의 몸 아래 깔린 여자가 협조하지 않는 탓에 남자는 몇 번이나 시도해야 했다.

술기운 때문일까? 남자는 한 손으로 여자의 가녀린 허리를 받쳐 들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다.

동이 틀 때쯤에야 그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욕실 쪽으로부터 들려오는 물소리에 깊이 잠들었던 민하윤은 이불 속에서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어제 민하윤은 자신의 오랜 연인 진서우와 약혼식을 치렀다.

그들의 성대한 약혼식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대부분이 민씨 일가, 진씨 일가와 사업으로 엮인 회사 사람들이었다. 어젯밤 진서우의 친구들은 약혼식이 끝난 뒤 따로 술자리를 만들었다. 민하윤은 말을 할 수 없었고 거절할 줄도 몰라 그들의 권유에 술을 아주 많이 마시게 되었다. 민하윤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약혼자 진서우가 자신을 꼭대기 층에 있는 스위트룸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그 뒤로 민하윤은 의식을 잃었고, 그렇게 두 남녀는 술기운을 빌려 밤새 뒹굴었다.

어느샌가 욕실 안에서 들려오던 물소리가 멈췄고 남자는 타월을 몸에 대충 두른 채로 걸어 나왔다. 남자는 몸매가 훌륭했다. 어깨는 넓고 허리는 얇았으며 탄탄한 근육 위에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민하윤은 모든 것이 다 처음이었기에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어젯밤의 장면들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일어났어?”

하도진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침대 위 몸을 잔뜩 웅크린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흰 얼굴에는 아직 홍조가 남아있었다. 하도진은 여자의 부드러운 살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마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야수처럼 흡족한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 목소리는... 아니야!’

민하윤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공격성이 느껴지는 그윽하면서도 까만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민하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순간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 들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이내 침대 시트 위로 눈물을 떨어뜨렸다.

어젯밤의 즐거움과 쾌락이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가져다준 것이었다니.

민하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절망과 무력함이 몸을 휘감는 것만 같아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 민하윤은 수화로 눈앞의 남자를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누구세요?]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어젯밤 그 사람이 그쪽이었나요?]

‘말을 못 하는 건가?’

하도진의 눈동자에 당황함이 스쳤다.

어젯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저 말없이 눈물만 흘린 이유가 있었다.

하도진은 여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하도진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애써 화를 억눌렀다. 하도진의 친구들은 어제 막 귀국한 하도진에게 술을 정신없이 먹이더니 그를 위해 이별 선물을 준비했다면서 하도진에게 키를 건넸다.

어두운 방 안, 두 사람 모두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고 하도진은 민하윤이 먼저 자신에게 입을 맞췄던 걸 기억했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키스에 이성을 잃었고 결국 상대방이 누군지도 확인하지 않고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다.

어젯밤 먼저 입을 맞춘 사람은 민하윤인데 왜 이제 와서 모른 척한단 말인가? 하도진은 경멸 어린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해하지 못하겠으니까 옷 챙겨 입고 이만 나가.”

민하윤도 계속 이불 안에 숨어있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하도진이 떠난 걸 확인한 뒤 황급히 옷을 입었다. 그러나 어제 하도진이 속옷을 전부 찢어버린 탓에 속옷은 입을 수가 없었다.

민하윤은 힘겹게 옷을 다 챙겨입은 뒤 하도진의 앞에 섰다.

하도진은 민하윤을 본 순간 잠깐 넋을 놓았다. 그는 아침 햇살 아래서 눈앞의 민하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작은 얼굴, 반짝이는 두 눈, 살짝 부은 듯한 빨간 입술, 긴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풀어 헤쳤고 피부는 말도 안 되게 하얬다. 그리고 화장은 살짝 번진 데다가 눈은 놀라울 정도로 빨갰다. 아주 비참한 모습이었지만 아름답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엉망이 된 침대 시트 위 빨간색 흔적이 하도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젯밤 민하윤이 서툴게 굴었던 이유가 있었다. 하도진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민하윤이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하도진은 뭔가를 깨닫고는 지갑 안에서 현금을 꺼내 민하윤의 손에 쥐여줬다.

하도진은 그동안 민하윤 같은 여자를 많이 봐왔다.

“이거면 돼? 아니면...”

하도진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민하윤이 그에게 현금을 집어던졌다.

하도진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위험한 기운을 내뿜었다.

“왜? 적어서 그래? 이미 내 친구에게서 돈을 많이 뜯어낸 걸로 알고 있는데. 몸을 팔 생각이었으면서 시가는 알아보지 않은 거야? 아니면 뭐 앞으로 어떻게 해야 돈을 더 많이 뜯어낼지 고민하는 거야? 꿈깨...”

짝!

따귀를 맞은 하도진은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그는 입안에 고여있던 피를 뱉어낸 뒤 당장이라도 민하윤을 목 졸라 죽일 것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말 똑똑히 들어.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젯밤 먼저 내게 키스한 건 너야.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민하윤은 그의 말을 계속해 들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민하윤은 애써 눈물을 삼키다가 바닥에 떨어진 돈을 밟으며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민하윤은 길가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올라 휴대전화를 켜는 순간, 부재중전화와 읽지 않은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민하윤은 메모장 안에서 목적지 주소를 찾아내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었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민하윤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녀의 귓가에 하도진의 말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어젯밤 먼저 키스를 한 게 그녀라니...

민하윤은 자신과 함께 밤을 보낸 남자가 낯선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택시는 한 별장 밖에 멈춰 섰고, 민하윤은 빠르게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민하윤은 얼른 몸을 씻은 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넓은 거실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민하윤은 머리도, 화장도 엉망이었고 눈가는 빨갰다. 드레스는 잔뜩 구겨져 있었고 희고 가는 목에는 붉은 키스 마크가 남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별장 안은 고요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민희수가 먼저 입을 뗐다.

“어머, 언니. 어제 어디 갔었어? 다들 언니를 밤새 찾았다고. 서우 오빠가 언니를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경찰에 신고할 뻔했다니까.”

진서우는 굳은 표정으로 민하윤의 목에 남은 키스 마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매우 싸늘했다.

“어디 갔었어? 몸은 왜 그래?”

다들 아무 말 없이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민하윤의 부모님마저 의심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더러운 것을 바라보듯 혐오와 경멸, 증오가 담긴 눈빛으로 민하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순간 억울함과 의아함, 무력함, 두려움이 치솟아 올랐다. 민하윤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기에 수화로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약혼자 진서우에게 말했다.

[어제 어디 갔었어? 왜 나만 호텔에 두고 간 거야?]

진서우는 수화를 조금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이해하지 못한 척했다. 그는 수려한 언변으로 모든 것을 언어장애가 있어 말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민하윤의 탓으로 돌렸다.

“우리는 이미 약혼한 사이야. 그런데 어젯밤에 갑자기 사라지더니 오늘 온몸에 다른 남자가 남긴 흔적을 달고 돌아와? 내 기분은 생각도 안 해?”

진서우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처럼 역정을 내며 억울해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진서우를 동정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서우가 그동안 자기를 얼마나 사랑해 줬는데.”

“부모님이 어떻게 교육했길래 저 모양이지? 곧 결혼할 사람이 다른 남자를 만나? 저런 여자랑 어떻게 결혼을 해?”

사람들 사이에서 듣기 거북한 말들이 나왔다. 아무도 민하윤을 믿지 않았고 다들 민하윤을 질타하고 욕했다. 심지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면서 민하윤을 성희롱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하윤은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어젯밤 술에 취한 그녀를 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스위트룸으로 데려다주었던 사람은 진서우였기에 절대 문제가 생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민하윤은 말할 수가 없었고 그녀를 믿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민하윤은 수화를 했다.

[그런 거 아니야. 내 말 좀 들어봐!]

진서우는 뭐가 그렇게 급한지 사람들 앞에서 자극적인 말로 민하윤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나랑 약혼하자마자 갑자기 사라져서 다른 남자랑 뒹굴다니. 민하윤, 네가 이런 사람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

민하윤은 열심히 손을 움직이다가 우뚝 멈췄다. 그녀는 서서히 두 손을 내린 뒤 어두운 눈빛을 해 보였다. 민하윤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민하윤, 나는 품행이 단정치 못한 여자랑 결혼할 생각 없어. 그러니까 결혼은 없었던 일로 해.”

[난 그런 적 없어. 오빠가 그런 거야? 일부러 그랬어?]

민하윤은 미친 사람처럼 진서우의 멱살을 잡았다. 그의 목에 키스 마크가 남아있는 걸 본 순간, 민하윤은 따귀를 맞았다.

손에 힘을 너무 많이 준 탓에 민성현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민하윤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도움 안 되는 것. 어쩜 이렇게 뻔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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