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이별하고 몇 년 뒤, 회사 회의실에서 자신의 아이 아빠인 전 남친 권지헌을 다시 마주치게 된 허설아. 허설아는 그저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이를 빼앗길까 두렵고 모든 걸 잃게 될까 두렵다. 허설아는 애초에 두 사람은 그냥 장난이었다는 권지헌의 말을 떠올리며 직장 내 상하급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권지헌은 주변을 맴도는 여자들이 단 한 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처음 허설아를 다시 본 순간, 권지헌은 허설아가 자신을 버리고 바로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허설아가 아파하길, 후회하기를 바라며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허설아가 벼랑 끝에 선 순간 겉에 다가간 권지헌은 허설아가 앞으로 아이와 함께 자기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진실을 알게 된 그 순간, 권지헌은 줄곧 복수하고 있던 상대가 자기 자신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네가 나한테 거리를 두라고 했잖아." "거리는." 권지헌이 허설아의 턱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마이너스일 수도 있는 거야."
더 보기클럽 안, 조명이 번쩍였다.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스테이지 위에서 춤을 추었다. 권서진이 진하린의 테이블을 찾아와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서진아, 왜 이제 왔어?""방금 퇴근했어요, 회사에 할 일이 산더미거든요." 권서진 같은 재벌가 출신 중에 진짜 실무에 뛰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물며 권서진은 권율 그룹 임직원도 아니었다. 이런 경우는 더더욱 드물었다. 진하린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진하린도 처음엔 진원호가 나쁠 것도 없는데 자주 만나보라고 해서 권서진이 궁금했었다. 어차피 친척인데 얼굴 한 번 보는 건 괜찮을 것 같았다. 권서진을 만나고 나서야 생각했던 재벌집 아가씨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깔도 있고 자존심도 있었지만 그보다 실력이 있었다. 진하린이 이번에 만나자고 한 건 사실 같이 창업하자고 권서진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서진아, 한번 생각해볼래?"권서진이 웃으며 말했다."언니가 저를 대단하게 봐주니까 당연히 생각은 해봐야죠. 그런데 새언니도 저한테 너무 중요해요. 새언니 회사라고는 하지만 실은 저도 대표거든요."àl'aube와 봄날 둘 다 권서진에게 지분을 나눠준 상태였다.다만 권서진은 경영에 능하지 않았고 사업상 인맥을 관리하는 것도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 분야에 더 뛰어난 사람과 함께 손잡은 것이었다."투자하라고 하면 지분 투자도 가능해요. 하지만 제가 아예 넘어가는 건 불가능해요.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저희 àl'aube에는 새언니 말고도 송원 그룹 주주도 대표로 있거든요."진하린이 혀를 찼다."너희가 1년 만에 àl'aube를 국내에서 알아주는 주얼리 브랜드로 만든 게 이상할 것도 없네."하나같이 능력자가 모였으니 말이다.권서진이 손에 든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저희도 많은 고비를 넘긴 탓에 더 떠나고 싶지 않은 거예요."함께 너무 많은 일을 겪었었다. 눈보라 치는 곳에서 대가에게 사정하고, 길도 없는 깊은 산속을 힘겹게 걷고, 불길 속에서 다시 태어나서야 지금의 àl'
권지헌은 손쓸 필요조차 없었다.이 모든 건 권지호가 자초한 일이었다.권지민이 권지헌을 싸늘하게 바라봤다.맞은편 남자는 더 이상 이야기할 흥미를 잃은 듯 손을 휘휘 저었다."나가."권지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순간 권정민이 아직도 자기를 신경 써준다는 걸 기뻐해야 할지, 권지헌이 애초부터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권지민이 이를 악물었다."형은 언젠가 외톨이가 돼서 곁에 아무도 없을 거야."권지헌이 고개를 들며 싸늘하게 훑었다."그렇게 쏘아붙인다고 속이 시원해?""어릴 때도 그러더니 여전히 하나도 나아진 게 없네."권지헌은 무심한 말 한마디로 권지민의 분노를 여지없이 짓밟았다. 노골적인 무시에 권지민은 목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한참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권지헌은 확실히 권지민이 안중에도 없었다. 권지민이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사무실 문 앞에서,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허설아와 마주쳤다.허설아는 권지민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방금 대화를 분명 다 들었을 텐데도 옆에 있는 권지민을 쳐다보지도 않았다.성큼성큼 권지헌에게로 걸어갈 뿐이었다. 권지민은 허설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지만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굳이 똑똑히 듣고 싶지도 않았다.두 사람은 권지민 앞에서도 당당하게 서로를 향해 달려갔고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반면 권지민은 마치 음지에서 남의 행복을 엿보는 존재 같았다. 권지민은 권율 그룹 건물을 나와 허설아와 권지헌과는 완전히 등을 돌린 채 정반대의 길로 걸어갔다.앞으로 살면서 이곳에 다시는 발을 들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허설아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권지헌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온 지 얼마나 됐어?""권지민이 들어올 때부터 있었어. 손님 있으니 당연히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와야지."권지헌이 씩 웃
며칠 뒤, 권율 그룹.조민규가 대표 사무실에 서서 말했다."대표님, 지민 도련님이 뵙고 싶다고 오셨습니다.""들어오라고 해요.""네."잠시 후 권지민이 권지헌의 사무실에 들어서며 불렀다. "형.""무슨 일이야?"권지민이 소파에 앉아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얼굴에 남은 흉터를 드러냈다.화상 자국이 이마에도 남아 있었다.권지민이 책상 앞에 앉은 권지헌을 바라봤다.형제의 시선이 마주쳤다.권지헌이 일어나 책상 끝에 기대선 채, 권지민을 내려다봤다.권지민이 입을 열었다."형, 나를 아주 끝장내야 속이 후련하겠어?""내가 끝장을 냈는지 안 냈는지는 네가 더 잘 알잖아."권지민이 차갑게 웃었다."그래, 나를 해외로 보내도 우리 아빠 사업 넘겨받는 거니까 당연히 끝장내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이렇게 하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권지헌이 조용히 권지민을 응시했다.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정이 없지는 않았다.그런데 그 정조차 조금씩 닳더니 어느새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권지민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형, 그거 알아? 난 어릴 때부터 형이 싫었어.""형은 뭐든 완벽하게 해내서 우리는 발붙일 곳조차 없었어." "형을 못 넘어서면 우리 셋은 밥도 못 먹었어.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이렇게 권씨 집안 사업은 한 사람한테만 남겨줄 거라고 하셨어.""서진이도 딸이라 은석이 형과 함께 편하게 지낸 거지, 아니면 언젠가는 이 밥그릇 다툼에 휘말렸어."권지헌은 이런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권지민이 일어나 어두운 얼굴로 권지헌을 노려봤다."형, 내가 허설아를 좋아하는 게 형 여자라서 탐내는 거라고 생각하지? 사실 그게 아니야.""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 형 자식이 부러워서야."권지헌이 멈칫했다.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유였다."너무 부럽거든. 형 아이도 나랑 똑같이 혼외자인데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잖아."허설아도 틀린 셈이었다.권지민이 허설아한테 눈길을 돌린 건 권지헌 때문이 아니었다.연희 때문이었다.권지민
àl'aube는 성장세도 좋고 브랜드 이미지도 긍정적이었다. 다만 회사가 좀 외진 위치라 협력을 원하는 거래처들이 왔다가 길을 못 찾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시내로 이사하는 건 불가피했다. 사무실 건물은 이미 계약을 마쳤고 곧 이사할 예정이었다.송원영이 고개를 들어 차에서 내리는 권지헌을 보고는 허설아한테 눈짓하며 말했다."먼저 가볼게요. 권 대표님 진짜 철통 감시하시네요."허설아는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권지헌과 시선을 마주쳤다.9월 말인데도 아직 따가운 햇빛을 맞으며 계단을 오른 권지헌이 허설아를 향해 다가왔다.허설아 곁에 다가와 종이 한 장을 건넸다.자세히 들여다보던 허설아가 놀란 듯 물었다."출산 통증 체험? 이걸 왜 체험한 거야?""네가 겪었던, 그리고 곧 다시 겪을 고통을 느껴보고 싶어서."허설아는 수료증을 보며 잠시 멍해졌다.헤어져 있던 몇 시간 사이, 권지헌이 혼자 출산 통증을 체험하러 갔을 줄은 몰랐다."그래서 아팠어?""많이 아팠어. 처음엔 견딜 만했는데 나중엔 정신력으로 겨우 버텼어."권지헌은 솔직히 인정했다.겨우 십여 분이었지만 뼈저린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내장이 다 뒤틀리고 몸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었다.하지만 그 정도도 시뮬레이션일 뿐이었다.권지헌이 말했다."일어날 때 온몸에 힘이 다 빠졌어. 그런데 간호사가 하는 말이 이건 겨우 몇 분이었고 실제 출산 땐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대."허설아가 나직이 웃으며 가차없이 찬물을 끼얹었다. "난 그때 안 아팠어, 바로 무통 맞아서 출산까지 별로 아픈지도 몰랐어."연희는 태위가 좋지 않아서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미국에서 출산하면서 처음부터 무통을 선택했기에 정작 허설아는 심한 통증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수술 후에 침대에서 내려올 때 느낀 통증 정도였다. 오늘 권지헌이 겪은 통증을 허설아는 아직 겪어본 적 없는 셈이었다.그 말에 권지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이번 아이도 그렇게 하자."허설아가 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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