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이별하고 몇 년 뒤, 회사 회의실에서 자신의 아이 아빠인 전 남친 권지헌을 다시 마주치게 된 허설아. 허설아는 그저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이를 빼앗길까 두렵고 모든 걸 잃게 될까 두렵다. 허설아는 애초에 두 사람은 그냥 장난이었다는 권지헌의 말을 떠올리며 직장 내 상하급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권지헌은 주변을 맴도는 여자들이 단 한 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처음 허설아를 다시 본 순간, 권지헌은 허설아가 자신을 버리고 바로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허설아가 아파하길, 후회하기를 바라며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허설아가 벼랑 끝에 선 순간 겉에 다가간 권지헌은 허설아가 앞으로 아이와 함께 자기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진실을 알게 된 그 순간, 권지헌은 줄곧 복수하고 있던 상대가 자기 자신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네가 나한테 거리를 두라고 했잖아." "거리는." 권지헌이 허설아의 턱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마이너스일 수도 있는 거야."
더 보기허민정도 물론 이런 이치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허설아와 권지헌한테는 이미 연희가 있으니 아들 하나 더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어쨌든 아들딸 하나씩 있으면 남부러울 게 없으니까.하지만 허설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허민정이 다시 물었다."그럼 지헌이는? 아들 안 바라?"권지헌이 마침 집에 들어서자 허민정이 말을 멈췄다.허설아가 그 틈을 타 물었다."권지헌, 너는 배 속 아이가 아들이면 좋겠어 딸이면 좋겠어?"신발을 갈아 신던 권지헌이 그 말에 입을 열었다."다 좋아, 딸이면 제일 좋지. 아들이면 뭐 어쩔 수 없고."심지어 아들을 좀 탐탁지 않아 하는 말투였다.허민정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아들이 싫어? 나중에 네 사업은 어쩌려고 그래?"연동근과 허민정의 회사는 허설아가 물려받았고 허민정도 딱히 반대한 적 없었다.오히려 자기가 나서서 반대라도 하면 권씨 집안이 불만을 가질까 더 걱정이었다.허설아는 심장이 안 좋은 환자인 허민정과 굳이 다툴 생각이 없었다.권지헌이 일어나며 말했다."사업은 다 연희한테 물려줄 생각이에요. 아들이어도 좋아요, 몇 달 동안 설아를 너무 힘들게만 하지 않으면 다 좋습니다."여자는 임신하는 순간부터 아이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고 했다.남자는 아이를 직접 봐야만 부성애가 생기는 법이었다.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 권지헌의 대한 애정은 연희나 허설아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아직 자그마한 콩알 같은 존재가 허설아를 너무 힘들게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허민정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나는 그냥 설아가 성별이라도 알면……""엄마, 불법이에요."참 신기할 정도로 죽이 잘 맞는 부부였다."그럼 아이 이름은? 생각해 놨어?"권지헌이 밥을 먹으려 식탁에 앉으며 씩 웃었다."생각해 놨어요. 아이 태어나면 그때 말씀드릴게요."허설아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엄청 비밀스럽네? 나한테도 얘기 안 해줄 거야?""안 해. 넌 이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나중에 내가 지은 이름이 마음에 안 들면 그
지난 한 주 동안 허설아는 직원들과 함께 새 사무실로 이사했다.예전 사무실 빌딩도 계속 사용하기로 했다.허준 그룹에 출근하기 위해 근처에 집을 구매한 일부 직원들도 있었다.다시 시내로 나오려면 집을 구하든 통근을 하든 적잖은 비용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마침 브랜드도 두 개의 생산 라인이었기에 아예 회사를 두 곳으로 회사를 나눠 봄날 관련 업무는 전부 송원영에게 맡겼다.허설아는 àl'aube 직원들을 데리고 시내로 옮겼다.계약서를 들고 찾아온 서은석을 본 순간, 허설아는 조금 의아했다."형수님. 설마 저랑 같이 일하기 싫은 건 아니죠?""그럴 리가요? 은석 씨네 고객층은 확실히 넓고 탄탄하니까 협업하면 서로 좋죠. 다만 이건 원영 씨가 맡고 있는데 이쪽으로 넘어오지 않았거든요."허설아는 서은석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지는 걸 보며 속으로 웃음이 났다.허설아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일단 서명하고 직인 찍어줄 테니까 나중에 원영 씨 찾아가서 협업 세부 사항 다 정하고 다시 와요."서은석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형수님이 최고예요!"서명이 끝나자 서은석은 서둘러 송원영이 있는 회사로 향했다.다시 바쁜 한 주가 지나갔다.집에서 저녁을 먹던 중, 허민정은 점점 얼굴에 살이 붙는 허설아를 지켜보았다.권지헌도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고 연희도 박희수와 함께 위층에 있는 틈을 타 허민정이 넌지시 물었다."설아야, 그냥 사람 불러다 아이 성별 한번 봐볼까?"허설아가 국을 떠먹으며 말했다."성별 확인하는 거 불법이에요.""에이, 초음파 볼 줄 아는 의사한테 슬쩍 물어보면 되잖아."허설아가 고개를 들어 허민정을 바라보았다."그거 본다고 뭐가 달라져요? 설마 성별이 마음에 안 들면 안 낳기라도 하게요?""에이, 무슨 그런 험한 말을 해!"허민정이 황급히 허설아의 입을 틀어막고는 아직 납작한 배를 향해 사과했다."아가, 할머니가 실없는 소리 했어. 화내지 마, 네 엄마도 그냥 한 말이야."안 낳는다는 건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
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해 볼게요."전에 권율 그룹에서 마케팅 부서를 담당했던 허설아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실물 매장이 매출은 그리 크지 않아도 마케팅 때문에라도 필요했다.허설아가 권지헌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조민규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허설아는 바로 휴게실로 들어가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드러누웠다.낙찰 여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하이힐을 신고 서 있었더니 온몸이 피곤했다.뒤따라 들어온 권지헌은 벌렁 드러누운 허설아를 발견했다.권지헌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휙 흔들었다."가서 커피나 한 잔 대령해.""커피 적게 마셔. 우유 마시면 안 돼?""나 연희 아니거든, 안 마셔."요 며칠 입덧이 많이 줄고 구토 증상도 나아진 대신 짜증이 늘었다.걸핏하면 화를 냈는데 화내는 포인트도 뜬금없었다.다행히 권지헌은 다 받아주었고 오히려 이런 투정을 재밌어했다.커피를 타오더니 허설아가 한 모금 마시자마자 바로 가져가 버렸다."됐어, 저번에 의사가 커피 줄이라고 했잖아."허설아가 다리를 들어 자연스레 권지헌의 무릎 위에 올렸다."아예 마시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권지헌이 옆에 컵을 내려놓고 종아리를 주물러주었다."다음부터 불편하면 이렇게 높은 구두는 신지 마.""안 돼! 이거 대리구매까지 시켜서 특별히 직구한 거야!"허설아는 이런 빨간 밑창의 스틸레토 힐을 무척 좋아했다.하지만 확실히 아름다운 고문 도구나 다름없었다.오래 신지도 않을 거고 임신 초기라 아직 붓기 전에 이를 악물고서라도 신고 싶었다.권지헌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커피를 한 모금 마시긴 했지만 종아리를 다 주물러주고 고개를 돌리자 허설아는 이미 손을 베개 삼아 곤히 잠들어 있었다.권지헌은 이불을 덮어주고 뺨에 입을 맞춘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권지헌이 조민규를 불렀다."권지호는 어떻게 된 거예요?""그 브랜드는 이미 예전부터 얘기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입찰회에서 지호 씨가 뒤를 봐주셨더라고요."권지헌이 미
발표회장을 나서자 조민규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대표님, 권 대표님께서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네, 잠시만요."허설아는 옆에 있는 두 사람을 살폈다. 특히 권서진은 눈에 띄게 풀이 죽어 있었다."됐어요, 괜찮아요. 진짜로 낙찰되면 매일 권지호 씨랑 얼굴 마주봐야 할 텐데 그러길 바라요?"권서진도 그건 원하지 않았다.권지호가 두 남매를 이용해 수작 부렸던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화가 나서 이가 갈렸다.허설아가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좀 쉬어요. 휴가라고 생각하고."조민규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입찰은 안 되었지만 그룹 내부에서 많은 직원들이 가연 시리즈를 주문하고 싶어해요. 그리고 권 대표님이 지금 회의 중이시라 두 분도 당분간 쉬시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상대 고객사가 골드 세트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신설 회사 직원 복지용으로 백 세트 넘게 주문하려고 해요."권서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무슨 회사가 이렇게 통이 커요?""웨딩업체입니다."조민규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이번 책정 가격이 사치품까지는 아니라서 웬만큼 탄탄한 회사면 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권서진이 바로 신난 얼굴로 말했다."금이야 무게만 늘리면 가격은 얼마든지 높일 수 있죠!"권율 그룹을 나서기도 전에 새 주문이 들어온 덕분에 낙찰 실패로 인한 울적함은 순식간에 씻겨 버렸다.곧바로 기분이 좋아진 권서진이 송원영과 함께 일하러 돌아가려 했다.마침 나온 권지호가 권서진을 불렀다."서진아, 이번 일은 미안하게 되었다. 오빠도 너만 따로 봐줄 수는 없었어, 실력으로 겨룬 거니까."권서진이 고개를 돌려 권지호를 바라보았다.권지호는 권율 그룹 회의실 문 앞에 서서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위선적인 미소를 띤 채 권서진을 응시하고 있었다.권서진이 이를 악물고 권지호를 향해 중지를 추켜세웠다.권지호가 멈칫하는 사이 권서진은 어느새 돌아서서 떠나버렸다.적어도 화를 내거나 멘붕이 오거나 아니면 자신한테 해명이라도 요구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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