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 탐정에게 입덕했다.(나, 오직 너만을)

남장 탐정에게 입덕했다.(나, 오직 너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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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쏭쏭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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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차우석은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달라며 남장 탐정 유혁을 찾아간다. 취기에 나눈 입맞춤과 낯익은 얼굴, 그날부터 우석은 이유 모를 끌림에 빠진다. 유혁의 정체는 아버지가 남긴 빚 50억 때문에 변호사를 접고 남장한 채 살아가는 여자, 송희우다. 정체를 눈치채고도 티 내지 않는 우석과, 사랑할수록 그를 위험에 빠뜨릴까 겁내는 희우. 사채업자의 협박, 반복되는 오해, 하나둘 나타나는 위협 속에서도 우석은 재산과 명성을 걸고 그녀를 지켜낸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안전한 사람이 되어 나란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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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난 사람

똑똑.

경쾌한 노크 소리였다.

"네"

나는 짐짓 태연한 척 대답했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들어서는 남자를 보는 순간, 나는 그만 숨을 한 박자 놓쳤다.

차 우석.

스물여덟.

대한민국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이름.

긴 기럭지, 정장 재킷 차림에도 한눈에 느껴지는 단단한 어깨.

흘러내린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매가 지금도 예사롭지 않았다.

몇 년 전, 삶의 벼랑 끝에서 나를 붙잡아 준 사람.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그를 잊은 적이 없었다.

저런 남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다시 서 있다는 게, 어딘지 현실 같지 않았다.

나는 입을 살짝 벌리고 말았다.

그런 내 표정이 이미 수도 없이 익숙하다는 듯, 그가 피식 웃었다.

웃음을 보아하니, 그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입꼬리가 올라가며 눈이 가늘어졌다.

아, 저 눈빛은 반칙이다.

하지만 나, 송희우, 또 다시 흔들리면 안 된다.

이런 감정 따윈 사치다.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으려면 정신 줄을 꽉 붙잡아야 했다.

나는 재빠르게 표정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유혁이라고 합니다."

명함을 내밀었다.

'탐정 — 유혁'이라고 적힌.

그가 명함을 받아 들고 내려다보았다.

"생각보다 젊으시군요. 좀 더 연륜 있으신 분인 줄 알았는데."

"아, 윤이솔 씨께서 자세히 설명을 안 하셨나 보군요. 비록 스물여섯이지만 실력은 됩니다. 앉으시죠."

나는 최대한 전문가처럼 보이려 애쓰며 낡은 검은 가죽 소파를 가리켰다.

그가 사무실 안을 슬쩍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

안다.

낡은 상가 건물 2평짜리 사무실.

전 사장에게서 통째로 넘겨받은 거라 가구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목소리를 한 톤 낮게 깔았다.

"사람을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가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중년의 여성이었다.

온화한 미소, 인자한 눈매.

사진 속에서도 느껴지는 따뜻한 분위기.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제 친어머니입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담담한 표정.

흔들림 하나 없이 평온한 얼굴이었는데, 어딘지 그 평온함이 너무 단단하게 다져진 것처럼 보였다.

"친어머니를 찾으신다고요?"

"네. 제가 다섯 살 때 집을 나가셨습니다."

몰랐다.

차우석에게 이런 아픔이 있을 줄은.

"경찰에선 뭐라 하던가요?"

"고등학교 때 갔었는데,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찾아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그리고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찾으시려는 거고요."

"네.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살아 계신다면 얼마든지요. 다만 저도 같은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나는 잠깐 말을 고르다 이었다.

"당사자가 만나길 원하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렇다면 굳이 만날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짧게 답했다.

"다만 한 가지만 묻고 싶어요."

"어떤 걸 말입니까?"

"나를 두고 떠난 것을, 이젠 후회하느냐고요."

나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여전히 담담한 얼굴이었지만, 그 질문 뒤에 얼마나 긴 시간이 담겨 있는지가 느껴졌다.

다섯 살부터 지금까지.

20년 넘는 시간.

"…알겠습니다. 어머니를 찾게 되면 꼭 여쭤보겠습니다."

그가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선금이었다.

아마 이솔에게 미리 들었나 보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따라 일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비밀은 절대 지키겠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그게, 다시 그와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내 능력을 총동원해 그의 어머니를 찾아냈다.

강원도 어느 바닷가 마을의 작은 식당.

그녀는 그곳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아들을 만나길 원하지 않았다.

대스타가 된 아들이라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우석이 부탁한 말을 전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후회… 한 적 없어요. 그렇게 전해줘요."

나는 말없이 들었다.

"그래야 그 애가 저를 잊고,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에 나는 그녀의 아픔을 보았다.

후회하지 않는 게 아니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해야만 하는 사람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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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난 사람
똑똑.경쾌한 노크 소리였다."네"나는 짐짓 태연한 척 대답했다.그러자 문이 열렸다.들어서는 남자를 보는 순간, 나는 그만 숨을 한 박자 놓쳤다.차 우석.스물여덟.대한민국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이름.긴 기럭지, 정장 재킷 차림에도 한눈에 느껴지는 단단한 어깨.흘러내린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매가 지금도 예사롭지 않았다.몇 년 전, 삶의 벼랑 끝에서 나를 붙잡아 준 사람.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그를 잊은 적이 없었다.저런 남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다시 서 있다는 게, 어딘지 현실 같지 않았다.나는 입을 살짝 벌리고 말았다.그런 내 표정이 이미 수도 없이 익숙하다는 듯, 그가 피식 웃었다.웃음을 보아하니, 그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입꼬리가 올라가며 눈이 가늘어졌다.아, 저 눈빛은 반칙이다.하지만 나, 송희우, 또 다시 흔들리면 안 된다.이런 감정 따윈 사치다.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으려면 정신 줄을 꽉 붙잡아야 했다.나는 재빠르게 표정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안녕하세요. 유혁이라고 합니다."명함을 내밀었다.'탐정 — 유혁'이라고 적힌.그가 명함을 받아 들고 내려다보았다."생각보다 젊으시군요. 좀 더 연륜 있으신 분인 줄 알았는데.""아, 윤이솔 씨께서 자세히 설명을 안 하셨나 보군요. 비록 스물여섯이지만 실력은 됩니다. 앉으시죠."나는 최대한 전문가처럼 보이려 애쓰며 낡은 검은 가죽 소파를 가리켰다.그가 사무실 안을 슬쩍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안다.낡은 상가 건물 2평짜리 사무실.전 사장에게서 통째로 넘겨받은 거라 가구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나는 헛기침을 하며 맞은편에 앉았다.목소리를 한 톤 낮게 깔았다."사람을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네."그가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중년의 여성이었다.온화한 미소, 인자한 눈매.사진 속에서도 느껴지는 따뜻한 분위기."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제 친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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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취한 진심, 들켜버린 거짓말
서울로 돌아온 나는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었다."어머니께서 만나길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는군요.""…그렇군요. 그럼 물어봐 주셨습니까?""네.""뭐라 하시던가요?"짧은 침묵.나는 수화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후회한 적 없다고. 그렇게 전해달라고.그 말이 입 끝까지 올라왔다가, 그대로 멈췄다.사실대로 전하면, 왠지 담담한 그가 무너질 것 같았다."…가슴이 많이 아프셨다고 합니다.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다고요. 지금도 많이 걱정하신다고. 그러니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수화기 너머로 짧은 숨소리가 들렸다.그러더니 예상치 못한 말이 돌아왔다."저랑 술 한잔 하시겠습니까?""네?""저랑 술 한잔 하자고요."왜 그러자고 했을까.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이윽고 내 사무실 앞으로 고급 세단이 미끄러져 들어왔다.매니저가 나를 태워 간 곳은 고층 빌딩 안의 프라이빗 바.조명이 낮고 조용한 공간.우석은 이미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아! 유혁 씨! 여기요."그는 이미 꽤 취해 있었다.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성큼 다가와 내 손목을 덥석 잡는 게 아닌가.당황해서 빼내려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옆자리로 이끌었다."여기 여기 앉아요."그리고 바짝 옆에 앉았다.팔꿈치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술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그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다시 한번 말해주시겠습니까?""…뭘요?""어머니가 하셨다는 말. 그거요."나는 작게 숨을 들이쉬고는 아까 전화로 했던 말을 다시 천천히 읊었다.그가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들었다.잔을 손에 쥔 채로, 움직이지 않고.이야기가 끝나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눈앞에 그의 얼굴이 있었다.터무니없이 가까운 거리.나는 순간 굳어버렸다."거짓말."낮고 나직한 목소리였다."네?""유탐정님,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잘하시는군요.""그… 게…"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그가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내가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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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채령이라 불린 밤
대답이 없었다.무겁기만 했다.그의 집 안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잠깐 멈칫했다.넓고 깔끔한 거실. 간결하지만 하나하나 값이 나가는 가구들.조명이 꺼진 채로도 어딘지 단단하고 정돈된 느낌.이 남자가 사는 공간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저기 소파에 뉘면 되겠다.'나는 이를 악물고 그를 소파 쪽으로 이끌었다.겨우겨우 데려가 몸을 기울이는 순간—그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도 함께 쏠렸다.쿵.그의 몸 위로 내가 넘어지고 말았다.심장이 쿵쾅 뛰었다.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려는데, 그의 팔이 갑자기 내 허리를 감쌌다."가지 마…"낮고 잠긴 목소리였다.술에 절어 있으면서도, 어딘지 간절한."이대로… 이대로 잠깐만 있어줘."'이봐요! 나 지금 남자라고요!'나는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려 했다.그런데 허리를 두른 팔에 오히려 힘이 더 실렸다.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제발… 나 혼자 있기 싫어."그 목소리에 나는 순간 굳어버렸다.카메라 앞에서 능청스럽게 웃고, 어디서든 중심을 잃지 않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지금 내 품에 기대어 있는 건, 그냥 지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나는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이성을 붙잡았다."저… 저 유혁입니다. 탐정이요. 이솔 씨 불러드릴까요?""아니."단호했다."너. 너 이대로 있어."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그러더니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초점이 흐린 눈이 나를 향했다.가늘게 떠진 눈꺼풀 사이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간절해서—나는 숨을 참았다.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왔다.내 뺨을 가만히 쓸었다."채령… 가지 마. 제발."그 순간, 두근거리던 심장이 뚝— 멈추는 것 같았다.채령?나는 굳어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차갑게, 현실이 돌아왔다.그렇지.그렇지, 그렇지.이 남자.수많은 여자를 울렸다는 소문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지금 내 얼굴을 보면서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고 있잖아.채령이 누군지는 몰라도—이 남자한테 나는 그냥, 마침 옆에 있었던 사람일 뿐이었다.나는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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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2년 전, 시냇가의 그 여자
"연예인들 뒷일 봐주면 꽤 짭짤해. 내 사무실 넘겨받아봐.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거야."그 말 한마디에 나는 법복을 벗고 빵모자를 썼다.그렇게 사설 탐정이 됐다.남장을 한 건 그다음이었다.채사장이 빚을 유예해주는 조건이었기도 했고, 여자 탐정이라고 하면 선뜻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금방 알게 됐으니까.지금도 남동생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나는 사무실 옆 옥탑방에서 지낸다.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보다 이번 달 이자가 얼마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삶.이런 내가 대스타가 된 차우석에게 뭘 바랄 수 있겠어.6년 전, 그 학교에서의 만남을 그가 기억해주리라 은근히 기대했던 내가 잘못된 것이다.나는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며 차가운 밤 공기를 들이마셨다.잊어야 했다.그의 온도도, 그 목소리도, 그 애절한 키스도.전부 다.그런데 왜, 자꾸 심장이 이러는 거야.#덜컥.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나는 비몽사몽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소파 위였다.조명은 꺼져 있고, 거실엔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새벽빛만 희미하게 깔려 있었다.채령이 보이지 않았다.'아. 꿈이었구나.'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언제쯤 나는 채령을 잊을 수 있을까.꿈에서조차 그녀는 늘 내 앞에서 사라졌다.손에 잡힐 듯, 잡힐 듯, 끝내 잡히지 않는 사람.눈이 다시 감겼다.의식이 흐릿하게 가라앉으며, 나는 그 날로 흘러 들어갔다.2년 전, 봄날이었다.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는 오후.야외 촬영지는 시끌벅적했다.나는 촬영진들 사이에 파묻혀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다음 씬, 그다음 씬. 대사를 머릿속에 새기고 있었다.그런데 그 순간.시선이 멈췄다.촬영진들 뒤편으로 누군가 지나쳤다.찰나였다.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덜컥했다.뭔가 잘못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매니저에게 화장실 다녀오겠다 하고 사람들 틈을 빠져나왔다.그리고 저만치 앞을 보는 순간, 발이 그대로 굳었다.한복 차림의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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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빵모자가 남긴 단서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젖은 구두도 신경 쓰지 못하고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심장이 오랫동안 뛰고 있었다.그날 이후 나는 그 여자만을 찾았다.채령을 닮은 여자.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채령을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 그 자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맑은 눈동자, 발그레한 뺨, 물속에서 혼자 환하게 웃던 그 순간.수소문해봤지만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그런데.탐정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자리에서 일어나 명함을 내미는 청년을 보는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남자가 저렇게 곱고 예쁠 수 있을까.빵모자 아래로 드러난 이목구비가, 그 눈동자가— 너무나도 그 여자를 닮아 있었다.아니, 닮은 게 아니라 그 자체였다. 시냇가에서 환하게 웃던 그 얼굴이.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채령이 이번에는 남자로 환생을 한 건가.미쳤나 보다, 나. 정말로.그런데도 눈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사무적으로 명함을 내밀고, 낮게 깐 목소리로 "실력은 됩니다"라고 말하는 그 얼굴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나는 탐정이 필요해서 그 사무실에 간 게 맞다.그런데—솔직히,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이유가 의뢰 때문만은 아니었다.속이 쓰렸다.어젯밤 마신 술이 아직 위장을 긁어대고 있었다.나는 비틀비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물 한 잔을 따르려다 창밖을 봤다.눈이 내리고 있었다.소리도 없이, 조용하게.참. 뭐야. 기분 싱숭생숭하게.그때였다.띠리릭—현관문이 열렸다.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매니저 한동호였다.노크도 없이 제집 드나들듯 들어오는 게 오늘도 여전하다."야! 너 제발 그냥 막 들어오지 마!""왜요, 왜요?"동호가 능청스럽게 눈을 깜빡였다."혹시 여자라도 숨겨 놓으셨어요?"나는 소파 쿠션을 집어 휙 던졌다.동호가 날렵하게 피하더니— 소파 옆 바닥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형, 이건 뭐예요?"빵모자였다.나는 물잔을 든 채로 굳었다.빵모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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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골목에서 덮어준 코트
창밖에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그나저나 이 모자는 어떡하죠? 저 오늘 바쁜데."그 말에 나는 벌떡 일어나 동호 손에서 모자를 낚아챘다."그래? 그럼 내가 오늘 가져다 줄게.""아, 그럴래요?"동호가 해맑게 좋아했다.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왜 나는 이렇게 구실을 만들어서 유혁을 다시 만나려 하는 건지.참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그날 저녁.나는 빵모자를 종이가방에 넣어 조수석에 올려두고 차를 몰았다.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불이 꺼져 있었다.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벌써 퇴근했나.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관리소장이 다가왔다.나는 얼른 쓰고 있던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유 사장 찾아온 거요? 벌써 집에 갔는데. 연락처 없어요? 급하면 근처에 사니까 찾아가 봐요."오지랖 넓은 관리소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차에 올라 핸들을 잡았다.잠깐 고민했다.그냥 돌아가면 되는데.그런데 차는 이미 관리소장이 가르쳐 준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참, 내가 왜 이러는지.경사진 골목길을 천천히 올라가는데—저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유혁이었다.그런데 뭔가 이상했다.얇은 옷 차림으로,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급박한 움직임이었다.나는 갓길로 차를 세웠다.유혁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다.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내려오는 사람들.다섯 명.중년의 남자들.눈빛이 좋지 않았다.설마 쫓기고 있는 건가...?나는 나도 모르게 차 문을 열고 나왔다.유혁은 갈라진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뒤쫓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골목을 살폈다.이윽고 그들은 결국 못 찾겠다는 듯 골목을 빠져나갔다.나는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좁은 골목이었다.나는 이곳저곳을 살폈다.몸이 작은 유혁.분명 어딘가 웅크리고 있을 텐데.그때.후미진 골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귀를 틀어막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유혁이었다.이 겨울에얇은 셔츠 하나라니.손가락이 빨갛게 얼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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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거짓말 같은 핑계, 잃어버린 강아지
태연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절로 떨렸다."네. 그런데 여기 참 좋군요. 운치 있고."차우석이 탁자 앞에 가 앉으며 말했다.운치 있다니.나는 속으로 픽 웃었다.저 거실 창 너머 전망은 솔직히 나쁘지 않다.낮은 지붕들 위로 하늘이 넓게 펼쳐지는 게 나름의 정취가 있으니까.하지만 그의 널찍한 아파트와 비교하면, 이곳은 여름엔 찜통이고 겨울엔 얼음장인, 그냥 옥탑방일 뿐이었다.딱 그뿐이다.나는 찻잔을 그의 앞에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았다."그럼, 또 의뢰하실 것은 무엇인가요?"골목에서의 눈빛을 감추고 최대한 사무적으로 물었다.그의 눈을 똑바로 보기가 어려웠다.아까부터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어서."으흠. 그게… 그러니까."그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제 강아지를 찾고 싶습니다."강아지를...?"음... 어떻게 잃어버리셨습니까?"그가 미간을 좁혔다.그리고 한 박자 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한 달 전에 매니저가 돌봐주기로 했는데, 열어둔 현관문으로 나갔습니다. 그 뒤로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어서요. 혹 이런 일도 맡아주십니까?"나는 잠깐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너무 진지한 표정이었다.어딘지 그 눈빛이 무거웠다.6년 전 우석은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이상하다....나는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장담할 순 없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일 때문이시라면 전화로 하셔도 됐을 텐데, 굳이 여기까지…""아, 그것도 그렇고."그가 머쓱하게 말을 받았다."제 차에 두고 왔네요. 유 탐정님 모자를 돌려드리려고."모자.그 단어 하나에, 어젯밤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천천히 손을 뻗어 내 빵모자를 벗겨내던 그 손. 그리고 이어진 것들.나는 귓가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휙 돌렸다."모자는 나중에 천천히 돌려주셔도 됩니다.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아, 아닙니다."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사실… 제가 어제 혹시 실수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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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자꾸만 생각나는 이유
계단 아래까지 내려가 그가 골목을 걸어 내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걸음이 느렸다.서두르지 않는 걸음이었다.정말 신기하다.방금 전까지 차우석이 내 옥탑방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는 게.실화인가.나는 방 안으로 들어와 그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봤다.방석 위에 그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을 것 같았다.텅 비어 있는데도, 어딘지 그 자리만 다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잠깐 이상한 세계에 들어갔다가 현실로 돌아온 느낌.아니, 그보다 그와 끊겼던 과거가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는 느낌이 어쩌면 더 어울릴지도.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그나저나, 아버지 친구분들이 어떻게 내가 여기 사는 걸 알았을까.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삶이 무너진 사람들.그분들 앞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래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그냥 줄행랑을 친 거다.골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분들이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그곳에 차우석이 나타나디...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길고 짙은 코트를 벗어 내 어깨 위에 조용히 덮어주던 그.눈물이 맺힌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말없이 코트 깃을 여며주던 손.나는 입술을 깨물었다.차우석.당신은 왜 자꾸 나의 앞에 이렇게 나타나는 거지?날 전혀 기억도 못하면서.눈내리는 골목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강아지를 잃어버렸다니.예삐는 지금 동호네 집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있다. 멀쩡하게.나는 눈길 위를 걸으며 혼자 피식 웃었다.아니, 웃음이 나왔다가 이내 사라졌다.뭐라도 구실을 만들어서 다시 만나고 싶었던 나.그게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내가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유혁은 남자다. 남자라고.생각에 빠져 걷던 발이 그 순간 쭉— 미끄러졌다.미끄덩!뒤로 벌러덩 넘어가기 직전,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양팔을 허우적거리며 가까스로 버텼다.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혼자 웃어버렸다.흐흐흐흐흐.미친 사람처럼.눈 쌓인 골목에서 혼자서.이 와중에도 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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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레스토랑에서 마주친 우리
차체가 출렁거리며 튀어 나갔다.한 시간 후-이솔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썩소를 날렸다.동호와 내가 나란히 앉아 있기 때문일 거다."뭐야. 나는 선배랑 단둘이 데이트하는 줄 알았는데."나는 이솔의 눈길을 피하며 자리를 가리켰다."앉아."그렇게 셋이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동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형님, 어떡하죠. 제 여친이 지금 당장 오라는데…"그 말에 이솔이 바로 받았다."어떡하긴, 당장 가야지. 동호 너 여친 무섭잖아."동호는 우리에게 굽신굽신 고개를 숙이고는 사라졌다.그렇게 이솔과 단둘이 남겨졌다.이솔은 눈치 빠르게 화제를 이것저것 바꾸며 대화를 이어갔다.영화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요즘 소속사 분위기.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식사를 마쳤다.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이었다.저 사람… 유혁이 아닌가.나는 잠깐 잘못 본 거라 생각하고 다시 눈을 모았다.그런데 아니었다.레스토랑 입구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 들어오는 사람, 분명히 유혁이었다.그리고 그 옆에— 키가 크고 얼굴이 반반한 남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저녁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저 사람인가.나를 빨리 내쫓은 게 저 남자 때문인가.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왜인지는 몰랐다.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나는 휙 고개를 돌렸다.못 본 척하려 했다.그런데 이솔이 먼저 손을 들었다."어머, 유 탐정님 아니세요?""아… 이솔 님, 여기서 뵙네요."유혁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그리고 나를 봤다.눈이 마주쳤다.나는 굳어지는 표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유혁도 잠깐 굳은 것 같았다.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그랬다.그가 나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나도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옆에 이 잘생긴 분은 누구세요?"이솔이 유혁 옆의 남자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유혁이 남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며 말했다."아, 친구입니다. 인사해.""안녕하십니까. 송희찬이라고 합니다.""와, 무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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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남매라는 말, 그리고 거짓말
"네가 훌륭한 의사가 되어야 아버지께서 속상해하지 않으셔."희찬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이윽고 레스토랑 사장이 나타나 나를 보더니 반갑게 웃으며 이것저것 웃긴 말을 늘어놓았다.희찬이 다시 웃었다.나도 따라 웃었다.그런데 머릿속은 계속 다른 곳에 가 있었다.윤이솔.몸매가 드러나는 세련된 옷차림에 빛나는 얼굴.이런 곳에서 단둘이 저녁을 먹었다면— 두 사람은 꽤 가까운 사이일 것이다.당연히 그렇겠지.차우석 곁에는 항상 저런 여자들이 있다.가슴 한편에 돌덩어리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뭔가가 무겁게 가라앉았다.나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송희우 정신차려.나는 희찬이 앞에서 어두운 표정을 지을 수 없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하지만 아까 나를 바라보던 차우석의 눈빛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잠깐이었지만, 분명히 굳어 있었다.나를 보고 왜 그런 눈빛을 한 걸까.나는 물컵을 들어 천천히 홀짝였다.모르겠다. 모르는 게 낫다.알면 더 힘들어질 테니까."선배, 이왕 나온 김에 술 한잔하고 가요."레스토랑 문을 나서자마자 이솔이 아쉬운 듯 말했다.겨울 바람이 차갑게 불어왔다.이솔은 코트 깃을 여미면서도 눈은 나를 향해 있었다."아냐, 됐어. 가봐야지.""피— 선배 요즘 스케줄 널널한 거 나도 아는데, 이러기예요?""야야, 나도 나름 바빠."그 말에 이솔의 눈이 삐쭉한 세모가 됐다."바쁘다고요?""그래. 들어온 대본들도 읽어봐야 하고, 운동도 하고, 교양도 쌓아야 하고."이솔이 픽— 웃었다."왜 웃어?""선배 요즘 좀 달라진 것 같아서요.""달라지다니?"이솔이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그 눈빛이 꽤 날카로웠다.이 여자, 눈치가 빠른 건지 내가 너무 티가 나는 건지."뭐랄까… 정신이 살짝 딴 데 가 있다고 해야 하나. 혹시 내가 모르는 여자 생긴 거 아니에요?""야! 윤이솔, 그런 거 아냐!""그래요...? 그렇지... 선배한테 여자 생겼다면 내가 모를 리 없는데. 그럼 뭐 걱정되는 일 있어요?""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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