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Author: 중신장지
이해리가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저 혼인신고서를 내려오려고요.”

정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더 캐묻지 않고 의자를 밀어냈다.

훤칠한 키에 다리가 길어서 발끝만 살짝 들어도 쉽게 선반 위의 서류철에 손이 닿았다.

정지안은 혼인신고서를 쓱 훑어보다가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그는 혼인신고서를 이해리에게 건네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군요.”

이해리는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서류를 받아 들며 가볍게 말했다.

“고마워요, 아주버님.”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서 혼인신고서를 받아 들고도 뼛속까지 시린 한기를 느꼈다.

서류에 적힌 내용은 이 결혼이 얼마나 허망한 농담인지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정도원의 그 지독한 사랑 연기 속에는 처음부터 세 사람이 공존했던 것이다.

정지안이 시선을 내렸다.

이해리보다 키가 훨씬 커서 그녀의 동그랗고 예쁜 정수리만 보였다.

그녀는 새하얀 손으로 혼인신고서를 꽉 잡고 있었는데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버렸다.

남자가 태연하게 물었다.

“혼인신고서는 왜 가져가는 거죠?”

“아, 그냥 집에 가져다 두려고요.”

이해리는 서둘러 변명을 둘러댔다.

남자는 따스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열기에 데일 것 같지만 끝내 아무런 제스처가 없었다.

그는 천천히 소매 단추를 고쳐 매고 문밖을 나섰다.

이해리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차가운 수납장에 등을 기댔다.

허벅지 안쪽에는 여전히 지독한 열기가 남아 있어 황급히 치맛자락을 끌어 내리고 혼인신고서를 가방 깊숙이 밀어 넣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는 태연하게 문밖을 나섰다.

정도원은 아직도 뒤 정원에서 몇몇 친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이해리가 담담한 얼굴로 다가와 그의 옆에 섰다.

몇몇 친척이 정도원에게 얘기했다.

“지안이가 며칠 전에 왔으면서 오늘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대.”

정도원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 비행기로 온 거 아니었어요?”

“아니야. 뭐 경매 같은 데 간 모양이야. 나도 얼핏 들었는데 골든 경매장에 갔다나 뭐라나.”

“에이, 아닐걸요. 저도 그날 거기 있었는데 전혀 못 봤어요.”

정도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리는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베일에 싸인 217번 룸의 손님이 떠올랐다. 설마 정지안이 그녀를 위해 최고가를 지른 미스터리 손님일까?

다만 그녀는 금세 그 생각을 짓눌렀다.

둘은 딱 한 번 만났을 뿐 낯선 사람이나 다름없다. 기껏해야 아주버님과 제수라는 빈껍데기만 씌워졌을 뿐인데 정지안이 아무리 대단해도 굳이 그녀를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

정도원도 형이 미리 왔다는 소식을 못 들었으니 수상한 그 손님은 절대 정지안일 리가 없다.

이해리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인사를 나누고 사람들이 흩어질 무렵, 정도원이 그녀를 데리고 정지안에게 다가갔다.

“엄마, 형, 우린 먼저 갈게. 조만간 가족끼리 따로 만나서 식사해요.”

정지안은 의자에 나른하게 걸터앉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요즘 인수 건으로 바쁘니 식사는 천천히 잡고 오히려 너 말이야.”

불현듯 그가 고개를 들고 차가운 시선으로 돌변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엉뚱한 데로 새지 말고.”

형으로서의 경고가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정도원은 어릴 때부터 형에게 눌려 살았던지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내가 뭘... 회사도 잘 운영하고 있어. 못 믿겠으면 요 이틀 재무제표 보여줄게. 마음껏 확인해봐.”

“회사만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

정지안은 고개를 숙이고 차를 천천히 음미했다.

이해리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찰나의 순간, 엉뚱하고도 기이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정도원에게 듣기로 정지안은 늘 밖에 머물지만, 집안의 모든 일을 훤히 꿰뚫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도원이 밖에서 저지른 그 짓거리들도 다 아는 걸까?

“알았어, 형. 해리랑도 잘 지낼게.”

정도원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이해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지안의 시선이 그들의 손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이해리는 이 인간과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피하고 싶어 무심코 손을 털어냈다.

정도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또다시 손을 잡으려 했다.

자신의 행동이 정도원에게 망신을 줄 것을 예상했기에 이해리는 정지안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먼저 차 쪽으로 걸어갔다.

조수석에 앉자마자 정도원은 아까 그 온순하고 공손한 태도를 싹 거두어들이고 또다시 황태자가 된 것마냥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짜증 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또 어른 행세하면서 날 가르치려고 들지! 어릴 때부터 늘 이런 식이야. 해외에서 잘 나가면 뭐? 나도 국내에서 나쁘지 않아! 해성에서 감히 나한테 덤빌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정도원은 습관처럼 담배 한 대 꺼내 물려다가 이해리를 보고는 참았다.

“요 몇 년 동안 내 회사가 잘 나가는 게 다 지안 형 덕분이라고 하는데 웃겨 정말! 왜 뭐든 다 형 공로냐고? 그리고 너도 말이야. 아까 왜 일부러 손 놨어? 형 앞에서 나 꼽 주려고 작정했니?”

정도원의 안색이 점점 굳어지고 말투에도 불만이 역력했다.

이해리는 듣는 내내 미간을 찌푸렸다.

요 몇 년간 정도원이 해성에서 얼마나 제멋대로 행동하고 사람을 얕잡아보는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 배후에 정지안의 세력이 없었다면 정도원은 얼마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형제 우애가 좋을 줄 알았는데 정도원은 겉으로만 형을 존중할 뿐 속으로는 이토록 반항심이 클 줄이야.

다른 건 제쳐 두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위선적으로 손을 잡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해리는 혼인신고서가 든 가방을 껴안고 끝내 한 마디 내던졌다.

“오랜만에 손잡는 거라 적응이 안 됐어.”

차 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하긴, 두 사람의 마지막 스킨쉽이 언제였는지 이해리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지경이었다.

정도원은 미간을 좁히며 담배꽁초를 뚝 부러뜨렸다.

“뭐라고?”

그녀는 남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앞으로 이런 불필요한 스킨십은 좀 줄였으면 좋겠어. 기분 별로니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귀청을 찢는 듯한 급브레이크 소리가 울렸다.

차가 굉음을 내며 인적이 드문 길가에 멈춰 섰다.

이해리는 관성에 밀려 창문에 부딪힐 뻔했다. 그녀는 넋이 나간 채 소리쳤다.

“미쳤어?”

별안간 정도원이 확 덮쳐와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긴 해?”

이해리는 턱이 아프기도 하고 이 상황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그를 밀쳐내려 발버둥 쳤다.

“내 말 틀렸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손잡은 지가 언제인지 넌 기억 나?”

정도원은 마치 금기라도 건드린 듯 눈빛이 어두워졌다.

“너도 설마 제수씨처럼 지안 형한테 홀린 거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이거! 형 앞에서 나랑 선 그으려고 스킨쉽도 거절한 거잖아.”

“정도원, 헛소리 그만해!”

이해리는 분노가 차올라 그를 힘껏 밀쳤다.

“역겨운 짓 저지른 건 너야. 괜히 나한테까지 덧씌우지 마!”

정도원은 지금 만인에게 추앙받는 정지안 때문에 완전히 긁힌 상태였다.

이해리가 발버둥 칠수록 그의 눈빛은 더욱 음침해졌다.

별안간 남자가 고개를 홱 돌리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덮쳤다.

이해리는 두 눈을 부릅뜨더니 고개를 돌려 피하면서 그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

윤유나와 수없이 키스한 저 입술, 생각만 해도 역겨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도원은 고통에 화들짝 놀라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내가 방금 뭐한 거지?’

그는 후회가 밀려와 입술에 피를 머금은 채 이해리를 끌어안으려 했다.

“미안해, 해리야. 정말 미안해.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나 봐... 잘못했어, 자기야.”

이해리는 힘이 다 빠져서 조수석에 기댄 채 그에게 안겨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은 황량함과 혐오감만 차올랐다.

한때 그토록 갈망했던 품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역겨웠다.

“나 놓아줘.”

그녀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도원아, 제발.”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501화

    그날의 일은 나중에야 이해리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윤유나가 민 것 같았다.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정도원이 절묘하게 덮어 버렸다.게다가 현장에는 다른 사람까지 고용해 두었다. 정지안과 이해리를 동시에 노리고, 심여진까지 해치려는 속셈이었다.두 사람은 이제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미친 남녀 한 쌍이나 다름없었다.정지안은 이해리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여전히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이해리는 정지안이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이 가족을 향한 미련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았다.그러나 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정지안도 더는 뒤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저들이 터뜨린 폭로는 아직 완전하지 않아. 새 자료를 좀 더 찾고, 예전에 있던 것까지 전부 정리한 다음 한꺼번에 공개할 거야.”이해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저한테도 자료가 많아요. 부족한 부분은 제가 채워 줄게요.”얼마 지나지 않아 정도원과 윤유나에 관한 온갖 추문이 인터넷에 풀렸다. 그동안 두 사람이 저지른 일들도 네티즌들에게 모조리 알려졌다.순식간에 두 사람은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많은 이들이 두 사람을 은혜도 모르는 인간들이라고 욕했다. 친어머니에게조차 저렇게 잔인한 정도원이 훗날 회사를 손에 넣으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말도 나왔다.그 여파로 정도원 회사의 주가는 다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윤유나는 그 광경을 보고 분을 참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과 맞서 싸우고, 직접 해명문도 올리고 싶었다.하지만 새 계정을 만들기만 하면 곧바로 정지됐다.휴대전화를 노려보던 윤유나는 화가 나 온몸을 떨었다.“이게 무슨 뜻이예요? 왜 제가 집에서 올리는 계정은 전부 정지되는 건데요!”정도원도 그 사실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아마 우리 쪽 IP를 통째로 차단한 것 같아. 장소를 바꾸지 않는 이상 이해리는 계속 네 계정을 막을 수 있어. 쓸데없는 짓은 그만해.”지금 정도원은 자기 회사 문제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회사가 입은 타격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500화

    어머니마저 이미 이렇게 되었다.하지만 그 결정을 내리는 일은 정지안에게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그는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손을 계속 떨고 있었다.이해리는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됐어요. 더 생각하지 말아요. 지안 씨는 옳은 결정을 한 거예요. 이 공지를 낸 뒤부터 우리는 거리낄 게 없어요. 정도원이 다시 우리를 건드린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잘못이에요.”정지안은 이해리의 팔을 붙잡은 채 한동안 자신이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사실 그동안 그의 마음속 깊은 곳을 둘러싸고 있던 가장 큰 감정은 갈등이었다. 어머니에 대해서도, 이해리에 대해서도, 그리고 정도원에 대해서도...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정도원을 그렇게 강하게 미워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어쨌든 그들은 함께 자랐다. 자신이 입양된 아이였다고 해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와 정도원 사이에는 친형제처럼 좋았던 시간도 있었다.“그거 알아? 도원이는 나보다 세 살 어려. 어릴 때부터 가족들은 나에게 도원이를 잘 돌보라고, 진짜 큰형처럼 대하라고 요구했어. 나는 그동안 내가 아주 잘해 왔다고 생각했고.”정도원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정지안은 언제나 부드럽게 그를 이끌었다. 무엇이 좋은 일이고 옳은 일인지 진지하게 가르쳤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말해 주었다.예전의 정도원도 그럭저럭 정지안의 말을 들었다. 다만 그 상황이 언제부터 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내가 추측하기로는, 가족들이 내가 도원이를 잘 이끌게 하려고 나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키웠고, 반대로 정도원 역시 인정이 필요한 아이였다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 같아...”정도원의 마음속에서 비교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고, 거기에 가족들의 여러 행동이 더해지면서 두 사람은 점점 멀어졌다.처음 정도원이 이해리를 쫓아다녔던 것도 명백히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그래서 정지안이 그것을 깨달았을 때 막으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이해리는 정지안을 진심으로 끌어안고 그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그가 과거의 일들을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499화

    “지도교수 에드워드 사이에도 협업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 분 사이에 이익 거래가 있는 건 아닙니까? 그가 국내에 들여온 프로젝트들이 이해리 씨의 협업과 관련이 있습니까?”“에드워드의 현재 입장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에드워드는 외국인인데, 정말 우리나라 프로젝트에 무조건 헌신할 수 있는 겁니까?”그 말들을 들은 이해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정지안의 품 안으로 몸을 움츠린 채 상대하고 싶지 않아 앞으로 걸어가려 했다.그런데 그중 한 기자가 갑자기 무례하게 달려들어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이해리는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뒤로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그 기자들은 마치 날고기 냄새를 맡은 굶주린 늑대처럼 계속 앞으로 달려들었다. 옆에 경호가 있어도 그들의 발걸음을 전혀 막을 수 없었다.그들의 포위에 맞서 정지안은 크게 분노했다. 그는 먼저 이해리를 보호하며 옆에 있던 경호원들에게 기자들을 밀어내라고 했다.이 사람들은 전에 이미 이해리를 다치게 할 뻔했는데, 지금 정지안이 그들을 용납할 리 없었다.정지안이 분노하던 그때, 이해리는 고개를 들다가 갑자기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그 사람들 사이에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숨어 있었다. 그날 자신이 심여진을 찾아갔을 때 본 것 같았다...현장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이해리의 눈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해리가 시선을 집중해 바라보았을 때, 그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그는 그저 차갑게 주변을 훑어본 뒤 몸을 돌려 떠났다.이해리는 입을 열어 상대를 부르려 했지만, 그렇게 대놓고 움직이면 자신에게 문제가 생길까 걱정되었다.돌아간 뒤 그녀는 정지안에게 그 일을 말했다.“저 사람을 분명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날 그곳에 있었어요. 어쩌면 제 사고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요.”그렇게 말하며 이해리는 옆에 있던 펜을 들어 급히 초상화를 그렸다. 그녀는 자신이 이 얼굴을 본 적이 있다고 확신했다.그날 심여진 쪽에서 일이 생겼을 때 이해리는 그를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498화

    역시나 다음 순간,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해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정지안의 품에 안겨 있었다.그는 다시 그녀를 침대 위로 안아 올렸다. 정지안이 갑자기 놀라 깨어난 것이었다.방금 이해리의 움직임을 들었을 때 그는 살짝 눈을 떴다. 그런데 이해리가 침대에서 내려가려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이해리가 위험해질 것이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그는 놀라 침대에서 내려와 달려왔다.“뭘 하려던 거야?”정지안은 이해리를 안고 침대에 눕힌 뒤에야 방금 왜 침대에서 내려가려 했는지 물었다.이해리는 입술을 축이며 민망하게 말했다.“목이 말라서... 물 한 잔 따르러 가려고 했어요. 지안 씨가 자고 있어서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고요.”정지안은 쓴웃음을 지었다.“나는 네가 나를 귀찮게 하는 게 싫지 않아. 내가 병원에서 너를 간호하고 있는 이상, 너의 모든 일은 당연히 내가 해결해야지.”“요즘 지안 씨도 아주 바쁘다는 걸 알아요. 아까 눕자마자 1분도 안 돼서 잠들었잖아요. 많이 피곤했을 거예요.”이해리는 고개를 숙였다. 조심스러운 모습은 마치 잘못한 아이 같았다.하지만 정지안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사고는 네가 원해서 생긴 일이 아니잖아. 가능하다면 너도 이렇게 오래 병원에 누워 있고 싶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그러니 너는 나에게 폐를 끼친 게 아니야.”“알아요. 그래도 지안 씨가 제대로 쉬었으면 좋겠어요...”이해리는 입술을 축였다.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고개를 든 이해리는, 정지안의 진지하고도 집요한 눈빛과 마주쳤다. 그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가득했다. 마치 호수처럼 그녀를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이해리도 자신이 방금 한 행동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게요. 제가 또 넘어지거나 상처가 당기면, 우리에게 더 큰 문제가 된다는 걸 알아요.”“알면 됐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나에게 맡겨. 나를 귀찮게 할까 봐 걱정하지 말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497화

    비비안은 고개를 들어 이해리를 바라보며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는 듯했다.이해리는 인내심 있게 말했다.“방금 온라인 회의를 열었잖아. 너도 옆에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 들었어?”이해리가 묻자 비비안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죄송해요. 선배, 회의하실 때 처음에는 계속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교수님 상태를 생각하니까 너무 걱정돼서, 제가...”그녀가 에드워드를 따라 배우기 시작한 뒤 이렇게 큰일을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니 걱정하고 넋이 나가는 것도 정상이었다.이해리는 비비안을 바라보다가 결국 한숨을 쉬고 비비안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교수님은 지금 이미 다쳐서 입원하셨어. 그러니 네가 아무리 걱정해도 사실은 바뀌지 않아. 하지만 의사 말로는 상태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했어. 그래서 나는 네가 지금 온전히 정신을 차리고 교수님을 도와주길 바라.”“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할 문제가 아주 많아. 국내에도 재촉하는 발주처가 많고. 너는 국내에서 에드워드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야. 네가 이런 상태라면, 그 발주처들이 어떻게 나를 믿겠어?”비비안은 이해리의 말을 듣고 코를 훌쩍였다.“알겠어요. 최대한 상태를 추스를게요.”“좋아. 지금 넌 연구실에 가서 에드워드 교수님이 이전에 남겨 둔 연구 자료를 가져와... 내가 확인해야 해. 그리고 그곳에서 돌발 상황을 만나면 바로 돌아와. 내가 너의 안전을 확보할 사람을 붙일 거지만, 너 자신도 조심해야 해.”에드워드가 한 번 사고를 당한 뒤, 이해리는 더는 도박을 할 수 없었다. 우선 정지안에게 사람을 빼내 비비안의 안전을 도모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국내에 온 사람들이 모두 사고를 당한다면, 이 일은 수습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해리는 상대가 여론의 압박으로 그들을 몰아붙일 가능성도 걱정했다.비비안이 떠난 뒤, 정지안도 고개를 저으며 이제 두 사람이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말을 마친 그는 옆 병상에 누웠다.그는 손을 자신의 이마 위에 얹고 이해리에게 낮게 말했다.“

  •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제496화

    “제가 이 일을 맡으면 지안 씨에게 분명 폐가 될 거라는 건 알아요. 제가 직접 나서기 어려울 때마다 지안 씨가 도와줘야 하니까요.”말을 하는 이해리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그래도 약속할게요. 제가 퇴원하면 지안 씨에게 제대로 갚을게요.”정지안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너를 위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너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제대로 챙기면 돼. 적어도 자기 몸을 가볍게 여기지는 마. 알았지?”정지안이 이렇게 말하자, 이해리는 그가 이미 어느 정도 양보했다는 것을 알았다.정지안은 침대 곁에 서서 몸을 숙이고 이해리를 가볍게 안았다.이해리도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고마워요.”정지안은 고개를 저으며 이해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내가 말했잖아. 우리 사이에는 영원히 고맙다는 말이 필요 없어.”정지안은 이해리를 돕기로 한 뒤, 모든 조치를 아주 대대적으로 진행했다.이해리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정지안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을 뿐 아니라 여러 전문가까지 초빙했다. 그는 이해리가 이번 난관을 넘길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이해리는 에드워드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중에는 자신도 잘 모르는 정보가 많았지만, 이해리는 그래도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았다.모든 전문가와 대화를 나눈 뒤, 이해리는 후배들의 감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먼저 온라인 회의를 열었다.다른 사람들과 영상으로 이야기하는 동안, 이해리는 누군가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 먼저 그 사람을 달랬다.“여러분이 지금 에드워드 교수님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현재 교수님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할게요. 교수님은 연구실에서 연구하려다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고,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세요. 위험한 시기를 넘기고 회복되시면 제가 여러분께 알려 드리겠습니다.”이해리는 그렇게 말한 뒤, 자신에게 이번 난관을 감당할 충분한 힘이 있으니 그들도 걱정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저에게는 자금이 있고, 많은 전문가도 모셨어요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