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차태오에게 서윤이를 부탁하면 안 된다.
그 문장은 스튜디오 안에 오래 남았다.
서윤은 휴대폰을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외삼촌의 목소리는 수화기 너머에서 계속 그녀를 부르고 있었지만, 말들이 제대로 닿지 않았다.
엄마가 남긴 마지막 경고.
그 안에 차태오의 이름이 있었다.
서윤은 천천히 태오를 보았다.
“정말 기억 안 나요?”
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서윤을 더 차갑게 만들었다.
“엄마한테는 마지막 외출이었을지도 모르는 날이에요.”
서윤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런데 차태오 씨한테는 기억도 안 나는 하루였네요.”
태오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 말은 비난이었다.
동시에 사실이었다.
그는 반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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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헌 비서실장.태오는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하지만 서윤은 알 수 있었다.녹취 속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태오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무너졌다.차명환 회장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던 사람.태경그룹 안에서 회장의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차태오가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사람.그런 사람이었다.서윤은 천천히 물었다.“아는 사람이에요?”태오는 고개를 들었다.“윤재헌 비서실장입니다.”“회장님 사람?”“네.”짧은 대답이었다.녹취 파일은 이미 끝나 있었다. 하지만 그 안의 목소리는 아직 스튜디오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차태오 본부장님께는 보고하지 마세요.이 일은 회장님 지시입니다.그러니까.차태오도 배제되어 있었다.그 사실이 서윤을 흔들었다.화를 내고 싶었다. 당신도 결국 태경 사람이잖아, 당신도 모르게 살았던 거잖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동시에 알았다.이번에는 그가 숨긴 것이 아니었다.그 역시 누군가의 말 속에서 지워져 있었다.“그럼 당신은 정말 몰랐던 거예요?”서윤이 물었다.태오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그는 한참 동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늘 무언가를 지시하고, 결재하고, 통제하던 손이었다.그 손이 지금은 아무것도 쥐지 못한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몰랐습니다.”그가 말했다.“하지만 모르게 살았습니다.”서윤은 입술
“강유라 이사 권한으로 잠겨 있습니다.”비서의 목소리가 끊긴 뒤에도, 스튜디오 안에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서윤은 태오를 바라보았다.강유라.계약 결혼 의혹을 흔들던 사람. 회의실에서 서윤의 사생활을 리스크라고 말하던 사람. 그리고 이제, 엄마의 마지막 면담 녹취 파일을 쥐고 있는 사람.“강유라 씨가 왜 엄마 녹취를 가지고 있어요?”태오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당시 재단 실무 담당자였다고 했습니다.”“그럼 알고 있었겠네요.”서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우리 엄마가 뭘 부탁했는지.”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서윤은 휴대폰을 들었다.“제가 할게요.”태오가 멈칫했다.“서윤 씨.”“이번에도 차태오 씨가 먼저 말하면, 저는 또 뒤에 서게 돼요.”그 말에 태오는 입술을 다물었다.서윤은 태오가 보여 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세 번 울리고, 강유라가 받았다.“이 시간에 의외네요.”여전히 매끄러운 목소리였다.서윤은 바로 말했다.“녹취 파일 열어 주세요.”수화기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곧 강유라가 웃었다.“벌써 거기까지 찾았어요?”“열어 주세요.”“한서윤 씨는 늘 참 급하네요. 확인하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그건 제가 판단합니다.”&ld
이미 결정된 문제입니다.서윤은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화면 속 글자는 검은색이었다. 너무 평범한 문서 양식, 너무 건조한 문장. 그런데 그 한 줄이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바꾸고 있었다.엄마는 막으려 했다.서윤이 계약에 묶이는 것을.차태오에게 찾아가서, 직접 부탁했다.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다.이미 결정된 문제입니다.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당신이.”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당신이 그렇게 말했어요?”태오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그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무너진 사람은 오히려 그렇게 조용해지는 걸까. 서윤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기억나지 않습니다.”태오가 말했다.서윤은 웃었다.소리는 나지 않았다.“또 기억나지 않는다고요.”“서윤 씨.”“엄마한테는 마지막 부탁이었을지도 몰라요.”서윤의 목소리가 낮게 흔들렸다.“딸을 계약에 묶지 말아 달라는, 마지막 부탁.”태오의 손이 휴대폰을 움켜쥐었다.“그런데 당신은 그걸 기억도 못 해요?”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그 침묵이 서윤을 더 아프게 했다.변명이라도 했으면 좋았을까.아니라고, 조작이라고, 자신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화라도 냈으면 좋았을까.하지만 태오는 그러지 않았다.그는 그 문장을 부정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그게 더 끔찍했다.서윤은 한 걸음 물러났다.“나가 주세요.”태오의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차태오에게 서윤이를 부탁하면 안 된다.그 문장은 스튜디오 안에 오래 남았다.서윤은 휴대폰을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외삼촌의 목소리는 수화기 너머에서 계속 그녀를 부르고 있었지만, 말들이 제대로 닿지 않았다.엄마가 남긴 마지막 경고.그 안에 차태오의 이름이 있었다.서윤은 천천히 태오를 보았다.“정말 기억 안 나요?”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그 침묵이 서윤을 더 차갑게 만들었다.“엄마한테는 마지막 외출이었을지도 모르는 날이에요.”서윤의 목소리는 낮았다.“그런데 차태오 씨한테는 기억도 안 나는 하루였네요.”태오의 시선이 흔들렸다.그 말은 비난이었다.동시에 사실이었다.그는 반박하지 못했다.“날짜를 알려 주십시오.”태오가 말했다.서윤은 외삼촌에게 물었다.“삼촌, 그 날짜 정확히 언제예요?”수화기 너머에서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외삼촌은 날짜를 불렀다.서윤은 그 날짜를 반복했다.태오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오래된 일정표, 회사 서버, 비서실 기록.그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자신을 변명할 자료가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죄를 확인할 자료를.서윤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예전의 차태오라면 먼저 부정했을 것이다.확인할 필요 없다고, 자신은 모른다고, 그럴 리 없다고.하지만 지금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그래서 더 잔인했다.정말 모르는 것처럼 보였으니까.곧 태오의 화면에
“당신, 우리 엄마 만난 적 있어요?” 서윤의 질문이 스튜디오 안에 떨어졌다. 태오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유리문 밖의 빗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조금 전까지 골목 끝에서 웅성거리던 기자들의 목소리도, 멀리 지나가는 차 소리도 모두 흐려졌다. 서윤은 태오만 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는 모른다고 했다. 태경메디컬재단도, 엄마의 병원비도, 수첩도 전부 처음 듣는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의 수첩 안에 그의 이름이 있었다. 차태오. 그 세 글자가 갑자기 둘 사이에 놓였다. “없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대답은 너무 빨랐다. 그래서 더 믿기 어려웠다. 서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생각도 안 해 보고 대답하네요.” “기억을 더듬을 일이 아닙니다.” 태오의 목소리는 낮았다. “만난 적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한은요.” “그럼 왜 엄마 수첩에 당신 이름이 있어요?” 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은 숨기는 사람의 침묵이라기보다, 답을 찾지 못한 사람의 침묵에 가까웠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재킷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멈췄다. 휴대폰을 꺼내려던 손이었다. 기록을 확인하려던 것일까. 일정을 찾으려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조차 믿지 못해서, 과거의 증거라도 뒤지고 싶었던 것일까. 서윤은 그 작은 동작을 놓치지 않았다. “정말 몰라요?” 태오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처음으로 그의 눈에 억울함 같은 것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그 감정을 내세우지 않았다. “모릅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알아보겠습니다.” “그 말도 이제 너무 많이 들었어요.” 서윤은 외삼촌에게 다시 말했다. “삼촌, 수첩에 정확히 뭐라고 적혀 있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서윤은 숨을 고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엄마가 남긴 수첩. 엄마가 직접 적은 이름. 그리고 그 이름이 차태오라는 사실. 모든 것이 그녀를 다시 과거로
한미정 일은 건드리지 마라.태오의 휴대폰 화면에 뜬 문장은 짧았다.하지만 그 한 줄이 스튜디오 안의 공기를 완전히 바꾸었다.서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창밖에서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유리문 아래로 흘러내린 물방울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날카롭게 번졌다.한미정.엄마의 이름이었다.차명환이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단순히 병원비 영수증에 적힌 이름으로 아는 것이 아니었다. 건드리지 말라고 할 만큼,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다.서윤은 천천히 태오를 보았다.“엄마 일, 정말 몰랐어요?”태오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그 짧은 침묵이 서윤에게는 길었다.“차태오 씨.”“몰랐습니다.”태오가 낮게 말했다.“적어도 지금 외삼촌이 말한 내용은 처음 듣습니다.”“그럼 태경메디컬재단은요?”태오의 시선이 잠시 내려갔다.그 이름은 그에게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태경 계열 공익재단입니다. 의료 지원 사업, 연구 후원, 병원 협력 사업을 맡고 있습니다.”“그런 재단이 왜 엄마 통장에 나와요?”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서윤은 작게 웃었다.웃음이라기보다, 숨이 새어 나간 소리에 가까웠다.“또 모르겠다는 말이네요.”“서윤 씨.”“괜찮아요.”서윤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이제 모른다는 말에도 익숙해지고 있어요.”그 말에 태오의 입술이 굳었다.그는 변명하지 않았다.서윤은 다시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이어지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빗소리만 남았다. 태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윤도 그를 보지 않았다.네 번째 신호음이 끝나기 전, 외삼촌이 전화를 받았다.“서윤아.”“삼촌, 그 통장 지금 어디 있어요?”“내가 가지고 있다.”“제가 갈게요.”“안 된다. 기자들이 너 따라붙었을 거야.”서윤은 유리문 밖을 보았다.기자들은 조금 물러났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골목 끝마다 우산 아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녀가 움직이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처럼.“그래도 가야 해요.”“서윤아.”외삼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