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기타 / 장순혁 중 º 단편 / Forgotten sons 10 [完]

Share

Forgotten sons 10 [完]

Author: 장순혁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5 11:04:54

“이곳입니다.”

교주의 잡무를 도와주는 사제가 알려줬다.

“오직 교주님만 신께서 대화를 허락해주시죠.

이곳의 소리는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습니다.

마음 놓고 신께 말씀드리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불러 주세요.”

축제가 끝난 후 데이지는 교주의 건물로 향했다.

입구에서 데이지를 기다리던 사제가 데이지에게 인사했다.

건물의 이곳저곳을 알려주다가

마지막으로 교주의 방을 안내해줬다.

사제가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던 데이지가

교주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온통 하얀 방 한가운데에

나무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한 손에 릴리를 위해 적은 일기를 든 채로,

데이지는 의자에 앉았다.

얼른 신께 말을 전하고, 말씀을 듣고 릴리를 보고 싶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를 말해주고 싶었다.

데이지는 입을 열었다.

“저기.. 신님?”

“...”

“안녕하세요? 저는 데이지에요.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

“...”

데이지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온통 하얀색뿐이었다.

“혹시 주무세요? 다음에 다시 올까요?”

기다리던 데이지가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데이지.”

데이지는 당황하며 말했다.

“네? 음, 네. 어.. 안녕하세요..?”

“하하. 그래요. 안녕해요.”

데이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 신이시여? 왜 제게 존댓말을.. 하시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잠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데이지를 비웃는 소리가 아닌,

아이를 보는 어른의 웃음 같았다.

“당연히 존댓말을 해야죠.”

데이지도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게 편하시다면.. 네..”

“데이지,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네.. 노력은 해볼게요..”

데이지가 일기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데이지, 저는 새미 캘린 교수에요.”

“네?”

“이름이 새미, 성이 캘린, 교수는 직업이에요.

편하게 새미라고 부르시면 돼요.”

‘성이 뭐지? 교수는 또 뭐고?’

데이지는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말했다.

“어.. 신님은 신이 직업 아니신가요?”

“저는 신이 아니에요.”

“네?”

“아니, 데이지가 생각하시는 신이라면 맞지만,

동시에 신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어.. 죄송해요. 제가 똑똑하지가 않아서.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미국 국방성 소속입니다. 여러분 섬의 관리자죠.”

‘섬이 뭐지? 미국은 또 뭐고, 국방성은 또 뭐야?’

데이지의 복잡한 머릿속을 뒤로 한 채

자칭 새미 캘린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쉽게 말하자면 실험 중이에요. 당신들은 실험체고요.

당신들은 단일 성으로 사회가 유지되는지에 대한

여성 버전 실험체입니다. 당신들이 이안이라고 부르는

남성 버전 실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곳에서는

당신들이 이안이죠.”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모르겠는 말들을 들으며

데이지는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한 가지 의문만을 물었다.

“저기.. 신님?”

“새미라고 부르세요. 편하게.”

“어.. 그게 편하시다면.. 네. 어.. 새미?”

“네.”

“이안이 무슨 뜻이에요?”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미국, 제 나라의 말입니다.”

데이지가 본 이안은 운이랑은 동떨어진 채 살았는데,

심지어 사람도 아닌데,

이안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

데이지는 혼란스러웠다.

그때 데이지의 앞 벽이 지지직거리다 밝게 켜졌다.

섬 전체를 보여주는 큰 모습과

섬 구석구석을 비추는 모습들이 보였다.

섬 안의 집부터 거리, 모든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게 뭐예요?”

데이지가 그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다가 간신히 물었다.

“이 방에 오시면 이 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저와 대화도 나누실 수 있고요. 언제든지 오세요.

데이지, 당신은 이곳에서 섬을 살펴 보다

다음 선택받은 사제들과

다음 교주를 고르시게 될 거에요.”

데이지는 머릿속에 맴도는 수많은 질문들 중

하나만을 내뱉을 수 있었다.

“왜 저죠?”

“데이지, 당신은 릴리를 사랑하니까요.”

‘릴리?’

릴리의 이름을 듣자 반사적으로 데이지는 말했다.

“릴리가 왜요?”

“당신은 릴리를 사랑하고, 릴리는 당신을 사랑하죠.”

“물론 저는 릴리를 사랑해요!

근데 그건 언제까지나 친구로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당신과 릴리를 봐왔어요.

친구로서 사랑한다?

택도 없는 소리란 걸 당신도 알고 있어요.

릴리를 생각하면 안고 싶고,

릴리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질투하고,

릴리가 당신만을 바라보고 말을 걸었으면 하잖아요.

당신이 릴리의 자는 모습을 보며 입맞추는 것도 봤다고요.”

데이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자기조차 단정 짓지 못했던 자기의 마음을

다른 이의 말로 적나라하게 듣자

자기 안의 릴리에 대한 사랑이

어느샌가부터 삐뚤어졌다는 걸

비로소 마주하게 된 까닭이었다.

새미 캘린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다행스럽게도 릴리도 당신을 사랑한답니다.

당신이 릴리를 사랑하는 것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데이지가 신경질적으로 소리 높여 말했다.

“그래서요?”

“간단해요. 제 말을 따르지 않으면 릴리는 죽습니다.

이 섬의 비밀을 남에게 말해도 릴리는 죽습니다.”

데이지는 당황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새미 캘린 교수는 데이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당신은 이 방에서 다음 교주와

다음 선택받은 사제들을 찾으면 돼요.

당신이 릴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다른 이를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요.

그 사람이 당신의 자리를 이을 겁니다.

다음 교주가 선정될 때까지 잘 부탁해요.”

데이지는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다가 방을 나왔다.

방문이 저절로 닫히는 소리가 데이지의 뒤편에서 들렸다.

데이지는 본인의 집무실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는,

방 한구석의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 쓰러지듯 앉았다.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데이지가 힘없이 말했다.

교주의 잡무를 담당하는 사제가 문밖에서 말했다.

“릴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여보낼까요?”

데이지는 그제야 일기를 쥔 손을 쳐다보았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손마디까지 하얗게 변해있었다.

데이지는 잠시 갈등하다가,

손에 든 일기를 벽난로 속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들어오라고 하세요.”

“데이지!”라고 부르는 릴리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데이지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

<부록 - 일지>

안녕하세요. 제이미 캘린 박사입니다.

미국 국방성 소속입니다.

오늘은 ‘이안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단일 성 개체들로만 이루어진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가

실험의 주된 목표입니다.

한 섬에는 여성들을, 다른 섬에는 남성들을

대표성별로 삼았습니다.

저희는 최소한의 도움 이외에는

일체의 개입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장순혁 중 º 단편   등대 5

    - 생선 창고 I남자를 따라 도착한 곳은 부둣가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한 생선 창고.남자는 창고의 자물쇠를 열고 들어간다.나도 남자를 따라 들어간다.창고 안에 들어서면,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한쪽 벽은 상자째 쌓여있는 생선.그 반대 벽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들.남자가 문을 다시 닫는다.남자 : “이쪽으로.”남자는 책상으로 가서 앉는다.나는 책상 앞 의자에, 남자를 마주 보고 앉는다.남자는 책상 위의 공책을 들어 한참을 이리저리 넘겨본다.그러다 마침내 찾은 듯, 책상에 공책을 펼쳐 내려놓는다.내가 볼 수 있게 공책을 돌려준다.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남자.담배와 라이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하얀 연기를 내뱉으며 동시에 말한다.남자 : “이연우.. 이현우 동생, 맞지?”나는 공책을 보며 대강 답한다.나 : “예.”공책에 적혀있는 건 내 신상정보다.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학력, 그리고 가족관계서.아버지, 사망.어머니, 사망....이상하다.가족관계서에 나는 외동으로 적혀있다.형이 적혀있지 않다.나 : “이거..”내 말을 끊고 남자는 묻는다.남자 :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나 : “..여기로 오라던데요?”남자 : “누가?”나 : “전화 걸어보니까요.”나는 품속에서 너절한 서류를 꺼내 남자에게 건네준다.남자는 서류를 읽는다.난 책상 위의 담배를 집고 남자를 따라 담배를 피운다.남자는 그런 나를 흘깃, 바라봤다가 다시 서류에 눈을 돌린다.곧이어 서류를 내려놓고는남자 : “이상하네.”나 : “이상하긴 하지.그나저나 너는 언제 봤다고 반말이냐?”뼛속까지 스며든 내 반골 기질.남자 : “꼬우면 너도 반말하고.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나 : “그렇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왜 내가 외동으로 적혀 있느냐야, 이 가족관계서에.”남자는 나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남자 : “형한테 아무 얘기도 못 들었냐?”나 : “그렇게 친하진 않았거든.”

  • 장순혁 중 º 단편   등대 4

    - 오천항오천항은 생각보다 한산했다.하긴, 생선잡이 배들은 모두 새벽이 되자마자 나갈 테니까.오후 한시인 지금은생선을 잡으러 나갈 시간도생선을 잡으러 나갔던 배가 돌아올 시간도 아닌 것은 분명했다.부둣가에는 나가지 못한 배들, 쌓인 생선들을 손질 중인 아줌마들, 손수레에 얼음을 옮기며 이곳저곳 바쁘게 다니는 남자뿐이었다.그 와중에 홀로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오천항 끄트머리에멀거니 선 나.이곳저곳 고개를 돌려 둘러본다.그러나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등대지기 면접을 보러온 것 같은사람들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나 (생각) : ‘언제 온다는 거야?’그때 얼음을 옮기던 남자가 내 앞에서 넘어진다.수레에서 얼음이 요란스럽게 쏟아진다.남자는 중얼거린다.남자 : “에이씨, 진짜..”남자는 바닥의 얼음들을하나하나 줍기 시작하고,그 모습을 보던 나는남자를 도와 얼음을 수레에 담아준다.남자가 가늘게 웃으며 말한다.남자 : “아이고, 감사합니다.”나 : “별말씀을요.”다시 한번 허리를 굽히고 얼음을 집으려 할 때 남자가 내게 조용히 묻는다.남자 : “이름.”나 : “..예?”남자가 나를 보지도 않은 채얼음을 모으며 다시 묻는다.남자 : “이름.”나는 그런 남자를 바라본다.겉으로 보기에는 쓰러진 얼음을 요란스레 다시 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나는 이내 대답한다.나 : “..이연우요.”남자는 내 이름을 듣고잠시 동작을 멈춘다.이내 주변을 살펴보던 남자.수레에 도로 담은 얼음을 옆 바닷물에 쏟아버린다.바닥의 얼음들도 발로 쓸어 넣는다.나도 손에 쥐고 있던 얼음들을남자를 따라 바다에 집어 던진다.남자는 다시 손수레의 손잡이를 잡고, 남자 : “따라와.”남자는 조용히 말하고는, 뛰어가듯이 걷는다.나도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남자의 장화 모양을 따라오천항 바닥에 발자국들이 새겨지고그 발자국들을나는 말없이 바라보며남자를 따라 간다.

  • 장순혁 중 º 단편   등대 3

    - 다시, 장례식엄마가 죽었다.엄마의 장례식장은 아버지의 장례식장과 달랐다.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나는 혼자 앉아 엄마의 사진을 바라봤다.울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형과 다르니까.기도하고 싶지도 않았다.나는 정말 형과 다르니까.다르고 싶었던 건지, 달라지고 싶었던 건지.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희미하게는 같았다.손님도, 통곡도 없이 엄마의 장례식은 끝이 났다.나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집 문 앞에는 세금고지서, 우편, 광고지 등등이 쌓여있었다.그것들은 모조리 집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거실 바닥에 대충 앉아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흰 봉투가 하나 끼워져 있음을 알았다.고개를 갸웃하며, 내용물을 꺼냈다.찢어진 것을 테이프로 하나하나, 너덜너덜하게 감은 종이였다.펼쳐보았다.그 언젠가, 형이 내게 준 서류였다.내가 찢어버렸던, 등대지기를 구한다는 서류.내용은 같았다.[등대지기 모집.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모집 인원 – 00명.월 급여 700만원.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그러나 달랐던 것은 맨 밑 여백에 적힌 두 문장의 글.형의 글씨체로 적힌,+82 050 – 3967등대로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뚜루루뚜루루달칵남자 목소리 : “나흘 후, 십삼 시, 서해 오천항.”달칵뚜뚜뚜전화가 끊겼다.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다가, 불현듯 일어나 낡은 가방에 옷가지들을 쑤셔 넣었다.그러다, 가방을 팽개치고 지갑만 챙겨 집 밖으로 나섰다.어차피

  • 장순혁 중 º 단편   등대 2

    - 병이 짙어지다 II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병실에 갔더니 형이 어떤 서류를 읽고 있었다. 내가 옆자리에 털썩, 하고 앉으면 형은 말없이 서류를 접어 품에 넣었다. 나는 굳이 묻지 않았고, 형도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그 날도 그렇게 지나가는 듯했다. 내가 병실을 나갈 때, 형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놀랐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며 형을 돌아보니 형은 품속의 서류를 내게 건넸다. 그러고는 나보다 먼저 병실을 나갔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서류를 펼쳐봤다. [등대지기 모집. 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 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 모집 인원 – 00명. 월 급여 700만원. 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 무슨 뜻이지? 나보고 하라는 걸까? 엄마는 자기가 돌볼 테니? 기분이 나빴다. 언제까지 아빠 행세를 할 건지. 나는 서류를 찢어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버렸다.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병실 밖으로 나섰다. 병실 밖, 벽에 형이 기대고 서 있었다. 내게 뭔가를 말하려는 듯싶었지만, 나는 무시하고 발길을 돌렸다. 형은 구태여 나를 잡지 않았다, 아니, 잡지 못했던 걸까. 뭐,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형을 본 적이 없다. 형은 소리도 없이 존재를 감췄다. 엄마의 옆에는 그때부터 나만 있었다, 나만. 형도 없이. 나만. 엄마와 함께 있었지만 고독했다. 외로웠고, 괴로웠다.

  • 장순혁 중 º 단편   등대 1

    - 등대 (prologue)[등대지기 모집.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모집 인원 – 00명.월 급여 700만원.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 아버지의 죽음단순히 말하자면 안타까운 사고였다.내 아버지의 죽음은.여덟 살과 아홉 살 사이, 그 언저리에서 내가 잰걸음을 놀릴 무렵에 일어난, 사고.초등학교 교실에서 방과 후에 남아 받아쓰기를 연습하던 나에게담임 선생님께서 다가와근처 가까웠던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내 손을 잡아 이끌고 향하신.그 병원에서 아버지는 누워계셨다.아니, 쓰러져계셨다.아니, 아니다.당시의 나는 그 둘의 차이를 알지 못했으니누워계신 동시에 쓰러져계셨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아버지.나의 아버지.언제나 따스한 웃음을 지으시며나와 눈을 마주치시고는내게 오늘 학교는 어땠냐고,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느냐고,내게 물으시던나의 아버지.빨간 피로 범벅이 되어 웃음을 짓지도 않으시고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시던 아버지.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삐빅거리는 기계음만 들려주신 아버지.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같이 보곤 했던 뉴스에, 아버지가 아침마다 펼쳐보시던 신문에 나오곤 했던,그래, 뉴스나 신문에서 매일 같이 나왔던음주 운전자가 차로 치어버린 불쌍한 피해자.그런 피해자가 되어버리신 아버지.아버지는 그 수없이 많은 기삿거리 중 하나였다.아마 그 밤,다른 이들의 저녁 식사 시간의자그마한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리신나의 아버지.남겨진 가족들은 그 피해자의 가족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다시 말해 특

  • 장순혁 중 º 단편   아픔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아프다고로 나는 살아있다아픔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아프고 나서야 우리는 해당 부위의 존재를 명명백백하게 느낀다아프기 전에, 우리는 그 뼈를, 근육을, 피부를 느낄 수 있었을까?사실상 아픔이란 그들의 비명일지도 모른다자기도 이곳에 존재한다고,자기도 이곳에서 숨 쉬며 살아 있다고,자기도, 자기도 살아 있다고내 몸이지만 역겨움이 올라온다동족혐오일까?자기와 비슷한 걸 보면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자기 자체를 싫어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되려 더 나을 거다나는 나 자신을 싫어한다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뽑는다면 압도적으로 내가 뽑힐 거다내가 나를 만난다면 난 죽기 직전까지 주먹을 날리고,마지막 한방을 날려 죽여버릴 것이다그러나 나는 고통을 두려워한다그렇기에 죽지 못했다죽음과 고통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밧줄이 목을 조이는 그 잠깐의 고통조차 나는 참아내지 못했다아픈 건 싫으나 죽고는 싶다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불이 붙기 위해서는 장작이 바짝 마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갓 잘린 나무는 수분기가 많아 불을 붙여도 불이 붙지 않고 연기만 매캐하게 풍겨나온다나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그러나 언제 마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나조차도그렇기에 충분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그러니 지금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그러나 이런 이성적인 판단은 지금껏 지겹게 내리지 않았는가고작 그런 판단들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지금의 나다복잡하게 단순한, 지금의 나때로는 나를 위해 나를 배재할 수 있어야 한다끊긴 밧줄이 눈에 들어온다인터넷으로 주문한 밧줄은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았다현대 사회에게는 필수인 인터넷의 문제다모든 걸 쉽게 살 수 있는 대신,모든 것의 가치는 옅어진다그렇다고 해도, 직접 만지고 무게를 가늠해봤자 그 본질을 알아챌 수 있지는 못하니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모든 것이 그렇다본질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그러나 그 본질을 알아볼 수

  • 장순혁 중 º 단편   슬픔과 고통을 팔다 1

    #1"안녕하세요.당신의 감정 중 하나를 사고 싶은데..무엇을 파시겠습니까?"이 미친놈은 또 뭐야.사채업자한테 쥐어터지다 도망쳐간신히 숨을 곳을 찾다가,인적 드문 공원에 있었는데여기도 미친놈이 있는 곳이었나 보다."아저씨. 저도 돈 없으니까, 그냥 가세요."남자는 여의 팔에 감긴 붕대와 얼굴의 상처,살갗이 드러난 부위마다 빠짐없이 어린 멍 자국을 본다.여는 괜히 옷 끝단을 잡아당겨 몸을 가리려한다.뭐, 어차피 너덜거리다 찢어져버릴 낡은 옷이지만,그냥, 괜한 관심은 꺼려지니까.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여의 옆에

  • 장순혁 중 º 단편   행성 1

    "씨X, 이게 어떻게 된 거지?분명히 떠났잖아, 떠났다고.저 망할 놈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왜 씨X 우리지?이미 늦었었나?최선이었다고, 제일 빠른 거였어.개X발놈의 우주 담당자 새끼들.걔네 눈은 다 X박았나?지구만한 놈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걸어떻게 못 볼 수가 있지?씨X놈의 신이시여. 이게 말이나 되나요, 씨X.결국 우-."금이 간 녹음기의 유일한 내용이었다.녹음기를 대충 뒷주머니에 찔러 놓고다른 것들 중 쓸만한 것들이 있나 뒤져보았다.통조림? 괜찮지. 음식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칼? 이미 있잖아. 패

  • 장순혁 중 º 단편   현실 같은 꿈

    퇴근 후 집에 돌아왔다.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는 냄새와 아빠를 부르며 현관으로 달려오는 사랑스러운 내 딸이 나를 반긴다. 이윽고 아내도 내게 와 오늘도 고생했다고 안아준다. 평범하지만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 이게 나의 평범한 현실이었다. 아름답고, 달콤한 현실. 나는 밥을 먹고, 씻고,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와 잠시 놀아준 뒤, 내일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침대에 누워 그렇게 얼마나 잠에 들었을까? 어렴풋이 잠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며 깨어난다. 왠지 모르게 두 눈이 따가울 정도로 시리다. 잠시 눈을 감고, 시린 눈이

  • 장순혁 중 º 단편   검정 속의 사내

    #1한 사내가 새까만 검정 속을 걷고 있다.사내의 앞모습을 비추다가 사내의 시선으로 돌려지는 카메라.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사내가 걸어가는 길의 옆에.점점 가까워진다.자그맣게 목소리가 들린다.사내가 걸어갈수록 점점 더 가까워진다.어린 아기 엄마의 목소리다.아기 엄마는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래고 있다.점점 아기와 엄마가 선명해지며 사내에게 가까워진다.사내가 아기를 안고 있는 아기 엄마의 곁을 지나갈 때,아기 엄마는 아기에게 말한다.아기 엄마 (힘들지만 사랑에 가득 찬 목소리로)“사랑해, 우리 아가. 언제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