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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나의 조각배: Chapter 21 - Chapter 23

23 Chapters

21화

주말의 공원은 느긋했다. 햇볕은 제법 따가웠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잔디 위를 걷고 있었다. 아이들은 비눗방울을 쫓아 뛰어다녔고, 부모들은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봤다. 어디선가 커피 향이 바람을 타고 흘러왔고, 나무 그늘 아래에는 돗자리를 펴고 앉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이에 서나가 있었다. 벤치에 앉아, 등을 곧게 세운 채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시선은 사람들을 보며 쓸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때였다. 눈앞으로 불쑥 무언가가 들어왔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 안에는 얼음이 가득 들어간 아이스커피였다. “…!” 놀라서 고개를 뒤로 젖힌 서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에는 도윤이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커피 한 잔, 다른 손에는 이미 몇 모금 마신 같은 커피를 들고 있었다. 햇빛을 등지고 서 있어서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지만, 입꼬리는 분명히 올라가 있었다. “깜짝 놀랐지?” 서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봤다. “…진짜 놀랐거든요?” “표정은 별로 안 놀랐는데.” “속으로 놀랐어요.” “그건 인정 못 하지.” 도윤은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건넸다. 서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받아들었다. 손에 닿는 차가운 온도가 현실감을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아이들 웃음소리, 멀리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겹쳐졌다. 햇빛은 여전히 강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산들바람에 온도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을 바라봤다. 서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얼음이 컵 안에서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묘하게 크게 들렸다. 정적을 깬 건 서나였다. “그래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왜 보자고 했어요?” 도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손에 들린 컵을 내려다보며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걸 잠깐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아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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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병원 복도는 점심 시간이 지나며 다시 분주해지고 있었다. 서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졌다. 처음엔 조용히 지나갈 줄 알았지만, 그녀를 오래 봐온 동료들이 하나 둘 다가왔다.“한 간호사.”고개를 들자,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였다.“결혼 축하해.”말은 가볍게 건넨 것 같았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아, 감사합니다.”짧게 대답했지만, 그 뒤로 몇 명이 더 다가왔다.“와, 언제 말하려고 했어요?”“진짜 티 하나도 안 냈다니까. 남자친구 있는 것도 몰랐어.”“요즘 자주 핸드폰으로 연락하던 사람이 남자친구였구나?!”조금은 소란스러운 스테이션에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한 간호사 진짜야? 결혼 때문에 나가는 거야?”“와… 축하해야 하는 거지 이거?”“근데 너무 아쉽다 진짜… 너 없으면 우리 어떡해.”“맞아요. 한 간호사 있으면 진짜 든든했는데.”“환자들도 엄청 찾을 텐데…”서나는 멋쩍게 웃었다. 축하와 아쉬움이 뒤섞인 말들이 연달아 쏟아졌고, 그녀는 그 사이에서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말은 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묘한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떠나는 기분. 하지만 퇴사를 되돌릴 수도 이 시간들을 멈출 수는 없었다.오후가 지나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서나는 퇴근 준비를 하며 개인 물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점점 소리가 커지더니 결국 간호 스테이션까지 밀려왔다.“누구야? 연예인이야?”“아니, 누굴 찾는 것 같은데…”그 순간, 모든 시선이 한 방향으로 쏠렸다. 그 시선에 서나도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멈췄다.스테이션을 사이로 서현이 서 있었다.말끔한 수트 차림,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 그리고 그 옆에는 능숙하게 움직이는 김실장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고급 베이커리 케이크 박스와 커피가 들려 있었다.“안녕하세요. 한서나 간호사 약혼자 주서현입니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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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세성그룹 본사.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통유리 빌딩은 반사된 태양광마저 서슬 퍼렇게 튕겨내고 있었다. 서나가 평생을 몸담았던, 비명과 신음 속에서도 기어코 사람 체온이 묻어나던 병원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소독약 냄새 대신 정제된 방향제 향이, 환자들의 눈물 대신 숫자가 적힌 서류 뭉치가 공기를 채운 곳. 자로 잰 듯 반듯한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자로 잰 듯한 보폭으로 서나를 스쳐 지나갔다. 서나는 목에 걸린 사원증을 만지작거렸다. 사원증에 박힌 ‘인턴 한서나’라는 글자가 유독 낯설고 무거웠다. 사실 서나는 남들에게 뒤처지는 스펙이 아니었다. 전공은 아니였지만 국내 유수의 명문대를 졸업했고, 까다로운 서류전형, 서슬퍼런 면접까지 제 실력으로 당당히 통과했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영리해 어딜 가든 탐낼 인재였지만, 대기업의 ‘핵심 패션 프로젝트’에 고작 계약직 인턴이 첫날부터 합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 배경에는 팀장인 서현의 입김이 있었다. 가까이에서 복수를 진행하고 서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그녀의 똑똑함을 발휘할 자리를 위해 서현이 전례 없는 권한을 행사했고,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단지 약혼자에 빠져 권한 행세를 한 것이라며 소문은 이미 사내 게시판과 메신저를 통해 찌라시처럼 퍼진 상태였다. ‘낙하산 인턴’, ‘팀장의 특혜’. 출근도 하기 전에 서나에게 붙은 꼬리표들이었다. 역시 서현은 이번 생에서 서나가 설계한 복수를 완성할 수 있도록 묵묵히 돕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지만, 사정 모르는 사내 직원들에게 두 사람의 관계는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긴장되십니까?”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서나의 굳은 얼굴을 보며, 옆에 선 김실장이 부드럽게 웃었다. “…조금요.” “다들 잡아먹진 않으니 어깨 피십시오.” “그 말이 전혀 위로가 안 되는데요, 김실장님.” 서나의 뼈 있는 대답에 김실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띵 하는 신호음과 함께 회의실 문이 열리는 순간, 서나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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