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정루아의 목소리는 한결 차분해졌고, 어조 또한 단호했다.구태윤은 저도 모르게 팔을 단단히 조이며 그녀를 품에 가두었다.기어코 이혼해서, 어떻게든 그를 벗어나겠다는 건가.가슴 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불길이 치밀었다.그녀의 얼굴을 쏘아보던 시선이 이윽고 입술에 닿았다.안정을 찾은 듯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핏기 없는 입술은 평소와 달리 생기를 잃었다.그는 돌연 고개를 숙여 창백한 입술을 삼켰다.정루아의 동공이 문득 커졌다. 손을 뻗어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입맞춤은 점점 더 집요해졌다.입술을 머금고 탐하다가, 그녀가 놀라 숨을 들이켜는 틈을 타서 잽싸게 파고들었다.신경을 마비시킬 듯한 감각 속에서 숨결과 달콤한 온기를 남김없이 빼앗았다.두 사람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를 놓아준 구태윤이 붉고 탐스러운 입술을 내려다보았다.그제야 들끓던 분노가 아주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정루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빨개진 눈시울로 손을 치켜들었다.하지만 따귀를 날리기 전에 손목이 덥석 붙잡혀 아래로 향했다.“나, 너랑 이혼 안 해.”구태윤은 그녀의 옆에 누워 코끝으로 뺨을 다정하게 문질렀다.“기억하지? 우리 평생 같이 살겠다고 약속했던 거.”정루아는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심장이 욱신거렸고, 꽉 막힌 듯 답답한 느낌에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어젯밤에도 제대로 자지 못한 데다 오늘 이런 일까지 겪었으니, 팽팽하던 긴장이 풀리자마자 피로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그녀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구태윤은 고른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먹물처럼 짙은 눈동자에는 애틋하고 깊은 집착이 서려 있었다.그는 눈앞의 여자를 묵묵히 바라보았다.이윽고 침대 옆 협탁을 열어 정교한 붉은 벨벳 상자 하나를 꺼냈다.그리고 뚜껑을 열어 안에서 반지를 집어 들고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맞잡고 약지에 끼워주었다.다름 아닌 결혼반지였다.안쪽에는 서로의 이름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대체 이걸 어떻게 팔 생각을 했을까
“이미 눈치챘던 거 아니야? 나 계속 너 미행하고 있었는데.”구태윤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담담하게 정루아를 응시했다.어차피 무슨 말을 하든 그녀는 믿지 않을 터였다.그렇다면 차라리 미행한 걸로 믿게 두는 편이 나았다.“당신...”정루아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지며 맑은 눈동자에 분노가 스쳤다.하지만 방금 전 자신을 구해준 일이 떠올라 차마 화를 터뜨릴 수는 없었다.결국 울컥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 택시를 불렀다.절대 정수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였다.바로 그 순간, 눈앞으로 쑥 끼어든 손 하나가 그녀의 휴대폰을 낚아챘다.“이리 내놔!”정루아가 매섭게 그를 쏘아보았다.구태윤은 휴대폰을 제 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곧장 조수석 문을 열고 허리를 굽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품에 안긴 정루아가 버둥거렸다.“이것 놓으라고!”찰싹!구태윤이 그녀의 엉덩이를 가볍게 때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정루아, 나 지금 화 많이 참는 중이야. 더 이상 자극하지 마.”기어코 배진욱을 따라 밥을 먹으러 가더니, 결국 이 사달을 냈다.이게 저 여자가 원했던 선택의 결과라니.정루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 미친놈아! 당장 내려놔!”구태윤은 아예 그녀를 어깨 위로 들쳐멨다. 그래야 더는 발버둥 치지 못할 테니까.거실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곧장 2층으로 향한 그는 정루아를 푹신한 침대 위로 내던졌다.매트리스 반동에 정루아의 몸이 꿀렁거렸다.그녀는 곧바로 몸을 뒤집어 일어나 문 쪽을 향해 뛰쳐나가려 했다.하지만 구태윤이 가느다란 발목을 움켜쥐며 아래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몸을 숙여 그녀를 침대 위로 짓눌렀다.“어디 가게? 아직도 그 새끼한테 미련 남았어?”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거대한 체구가 그녀를 완전히 덮쳐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들었다.“이거 놓으라고! 내가 어디를 가든 당신이 무슨 상관인데? 당신이랑 같은 곳에만 안 있으면 돼!”정루아는 붉어진 눈시울로 계속 버둥거렸다.구태윤의 미간이
두 번의 급습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주차 요원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발악했다.하지만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옴짝달싹 못했다.이연희가 급히 다가왔다.“루아야,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정루아는 여전히 구태윤의 품에 안긴 상태였다.허리를 감싼 팔에 무지막지한 힘이 들어갔고, 절대 놓치지 않을 기세로 꽉 붙들고 있었다.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응, 괜찮아.”이연희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아까는 진짜 숨이 멎는 줄 알았어.”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배진욱을 바라보았다.“진욱 씨, 저 사람 대체 누구예요? 왜 진욱 씨를 죽이려고 한 거죠?”배진욱의 지적이고 수려한 얼굴에 짙은 죄책감이 번졌다.그는 미안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정루아를 바라보았다.“미안, 많이 놀랐지?”정루아가 의아하게 물었다.“무슨 상황이야?”배진욱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그때, 구태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인맥 넓히기 전에 주변의 지저분한 관계부터 정리하는 게 어때요? 내 아내가 또 한 번 위험에 휘말린다면, 그땐 당신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그는 서늘한 경고를 남기고 정루아를 부축해서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경직되었던 정루아의 몸에 조금씩 감각이 돌아왔다.이내 구태윤을 밀쳐내려 손을 뻗었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도리어 허리를 부러뜨릴 듯 단단히 감싸 쥐었다.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싸늘함이 묻어났다.“조금 전 일을 겪고도 아직 덜 놀란 모양이지?”창백하게 질린 정루아의 얼굴에 긴장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이거 놔. 내 발로 갈 테니까.”“놓아주면, 순순히 따라오기나 하고?”구태윤은 그녀의 속내를 단박에 간파했다. 이내 조수석 문을 열고 정루아를 밀어 넣었다.그리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허리를 숙여 안전벨트를 매주었다.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탓에 두 사람의 숨결이 얽혀들었다.정루아는 등줄기를 곧게 세운 채 굳어버렸고, 호흡마저 조심스러워졌다.안전벨트를 채운 구태윤이 막 몸을 일으키려던 참이었다.잔뜩
인수합병이 되는 순간 독립적인 경영권은 완전히 박탈당할 터였다.번듯한 법인에서 구명 그룹의 일개 부서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였다.지강은 어떻게든 거절하고 싶었다.하지만 구명 그룹의 방식은 잔인하리만치 막무가내였다.인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존 투자금 전액 회수는 물론 예정되어 있던 모든 사업을 전면 취소하겠다며 대놓고 으름장을 놓았다.지강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결국 동의하는 것뿐이었다.보이스 랩 인수가 진행되는 동안, 구태윤은 이미 정루아 일행이 있는 레스토랑에 도착해 있었다.정루아의 뒤를 밟으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경호원이 실시간으로 위치를 보고한 덕이었다.그들이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구태윤은 서슬 퍼런 얼굴로 바로 옆방을 잡았다.넓은 룸은 텅 비어 있었고, 방음이 허술한 탓에 말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간간이 섞여드는 환한 그녀의 웃음소리까지도.구태윤은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벽 너머로 들려오는 화기애애한 대화에 가슴속에서 질투심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다른 남자 앞에서는 그렇게 잘만 웃으면서.’설마 과거에 그를 가장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말을 벌써 잊어버린 걸까.허벅지 위에 얹은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점점 흉포하게 일그러졌다....식사 한 끼를 함께하며 이연희는 배진욱이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확실히 파악했다.성격이 모나지 않고 소탈한 데다, 소위 잘 나가는 상류층 특유의 거들먹거리는 고약한 버릇이 전혀 없었다.게다가 가끔 위트 있는 농담까지 툭툭 던지니, 세 사람 사이의 거리는 자연스럽게 좁혀졌다.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얹었다.“이제 친구나 다름없는데, 언제까지 존대하면서 딱딱하게 굴 거예요? 그냥 서로 편하게 이름 부르면 안 돼요?”정루아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아직 말을 놓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배진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연희 씨 말이 맞네요. 저도 마침 거리감이 느껴지던 참이었어요.”이연희
“배 대표님께서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내는 제가 알아서 챙길게요.”구태윤의 날카로운 시선이 배진욱에게 머물자, 분위기가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배진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정루아를 바라보았다.“루아 씨, 어떻게 하실래요?”이연희는 정루아의 손을 살짝 꼬집으며 배진욱을 선택하라는 신호를 보냈다.구태윤 역시 그윽한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지난 몇 년을 통틀어, 이토록 마음을 졸여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과거에는 그가 늘 첫 번째 선택이었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없었다.정루아는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그리고 딱 2초간 고민하더니 배진욱을 바라보았다.“진욱 씨, 고마워요.”이내 이연희의 손을 잡고 배진욱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배진욱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따랐다.“루아야.”뒤편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루아는 척추를 곧게 세운 채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배진욱의 차에 올라탔다.문이 닫히며 차가운 공기가 차단되자, 이연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배진욱이 다정하게 물었다.“루아 씨, 혹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나요?”정루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배진욱을 바라보았다.지적이고 수려한 얼굴, 진지한 표정의 남자가 연갈색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의 속뜻은 명확했다. 어떤 번거로운 일이든 도와줄 의향이 있다는 의미였다.정루아는 손가락을 살짝 움츠렸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없어요.”옆에 있던 이연희는 애가 타서 미칠 지경이었다.하지만 제아무리 절친이라 한들 결국 제삼자였기에, 이 상황에 섣불리 끼어들 순 없었다.게다가 구태윤을 어설프게 자극했다간 눈이 돌아가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일이었다.그렇게 되면 결국 고통받고 상처 입는 건 정루아일 뿐이었다.이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으므로 입술을 꾹 깨물며 말을 아꼈다.배진욱은 시선을 살짝 내리깔며 말했다.“루아 씨는 제 은인
코앞까지 다가온 구태윤은 정루아에게 투명 인간 취급당했다.정루아가 덤덤하게 이연희의 말에 대답했다.“연회에서 알게 된 사이라고 했잖아. 내가 얘기 안 했나?”“알고말고. 다만 그냥 비즈니스 파트너 정도라고 생각했지. 지금 보니까 분위기 완전 보통이 아니잖아? 널 데리러 여기까지 오게 하고.”이연희는 정루아의 팔을 낚아채며 배진욱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가자. 나도 소개 좀 해줘.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는데?”정루아는 조금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앞에 서 있던 구태윤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그는 손을 뻗어 정루아의 다른 쪽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루아야.”이연희는 마치 새끼를 지키는 암사자처럼 정루아를 등 뒤로 끌어당겼다.그러고는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구태윤을 노려보았다.“이거 안 놔?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해! 왜 남의 몸에 손을 대고 난리야.”구태윤의 수려한 얼굴 위로 음영이 짙게 드리워졌다.그 서슬 퍼런 기세에 이연희는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비켜.”무미건조한 목소리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이연희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솔직히 이 안하무인인 인간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이 일었다.하지만 소중한 친구가 눈앞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뭐, 뭐 하려고? 여기 경찰서 앞이거든? 언행 조심해!”이연희가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며 소리쳤다.구태윤의 서늘한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꽂혔다.“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우리 와이프를 데리고 어디로 가려는 거지?”이연희는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대꾸했다.“와이프는 무슨 얼어 죽을 와이프야! 루아는 진작부터 이혼하려고 했어. 사내자식이 구차하게 매달리지 좀 마.”구태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쳤다.“내가 사내인지 아닌지는 루아만 알면 돼. 그쪽한테 증명할 필요는 없지.”그러고는 더는 말을 섞기 싫다는 듯 정루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루아야, 데리러 왔어. 네가 좋아하는 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