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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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정은 태사의 적녀이자 막내딸로, 어릴 적부터 태자 진소림과 벗으로 지내며 서로 정을 나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진소림은 소연정을 저버리고 오히려 자기 사촌 누이를 정실로 맞이하며 그녀에게 첩이 되라고 했다. 배신을 당한 소연정은 계략을 꾸며 용상에 올랐고, 부자 사이를 이간질해 궁 안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훗날, 진소림은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눈시울을 붉히며 고집스럽게 물었다. “나를 연모한 적이 있느냐?” 소연정은 교태롭게 웃으며 몸을 돌려 진태우의 품에 파고들며 어리광을 부렸다. “폐하, 보시옵소서. 또 저를 유혹하려 하옵니다.” 황제는 그녀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으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회임을 했으니, 천천히 움직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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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제1화

동궁의 춘화전, 참새 떼가 요란스레 지저귀며 밤공기를 갈랐다.

전각 안.

“저를 가지시옵소서.”

얼굴이 붉게 물든 연정은 몽롱한 눈빛을 한 채 사내 아래에 깔려 있었다.

촛불 아래, 팔로 바닥을 짚은 사내의 구릿빛 피부는 탄탄했고, 등은 곧게 뻗어 있었다. 준수한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눈빛에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깊게 서려 있었다.

그는 눈을 내리깔아 밑에 있는 젊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궁녀복은 이미 잔뜩 구겨져 있었다. 느슨해진 옷깃 사이로 가느다란 목덜미와 반쯤 드러난 어깨, 깊은 가슴골이 내비쳤다.

그런데도 그녀는 두 손으로 옷깃을 계속 잡아당겨 더 많은 속살을 드러냈다.

사내의 얼굴에도 홍조가 번졌고 숨결은 점점 거칠어졌다.

그녀를 향한 두 눈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정욕이 이글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양옆을 짚은 손은 관절이 하얗게 질릴 만큼 굳게 쥐어져 있었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그는 강압적으로 연정의 턱을 쥐어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그의 눈빛이 순간 흐려졌고, 이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침상에 오르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알고 있느냐?”

그가 말을 뱉을 때마다 뜨거운 숨결이 피부를 스쳤다. 연정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가늘게 떨었고, 흰 살결마저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연정은 그에게 답하는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힘껏 그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려 하였다.

사내는 뜻대로 끌려가지 않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연정이 목을 감은 팔을 놓지 않는 바람에, 그녀는 그대로 그의 다리 사이에 올라앉아 야릇한 자세가 되었다.

극도로 가까워진 거리 때문에 분위기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부탁이오니… 저를 품어주시옵소서.”

연정은 사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헐떡이는 숨결로 애원했다.

그녀의 손이 사내의 옷깃 안으로 파고들어 곳곳에 불을 지폈다. 사내는 끝내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 요물처럼 휘감기는 여인의 손길에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침내 마지막 한 가닥 남은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연정의 옷이 찢겨 바닥에 나뒹굴었다.

곧이어 거센 입맞춤이 귓불과 목덜미 위로 빗발치듯 쏟아졌다.

연정이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자, 더욱 깊은 입맞춤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그녀는 사내를 껴안은 채, 마음껏 자기 몸에 흔적을 남기게 했다.

그러나 사내는 알지 못했다. 그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연정은 몽롱한 기색을 말끔히 거두고, 계략이 뜻대로 풀린 듯 미소 짓고 있었다.

연정은 태사(太師: 황제를 보좌하는 최고위 문관 직책 중 하나)의 적녀이자 막내딸이었다. 어려서부터 궁에 들어가 삼공주의 글동무가 되었고, 태자 진소림과는 오랜 벗으로 정을 나누었다.

연정은 물론 경성의 관가 사람들까지 그녀가 태자의 정실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태자는 태부(太傅: 황제나 태자의 교육을 맡은 최고위 스승)의 둘째 적녀 도명주를 택했다.

혼인을 하사하는 황제의 성지가 내려오고서야 진실을 알게 된 연정은 삼공주의 핑계를 대며 입궁해 태자를 만났다.

“연정아, 명주는 나의 사촌 누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 복사꽃 꽃잎 하나가 그녀의 머리칼에 내려앉았고, 태자는 전처럼 아주 자상하게 그 꽃잎을 떼어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허공에 멈추었다.

한 걸음 물러난 연정이 곧장 몸을 돌려 궁을 떠났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정을 나누던 이가 이토록 쉽게 자신을 버릴 줄은 몰랐다.

믿기지 않는 진실이었다.

어릴 적의 꿈은 산산조각 났지만, 그녀는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태사 가문이 매우 빠르게 그녀의 낭군 후보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태사 가문은 자기 집안의 적녀가 누군가의 첩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설령 상대가 태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후보가 정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성지가 내려졌다.

연정을 포함한 네 명의 관가 규수가 함께 입궁하여, 태자비와 함께 궁중 예법을 배우라는 것이었다.

네 가문이 모두 나라의 동량을 배출한 공신가이니, 그 여식들이 태자비와 함께 예법을 배우며 군신의 정을 이어가게 한다는 명분이었다. 겉으로는 가문의 위상을 높여주는 듯했지만, 실상은 태자의 측비 두 명을 고르려는 것이었다.

지난 두 달간 일어난 일을 떠올리던 연정은 헛웃음이 났다.

자기 목덜미에 파묻힌 사내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엔 오직 혐오감만 존재했다.

조무제 진태우는 도황후를 지독히 사랑해, 열여섯 살에 군공을 세운 뒤 직접 청혼했고, 같은 해 두 사람은 적장자 진소림을 얻었다.

그러나 도황후는 아이를 낳다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태우는 비통에 잠겨 오 년 동안 재혼하지 않았다. 황제로 즉위한 뒤에야 빈 중궁을 채우기 위해 새 황후를 맞았는데, 그 역시 도씨 가문의 여인이었다. 몇몇 비빈도 구색을 갖추듯 함께 책봉했을 뿐이었다.

같은 해, 황제는 겨우 다섯 살인 진소림을 태자로 봉하였다.

천하의 귀하고 화려한 것은 모두 태자가 누려야 했고, 공신의 여식인 그녀들마저 태자의 측비가 되어야 했다. 이는 공신들로 하여금 태자를 보필하는 마음을 흔들림 없이 지키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내가 왜?’

연정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연정은 일부러 태자와 어릴 적부터 맺어온 정을 내세워 태자비 도명주의 질투심을 자극했다.

그녀는 그저 적당한 소란만 일으킨 뒤 일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태부 가문의 규수였던 도명주는 겉모습과 달리 잔인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다.

태자의 혼례 당일 연정이 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게 할 작정으로 도명주는 그녀에게 최음제를 먹이려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연정은 내색하지 않고 있다가, 연회에 참석한 황제 진태우의 술잔에 약을 타버렸다.

그리고 용상에 오를 계략을 꾸몄다.

그토록 자애로운 부친과 효성스러운 아들의 관계가 어디까지 버틸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태사인 부친과 십수만의 정예 병사가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춘화전 안에서는 두 남녀가 세상일도 잊은 채 정신없이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

앞마당의 악기 연주 소리가 모든 추잡한 소리를 덮어버렸다.

*

태자와 태자비는 황제와 황후의 증인 아래 혼례를 마쳤다. 황제가 사정이 있는 듯 급히 자리를 비운 탓에, 황후 혼자 복잡한 절차를 주관하고 있었다.

“태사의 적녀 소연정과 태보(太保: 황제나 태자를 보좌하고 가르치는 최고위 대신) 서녀 김화월을 불러오라.”

상석에 앉은 도황후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잘 가꾼 피부는 희고 매끄러웠다.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으나, 단아하고 온순한 분위기와 황후다운 기품이 어우러져 더없이 우아해 보였다.

아래에는 붉은 혼례복을 입은 태자와 봉관하피를 두른 도명주가 서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띤 태자는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보였으며, 고개를 숙인 도명주는 현숙하고 조신해 보였다.

내전 양옆에는 황실 친척들이 서서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황후가 연정과 김화월을 태자의 측비로 공표하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조정에서 태사는 막강한 병권을 쥐고 있었고, 태부와 태보는 문관들 사이에서 지위가 비범하였다. 곧 그들의 여식은 모두 동궁에 속할 것이다.

맨 앞줄에 있던 이황자와 사황자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유지하였다.

“예, 황후마마.”

유상궁이 무릎을 굽히고 대답한 뒤, 몇 명의 궁인을 데리고 물러났다.

그들을 바라보는 태자의 시선이 한층 부드러워진 것을 발견한 도명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도명주는 소매 속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가 펴며, 입가에 알아채기 힘든 냉소를 띠었다.

도명주는 가문의 위세가 막강한 데다 태자와 오랜 정까지 나눈 여인이 동궁에 들어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본래 도명주는 시간을 두고 연정을 병들게 한 뒤 동궁에서 내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정이 태자와의 오랜 정을 내세워 심기를 건드리자, 결국 계획을 앞당겨 손을 쓴 것이다.

사람들의 축하 인사가 오갔고, 태자는 웃으며 일일이 손을 맞잡아 인사하였다.

“황후마마, 화월 소저께서는 도착했으나 연정 소저의 행방이 묘연하옵니다.”

유상궁이 들어와 도황후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그 말에 도황후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로 그때 어린 궁녀가 급히 들어오다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고,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히 궁녀에게 향했다.

도황후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어느 궁의 사람이기에 이리도 천박한 것이냐?”

“황후마마, 살려주십시오. 저는 동궁 정원을 청소하는 국화라 하옵니다. 속히 보고할 일이 있어 급히 왔사옵니다.”

도황후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위엄 있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국화는 울상을 지으며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온몸을 떨며 바닥에 머리를 찧던 그녀는 결심한 듯 말했다.

“황후마마께 아뢰옵니다. 춘화전에서 음란한 소리가… 마치 남녀가 엉켜 있는 듯한 소리가 들리옵니다.”

춘화전은 동궁의 비워진 전각으로,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 드나드는 사람이라곤 청소하는 궁녀뿐이었다.

쾅!

도황후가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얼굴을 구긴 도황후에게서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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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챕터
제1화
동궁의 춘화전, 참새 떼가 요란스레 지저귀며 밤공기를 갈랐다.전각 안. “저를 가지시옵소서.”얼굴이 붉게 물든 연정은 몽롱한 눈빛을 한 채 사내 아래에 깔려 있었다. 촛불 아래, 팔로 바닥을 짚은 사내의 구릿빛 피부는 탄탄했고, 등은 곧게 뻗어 있었다. 준수한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눈빛에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깊게 서려 있었다.그는 눈을 내리깔아 밑에 있는 젊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궁녀복은 이미 잔뜩 구겨져 있었다. 느슨해진 옷깃 사이로 가느다란 목덜미와 반쯤 드러난 어깨, 깊은 가슴골이 내비쳤다. 그런데도 그녀는 두 손으로 옷깃을 계속 잡아당겨 더 많은 속살을 드러냈다.사내의 얼굴에도 홍조가 번졌고 숨결은 점점 거칠어졌다. 그녀를 향한 두 눈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정욕이 이글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양옆을 짚은 손은 관절이 하얗게 질릴 만큼 굳게 쥐어져 있었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그는 강압적으로 연정의 턱을 쥐어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그의 눈빛이 순간 흐려졌고, 이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침상에 오르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알고 있느냐?”그가 말을 뱉을 때마다 뜨거운 숨결이 피부를 스쳤다. 연정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가늘게 떨었고, 흰 살결마저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연정은 그에게 답하는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힘껏 그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려 하였다.사내는 뜻대로 끌려가지 않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연정이 목을 감은 팔을 놓지 않는 바람에, 그녀는 그대로 그의 다리 사이에 올라앉아 야릇한 자세가 되었다. 극도로 가까워진 거리 때문에 분위기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부탁이오니… 저를 품어주시옵소서.”연정은 사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헐떡이는 숨결로 애원했다. 그녀의 손이 사내의 옷깃 안으로 파고들어 곳곳에 불을 지폈다. 사내는 끝내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 요물처럼 휘감기는 여인의 손길에 온몸이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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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방자하구나!”도황후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황후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누구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당장 끌어내 곤장을 쳐라!”공포에 질린 국화가 막 애원하려는 찰나, 곁에 있던 내관이 재빨리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끌어냈다. 황실 친척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감히 태자의 혼례식 날, 동궁에서 그런 더러운 짓을 벌인단 말인가?’ 궁녀가 미쳐 헛소리를 한 것이 아니라면, 태자가 동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탓이었다. 어느 쪽이든 태자의 위엄에 흠이 갈 일이었다. 더구나 혼례 날 피를 보는 것은 몹시 불길했다. 만약 그 일이 사실로 밝혀지면, 태자는 모두의 앞에서 체면을 잃을 것이다. 비록 태자는 어떤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지만, 두 눈 만큼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처음에는 황제의 거친 손길도 견딜 만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허리와 다리가 쑤셔 더는 버티기 어려웠다. 연정은 그가 방심한 틈을 타 몰래 최음제 한 알을 입에 넣었다. 약은 곧바로 녹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처 삼키기도 전에 황제가 입술을 덮쳤고, 녹은 약이 누구의 목으로 넘어갔는지도 모른 채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앞마당이 조용해지면서 두 사람의 소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문밖에서 누군가 오는 듯한 소리를 희미하게 들은 연정은 일부러 더 애처롭고 달콤한 소리를 내며 더욱 대담하게 황제의 품을 파고들었다. ‘감히 황제의 밀회를 들이닥칠 자가 있을지 궁금하구나.’황제의 품에 안긴 연정은 그의 목울대에 입을 맞추었고, 황제는 신음을 내뱉으며 멈칫하다가, 이내 그녀의 허리를 쥔 손에 힘을 가했다. “누가 이런 것을 가르쳐 준 것이냐?”잔뜩 쉬어버린 그의 목소리에는 통제할 수 없는 정욕이 배어 있었다.태자와 태자비를 거느리고 온 도황후가 문을 밀어젖히려던 순간, 안에서 황제의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일행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도황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녀는 문고리에서 손을 내리고 굳은 얼굴로 뒤따르는 궁녀들에게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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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황제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굳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연정과 벽 사이를 가로막았고, 연정은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겼다.욱신거리는 통증에 황제는 미간을 더 찌푸렸다.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연정은 다시 벽에 부딪치려 했고, 황제는 그녀의 팔을 붙잡아 힘껏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무슨 짓이냐? 짐에게 너를 책봉하라 강요하는 것이냐?”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연정은 눈을 내리깔아, 원하던 바를 이룬 안도와 기쁨을 감췄다.만약 황제가 와서 잡아주지 않았다면, 다리에 힘이 풀린 척하며 벽에 부딪히는 것을 피할 작정이었다.‘폐하께서 나를 저지한 걸 보니, 내가 죽는 것은 원치 않는 모양이구나.’연정은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얼굴로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애써 울음을 참아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폐하… 부디 목숨을 끊어 황실의 명예를 지키게 해주시옵소서.” 연정은 흐느끼면서도 죽음을 각오한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동궁의 궁녀가 아니더냐?”‘대신의 여식이라면, 동궁에는 딱 네 명뿐인데…’“폐하, 그 아이는 태사 가문의 적녀이자 막내딸, 소연정이옵니다.” 도황후의 목소리가 갑작스레 바깥에서 들려왔다.황제는 어두운 얼굴로 연정을 놓아주려 했다. 하지만 도황후의 목소리와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자극받은 연정은 당장이라도 벽에 머리를 찧을 듯 몸부림쳤다.황제는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그녀를 놓지 못했다. 태사의 적녀가, 그의 눈앞에서 죽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도황후가 막 문을 밀고 들어오려던 참에,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들어오지 말게. 그리고 이 여인이 입을 만한 옷을 준비하게.”문고리를 잡은 도황후의 손이 굳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리고, 얼굴을 굳힌 채 문밖에 서 있었다. 마음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도황후는 황제와 십수 년을 부부로 지냈기에, 그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가 이렇게 연정을 감싸는 이상, 이 사달을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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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태자의 목소리에 황제의 표정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이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식에 대한 애틋한 정이었다. 연정은 부친의 눈에서도 이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다만 연정을 돌아보는 황제의 시선은 다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조금 전의 미묘한 온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옷을 잘 챙겨 입거라.”황제는 그 말만 남긴 채 밖으로 나가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다. 연정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황제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녀를 취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황제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을 태자의 측비로 보내리라고는 믿지 않았다.연정은 천천히 옷을 입으며 나무 창문을 살짝 열어 틈을 만들었다. 그러자 대들보에 있던 참새들이 그 틈으로 날아올랐다.*한편, 황제가 막 문을 닫고 나왔을 때였다. 태자가 약간 흐트러진 걸음걸이로 그곳에 들어섰다. 그의 걸음을 따라 밀폐된 공간 안으로 술 냄새가 물씬 밀려들었다. 도황후는 굳은 얼굴로, 옆으로 물러섰다.“소자,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뵈옵니다.”태자가 먼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고는 다급히 물었다. “아바마마의 몸은 좀 어떠하신지요? 모두 집안 단속을 허술하게 한 제 탓이옵니다. 부디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태자는 황제가 여인과 뒤엉켜 있다는 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누군가의 계략이라고 여겼다. 그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기에, 제 혼례 날 여인과 어울려 체면을 깎을 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태자의 걱정 어린 눈빛과 진심 어린 사죄를 마주하자, 황제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아들이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불현듯 떠오른 방 안의 여인 때문에 갑자기 양심에 찔렸다. “괜찮다. 짐이 사람을 보내 조사할 것이니, 너는 먼저 돌아가거라.”태자는 멀쩡한 황제의 모습에 한시름 덜었다. 자리에서 물러나려던 태자는 측비 문제를 떠올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갑작스레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연회에서 측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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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과연, 연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황제와 황후는 같은 상념에 빠졌다.특히나 도황후의 안색이 유난히 좋지 않았다. 태자가 신분을 아랑곳하지 않고 연정을 쫓아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볼썽사나운 일이었다.도황후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소태사가 가장 아끼는 딸을 어찌 출가시키겠느냐. 태사의 본적이 영주라던데, 차라리 영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영주는 변방의 척박한 땅이었다. 태사 가문이 그곳에서 세력을 일으킨 것도 끊이지 않는 전란과 도적 떼 덕분이었다. 그들은 이를 발판 삼아 개국 황제를 도와 천하를 평정했다.지금은 예전보다 안정되었다지만 여전히 척박하고 낙후된 데다, 이따금 산적까지 출몰했다. 어린 여인이 홀로 지내기에는 결코 좋은 곳이 아니었다.그러나 도황후에게는 외진 곳이라는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연정을 태자에게서 떼어놓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사내의 마음이란 눈앞에서 멀어지면 이내 식는 법이었으니.도황후의 제안에 연정은 겁먹은 기색으로 자기도 모르게 황제를 힐끗 바라보고는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그녀의 입술은 미세하게 움직였지만, 결국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황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보아 연정과 태자 사이에서, 태자를 택한 것이었다.설령 연정이 무고하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태자의 감정이 제일 중요했다. 연정은 황실의 이런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처사에 극도의 혐오를 느꼈다.“예,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연정은 억울한 기색을 애써 누르고, 순종적이며 사리를 아는 여인처럼 답했다.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 일을 아무도 모르게 덮는다면 군신과 부자 사이에는 아무런 균열도 생기지 않을 터였다. 황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결말이었다. 그 대가로 여인 하나쯤 희생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한 시진 후, 연정과 병부상서의 적녀 심경아는 각자의 부저로 돌려보내졌다.태보의 서녀인 김화월과 공부상서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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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오늘 조회에서 정신이 딴 데로 가 있는 듯하던데, 무슨 심려라도 있는 것이오?” 용상에 단정히 앉아 있는 황제는 이미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였다.태연한 그의 얼굴에는 어떤 이상한 기색도 드러나지 않았다.‘뻔뻔하기도 하지! 내 귀한 여식을 품고도 어찌 이리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굴 수 있단 말인가!’황제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소태사였지만, 공손함을 잃지 않고 근심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폐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어린 여식이 어젯밤 영주의 본가로 돌아가고 싶다고 청하였사옵니다. 워낙 외지고 척박한 데다 도적 떼도 많은 곳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사옵니다. 그렇다고 경성에 남기자니 떠도는 소문에 아이가 상처를 입을 것이 뻔하여 걱정이옵니다.”“그래도 영주로 보내는 편이 나을 듯하옵니다. 다만 올해 열다섯인 아이를 홀로 보내면 혼사를 돌보기 어려울 터이니, 경성에 있는 동안 미리 혼약을 정할 생각이옵니다. 아들이 호송해 영주로 데려가는 길에 아예 혼례까지 치르게 할까 하옵니다.” “그리하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옵니다.”막 상소를 집어 들려던 황제의 손이 멈추었다. 그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소태사를 바라보았다.“서둘러 혼사를 치르려는 것을 보니 이미 마땅한 자를 정해둔 모양이군. 허나 진심으로 아껴주지 않는 사내라면, 그 혼처가 오히려 불구덩이가 될 터인데.”소태사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참으로 뻔뻔하십니다. 폐하 때문에 제 여식이 서둘러 시집을 가는 것입니다!’동궁보다 더 깊은 불구덩이는 없을 터였다.“폐하의 관심에 감사드리옵니다.”소태사가 먼저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한 뒤, 이어서 말했다. “신은 본적이 영주이옵니다. 영주에는 오랜 벗과 이웃들이 있사옵고, 그중에는 출중한 젊은이들도 적지 않사옵니다.”“예전에 딸아이를 데리고 영주로 갔을 때, 몇몇 지인들을 소개해 준 적이 있사온데, 그들은 옛정 때문이든 신의 관직 때문이든, 함부로 딸아이를 대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자신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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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실성이라도 한 것이냐?”도황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마음속 의문을 내뱉었다.‘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어찌 저주에라도 걸린 듯 소연정에게 빠져 있단 말인가? 방탕하고 가식적인 여인의 어디가 그리 좋다는 것이냐.’“어마마마께서 연정을 부인으로 삼게 허락해 주겠다 약조하지 않으셨다면, 저도 명주와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태자가 차갑고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불길한 예감 때문에 도무지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어젯밤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춘화전에서 들었던 그 음란한 소리로 가득했다.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해 차마 생각할 수가 없었다.태자의 추궁에 도황후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억지로 화를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태자는 그녀의 친자식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필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아들이 태자였으니, 그녀가 황후라 할지라도 태자에게 함부로 할 순 없었다. “소연정을 정실로서 대하겠다 하지 않았느냐? 좀 더 기다리거라.”그녀의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법도에 따르면 태자는 측비 두 명, 양제(良娣) 세 명, 양원(良媛) 네 명, 승휘(承徽) 여섯 명과 여러 통방(通房)을 둘 수 있었다.연정의 출신을 고려하면 측비 자리조차 그녀에겐 부족한 대우였고, 그보다 낮은 지위는 결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정실로서 대하겠다는 말은 사람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했다.대진국 역사상 두 명의 황후를 둔 이는 개국 황제뿐이었다. 두 황후는 각각 동쪽 궁과 서쪽 궁에 머물렀다.훗날 적통을 다투는 싸움이 너무 격렬해지자, 선대에 이르러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그 제도가 다시 부활되는 것은 아니겠지?’눈빛이 밝아진 태자는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연정을 나의 정실로 삼는다면, 그 아이를 저버리지 않은 것과 같을 테지.’얼굴이 창백해진 도명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들어 도황후를 바라보았다.도황후가 은밀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연정은 곧 떠날 몸이었고, 태자를 붙잡아두는 것이 가장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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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연정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얼굴에는 당혹감과 애써 가장한 침착함, 서글픔이 차례로 스쳤다.“신녀는 폐하께서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겠사옵니다.”그녀의 모습에 황제도 살짝 놀랐다. ‘겁먹은 것을 감추려 애쓰고 있지만, 그마저 들킨 줄은 모르는 모양이군. 입으로는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그녀는 어린 소녀였고, 마음을 숨길 줄 몰랐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그렇지 못했다.‘여인에게는 정절이 중요한 법이니, 필시 저 아이도 입궁하고 싶을 것이다.’가녀린 모습에 황제의 마음도 누그러졌다. 며칠 동안 쌓였던 언짢음은 대부분 사라졌고, 엄히 경고하고 벌하려던 생각도 거두었다.“짐은 너의 입궁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잔꾀를 부리지 말거라. 그날의 일이 밝혀진다면, 그로 인해 곤란해질 것은 오직 너뿐이다.”몹시 매정하면서도 현실적인 말에 연정은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그녀는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황제는 연정이 스스로 입궁하지 않고 굳이 어전에서 사람을 보내 부를 때까지 기다린 데에는 다른 속셈이 있다고 여겼다. 주변 사람들에게 황제가 자신을 각별히 대우한다는 인상을 주려는 짓이라 생각했다.그렇게 은근히 황제를 압박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거두게 하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연정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무언가 말하려다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신녀는 그런 뜻이 없었사옵니다.”이 말에는 힘이 없었고, 그는 한 글자도 믿지 않았다.황제는 계략이 들통난 연정이 부끄러워 발뺌하는 것이라 여겼다. 붉어진 눈시울도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더는 그녀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살짝 겁만 주었으면, 그것으로 되었다.“이번 일은 네가 무고한 것이지만, 짐은 책임을 질 수 없다. 영주로 가고 싶지 않다면, 어디로든 가도 좋다.”“짐이 은밀히 사람을 보내 너를 지키게 할 것이며,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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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연정은 겉으로 냉정하고 침착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감정을 억누르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이것은 화를 참는 것보다도 더 힘들었다.‘폐하께서 지금 이토록 불쾌하신 것도, 제가 성지 하나로 태자비 자리를 빼앗겼을 때 느꼈던 그 불쾌함과 다르지 않겠지요.’“그대의 마음은 반석처럼 굳건하다고 하셨지요. 저의 마음도 그러하옵니다. 하여 부들과 갈대처럼 질기어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것이고, 반석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이것이 그날 신녀가 태자전하와 나눈 약조였습니다.”연정이 말을 마치고, 다시 머리를 숙였다. “하오니, 폐하께 간청하옵니다. 혼인을 하사하는 성지를 내려주시옵소서.”그녀는 가장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굴었다. “신녀는 황실의 명예를 더럽히고 싶지 않사오며, 또한 폐하께 불충하고 싶지도 않사옵니다. 하여 기꺼이 희생할 것이옵니다.”몸을 일으킨 연정의 눈에서 오래도록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허리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나에 대한 충심 때문이 아니라 그를 위해서겠지.”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지극히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니 오히려 더욱 섬뜩했다. 연정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지금의 황제는 만 길 낭떠러지를 품은 절벽과도 같았다. 그녀는 그 벼랑 끝에 서서, 본능적인 두려움과 동시에 자극을 느꼈다.절벽의 깊고 아득한 어둠 속에는 죽음으로 가는 위협과 동시에 치명적인 끌림이 서려 있었다.“그러하옵니다.” 연정은 죽음을 각오한 듯 순순히 인정했고, 그 목소리에는 결연함마저 담겨 있었다.황제는 순간 깨달았다.‘애초에 짐에게 시집올 생각은 없었구나. 오히려 태자가 이 모든 일을 알게 될까 두려운 것이야. 그가 슬퍼하고 상처받을까 봐, 그 마음속에 남은 제 순수한 모습만은 지키고 싶은 것이로군.’“더 좋은 사람을 만나 마땅하옵니다.”이 한마디가, 황제의 억눌린 분노에 불을 붙였다.연정을 내려다보는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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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짐승이 물어뜯는 듯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견디기 힘든 통증과 함께 피비린내가 번졌다.그러나 연정의 마음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은근한 기쁨마저 서려 있었다.사내는, 특히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스스로를 포식자라 여기며 여인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지곤 했다.하나 실상은 그저 가소로울 뿐이다. 연정은 몹시도 격렬하게, 미친 듯이 황제에게 화답하고 싶었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농락당한 것을 알아차린 황제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분명 무척이나 흥미로울 것이었다.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황제와 태자가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남을 능멸하는 자는, 결국 남에게 능멸당하는 법이니.’연정은 황제를 밀어내려 그의 가슴을 연신 두드렸다.하지만 그녀가 거부할수록, 황제의 입맞춤은 오히려 더욱 거칠어졌다.얼마 후, 연정은 터진 입술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머릿속이 어질어질해지고 몸에 힘이 빠진 연정은 황제의 품 안에서 축 늘어졌다.마침내 입맞춤이 끝나고 황제는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다.“짐에게 입맞춤을 당해서, 괴로우냐?”황제는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어루만졌고, 다시 자잘한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현실을 받아들이거라. 너는 이미 짐의 여인이다.”“짐과 함께한 것은, 영광이지, 감추어야 할 것이 아니다.”황제의 눈빛이 점차 조롱기를 띠기 시작했고, 사내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서렸다.“다른 이들은, 짐과 여인 하나를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태자전하께서 그날 밤의 일을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시옵니까?”연정은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공격적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황제는 연정처럼 분수를 모르고 순종하지 않는 여인을 좋아하지 않았다.그는 순종적이고, 애교 많고, 연약한 여인을 좋아했다. 이를테면 그날 밤 그녀가 보였던 그런 모습처럼.기 센 여인을 다루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굳이 수고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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