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자, 제 손 잡으세요! 한 분씩 천천히!"수아가 유도 3단의 단단한 팔뚝으로 주민들을 번쩍번쩍 들어 보트로 인계했다.도훈 역시 한 손으로 보트 줄을 잡고 한 손으로는 주민들을 받아안으며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다.소방과 경찰의 이 환상적인 공조 앞에고립되었던 버스 내부의 주민들이 차례차례 구조되기 시작했다.하지만 파도는 그들의 영웅 서사를 순탄하게 두지 않았다.버스 내부의 마지막 만삭의 임산부를 보트로 막 인계하려던 순간,저 멀리서 밀려온 거대한 상가 컨테이너 잔해가 격류를 타고버스 전면부를 쾅 하고 들이받았다.그 거대한 충격으로 버스가 측면으로 크게 기울어지며,보트와 버스 사이에 엄청난 와류가 발생하기 시작했다."와장창-!"버스가 기울어지며 발생한 거대한 물살의 충격으로도훈과 수아가 타고 있던 고무보트의 로프가 툭 하고 끊어져 나갔다.설상가상으로 조류가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는 듯 무섭게 소용돌이쳤다.바로 그 순간,"타당--!" 하는 웅장한 엔진 소리와 함께 저 멀리 격류를 뚫고제트스키를 탄 해경 강태풍과 대형 구조선을 모는 해경 대원들이안개 속에서 영웅처럼 나타났다.강태풍은 단숨에 기울어지는 버스 측면에 제트스키를 밀착시키며 소리쳤다."차 반장! 민 순경! 버스 상단으로 로프 던진다! 결속해!"강태풍이 던진 굵은 해경용 인명 구조 로프를 도훈이 나이스 캐치하여버스 프레임에 단단히 묶었다.해경과 소방의 이 거대한 대출동으로 인해위태롭던 버스의 전복은 가까스로 저지되었다.해경 대원들과 서나래 의사선생까지 탑승한 대형 보트가 버스 주변을 감싸 안으며남은 주민들을 신속하게 이송하기 시작했다.서나래는 보트 위에서 원격 의료 장비를 체크하며 소리쳤다."태풍 씨! 버스 안쪽에 부상자가 더 있어요! 얼른 가요!"강태풍은 서나래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며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어버스 내부로 진입했다.도훈과 수아 역시 해경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한시름 놓으며남은 주민 구출에 박차를 가했다.폭풍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의
마지막 대피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타이밍 나쁘게 만조 시각이 겹치며 이중 소용돌이가 몰고 온 집채만 한 메가 파도가부서진 제방을 넘어 도심 중심으로 완전히 밀려들었다.쿠르릉거리는 대지의 진동과 함께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골목길을 집어삼켰고,도훈과 수아가 타고 있던 고무보트마저 거대한 파동에 휘말려 공중으로 번쩍 들렸다가 떨어졌다."민 순견! 꽉 잡아요! 보트 뒤집힌다!" 도훈이 소리치며 수아를 보트 중앙 손잡이에 밀착시켰다.파도가 삼켜버린 도심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상가 건물 유리창들이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연쇄적으로 팍팍 터져 나갔고,몰려든 물살은 소용돌이를 치며 보트를 제멋대로 끌고 갔다.도훈은 어깨의 극심한 통증을 참아내며 보트의 방향타를 필사적으로 붙잡았지만,대자연의 광기 어린 조류 앞에서는 소방관의 베테랑 운전 실력도 무력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차 반장님! 저기 앞을 보세요! 대피하던 버스 한 대가 물에 잠겨 멈춰 서 있습니다!"수아가 빗속을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저 멀리 저지대 사거리 한복판에 주민 수십 명을 태운 통근 버스가엔진이 침수된 채 거센 격류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었다.버스 창문 너머로 살려달라며 손을 흔드는 주민들의 절박한 얼굴들이 보였다."젠장, 조류가 너무 세서 보트가 접근하기 힘들어!"도훈이 이를 악물었다.파도는 끊임없이 버스를 때려대며 전복시키려 하고 있었고,물은 이미 버스 바퀴를 넘어 창문 턱까지 차오르고 있었다.도훈과 수아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저 주민들을 구하지 못하면 자신들의 미래도 없다는 것을두 영웅은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고립된 버스 주변의 조류는 마치 거대한 세탁기 내부처럼 무섭게 회전하고 있었다.버스는 침수된 상태에서 물살에 밀려 가드레일에 위태롭게 걸쳐 있었고,언제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은 절체절명의 위기였다.내부의 주민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민 순경, 내가 보트를 최대한 버스 문 쪽으로 붙일 테니까, 민 순경은
수아는 순찰차 지붕 위로 올라가 대피하지 못한 상가 노인 한 명을 간신히 끌어올렸다.하지만 조류가 순찰차를 통째로 뒤흔들며 밀어내기 시작했다."차 반장님! 보트 언제 옵니까! 차가 밀려납니다!"수아가 소리치는 순간,저 멀리서 도훈이 탄 소방 고무보트가 거센 조류를 서핑하듯 뚫고 나타났다."민 순경! 꽉 잡아! 내가 갑니다!"도훈이 보트 키를 과감하게 꺾으며 순찰차 옆면으로 바짝 붙였다.도훈은 상처 입은 어깨의 통증도 잊은 채,수아가 잡고 있던 노인을 먼저 보트 위로 안전하게 인계받았다.그리고 수아를 향해 제 넓은 손을 뻗었다."민 순경, 내 손 잡으십시오! 얼른!"수아가 도훈의 손을 잡고 보트로 뛰어드는 순간 거대한 상가 자재가 순찰차를 쾅 들이받았다.조류가 요동치며 수아의 몸이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격류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 했다."앗-!" 수아의 외마디 비명에 도훈의 눈빛이 완전히 뒤집혔다.도훈은 제 몸을 보트 난간 밖으로 던지다시피 하며 수아의 제복 깃과 손목을 동시에 낚아챘다."내가 놓지 않는다고 했잖습니까, 민 순경!"도훈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장난스럽고 능글맞은 대형견 소방관의 괴력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도훈은 악력을 다해 수아를 격류 속에서 단숨에 보트 위로 끌어올려 제 품에 꽉 안았다.두 사람은 보트 바닥에 엉킨 채 거친 숨을 내쉬었고,수아는 도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제방은 무너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신뢰는 그 어떤 콘크리트보다 단단하게 맞물려 있었다."지구대 순경 민수아 알림! 현재 해안 제방 전면 붕괴로 저지대 침수가 급격히 진행 중입니다! 아직 상가나 주택에 계신 주민들은 모든 가재도구를 버리고 즉시 군청 대피소로 이동하십시오! 다시 한번 알립니다……."수아는 도훈의 보트 위에서도 확성기를 놓지 않았다.목이 쉬어라 대피 방송을 외치는 그녀의 얼굴은 빗물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도훈은 그런 수아를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최종 형태인 '이중 소용돌이'가마침내 연실군 해안선을 완전히 강타했다.초속 50m에 달하는 살인적인 강풍은 가로수를 통째로 뽑아내고상가 간판들을 종잇장처럼 날려버렸다.하늘과 바다가 온통 거뭇하게 뒤섞여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아비규환이었다."민 순경! 무리하게 앞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바람이 너무 세서 몸이 날아갑니다!"도훈이 무전기를 향해 소리쳤지만,수아는 이미 순찰차 외벽을 붙잡고 확성기를 든 채 빗속으로 소리치고 있었다."연실 상가 주민 여러분! 지금 즉시 고지대로 대피하십시오! 해안 제방이 곧 무너집니다!"그 순간, 콰아앙- 하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해안을 버티고 있던 대형 콘크리트 제방의 일부분이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듯 무너져 내렸다.제방을 뚫고 나온 거대한 바닷물이 순식간에 도심 상가 구역으로 무섭게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물은 단 몇 분 만에 무릎을 넘어 허리춤까지 차올랐다."차 반장님! 상가 2층에 고립된 노약자들이 있습니다! 소방 보트가 필요합니다!"수아가 물살을 헤치며 소리쳤다.도훈은 소방대원들과 함께 고무보트를 몰고 거센 조류를 뚫고수아의 방향으로 풀 액셀을 밟았다.강태풍과 서나래 역시 해경 대원들을 이끌고 차량 진입이 불가능해진저지대 중심부로 진입하고 있었다.자연의 압도적인 광기 앞에서도 네 청춘은 물러서지 않았다.거대한 소용돌이가 도시를 삼키려 들 때마다,그들은 서로의 무전을 확인하고 서로의 등 뒤를 지켜주며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방벽이 되어 버티고 있었다.사선에서 더욱 빛나는 소방과 경찰, 해경과 의사의 위대한 공조가다시 한번 폭풍 속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제방 동측이 완전히 터졌습니다! 물살이 너무 세서 도보 구조는 불가능합니다!"수아의 무전이 빗소리와 섞여 다급하게 울렸다.해안 둑의 균열은 도미노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쏟아져 들어온 바닷물은 상가 골목을 거대한 격류로 만들었고,물
달콤한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지만,TF 상황실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동결되어 있었다.기상청 레이더 화면에는 연실군을 향해 거대한 악마의 눈을 치켜뜬 이중 소용돌이,즉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최종 형태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태풍 제우스의 후면 구름판이 해상에서 발달한 강력한 돌풍과 결합하면서중심 기압이 역대 최대로 낮아진 최악의 상황이었다."강 팀장! 차 반장! 민 순경! 당장 상황판 앞으로!"통제관의 핏대 선 목소리에 네 청춘이 일제히 모여들었다.화면을 본 강태풍의 미간이 깊게 좁혀졌다."이건 단순한 태풍이 아닙니다. 해상 돌풍과 결합해서 조류를 미친 듯이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만조 시각까지 겹쳐지면 연실군 전역이 물에 잠깁니다.""더 큰 문제는 연실군 동쪽을 지탱하던 해안 제방 둑입니다. 이미 1차 공습 때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일부는 이미 무너져는데, 이중 소용돌이(perfect storm)가 정면으로 들이받으면 제방이 통째로 붕괴합니다."도훈이 보호대를 다시 착용한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심각하게 덧붙였다.그때 모니터 화면이 깜빡이며 연실항 저지대 상가 구역의 실시간 CCTV가 켜졌다.거대한 파도가 제방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콘크리트 구조물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고 있었다."현재 저지대에 아직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남아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전 대원, 지금 즉시 최후의 대피 안내와 방어선 구축을 위해 현장으로 출동한다!"수아는 헬멧을 꽉 조여 매며 도훈을 보았다.도훈 역시 수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 나누었던 달콤한 손깍지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그들은 다시 한번 대한민국 소방과 경찰의 이름으로 지옥 같은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했다.로맨스의 설렘은 잠시 접어두고,네 영웅의 눈빛에는 다시금 날카로운 사명감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둠이 짙어진 대피소 창고 안,수아는 도훈의 어깨에 기댄 채 결국 밀려드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고르게 숨을 내쉬는 수아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도훈의 눈빛이 한없이 부드러워졌다.늘 서나래라는 첫사랑의 그늘에 갇혀 자기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대형견 댕댕이 소방관은,이제야 제 심장을 완전히 장악한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도훈은 바닥에 놓여 있던 수아의 거칠어진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지구대 순경으로 임용되어 연실군 현장을 구르느라굳은살이 박이고 찰과상이 가득한 작고 야무진 손.도훈은 링거 바늘이 꽂히지 않은 자신의 다른 커다란 손을슬그머니 뻗어 수아의 손가락 사이로 밀어 넣었다.그리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단하게 손깍지를 끼었다.그 순간 수아가 잠결에 으음-, 하고 작은 신음을 내며 도훈의 손을 마주 꽉 쥐어왔다.무의식중에도 도훈의 온기를 기억하고 매달리는 수아의 귀여운 행동에도훈의 가슴이 찌릿하게 저려왔다.도훈은 손깍지를 낀 손에 힘을 더 주며, 잠든 수아의 이마에 자기의 입술을아주 살포시 가져다 대었다."민 순경, 자는 척하면서 이렇게 손 꽉 잡는 거 반칙입니다? 사람 설레게."도훈이 낮게 속삭이며 피식 웃었다.평소엔 맨날 틱틱대며 서로를 '밥 친구' 혹은 '단순 합동 대원'이라는안전한 선 안에 가두어 두었던 두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번 폭풍우 속에서 사선을 함께 넘으며 강력하게 낀 이 손깍지는,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진짜 순정의 시작이었다.도훈은 밤새 수아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그녀의 곁을 든든하게 지켰고,창고 밖으로 몰아치는 거센 비바람조차 두 사람의 단단한 결속을 갈라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