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해안 상가 거리는 이미 무릎까지 물이 차오른 상태였다.
강풍에 간판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상가 셔터들은 찌그러져 있었다.
“민 순경님! 민수아순경님!”
도훈이 물을 가르며 소리쳤다.
수아의 순찰차가 상가 입구에 비스듬히 처박혀 있었지만, 안은 비어 있었다.
“가스 냄새가 납니다. 공기호흡기 착용하십시오.”
태풍이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도훈에게 지시했다.
도훈 역시 장비를 잡자 장난기를 지우고 맹수처럼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서나래는 태풍의 등 뒤를 바짝 따랐다.
“강 선생, 내 뒤에서 3미터 유지하라고 했을 텐데.”
“3미터는 무슨... 뒤에 있으면 환자가 안 보이잖아요.
비켜봐요, 저기, 불빛!”
상가 2층 셔터 틈새로 희미한 손전등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세 사람이 다가가자,
셔터 안쪽에서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쿨럭……! 문이 안 열려요……!”
민수아 순경이었다.
상가 안의 가스 밸브를 잠그던 중,
강풍에 셔터가 내려앉으며 잠겨버린 것이었다.
내부에는 가스가 차오르고 있었다.
“비켜봐요!”
도훈이 유압 절단기를 꺼내 들었다.
기계가 굉음을 내며 셔터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그 사이 태풍은 주변의 스파크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배전반을 확인하러 달렸다.
“차도훈! 조금만 빨리 해봐! 내부 산소 부족한 거 같아!”
서나래가 셔터 틈새로 소리치며 청진기를 귀에 걸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그 위험한 가스 구역에 코를 박고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나래를 보며,
배전반을 차단하고 돌아온 태풍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런! 강..서나래! 서나래 씨!!”
태풍이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거칠게 불렀다.
그는 서나래의 허리를 통째로 한 팔로 안아 뒤로 끌어내렸다.
“읍! 뭐 하는 짓이에요!”
“가스 농도가 높잖아! 터지면 당신부터 날아간다고!
제발 현장 지휘관인 내 명령 좀 들으라고!!”
태풍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 서슬 퍼런 눈빛에 서나래도 순간 숨을 삼켰다.
언제나 냉정하던 남자의 눈에 서린 생생한 두려움.
그것이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임을 알 리 없는 서나래는,
그저 자신을 꽉 안은 그의 단단한 팔뚝의 힘에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콰아앙-!
그 순간, 도훈이 기어코 셔터를 뜯어냈고, 가스 냄새와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새벽 5시 30분,초등학교 안쪽 교실 복도는 주민들의 밭은 숨소리와 젖은 옷가지에서 나는 비린내로 가득했다.강당은 완전히 파괴되었지만,두꺼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교실 내부와 복도는 안전을 유지하고 있었다.대원들은 간신히 숨을 고르며 서로의 상처를 돌보았다.서나래는 강태풍의 찢어진 등판에 소독약을 들이부으며 거칠게 붕대를 감았다.강태풍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수아가 간신히 신호를 잡으려 애쓰는 소형 비상 무전기를 주시했다.지직…… 지지직……"여기는 해경…… 해경 특수구조대 본부…… 연실군 TF…… 들리는가……."기적적으로 아주 미약한 음성이 흘러나왔다.수아가 번개처럼 송신 버튼을 눌렀다."여기는 연실군 TF 민수아 순경! 현재 주민 300명과 함께 연실초등학교 3층 복도로 전원 대피 완료! 대원들 일부 부상이 있으나 전원 생존!"무전기 너머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도 잠시,이내 지독하게 무겁고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민 순경, 잘 들어라. 현재 제우스의 후면 강풍대가 동해상으로 빠져나가면서 대기 불안정으로 인해 연실 앞바다 7해리 해상에서 5천 톤급 대형 화물선 '포세이돈호'가 조타 능력을 상실하고 좌초 중이다. 선원 12명이 탑승해 있다. 본부 구조선들이 접근을 시도 중이나, 초속 50미터의 국지적 돌풍 때문에 해상 접근이 불가능하다. 헬기도 뜰 수 없다.]그 말을 들은 강태풍의 눈빛이 급격하게 얼어붙었다.5천 톤급 화물선이 좌초된다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선원들의 생명뿐만 아니라,화물선이 품고 있는 수백 톤의 연료유가 바다로 유출되어남해안 전체의 생태계와 어민들의 터전을 완벽하게 파괴한다는 뜻이었다.무전은 이어졌다.[현재 그 구역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은 연실군 해안 방파제에 계류되어 있는 해경 특수구조정 '태극 3호'뿐이다. 하지만 지금 바다로 나가는 건…… 죽으러 가는 거다. 본부는 출동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상황을 공유할 뿐…… 지직.]무전은 다시 끊겼다.교실 안에는 자
철제 조명 프레임이 대지를 가르듯 떨어져 내리는 찰나,강태풍은 창틀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창문이 완전히 개방되면서 폭풍우가 강당 내부를 폭압적으로 유린했지만,강태풍의 몸은 이미 도훈을 향해 탄환처럼 날아간 뒤였다.강태풍은 도훈의 허리춤을 낚아채며 바닥을 거칠게 굴렀다.쾅-! 하는 가공할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수백 킬로그램의 철제 구조물이 처박히며 불꽃을 튀겼다."이 미련한 소방관 새끼가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나!"강태풍이 도훈의 덜렁거리는 왼쪽 어깨를 보며 거칠게 욕설을 뱉었다.겅태풍답지 않은 격앙된 반응이었다.도훈은 고통 속에서도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래도…… 환자 할배는 살렸잖아, 해경 형씨……."강태풍은 그런 도훈을 들쳐업듯 부축하며 열린 복도 문을 향해 달렸다.창문이 사라진 강당은 이제 완벽한 태풍의 통로가 되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복도 안쪽으로 두 남자가 굴러 들어오자마자,수아와 서나래가 대피문 역할을 하던 두꺼운 방화문을 닫고 빗장을 질렀다.쾅! 쾅! 쾅! 문 너머에서 강당을 파괴하는 폭풍의 주먹질이 이어졌지만,두터운 철문은 간신히 버텨주고 있었다.일순간 가쁜 숨소리만이 어두운 복도를 채웠다.서나래는 곧바로 바닥에 쓰러진 도훈의 어깨 상태를 확인했다."완전 탈구야. 지금 당장 정복(Reduction)해야 해. 차 반장, 이 악물어!"서나래의 지시에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서나래가 도훈의 오른팔을 고정하고 태풍이 그의 몸을 붙잡은 상태에서,서나래가 단호한 힘으로 도훈의 왼쪽 어깨축을 밀어 넣었다.툭- 하는 불길하고도 명확한 소리와 함께 뼈가 제자리를 찾았고,도훈은 짧은 신음과 함께 기절하듯 수아의 무릎 위로 쓰러졌다.수아는 그의 얼굴에 묻은 진흙을 닦아내며 소리 없이 오열했다."바보 같이…… 매번 저렇게 몸을 던지면서 왜 괜찮다고만 하는 거야……."영웅들의 육체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 부서지고 있었다.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는 순간들의 연속이 이어지고 있
주민들의 대피가 80% 이상 완료될 무렵,대피소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었던 수술 환자 최 어르신의 침대를 옮기는 과정에서 사단이 났다.강당 무대 뒤편 대기실에서 간신히 복부 비장 파열 수술을 마친 노인의 이동용 침대가깨진 유리 파편과 진흙이 뒤엉킨 강당 바닥에 바퀴가 걸려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수동 흡인기를 들고 있던 간호사와 수아가 필사적으로 침대를 밀었지만,바람의 역풍이 정면으로 들이치며 침대 자체가 옆으로 전복될 위기에 처했다."안 돼! 환자 바이탈 아직 불안정해! 침대 흔들리면 재출혈 일어나!"서나래가 비명을 지르며 침대 쪽으로 몸을 날렸다.그녀는 자신의 온몸으로 침대 프레임을 붙잡아 고정하려 했지만,들이치는 돌풍의 무게는 가녀린 여의사의 힘으로 당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침대가 바닥에서 둥실 떠오르려는 찰나,도훈이 소방관의 직감으로 바닥을 구르며 침대 다리축을 양팔로 감싸 안았다."끄아악!" 도훈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다친 왼쪽 어깨에 환자의 무게와 돌풍의 압력이 고스란히 얹어지며견포 관절이 완전히 탈구되는 극심한 고통이 찾아온 것이다.도훈의 이마에서 핏줄이 터질 듯 솟아올랐고, 그의 눈에서 고통 어린 눈물이 흘러내렸다.하지만 도훈은 팔을 풀지 않았다."민 순경님…… 지금 밀어요! 나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밀어!"수아는 도훈의 비명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이 악물고 노인의 침대 상단을 붙잡아 복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서나래와 간호사가 필사적으로 침대를 받아내며마침내 환자는 안전한 안쪽 교실 복도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그러나 그 순간, 강당 창틀을 홀로 버티고 있던 강태풍의 구역에서 불길한 파열음이 들렸다.지탱하던 철제 책상들의 나사가 강풍의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간 것이다."차도훈! 당장 빠져!" 강태풍이 소리쳤지만,어깨가 탈구된 도훈은 진흙 바닥에서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거대한 강풍의 소용돌이가 부서진 바리케이드를 뚫고 강당 내부로 폭사하듯 들이쳤고,그 중심에
역풍의 기세는 갈수록 잔인해졌다.연실초등학교 3층 강당의 천장 석고보드가 바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퍽-, 퍽- 소리를 내며 뜯겨 나가기 시작했다.틈새로 쏟아지는 빗물은 이미 깨끗한 물이 아니었다.해안가에서 강풍을 타고 날아온 짠내 나는 바닷물과 흙탕물이 뒤섞여강당 바닥을 순식간에 진흙탕으로 만들었다.주민들이 안쪽 대피 교실로 이동하는 속도는 더뎌졌고,사방에서 터지는 비명은 폭풍우의 소음과 섞여 극도의 혼란을 야기했다."지직…… 본부, 여기는 민수아! 강당 내부 붕괴 징후 발생! 주민 이송 지연 중!"수아가 무전기에 대고 절규하듯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지독한 기계음과 잡음뿐이었다.통신은 완전히 마비되었다.이제 그 어떤 외부의 도움도, 지휘 계통의 명령도 의미가 없었다.오직 눈앞의 생명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현장 대원들의 본능만이 유일한 법이었다.도훈은 부서진 문짝을 뜯어내어 창문을 막아선 태풍의 옆에 덧댔다.오른팔 하나로만 힘을 쓰다 보니 이미 어깨 관절에서 뚝뚝 거리는 불길한 마찰음이 들려왔다."제길, 아까 전면부 태풍은 양반이었네. 이 녀석은 아주 도시를 가루로 만들 작정이야."도훈이 씹어뱉듯 말하며 날아오는 부서진 나뭇가지를 고개를 숙여 간신히 피했다.나뭇가지는 강당 벽면에 박혀 그대로 쪼개졌다.그만큼 바람의 파괴력이 흉포했다.서나래는 강당 바닥에 엎드린 채 이동하지 못하고 있던 임산부와 노약자들을 향해 기어갔다."산모님, 제 눈 보세요. 숨 크게 쉬세요. 제가 여기 있으니까 아기도 절대 잘못 안돼요!"서나래는 자신의 의사 가운을 벗어 산모의 머리 위를 덮어주며 그녀를 부축했다.사방에서 튀는 석고 가루와 유리 파편 속에서도 서나래의 손길은 흔들림이 없었다.그녀에게는 이 아수라장이 곧 반드시 사수해야 할 병원의 수술실과 다름없었다.강태풍은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압박 속에서도 한 인치도 물러서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서나래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그녀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강태풍의 거구는마치
폭풍의 눈이 빠져나간 연실초등학교 3층 강당은 그야말로 생지옥의 초입이었다.북서쪽에서 가공할 속도로 밀려드는 후면 강풍대는앞서 겪었던 전면부의 바람과는 궤를 달리했다.이미 한 차례 해일과 폭풍우에 두들겨 맞아 약해질 대로 약해진 도시의 잔해들이시속 180킬로미터가 넘는 초강력 돌풍을 타고 거대한 흉기가 되어 날아다녔다.콰과광-! 하는 비명과 함께 강당 좌측의 대형 통유리창 세 장이 통째로 뜯겨 나가며날카로운 유리 파편과 비바람이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안쪽으로 사정없이 들이쳤다."모두 엎드려! 머리 감싸십시오!" 강태풍의 사자후가 폭풍의 괴성을 뚫고 울려 퍼졌다.강태풍은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던 노인과 아이를자신의 거구의 몸 아래로 밀어 넣으며 등을 둥글게 말았다.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그의 방수 재킷을 찢고 등판을 스쳐 지나가며 붉은 선혈이 튀었지만,태풍은 신음 한 자락 내뱉지 않았다.그의 눈은 이미 부서진 창문 너머, 거대한 어둠이 소용돌이치는 바다와 하늘을 향해 있었다."차 형사! 책상이랑 매트리스 다 끌고 와! 여기 안 막으면 강당 전체가 바람 길 돼서 지붕까지 날아간다!"태풍이 무너진 창틀을 온몸으로 지탱하며 소리쳤다.도훈은 이미 다친 왼쪽 어깨의 통증으로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소방 도끼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오른팔 하나로 육중한 철제 책상들을 끌고 왔다."말 안 해도 가고 있습니다, 해경 형씨! 민 순경님! 주민들 안쪽 복도로 유도하는 거 도와줘!"도훈이 악을 쓰며 책상을 창틀에 박아 넣었다.수아는 주민들의 비명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교탁을 붙잡은 채 메가폰을 들었다."통제에 따르세요! 1분대부터 차례대로 오른쪽 연결 복도로 이동합니다! 짐은 버리세요, 목숨이 먼저입니다!"수아의 단호한 목소리가 극도의 공포에 질려 있던 주민들의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하지만 바람의 수압은 상상을 초월했다.강태풍과 도훈이 버티고 있는 철제 책상 바리케이드가"쿠구구구" 소리를 내며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인간
"기압이 다시 요동칩니다! 폭풍의 눈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후면(꼬리) 강풍대 진입 10분 전!"수아가 모니터의 급격한 수치 변화를 보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고요했던 하늘이 다시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이번엔 남동풍이 아닌, 반대 방향인 북서풍이시속 180킬로미터의 가공할 만한 속도로 초등학교 건물을 정면으로 때려왔다.콰과광-! 하는 소리와 함께강당의 대형 유리창들이 일제히 깨져 나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다.의 마지막 심판이자, 가장 잔인한 2차 공습의 서막이었다."대원들! 깨진 창문에 매트리스와 책상으로 차단벽 만들어! 주민들을 안쪽 교실로 전원 대피시킨다!"강태풍이 부서진 창틀을 붙잡고 포효했다.매서운 바람이 그의 몸을 찢어발길 듯 몰아쳤지만,강태풍은 대지를 디딘 거대한 바위처럼 버티며 책상들을 쌓아 올렸다.도훈 역시 다친 팔의 통증을 잊은 채소방 도끼를 들고 문을 개방하며 주민들을 안전한 안쪽 복도로 안내했다."안쪽으로 들어가세요! 머리를 숙이십시오!"수아는 주민들의 행렬을 엄호하며 날아오는 유리 파편을 온몸으로 막아냈다.서나래는 수술 환자의 침대를 안쪽 교실로 옮긴 뒤,다시 구급상자를 메고 강태풍의 곁으로 달려갔다.깨진 유리 파편에 대원들의 손과 얼굴이 찢어지며 피가 흐르고 있었다.서나래는 날아오는 폭풍우를 정면으로 맞으며 그들의 상처를 압박했다."내가 말했죠! 내 허락 없이 다치지 말라고! 내가 여기 있는 한 아무도 못 죽어!"그녀의 불도저 같은 외침이 폭풍우의 괴성을 뚫고 강당에 울려 퍼졌다.바다에서 온 독종 강태풍, 육지의 영웅 차도훈, 불도저 의사 강나래, 그리고 단단한 열혈 순경 민수아.이 네 사람은 마침내 의 가장 잔인하고 거대한 마지막 공습의 핵 한복판에서,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 인간의 위대한 의지를 증명하기 위한최종 사투의 정점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