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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5화

Author: 은지아
민지현은 이제 공적인 이야기를 해봤자 송남지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을 알고 가벼운 수다나 떨기로 했다.

“요즘 서경 바닥이 아주 떠들썩해요. 성은 그룹에 큰일이 터졌다는데, 도무지 무슨 일인지 알아낼 수가 없네요. 인터넷에는 벌써 온갖 소문이 무성하더라고요.”

송남지는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민 실장님, 언제부터 이렇게 남의 집안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민지현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말을 받았다.

“관심이 없을 수가 있나요? 하 대표님이 제 최고 상사나 다름없는데 말이에요. 그분이 건재하셔야 저도 재스민 실장 자리를 평온하게 지킬 수 있는걸요.”

“재스민 사장은 나 아니었어요? 언제부터 정훈 씨가 민 실장님 상사가 된 거예요?”

송남지가 되묻자 민지현은 대답 대신 능청스럽게 굴었다.

“아무튼 관장님은 몰라도 돼요.”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 문밖에서 인기척과 함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송남지 씨, 하정훈 씨가 깨어났어요.”

송남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민 실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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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을 쓴 남편   제1036화

    “고마워할 거 없어요. 당신 딸이기도 하지만, 내 딸이기도 하니까요.”하연지의 백일잔치는 성대하게 치르는 대신, 가장 가까운 이들만 초대해 조촐하게 열렸다.오가은은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인파가 몰리면 소란스러우니, 첫돌이 되면 그때 가서 성대하게 열어주자고 말했지만 송남지는 그 너머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행여 자신이 불편해할까 봐 건넨 오가은의 깊은 배려였다. 하씨 저택을 떠나 있던 시간이 길었던 탓에, 오가은으로서는 송남지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교계 지인이나 친척들을 다시 마주하는 일을 부담스러워할까 봐 염려했던 것이다.손님은 많지 않았다. 최보라와 오지훈, 유경태와 곽지민, 민지현과 권우빈을 비롯해 남성에서 달려온 하정훈의 고모와 사촌 여동생 등, 하씨 가문의 가까운 친척 몇 명이 전부였다.하연지는 오가은이 직접 고른 크림색 우주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기가 막히게 부드러운 최고급 실크 소재였고 깃 부분에는 자그마한 데이지 한 송이가 섬세하게 수놓아져 있었다.“예뻐?”오가은이 하연지를 안고 고개를 숙이며 묻자 아이는 작게 하품을 하는 것으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오가은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예뻐. 할머니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뻐.”곁으로 다가와 한참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하정훈의 고모가 한마디 거들었다.“애가 어쩜 남지를 쏙 빼닮았네. 아주 예뻐. 정훈이 꼬맹이 적보다 훨씬 낫다.”곁에 비스듬히 서 있던 하정훈의 입매가 그 말에 씰룩거렸다.“고모, 저 어렸을 땐 안 예뻤어요?”그가 짐짓 묻자, 고모는 그를 힐끗 보더니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너 어릴 때? 어찌나 뚱한 표정이었는지 누가 어르고 달래도 웃지를 않아서 꼭 애늙은이 같았어.”그 말에 옆에 있던 최보라가 빵 터져 웃음을 터뜨렸다. 오지훈이 기겁하며 재빨리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는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좀 참아, 하 대표 체면도 좀 살려줘야지.”최보라는 그의 손을 찰싹 쳐내며 대꾸했다.“체면 차릴 게 뭐 있어? 하 대표가 먼저

  • 가면을 쓴 남편   제1035화

    하연지의 백일잔치는 하씨 저택에서 열렸다.송남지가 출산 후 이곳을 다시 밟은 것은 처음이었다. 차가 그녀가 수없이 오갔던 그 가로수길을 지나자, 길 양옆의 플라타너스는 이미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들이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청초하고 가느다란 선을 그리고 있었다.그녀는 뒷좌석에 앉아 하연지를 품에 안은 채, 머릿속에 선명히 박혀 있는 익숙한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경비실, 나한송 나무, 본채로 통하는 자갈길까지. 풍경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으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변한 것은 공간이 아닌 바로 그녀 자신이었고 품속에서 꼬물거리며 앙증맞게 침방울을 튀기는 이 작은 생명이었다.차가 본채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는 순간 매서운 겨울바람이 훅 끼쳐 들자, 송남지는 움찔하며 하연지를 품 안으로 더욱 바짝 끌어당겼다.바로 그때, 이미란의 들뜬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오셨다! 드디어 오셨어!”이미란은 앞치마에 밀가루를 묻힌 채 본채 문 앞에 서서, 붉어진 눈시울로 목소리를 떨며 주변을 향해 외쳤다.“얼른 회장님과 사모님께 작은 사모님이 오셨다고 전하세요.”송남지는 차에서 내려 하연지를 품에 안고 본채 문 앞에 섰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이 한때 머물렀던 집을 올려다보았다. 연노란색 외벽과 민트빛 블라인드... 모든 것이 정겨웠고 모든 것이 따스하게 느껴졌다.그때 하정훈이 반대편 차에서 내려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넥타이 없이 흰 셔츠에 짙은 회색 캐시미어 코트를 매치한 그의 차림은 평소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송남지의 허리를 받쳐 안았다.“들어가자. 엄마 아빠가 안에서 기다리셔.”송남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을 올랐다. 그 순간, 본채의 문이 안쪽에서부터 활짝 열렸다. 문 앞에는 깊은 와인색 원피스를 차려입고 머리를 정갈하게 올린 오가은이 서 있었다. 귀밑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진주 귀걸이가 그녀의 우아함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눈가가 붉어진 채 입가엔 미소를 띤 그녀의 모습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

  • 가면을 쓴 남편   제10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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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을 쓴 남편   제1033화

    권우빈이 초인종을 누르자 이미란이 문을 열었다.송남지의 품에 안긴 작고 뽀얀 아기를 마주한 순간 이미란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사모님.”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예전의 호칭을 불렀다.“이 아이가... 도련님의 아이인가요?”송남지가 환하게 웃었다.“네. 연지예요. 하연지.”이미란은 행여 아이가 깨질까 조심스러운 손길로 하연지를 안아 들었다. 이내 그녀의 뺨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울음 섞인 웃음을 짓던 그녀가 아이를 달래듯 중얼거렸다.“어쩜 이리 똑같을까. 도련님 어릴 적이랑 너무 닮았어요.”현관에 선 하정훈은 이미란이 하연지를 안고 거실을 서성이는 모습과 송남지가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거는 모습, 그리고 권우빈이 캐리어를 손님방으로 밀어 넣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모든 풍경을 눈에 담으며, 그는 문득 이 집에 그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무언가가 완벽히 채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그것은 단순한 온기나 안락함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감정, 바로 소속감이었다.그는 송남지에게 다가가 그녀의 목도리를 대신 풀어 옷걸이에 걸어주었다.“남지야.”그가 부르자 송남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앞으로 매일 와도 될까?”그의 눈동자에는 짙은 기대와 불안, 그리고 조심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사막을 아주 오랫동안 헤매다 마침내 오아시스를 발견했지만 그것이 신기루일까 봐 차마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그녀는 대답 대신 그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이모, 갈비찜 다 됐어요? 배고파요.”눈물을 훔치던 이미란이 이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다 됐고말고요. 당장 차려드릴게요.”하정훈은 거실 한가운데 선 채로 주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송남지의 뒷모습을 가만히 좇았다. 굳이 따라 들어가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서 있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도무지 감출 길 없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이미란의 품에 안긴 하연지는 작게 하품을 하더니 이내 다시 새

  • 가면을 쓴 남편   제1032화

    “남지야. 서경에 돌아가면 우리 새로 시작하자. 그럴래?”송남지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코다르의 햇살이 라벤더 꽃밭에 스며들 듯 아주 가볍고 아스라한 미소였다. 하지만 그 미소는 마침내 보드라워진 하정훈의 마음 밭에 한 알의 씨앗처럼 톡 떨어져 박혔다.“좋아요. 조금씩, 천천히 시작해요.”...서경으로 돌아가는 날,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하정훈은 코다르에서 서경까지 직항으로 이동할 소형 전세기를 마련했다. 송남지는 하연지를 품에 안고 창가 자리에 앉았고 권우빈은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에도 하연지는 겉싸개 속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무중력감이나 엔진의 굉음조차 아이에게는 닿지 않는 듯했다.송남지는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며 작아지는 해안선을 바라보았다.지중해의 짙은 남색 물결은 옅은 하늘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가느다란 선이 되어 구름 아래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코다르에서 보낸 지난 두 달의 시간,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시간 동안 홀로 아이를 기다리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세 사람이 함께하는 귀갓길이었다.송남지는 품 안의 하연지를 내려다보았다. 딸아이는 단꿈을 꾸는 듯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연지야.”그녀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우리 집에 가자.”비행기가 서경에 착륙했을 때, 창밖에는 가벼운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서경의 12월은 무척이나 추웠지만, 하정훈이 준비한 차는 계류장 안쪽, 비행기 트랩 바로 아래까지 그녀들을 마중 나와 있었다. 송남지는 두꺼운 캐시미어 코트 속으로 하연지를 꼭 품은 채 차에서 내렸지만, 차까지 향하는 짧은 걸음 사이로도 찬 바람이 옷깃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그녀가 저도 모르게 몸을 잘게 떨자, 하정훈이 즉시 자신의 코트를 벗어 그녀의 어깨 위로 덮어 주었다.“얼른 타.”송남지는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이를 품에 안고 뒷좌석에 오르자 하정훈이 그 옆으로 자연스럽게 따라 앉았고 권우빈은 조수석에 올라탔다.차는 천천히

  • 가면을 쓴 남편   제1031화

    하연지가 태어난 지 아흐레째 되던 날, 송남지는 퇴원했다. 코다르의 햇빛은 여느 때처럼 눈부셨다.하정훈이 짐을 챙기고 권우빈이 이를 거들며 세 사람이 병원 문을 나섰을 때, 이미 입구에는 클로딘이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손수 정원에서 수확한 오렌지 한 바구니와 싱그러운 라벤더 한 다발을 품에 안고 있었는데, 하연지를 마주하자마자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정말 예쁘구나.”그녀가 프랑코니아어로 나직이 말을 건넸다.아이보리색 포대기에 싸여 자그마한 얼굴만 겨우 내민 하연지는 오늘은 눈을 말갛게 뜨고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포도알처럼 검고 맑은 눈망울이 이 낯설고도 눈부신 세상을 가만히 응시했다.하정훈이 운전대를 잡고 송남지가 조수석에 앉았다. 뒷좌석 카시트에 몸을 실은 하연지 옆으로 권우빈이 앉아, 가만히 고개를 숙여 그 작은 생명을 내려다보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차는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눈부시게 푸른 지중해 바다 위로 햇살이 조각조각 부서지며 은빛 물결을 이루었고 멀리 날아오른 갈매기들의 하얀 날개는 청명한 하늘을 도화지 삼아 우아한 곡선을 그려냈다.송남지가 창문을 내리자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올리브나무 향을 머금은 바람이 밀려들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폐부 가득 차오르는 공기조차 달콤하게 느껴졌다.“정훈 씨.”그녀가 나직이 이름을 부르자, 하정훈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응?”“기억해요? 캐슬힐에서 나한테 했던 말.”하정훈의 손가락이 핸들을 가볍게 두드렸다. 잊었을 리 없었다. 단 한 구절도 빠짐없이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수줍던 첫 만남부터 이혼 후 조심스레 다가오던 모습, 자신이 아플 때 그녀를 모질게 밀어냈던 기억, 그리고 결국 그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까지도.“기억해.”그가 짧게 답했다.송남지는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응시하며 잠시 침묵했다.“아주 어릴 때부터 날 좋아했다고 했잖아요.”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나지막해서 자칫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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