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현실의 한계를 지우고, 감각을 극단까지 끌어올리는 차세대 VR 시스템. 오감은 물론 심박과 체온, 감정의 미세한 떨림까지 재현하는 기술은 오직 에로스피어에서 실현된다. 설렘, 긴장, 망설임, 욕망. 숨결 하나, 시선 하나까지 데이터로 기록되는 공간. 피실험자는 과연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어디까지가 기억이고, 어디부터가 욕망인가. 또한 가상 현실은 안전한가. 아니면, 날 것 없이 솔직해지는 또 다른 공간인가. 기억을 재현하는 순간, 감정은 현실이 된다.
View More“더럽고 치사해서 진짜.”
사직서를 제출했다. 1년 4개월을 다닌 중소기업. 아니, 좆소기업.
비전도 없는 주제에 요구사항은 왜 이리도 많은지, 책상에 앉아 훈수질만 해대는 꼰대들의 집합소와 다름없었고 그 덕분에 주저함 없이 그만둘 수 있었다.
편의점 앞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 2캔에 소주 1병을 벌컥벌컥 마셨다. 청승을 떨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을 삭히기 위해서. 이러지 않으면 오늘 밤은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 같아서.
밤 9시를 넘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온해인.”
오피스텔 앞에 다다른 순간, 커다란 그림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노란 가로등 불빛에 그의 얼굴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재원 오빠?”
“알아보네.”백재원. 고등학생 시절, 할머니 집에서 하숙을 하던 대학생 오빠. 살갑게 굴며 잘해주긴 했지만, 늘 커다란 안경에 찌질하기 그지없던 자식이 왜 이렇게 멋있어졌지? 풍기는 분위기는 또 왜 이래?
안경은 사라졌고 날카롭게 정돈된 턱 선과 단단하게 각 잡힌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셔츠 위로 드러난 체형도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더는 헐렁한 후드티 속에 어설프게 숨어 있던 몸이 아닌, 스스로를 지독하게 관리해 온 듯한 남자의 선이었다.
성공했다더니, 역시나 돈이 최고구나.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기도 하는구나.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그냥, 생각나서.” “아니! 집 주소 말이야.” “그것도 모를까 봐?”둘 사이의 공기가 묘하게 눅눅해졌다.
그의 시선이 해인을 훑었다. 붉게 달아오른 뺨, 헝클어진 머리카락, 술에 젖은 숨결까지 전부 들켜버린 기분.
유일한 가족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오피스텔로 이사 온 게 몇 년 전인데, 설마 넘쳐나는 돈으로 뒷조사라도 한 건가.
“왜 온 건데.”
재원은 한쪽 입꼬리를 느릿하게 올리며 명함 한 장을 건네주었다. 매끈한 재질, 묵직한 활자.
- Erosphere / 연구소장 / 백재원
“에로스피어, 알아. 기사에서 봤어.”
“퇴사했다며.”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미간도 잔뜩 찌푸려졌다. 취업이라도 시켜줄 생각인 건가? 동정이라면 사양이다. 그것도 백재원의 동정이라면 더더욱 사절이다.
“그래서?”
“임상 실험자를 구하고 있어. VR.” “VR? 가상현실?” “응, 감각 동기화 실험.”다시 한번 명함을 내려다봤다.
에로스피어. 기사에서 봤던 문장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몰입형 가상현실, 감각 재현 기술, 뇌-신경 인터페이스, 오감을 만족시킬 차세대 플랫폼.
뭐, 거창하긴 한데 어쩌라고?
“VR? 나보고 지금 게임이나 하고 앉아 있으란 소리야?”
“게임? 무식하기는.”이 자식 봐라, 낯짝은 물론 싸가지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네?
“오빠.”
경고 섞인 음성에도 재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더 가까워지며 그의 그림자가 해인의 발끝을 덮었다.
“촉각, 체온, 압력, 심박은 물론 기억까지 동기화되는 시스템이야.”
“그게 가능해?” “가능하니까 모집하겠지.”해인이 고개를 갸웃하자, 재원은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손이 네 손을 잡았던 기억.”
그의 손이 해인의 손등 위를 느릿하게 스쳤다. 찰나였다. 하지만 따스한 체온이 또렷하게 남았다. 술기운에 달아오른 피부 위로 더욱더 선명하게 새겨진 온기.
“방금의 온기, 압력, 심장 박동 속도까지. 완벽하게 재현돼.”
“그럼.. 그 안에서 느끼는 건 전부 진짜라는 소리야?” “뇌가 진짜라고 판단하면, 몸 역시도 그렇게 반응하니까. 흥분도, 긴장도, 쾌감도.”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말투와 행동 때문인지 이상하게 등줄기를 따라 전율이 흘렀다.
“보상은? 임상 실험이면 보상도 있을 거 아니야?”
“한 달에 천만 원. 기간은 네 선택.”고개가 번쩍 들렸다.
한 달에 천만 원? 퇴직금으론 길어야 세 달. 월세, 관리비, 현실적인 숫자들이 머릿속을 굴렀다. 통장 잔고는 물론 공과금 고지서까지. 노골적으로 솔깃한 금액이었다.
“왜 이렇게 세? 설마 위험한 거 아니야?”
“실험은 안전해. 단, 조건이 있어.” “뭔데?” “반드시 섹스 경험이 있는 자.”해인의 표정이 굳었다.
“뭐?”
“말했잖아. 감각 동기화 실험이라고. 신체 반응을 정밀하게 읽어야 해.” “...” “성적 자극에 대한 신경 패턴은 개인차가 커. 경험이 없는 경우 데이터가 왜곡된다고.”아씨, 어떡하지? 식은땀이 흘렀다.
없다고 말하면 기회는 날아간다. 게다가 스물다섯까지 섹스 경험이 없다는 걸, 하필 백재원 앞에서 인정하자니 자존심이 들끓었다.
“내가 설마 남자친구도 없었을까 봐?”
“됐네 그럼, 가자.” “지.. 지금?” “어.” “어디로..?” “연구소.”등을 돌린 재원이 차 문을 열었다. 고급 세단의 은은한 가죽 향이 배어 나왔다. 묵직하고 차분한 냄새가 그와 꼭 닮아 있었다.
“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천만 원. 그 돈이라면 적어도 구직 사이트를 뒤적일 필요가 없어진다.
조수석에 올라타자 차가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에로스피어. 현실과 가상을 뒤섞여버릴 연구소를 향해서.
*** 해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착한 건물은 딱 봐도 10층 이상, 고층 건물로 보였고 입구부터가 신비로웠다.도무지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된 게이트. 매끈한 메탈 프레임이 공중에 떠 있는 듯 연결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얇은 빛의 선이 흐르듯 깔려 있었다.
인식 센서가 차량을 스캔하자, 푸른빛이 차체를 따라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마치 다른 세계의 관문 같았다.
“여기.. 회사 맞아?”
“촌스럽기는.”차가 지하 진입로로 내려가자 벽면 전체가 반투명 디스플레이로 변했다. 데이터 그래프와 신경망 도식이 유영하듯 흐르고 있었다. 인간의 뇌 단면, 시냅스 연결망, 심박 그래프. 기술이 아니라, 생체를 다루는 공간인가?
“와...”
재원이 카드 키를 태그 했다. 투명 게이트가 갈라지듯 열리는 순간이었다.
“겁나?”
“아니거든.”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벽면 전체가 거울처럼 반사됐다. 술기운이 남아 붉게 물든 뺨, 긴장한 눈동자가 고스란히 비췄다.
“오늘은 적합성 검사만 진행할 거야.”
“검사? 무슨 병원 같네.” “비슷해.”문이 열리고 드넓은 복도가 이어졌다. 유광 블랙 바닥은 발을 디딜 때마다 미세한 빛이 파문처럼 번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마치 해인의 존재를 스캔이라도 하듯이.
복도 끝 자동문이 열리며, 검사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안쪽에 탈의실 있을 거야. 속옷은 전부 벗고 가운만 착용해.”
“응? 으응...”왜 이렇게 주눅이 드는 걸까.
검사실 안에는 각종 장비들은 물론 투명한 캡슐처럼 보이는 침대가 놓여 있었다. 안쪽을 얼핏 보니, 전극과 케이블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게 마치 사람의 신경을 밖으로 꺼내어 형상화해놓은 것 같았다.
해인은 곱게 개인 가운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괜히 거짓말을 한 건가? 걸리면 뭐라고 말하지?
아니야, 침착해. 의학적으로도 처녀막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고 하잖아. 자전거를 타다가도 파열될 수 있다는데.. 설마 그런 것까지 검사하진 않겠지.
브래지어와 팬티를 전부 탈의하고 가운 하나만 걸쳐 입었다. 허벅지 안쪽이 괜히 더 예민해진 느낌이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검사실의 차가운 조명과 함께 재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향해 흘러나왔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누워.”
유리 너머로 그가 서 있었다. 너무도 또렷한 실루엣에 손끝이 떨렸다.
발걸음을 옮겨 다다른 순간 자동으로 캡슐 도어 덮개가 열렸다. 팔과 다리가 자연스럽게 벌어진 상태로 고정되게끔 설계된 구조.
잠시 멈칫했지만 최대한 덤덤한 척 몸을 눕혔고, 투명한 덮개가 닫히며 외부의 공기가 차단됐다.
그의 목소리가 캡슐 안에서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시작해도 돼?”
“응.”- 삐, 삐, 삐익.
이질적인 기계음과 함께 시트가 움직였다. 마치 신체 구조에 맞춰 각도를 조정하듯이.
- 철컥. 철컥.
단단한 금속 장치가 뻗어 나와, 허리와 목을 단단히 고정했다. 본능이 경고하듯 숨이 멈췄다.
“오.. 오빠.”
“심박이 빠르네. 긴장하지 말라니까.”이어 손목과 발목까지 고정된 해인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도망칠 수 없는 자세. 가운 하나만 걸친 몸이 괜스레 더 노출된 느낌이었다.
“오빠, 이거 진짜.. 괜찮은 거야?”
“응.”캡슐 내부 조명이 푸른빛으로 변하더니 수많은 케이블이 온몸을 휘감았다. 살아있는 촉수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선들은 두께와 모양이 전부 달랐다.
그중, 몇 개의 케이블이 가운 속을 파고들었다. 쿵쿵쿵, 심장 소리가 더욱더 크게 울렸다.
“...!”
순간이었다. 케이블 선단에서 끈적한 액체를 뿜어냈다. 점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투명한 젤이 가운은 물론 온몸을 적셨다.
“전극 접촉을 위한 전도성 젤이야. 피부 저항을 낮춰야 신호를 읽을 수 있거든.”
거창한 설명이 해인의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몸이 자꾸만 움찔했지만 고정 장치가 움직임을 막았다.
가느다란 두 개의 케이블이 유두를 휘감자, 해인의 숨이 가빠졌다. 이런 검사라곤 예상하지 못했는데, 축축해진 가운 틈이 민망할 정도로 벌어져 버렸다.
“하.. 하아..”
“괜찮아, 호흡 고르게.”이번엔 두꺼운 케이블이 허벅지 사이를 파고들며 젤을 뿜어냈다. 두려움, 긴장감, 수치는 물론 몸은 이미 감각의 영역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하아.. 오.. 오빠.”
“괜찮다니까. 적어도 자격은 있어야 하잖아.”자격? 반드시 섹스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자격?
그래서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거구나. 나는... 천만 원이고 나발이고 백재원 앞에서 창피한 꼴만 당하게 생긴 거구나.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지금이라도 자격 미달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오빠...”
푸른 조명이 짙어지며 캡슐 내부가 깊은 심해처럼 변해버렸다.
미칠 것 같았다. 누군가가 젖꼭지를 핥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아무리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 않았다.
허리가 배배 꼬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 감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하.. 하아아.. 이상해.. 오빠..”
“적합 여부 판단, 스타트.”“...!”
촉수 같은 케이블이 음핵을 부드럽게 쓸어내더니, 또 하나의 케이블이 질구 안을 파고들었다. 파고든 케이블은 여전히 젤을 뿜어내며 부드러운 피스톤을 시작했다.
이게 뭐야..? 지금 기계 따위한테 내 순결을 바친 거야?
넣는다는 말은 없었잖아! 적합성 판단 검사라는 말만 했잖아..! 아랫배가 단단하게 긴장하고, 예민함은 자꾸만 증폭됐다.
“오, 오빠! 하아.. 하지 마..!”
떨리는 목소리로 내지른 신음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어느새 절반 이상 벗겨진 가운은 가슴은 물론 Y존까지 전부 드러내고 있었다.
백재원. 임상은 핑계고, 치졸하기 그지없는 변태 짓거리를 원했던 거야?
“그만.. 그만..! 하아.. 어떡해..”
아무리 애원해도 촉수 같은 케이블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자극받은 젖꼭지는 터질 듯이 팽창했고, 클리토리스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짜릿한 요의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흐릿한 시야로 유리 너머를 바라봤을 때,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모니터를 주시하던 시선이 해인에게 돌아왔다.
싸늘하게, 너무도 차갑게.
“거짓말을.. 했네?”
6개월 뒤, -KP 전자에서 출시한 VR 서비스, 러브 포텐의 인기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3.0 업데이트와 동시에 연일 매진 행렬을 벌이고 있는데요. 동시에 프로그램을 개발한 에로스피어의 주가 역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뉴스 화면을 보던 해인이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 남편이 백재원이라니. 사람들은 알까, 백재원이 밤마다 어떤 변태로 돌변하는지. 어제는 서재 의자에 2시간이 넘도록 꽁꽁 묶여있었다. 눈이 가려진 채 온몸을 핥아대는데, 아래쪽에 박혀 집요하게 떨어대는 딜도 덕분에 잠시 기절도 했었다.“온, 온해인..! 해인아...!” “아으... 죽어.. 나 죽어...” 그 기억을 떠올리며 뉴스를 보는데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두 사람은 결혼식 대신 혼인신고만 했다. 재원은 끝까지 식을 올리자며 설득했지만, 해인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초대할 하객도 딱히 없고. 웨딩 사진으로 간직하면 그뿐이니까. 대신 2주간 프랑스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솔직히 신혼여행이 아니라 호텔 투어 급.5성급 호텔을 죄다 돌며 밤이면 밤, 아침이면 아침. 눈만 마주치면 사랑을 나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선 그야말로 떡실신. 2주 만에 살이 3키로나 빠져 있있다. 그리고, 그날 새 생명이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허니문 베이비. 재원은 해인의 임신 소식을 알고 방방 뛰었다. 태명은 직접 해둥이로 지었다. 온해인을 쏙 빼닮은 아이이길 바라는 마음에.“해둥아~”왔다, 내 남편 백재원. “오빠, 사 왔어?” “당연하지.”손에 들린 장바구니 안, 낮부터 먹고 싶다고 졸라대던 청사과와 초코맛 아이스크림, 그리고 저녁을 만들 식재료까지.“배고프겠다. 손 씻고 금방 만들어줄게.” “뭐래, 내가 다 해놨어.”주방엔 이미 해인이 차려놓은 음식으로 가득이었다. 차돌 된장찌개, 계란찜, 김치볶음. 음식들을 확인한 재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 말라니까.” “지겨워. 요리라도 해야지.” “우리 해둥이 힘들잖아.” “적딩히 해. 얜
짜장면과 탕수육이 차려진 식탁. 해인은 팔짱을 낀 채 재원을 쏘아보았다. 이미 주방에 꽉꽉 들어찬 식기들은 물론 커플 머그컵, 커피잔, 와인 잔들을 모조리 봤기 때문.“무슨 생각이야?”재원은 야무지게 짜장면을 비며 해인의 그릇과 바꿔주었다.“말했잖아. 너랑 제대로,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다고.”“제대로 평범하게 살아. 궁전 같은 펜트하우스에서.”“집이랑 직장이랑 가까우면 퇴근이 없어, 퇴근이.”그리고 바로 위층이 카페테리아잖아. 너 쓰러진 곳. 너 칼에 찔린 곳. 나 거기 이제 끔찍해. 너무너무 소름 끼쳐.“그래서? 나랑 동거라도 하겠다는 소리야?”“응. 결혼 준비하면서.”“미친놈.”순간 재원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미친놈이란 말에 상처를 받아서가 아니라, 그 싸늘한 말투랑 눈빛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서. 하긴... 너무 내 생각만 하긴 했어. 욕? 들을만해.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짜장면. 자꾸만 식어가는 탕수육. “먹어. 불겠다.”“누가 결혼을 걸레랑 해.”결국 멈춰있던 젓가락이 짜장면 중간에 꽂혀버렸다. “말 그따위로 할래?”“기억 안 나? 오빠 입에서 나왔던 말이야.”“두고두고 후회했어. 말했잖아. 다 나 때문이라고.”“오빠 때문이든, 아니든 다 사실이잖아. 중독자도, 카이엔도, 성매매도.”온해인을 진짜 어떡하지. 저 굳게 닫힌 마음을 어떻게 되돌리지. 생각해 보니 제대로, 진심 어린 사과를 했던 적이 없다. 그저 미안하단 말을 한 게 다였을 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재원이 해인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털썩. 무릎을 꿇고 해인의 손을 움켜쥐었다. 당연히 깜짝 놀란 해인은 어깨를 세차게 때려댔고. “뭐.. 뭐야...! 일어나! 일어나라고!”“있잖아, 온해인. 스무 살 때부터 내 인생엔 늘 네가 있었어. 비틀리고 유치한 마음이 널 지옥으로 몰고, 또 몰았지만.. 그래도 사랑이었어. 그걸.. 네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순간에서야 제대로 깨달아버렸어. 미안해.” 해인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 입에서 나오
“장기 손상이 심각했습니다. 결장은 물론 담낭까지요.”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이런 걸까. 힘이 풀린 다리가 휘청거렸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워낙에 출혈량이 심해서요... 일단 상태를 지켜보고....”“선생님.. 제발요... 제발..”“중환자실로 옮기겠습니다.”중환자실로 옮겨진 해인은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서도 깨어나지 못했다. 연구소와 병실을 오가던 재원은 점점 피가 말랐다. 면회 시간이 되면 삑삑거리는 기계음을 들으며 손등만을 쓰다듬다 나오는 게 전부. “온해인, 언제까지 잠만 잘 거야? 샌드위치 먹고 싶다며.”이번 일을 겪으며 감각 동기화 실험도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어차피 처음부터 온해인을 위한다는 그 개같은 집착으로 만들었던 프로그램. 더는 아무런 의미도, 기대도 없었다.직원들도 재원의 눈치를 살피며 그저 러브 포텐 출시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힘썼고, 각자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낼 뿐이었다. 오늘도 면회 시간에 맞춰 따뜻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던 중.“으...”자그마한 신음과 함께 해인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온해인..? 정신이 들어?”“...하......”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조금씩 열리고, 흐릿한 눈동자가 재원을 향해 움직였다.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백... 재원....”“됐다, 됐어... 하.. 해인아..”손등을 이마에 대고 감사하다는 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를 정도롤 중얼거렸다. 의료진들이 서둘러 상태를 살피고, 다행히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다는 기적 같은 말도 흘러나왔고 말이다. 이번엔 정말 온해인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 그동안 VR에서 혼절은 물론, 칼이 심장을 관통하고, 물속에 뛰어드는 장면을 보며 즐거워했는데.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다는 상상을 하니, 못살게 굴었던 날들만 떠올라 가슴을 후벼파고 숨통을 조였다.그리고 분명.. 사랑하고 있었다. 못나고 한심한 사랑이었지만 한 번도 온해인이란 존재 자체를 잊은 적이 없었다. ‘또 백재원이네..’해인은 진통제에
어느새 파고든 손가락. 아래위에서 질척거리는 소리가 마치 합을 맞추듯 울려 퍼졌다. “아응, 읏..!”분명 백재원인데, 백재원이 가슴을 빨며 손가락을 넣었는데. 이건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로 적응되어야 하는 감각인데. 이상하게 그 모든 행위가 다정하게 느껴져 온몸이 달아올랐다. 마치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듯 구는 집요한 몸짓 같달까. “오빠, 잠, 잠깐..”“입으로 해줘?”“아니, 그 그게 아니라..!”고개가 스르륵 내려가 골짜기를 핥았다. “응으읏..! 하...!”혀가 닿자마자 활처럼 휘는 허리. 재원은 떠오른 허리를 두 손바닥으로 받쳐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혀를 놀렸다. 음핵을 빙그르르 돌리다가도 쪽, 마치 뽀뽀를 하듯 소리를 내고. 그러다가 또 입술로 모아 쫍쫍쫍. 빨대를 빨 듯 빨아당기고. “아흐으윽..!”아프지 않게 살살 잘근거릴 땐 참지 못하곤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동안 VR과 현실에서 해왔던 그 어떤 정사보다 짜릿한 느낌이었다.타액과 애액이 뒤엉켜 더는 젖을 곳이 없을 정도로 축축해진 음부. 고개를 든 재원의 눈빛은 욕정으로 들끓고 있었고, 그 욕정만큼 커져 버린 좆이 구멍을 벌리며 전진했다. “으, 이상해.. 오늘 진짜.. 하으응..”마찬가지였다. 온해인의 구멍은 오늘도 오물거리며 자지를 씹어 먹듯 조여대고 있었으니까. 다만, 전처럼 막 다루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천천히, 느긋하게, 이 뜨거운 구멍이 주는 감각을 고스란히 느끼며 지켜보고 싶었다. 재원의 시선이 자신을 뚫어질 듯 응시하자, 해인은 고개를 돌려 입술을 깨물었다. 늘 폭력적으로 박아대는 피스톤에 익숙했는데, 지금은 달랐다. 그의 성기가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져 차마 그를 바라볼 수 없었다.재원은 손을 뻗어 다시 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르륵 눈을 뜬 해인의 눈동자는 이미 흐릿하게 풀려 있었다. “나 봐, 눈 감지 말고.”찌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해인의 몸이 아래 위로 흔들렸다. 엄지 끝이 젖꼭지를 살살 굴리다, 손바
카이엔은 해인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가죽 채찍을 꺼내들었다. 가슴을 향해 찰싹! 내리치자 유두 집게에 달린 방울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냈다.“아앙...!”“아, 귀여워.”가학심이 들끓어 참을 수가 없었다. 핑크색 시스루 세일러복에 안대와 볼개그. 벌써부터 반짝거리는 허벅지 사이까지. 그는 해인을 매트리스 위에 엎드리도록 리드하고, 제대로 된 채찍질을 시작했다.찰싹, 찰싹! 새하얀 엉덩이에 붉은 가로줄이 고스란히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엉덩이에 가해지는 채찍질은 난생처음 겪는 건데, 이상하게 고통스러우면서도 싫지 않은 기분이
“지금 이 기분 똑똑히 기억해. 이곳에선 매일 느끼고 즐길 수 있으니까.”“아.. 아아.. 하앙, 앙!” 난폭하기 그지없는 피스톤에 자궁구가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해인의 입에서는 날것 없는 교성만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임상이고 뭐고, 오직 제 위에서 허덕이는 수컷, 야생마 같은 백재원의 몸짓에 인형처럼 흔들리고 있을 뿐. “아, 안 돼.. 오빠.. 나 너무 이상해...”질벽이 쫀득하게 수축하며 좆기둥을 쥐어짜기 시작하자 재원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커다란 육봉을 머금은 채 활처럼 휜 허리, 새하얗고 탐스러운 몸매.
“거짓말을.. 했네?”푸른빛으로 일렁이던 캡슐 조명은 어느새 붉은 경고 빛으로 변해 있었다. 모든 게 들켜버린 순간이었다. 몸은 솔직했다. 말로는 감출 수 있었어도 신경 신호는 거짓을 모른다. 그래프는 적나라했고 반응 파형은 경험이 없는 신체의 정보와 정확히 일치했다. 모든 케이블이 움직임을 멈추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처구니는 물론 화가 났던 것도 잠시, 해인의 고개가 힘없이 툭 떨어졌다. 처녀라는 사실 하나가 모든 걸 망쳐버렸다니. 이대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니.“미.. 미안해...”투명 덮개가 열리고 속박 장치도 전
“더럽고 치사해서 진짜.” 사직서를 제출했다. 1년 4개월을 다닌 중소기업. 아니, 좆소기업. 비전도 없는 주제에 요구사항은 왜 이리도 많은지, 책상에 앉아 훈수질만 해대는 꼰대들의 집합소와 다름없었고 그 덕분에 주저함 없이 그만둘 수 있었다. 편의점 앞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 2캔에 소주 1병을 벌컥벌컥 마셨다. 청승을 떨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을 삭히기 위해서. 이러지 않으면 오늘 밤은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 같아서.밤 9시를 넘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온해인.”오피스텔 앞에 다다른 순간, 커다란 그림자가 성큼성큼
re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