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촬영은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어느새 창밖은 어두움이 내렸다.
현민호의 화보 컨셉은 남자다운 섹시함이었다. 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은, 왕의 무사 역할의 이미지를 이어 가는 촬영이었다.
감독은 회사와 논의한 사진 방향이 못내 아쉬워 추가 컷을 더하기로 했다.
“마스크가 컨셉에도 잘 어울리고 사진도 잘 나왔는데, 실물이 더 좋네.”
감독의 의견에 스태프도 동의했다.
“실물은 청량미, 소년미가 넘치네요. 저도 드라마하고 실물 이미지가 많이 달라 건의를 해볼까 했어요.”
“그럼, 이번에는 청순 소년미로 가보자. 옷은 새깅 스타일로 입혀.”
스태프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새깅스타일이라고? 청량한 컨셉 아니었나.’
“자, 이번에는 청량하게 가자. 나이답게.”
감독의 요구에 현민호는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옷을 이렇게 입혀 놓고 뭐라는 거야.’
하지만 프로답게 촬영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연기를 시작했다.
민호는 머릿속에 그 날을 떠 올렸다.
‘처음 고등학교 시절 다니와 자전거를 타던 날처럼.등뒤에서 기대 우는 너를 어색하게 안아 주려 했던 날처럼.’
눈은 편안히 뜨고. 엷은 미소로 벌어진 입술이 아름다웠다.
입대를 앞둔 것 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눈이 젖어왔다. 연기인지 아닌지 그의 무해한 슬픈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딱 2년만, 너와 나의 긴 시간 중에 2년만’
젖은 눈을 간직한 채 먼 곳을 응시하는 표정도 훌륭했다.
촬영을 드디어 마치고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수고하셨습니다.”
피디와 매니저 그리고 스태프들이 작품을 같이 보았다.
“어우야, 재능, 외모 다 있네.”
“아깝네. 너무 일찍 루머가.”
감독이 안타까운 듯 다가와 민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군대 갔다고 끝 아니야. 재능 있으니까 잘 견뎌.”
“네. 감사합니다.”
스태프들의 시선이 이전과는 달랐다. 악수하며 마주치는 시선들이 동정인지 비난인지 알 수 없었다.
스물세 살, 만으로는 이제 스물한 살 어린 모델은 감독 스태프들에게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잘 다녀와요.”
“수고하셨습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인사를 하고 나오는 어린 모델에게, 기어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박혔다.
복도를 채우고 그를 보러 온 사람들 사이에 여러 말들이 들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여자들하고 소문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바람둥이겠어.”
“어우, 아까 촬영할 때 봤지. 부럽네.”
“그래도 소문이 좀, 그게 다가 아냐. 김지욱 알아. 걔가 재랑 술 마시러 가는 거 봤다고 해.”
“저 다리를 보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덤볐겠지.”
자신의 속마음이 얼굴로 나오지 않도록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민호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자, 매니저가 나섰다.
“우리 민호 순하고 착한 애예요. 이상한 글 다 고소했어요.”
민호가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시선을 돌려 창을 보았다.
다니말고는 여자라고는 없었다. 친구들도 사내들뿐이었다. 일주일 전까지 동정이었던 자신이 들을 소리는 아니었다.
…
매니저는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 차를 세웠다. 하지만 민호는 집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지하를 눌렀다. 집은 애초에 들를 계획이 없었다.
고급 아파트 단지였고 이 단지의 몇 안 되는 펜트하우스가 민호의 집이었다. 현성화학의 대표 집으로는 과하지는 않았다.
중견 기업으로 탄탄한 재무를 가지고 있어 현금이 많은 알짜 회사였다.
민호는 어머니가 40세에 겨우 낳은 늦둥이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기에 모델 일도 끝까지 반대하지 못했고, 아들을 위해 회사를 차려줄 계획도 있었다.
바람은 가업에서 일을 배우길 원했지만, 태어나는 것도 지금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현민호는 자신의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 명의는 이미 다니 앞으로 돌려놓았다.
연인의 집까지 30분, 내비게이션을 보며 보험증 그리고 조수석 아래의 쇼핑백을 가방에 넣었다. 현금과 보석 케이스였다.
민호는 건강미가 넘치며 멋있는 다리를 가진 운동 마니아 모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데뷔한 지 1년 6개월, 문제의 드라마까지 참여할 수 있었다. 왕의 무사로 조연이고 대사도 많지 않았다.
무사에 잘 어울리는 콧대와 얼굴선이 찬사받았고, 그가 심문 후 구출되어 물을 삼키는 장면이 SNS 퍼지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국내 기사까지 점령하던 그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 갑자기 루머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민호의 차가 미끄러지듯 다니의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아. 기분 정말 나쁘다.’
다시 한번 촬영 생각에 욕하며 차에서 내렸다.
‘삐빅’
20층을 누르고 다니의 집이 가까워지니 여자 친구가 더 보고 싶었다.
2002호, 민호는 능숙하게 비밀번호를 눌렀다. 자신의 생일을 비밀번호로 해 놓은 다니가 귀여워 웃음이 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다니가 달려와 안겼다,
“민호야, 왔어.”
자신의 품에 안긴 다니의 밝은 머리칼과 커다란 갈색 눈동자를 천천히 바라봤다.
뛰어오른 다니를 안아 올리며, 힘들게 마음을 얻은 이 여자를 힘주어 안았다. 자기 가슴에 닿는 풍만한 가슴과 향긋한 꽃 내음이 어지러웠다.
민호는 다니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니야, 사랑해.”
사랑하는 연인의 붉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러고는 뺨을 맞대고 속삭였다.
“예쁘다.”
현민호는 감탄하며 귓볼에 입술을 가져갔다.
다니는 민호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그의 체취를 맡으며 심호흡했다. 기억하고 싶었다.
‘너무 사랑해. 너 없이 견딜 수 있을까?’
“오늘 어땠어? 촬영 잘했어?”
민호는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민호의 얼굴이 어둡자, 걱정이 밀려왔다. 루머 속에서 촬영했을 그가 걱정이 되었다.
대답 없이 그는 입술을 내려 다니의 입술에 가까이 가져갔다.
사랑스러운 연인을 조심히 안은 채 다시 입술을 포갰다.
민호의 도톰한 분홍 입술에 자기 숨을 불어 넣으며 다니는 눈을 감았다.
다니는 단골인 세라 헤어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원장님.”다니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익숙하게 빈 의자를 찾아 앉으며 다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커트해 주세요. 짧게.”“어깨 닿게?”“아뇨 커트해 주세요. 진짜로.”“말해봐. 왜 울어.”다니에게 휴지를 뽑아 주며 초로의 원장은 걱정스럽게 물었다.“제가 이건 친구들한테도 창피해서 말 못 해요.”휴지를 받아 든 다니가 고개를 숙였다.“그런 건 나한테 해야지. 미용실 삼십 년 상담력이 그냥 쌓인 게 아니지. 근데 커트 말고 짧은 단발하지.그 길이도 나중에 많이 아쉬울 수도 있어.”“저 머리 금방 자라요. 6년을 수절해서 야한 생각도 안 하는데…엉엉.”‘꺽꺽’옆자리 손님도 남자 미용사도 이야기를 들으러 숨을 죽였다. “우리가 들어줄게. 자 말해 봐.”세 사람의 시선이 눈물을 닦는 다니에게 쏠렸다.“남자 친구가 군대 갈 때 임신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23살이었어요.사정상 2년은 연락도 끊고 다시 만나기로 했고 전 이사도 안 했고 현관 비밀번호도 안 바꾸고…”꺼이꺼이 우는 모습에 다들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아 근데 뭐.”다음을 궁금해하며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아이는 다섯 살이고 혼자 키우느라… 흐으흑”“그런데 아이 아빠가 나타났어요.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고 내가 있는 곳에 일하러 왔어요. 수고했다 사랑했다 그럴 줄 알았는데 회사일 힘들면 말하라고…”“뭐 그런 나쁜 놈이 다 있어..”“아가씨는 아이 아빠니까 미련이 남는 거고, 그 남자는 아이가 중한지 뭔지 모르니까 관심없는 거고. 근데 아가씨처럼 예쁜데 마다해?”“혹시 재벌 뭐 이런거야?”원장의 말에 다니는 깜짝 놀랐다.“아뇨, 그냥 좀 부자예요.”“아직 총각인 거지?”“네.”“혹시 애인있으면 잘 벼르고 있다가 결혼 할 때 즈음 터트려.”“그때 친자소송하고 양육비 받고.”“군대가서 헤어지는 거 많아. 양육비 받을 수 있어 못 받은 거 까지 .”“그럼 한 분씩 다시
다니는 마른 침을 삼켰다.변함없이 민호는 자신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문 앞에 서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심호흡했다.현에단 본부장 사무실 앞에서 다니가 떨며 서 있었다. 지나가는 임 주임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다가왔다.“떨리지? 나도 그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떨려. 하하. 긴장하지 마. 그래봐야 연하지 안 그래?”“네, 그 건 그런데 동갑이에요.”다니가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이 더 나이 들어 보이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쾅쾅’임 주임이 장난으로 사무실 문을 세게 두드렸다.긴장했던 다니는 당황해 임 주임을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들어와요.”그의 그리운 저음의 목소리가 문 저편에서 들려왔다.다니가 들어서자, 문 가까이 서 있는 민호가 보였다.그는 사무실 중앙에 보이는 흰 테이블 앞에 그녀를 세워 두었다.그러고는 손에 힘을 주어 문을 조심스레 소리 나지 않게 잠갔다.창의 블라인드는 내려져 있었다.다니는 침을 삼키며 자신이 알던 민호라면, 사람들이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은 할 것 같아 뒷수습을 고민하고 있었다.‘어떻게 진정시키지…’현민호가 앞에서 손을 내밀었다. 손이 닿자 자기 품으로 잡아당겨 부드럽게 안았다.그는 다니의 어깨에 고개를 숙여 기대었다. 깊은 숨을 들이쉬기 시작했다.“잠시만… 움직이지 마.”다니는 손을 올려 그의 머리를 만졌다.민호가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다니는 그의 반응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이제 그가 돌아왔다고 느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민호는 여전히 어깨에 기댄 채 다니를 놓아 주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듯 둘의 숨소리만 작은 공간에 퍼졌다.다니는 어느새 기쁜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렸다. 그의 거친 숨과 몸에서 나는 좋은 냄새가 그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민호는 천천히 다니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팔길이만큼 밀어냈다.그러고는 그는 블라인드를 걷고 다시 심호흡했다. 천천히 다니 앞으로 다시 걸어 어색한 듯 슬픈 미소를 지었다.“6년은 긴 세월이지? 무슨 일이든 일
테이블에는 갈비찜, 문어숙회 그리고 여러 종류의 나물들이 골고루 차려져 있었다.정성스러운 반찬들을 무시하고 현민호는 밥에 찬물을 부었다. 입속에 모래알같이 굴러다니는 밥알을 넘기려 한 것도 있었고, 유독 최민주가 싫어하는 행동이기도 했다.늘 쳐져서는 밥 몇 술 뜨지 않던 현민호가 일부러 자기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저렇게라도 하는 것은 기뻐할 일이기도 한데, 저 녀석이 갑자기 저러는 이유를 생각했다. 짙은색으로 코팅이 된 안경를 쓰고 있는 최민주는 아들의 시선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들놈 하는 짓은 너무 뻔했다.‘대체 왜 또 심통이 난 건지.’현민호가 화를 내는 것은 하나뿐이다.“너 걔 찾지 마라.”“무슨 말이야. 걔가 누군데.”민호는 능청스럽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엄마의 추리력에 흠칫 놀랐다. ‘다니를 들키면 안 돼.’유부녀 다니라도 보기라도 하려면, 어머니에게서 다니를 감춰야 한다.“내가 일흔다섯이다. 주변에 손주 없는 사람 나밖에 없어 골프 가서도 할 말도 없고.”“강현아. 이제 재혼해라.”엄마의 먼 친척의 아들이라는 최강현은 입양을 고려해 데려온 아이였다. 천덕꾸러기로 지내던 가난한 집 혼외자를 외할머니의 권유로 데려왔다. 그러나 생모가 입양에 동의를 하지 않았다. 입양이 미루어지다 기적같이 민호가 태어났다.차별을 안 하겠다며 유학을 보냈고, 엄마라 부르던 고모라 부르던 선택을 하라고 했는데 유학 후 강현은 고모라 부르기 시작했다.현성이 성장하고 외가도 회사 일에 관여하며 강현은 CK 홀딩스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다. 직급은 전무지만 실제 오너인 그가 회사를 비우고 대영으로 왔다.민호는 형이 대영의 인수에 나서고, 자신의 후계수업을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무엇을 받았을지 궁금했다.“고모부님, 고모가 이번에는 나서지 않겠다고 하시면 재혼하겠습니다.”“내가 뭐?”최민주가 인상을 쓰며 최강현을 보았다. ‘아들놈들은 키워 봐야 소용이 없어.’“고모가 결혼하래서 했는데 이혼했어요. 고모가 소개하는 여자하고 다시는 결
운전석에 앉은 민호는 다니를 보지 않았다.운전대에 팔을 접어 올린 채 애써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다 입을 뗐다.“너 나한테 왜 이러냐?"다니는 입술을 꽉 다문 채 차에서 내리려 문을 열려고 했다. 차 문은 잠겨 있었다.“열어줘.”민호는 말없이 거칠게 안전벨트를 당겨서 채워 주었다.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도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정확히 몰랐다.“문 열 거 아니면 집에만 데려다줘.”마음 가라앉히며 운전에 집중하려 애썼지만, 자신의 화가 어디서 올라오는지 답답해지기만 했다.“아까 그 인간하고 무슨 일이야? 둘이 사겨?”“둘 아니고 여섯 명이 같이 있었어. 모임에 잘 안 나오던 선배라는데 오늘 처음 봤어. 귀찮게 해서 피한 거잖아…아, 넌 알 거 없어.”“유정우하고 사귀냐?”“알 거 없다니까.”“말해. 아까 그 여자는 아무 사이 아니야.”“사귀었으면 하고 묻는 거지? 네 마음 편하게. 편하게 생각해.”“대답해.”“...”두 사람의 대화가 끊어졌다.민호는 운전했고 다니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얼굴을 돌려 창밖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다니를 보니 마음이 괴로웠다.어두운 지하 주차장에서 민호의 차가 멈춰 섰다. 다니는 한마디 말도 없이 높은 시트에서 조심히 내렸다. 다니는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걸어갔다.짙은 눈썹을 구긴 채 민호는 차에서 내려서서 다니에게 지하 주차장이 울리도록 소리 질렀다.“야, 신다니. 너 어떻게 하고 싶어? 불구덩이라도 같이 갈까? 너 우리 엄마, 너희 새엄마 몰라?”“...”“나 잡은 건 너야.”다니가 뒤돌아 서서 민호를 보았다.‘타악.’차 문을 부서져라 닫은 민호는 성큼성큼 걸어서 다니에게로 갔다.달려들듯 다니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자신의 몸을 숙였다.민호는 거칠게 다니의 입술을 물었다. 숨을 쉬지 못해 다니가 밀어낼 때까지 입속의 모든 것을 삼키며 혀를 물고 볼을 빨아 당겼다. 목울대가 움직이고 그의 뺨에 보조개가 선명해졌다. 오아시스에서 물을 마시듯 그의
긴장을 한 다니는 테이블에 앉아 손발을 떨고 있었다. 붉은 립스틱을 살짝 바른 얼굴이 평소와 달라 보였다.무대에서 서는 것은 가끔 해왔기 때문에 떨지 않았었다. 어차피 같은 노래를 불렀고, 같은 의상을 입었다.준비할 것도 뭐도 없는 무대에 긴장하는 것은 민호를 만나게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무대를 살펴보니 조명도 있고, 마이크도 괜찮은 제품이었다.다니의 눈에 테이블 위의 맥주가 보였다. 긴장한 다니가 연거푸 맥주를 마셨다.“괜찮아. 잘할 거야. 같이 가 줄까?”“네. 무대 아래까지 같이 가주시겠어요.”김 주임과 함께 걸어가며 다니는 긴장한 듯 어색하게 웃었다.다니의 차례가 가까이 왔다. 긴 은색 가디건을 김 주임에게 맡기고, 다니는 용기를 내어 무대로 올라섰다.옥색 블라우스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하얀 반바지를 입은 다니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풍만한 몸매와 하얗고 긴 다리가 돋보이는 옷이었다.외모도 눈에 띄었지만, 노래하는 실력은 더 놀랄 만했다. SES의 ‘너를 사랑해’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몇 번을 반복해 온 무대였다. 오늘도 역시 반응이 오고 있었다.테이블 마다 입을 딱 벌린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었다.“두 번째 바로 가시죠.” 사회자가 말했다.임 주임과 주변 직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한 곡 더!” “한 곡 더!”“ ‘이렇게 좋아해 본 적이 없어요’ 를 부를게요.”“배구도 안 나오고 준비했으니… 잘 하긴 하네.”“신다니 가수였나?”“같은 대학 나온 직원이 학교에서 여신이었대. 자기도 본 적은 없는데 CC인 남친이 잘나서 남자들이 접근을 못 했다잖아.”다니의 노래가 끝나자, 직원들이 이름을 연호했다.“다니엘!”“다니엘!”다니엘이 노래를 두 곡을 부르고 내려왔다. 긴 가디건으로 몸을 감싸며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노래가 끝나고 조금 취했던 술도 완전히 깨자 창피함이 밀려왔다. …수진이가 아니었다면, 다니는 자신이 왜 외톨이가 되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수진이,
‘찾았다. 여자 배구팀. 후보 선수 신다니엘.’현에단은 경기 일정표에서 선수 명단을 확인하고 다니를 찾았다.현에단 본부장이 성큼성큼 걸어오자 배구 코트 주변에서는 박수 소리가 났다.“본부장님 발령 축하드립니다.”“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회사 모자 생각보다 괜찮네.”모자를 내려두었던 사람들이 다시 쓰기 시작했다. 현에단은 차광막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가운데로 이끌려 갔다. 하늘이 흐려 괜찮다고 해도 차광막 아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긴 다리가 불편해 일어나고 싶지만, 살뜰하게 챙겨주시는 누님들의 보살핌에 그냥 앉아 있기로 했다.“디자인부는 체육대회 생긴 이후로 상이라고는 받은 적이 없어요.”“네.”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보니 그럴 만도 했다.김현아 주임이 받은 공은 앞으로 툭 떨어지고, 블락은 손가락 부상을 걱정해서인지 주먹을 쥐고 있었다.넘어지는 연습도 안 되어있어, 그냥 공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아, 여자 배구 팬으로 기대하고 왔는데, 내 여자는 어디 있나?’현에단은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내 여자라니 정신 차리자. 이러다 실수한다. 결혼까지 했다는데.’이상했다. 다니를 본 순간부터 자기 여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 여자가 저기서 날 기다리고 있다고. 입안으로 강제로 들이닥친 사탕을 빨며 다니를 기다렸지만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실망한 현에단은 형편없이 진 디자인팀에 다시 한번 실망하였다. 배구팀 여섯 명의 실력은 신다니가 여섯 명인 것 같았다.‘다니가 춤을 잘 추지만 운동실력도 인상적이지.’현에단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뭐, 디자인만 잘하면 되는 거지.’1차전에서 탈락한 직원들과 다음 경기를 보러 이동했다. 남자 농구 경기가 있는 곳으로 직원들과 같이 걸으며 간단한 대화를 했다. 남자 농구 역시 규칙도 모르는 듯한 디자인부는 실점을 거듭했다. 처참한 스코어로 질 것이 뻔했다.‘햐, 욕심이 없어졌어도 이건 아니지.’현에단과 단체 모자를 쓰고 응원을 하던 직원들은 지루한 응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