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진소아의 할아버지 진재원은 여전히 의료계에 몸담고 있었기에 의사들의 바쁨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그는 돌아오지 못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병원에 남아 환자를 돌보는 일이 자신의 생일을 챙기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라며 격려했다.팔순 잔치를 크게 치르고 싶지는 않았던 김재원이지만 진씨 가문은 워낙 사람이 많아 진재원과 같은 나이대 형제자매들도 여전히 건강했고 자손들도 많아 시간을 내어 자리를 함께한 이들만으로도 십여 테이블이 채워졌다.진씨 진료소에 도착한 진재원 부부는 전유림을 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진국림과 이정자는 전유림과 진소아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가족들에게 알려둔 터였다.이번 생일을 계기로 진소아의 부모님과 친척들이 돌아온 김에 전유림이 어떤 사람인지 직접 보려는 뜻도 담겨 있었다.진소아의 친오빠는 이미 전유림을 만난 적이 있었고 부모님도 사진으로는 보았지만 직접 대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막상 직접 보고 나니 진소아의 부모님은 전유림에게 혹 빠져 버렸다.심지어 진소아의 오빠 진소빈은 부모님이 자신과 전유림을 바꾸고 싶어 한다며 농담 섞인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진재원은 직접 전씨 할머니와 오인숙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생신 잔치에 초대했다.전유림과 진소아는 아직 공식적인 연인 사이는 아니었지만 양가 어른들은 이미 사돈처럼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진재원의 생일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전유하의 결혼식이 다가왔다.전씨 일가는 다시 양성으로 날아갔다.전유림은 진소아를 일곱째 형의 결혼식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업무가 너무 빡빡해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결국 진소아는 전유림의 초대를 정중하게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전씨 일가가 양성으로 떠난 그날, 김아라는 진소아의 진료실에 모습을 드러냈다.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지 진료실에는 환자 한 명만 남아 있었다.진소아는 그 환자의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작성 중이었다.김아라가 들어오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걱정 마. 내가 내 조카딸을 팔아먹기야 하겠냐. 전씨 가문이 정말 좋아서 내가 응원하는 거야. 겉으로만 그런 척하는 거라면 나부터 나서서 막았을 거야. 널 그런 불구덩이에 빠뜨리지도 않을 거야.”이정자는 임도준을 줄곧 말려 왔었다.“누나, 나도 유림 형이 좋아. 가족분들도 좋고. 거기서 반나절을 있었는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 그렇게 고급스러운 집은 처음 가 봤는데도 말이야. 그러니까 그 집 사람들이 진심인 거야. 연기하는 거 절대 아니야.”진소아가 웃음을 터뜨렸다.“왜 두 사람 다 나를 당장 팔아버리려는 것 같지... 알았어. 유림 씨랑은 그냥 자연스럽게 지내볼게. 기회를 한 번 줘 보는 것도 좋긴 하겠다.”진소아는 바보가 아니었다. 자꾸 우연을 만들며 잘해 주고 선물도 보내 주고 가족들과 만나게 해 주면서 그 가족들 모두가 자신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하는 걸 보면 다른 뜻이 없을 리 없었다.다만 전유림이 아직 고백하지 않았기에 진소아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이런 일에서는 전유림이 먼저 움직이길 바랐다.자신감이 없었던 진소아는 먼저 다가갔다가 허물어질지 두려워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전유림이 진심으로 먼저 다가서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별장을 떠난 뒤, 전씨 할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전유림에게 진씨 가문의 태도를 전해 주었다.할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네가 소아에게 진심이라면 빨리 고백해. 네가 사랑한다는 걸 알려 줘야 한다. 소아 씨는 너에게 호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먼저 다가갔다가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는 거야. 소아 씨가 바보냐? 네 마음이 훤히 보이는데. 소아 씨도 알고 있어. 네가 먼저 나서지 않으니까 소아 씨가 두 집안의 차이를 의식하며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거지.”하예정 일행도 전유림에게 사랑한다면 반드시 상대가 알게 하라고 조언했다.가족들의 한바탕 잔소리를 들은 전유림이 드디어 말했다.“알았어요. 소아 씨와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목표는 생겼으니까 이제 달리기
“전씨 가문의 본가가 리조트야. 우리가 대충 둘러봤는데도 지금 발이 아프잖아.”“근데 정말 좋은 분들인 것 같았어요. 어른이든 누구든, 우리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시잖아요.”진건우는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사람 보는 눈이 꽤 있었다.전씨 가문 사람들이 진심으로 잘 대해주는 건지, 아니면 체면상 그런 건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이정자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그래, 전혀 거만하지 않고 정말 좋은 사람들이더라.”그러고는 진소아를 돌아보며 물었다.“소아야, 유림 씨가 너한테 특별히 한 말은 없었니?”“많이 했어요.”“내 말은 고백했냐는 거야.”진소아가 잠시 이정자를 흘끗 보더니 다시 운전에 집중하며 말했다.“작은어머니, 제가 지금 운전 중이에요. 저를 놀리지 마세요. 우리 셋 목숨이 제 손에 달려 있는데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게 조용히 좀 내버려두세요. 작은어머니가 유림 씨를 무척 좋아하시는 건 알겠어요. 저도 그 사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부잣집 아들에 대한 제 고정관념을 깨뜨리긴 했지만 저와 그 사람은 그냥 친구일 뿐이에요. 유림 씨는 누구에게나 부드럽고 예의 바르게 대하는 거지 저에게만 특별히 대하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작은어머니도 보셨잖아요. 전씨 가문의 재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우리 집도 괜찮다고는 하지만 아까 작은어머니도 말씀하셨다시피, 우리 집안이 몇 대를 이어 노력해도 전씨 가문의 재산을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어요. 솔직히 말하면, 예전에는 조금은 마음이 움직였어요. 유림 씨가 저한테 관심이 있다면 서로 알아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다녀오고 나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어요. 두 집안의 차이가 너무 커요.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우주에 사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고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아요.”진소아는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을 내린 듯했다.전유림이 고백해도 거절할 거라고. 자신이 전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외면받는 신데렐라가 될까
전유림이 웃으며 말했다.“저야 환영이죠. 언제든지 오세요. 돈은 받지 않을게요. 그리고 드시고 싶은 만큼 드시고 남은 건 따서 가족들한테도 전해 주세요.”진소아도 사양하지 않았다.“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내년 여름에 리치를 따 먹으러 올게요.”“네.”전유림이 손에 든 과일 바구니 두 개 중 하나를 진소아에게 건넸다.“제가 바로 두 바구니 따다 드릴게요.”진소아가 웃으며 말했다.“자꾸 챙겨 가게 되네요.”“별거 아니에요. 마음에 안 드신다면 모를까, 안 드시고 안 가져가면 할머니가 섭섭해하실 거예요. 우리 집 과일이 맛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하고요.”“그럼 제가 잠깐 실례할게요.”두 사람은 과일 두 바구니를 가득 채웠다.전유림은 누군가를 시켜 별장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그런데 전씨 할머니가 두 바구니만 봤다는 걸 보더니 전유림이 너무 인색하다며 더 많이 따 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진소아와 이정자는 두 바구니면 충분하다고, 집에 식구가 얼마 되지 않아 너무 많이 따면 남길 거라고 말렸다.그렇게 한참을 설득한 끝에야 전씨 할머니도 마음을 접으셨는지 더 따 오라고 고집하지 않으셨다.전유림이 진소아에게 말했다.“보셨죠? 더 많이 따오자고 했잖아요. 할머니가 저보고 쪼잔하다고 하시잖아요. 소아 씨가 드시고 싶으면 제가 언제든 몇 바구니씩 따다 드릴 수 있어요.”그때 진소아가 웃음을 터뜨렸다.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야 전씨 할머니께서 풀어 주셨다.게다가 전유림에게 진소아 일행을 직접 데려다주라고 당부하셨지만 진소아는 사양하며 말했다.“할머니, 저도 차를 몰고 왔어요. 세 명이라 한 대면 충분하니까 유림 씨가 굳이 데려다주지 않으셔도 돼요. 데려다주시면 다시 돌아오셔야 하는데 왔다 갔다 하면 시간만 낭비예요. 주말에 유림 씨도 좀 쉬게 해야죠.”전씨 할머니와 오인숙이 다시 설득했다.“유림이가 소아 씨네를 모셔다드리고 나서 시내 집에 머물러도 괜찮아요. 굳이 여기서 주말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 집에 와 봤던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에요. 소아 씨만 그런 거 아니에요.”전유림이 오해할까 봐 다시 한번 설명을 덧붙이자 진소아가 웃으며 말했다.“오해하지 않으니까 긴장하지 마세요. 진짜 이해해요.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지키고 싶어 하니까요.”하물며 관성의 최고 갑부 전씨 가문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사생활을 노출하는 걸 꺼리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랑처럼 비칠까 봐 사진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진소아는 전유림과 카톡 친구가 된 이후로 그의 SNS에 사진이 올라오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었고 가끔 글만 몇 줄 적을 뿐이었다.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 걸었다.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게 느껴져 어느새 꽃밭 앞에 도착했다.꽃밭 옆에는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어 두 사람은 먼저 정자로 들어갔다.진소아는 쉴 새 없이 사진을 찍느라 전유림과 대화할 틈이 없었다.잠시 후, 전유림은 그녀를 꽃밭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꽃에 둘러싸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주었다.“이 꽃들을 잘라서 다발로 묶으면 더 예쁠 거예요. 특히 999송이로 만든 꽃다발은 더욱 아름다울 거예요.”진소아가 웃으며 말했다.“한 사람이 들기엔 너무 무거운 것 같은데요. 99송이도 이미 엄청 큰데...”전유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고백할 때 이 꽃밭에서 999송이의 붉은 장미를 잘라 차에 싣고 가야겠다고.“자, 이제 과수원으로 가서 과일이나 좀 딸까요?”진소아는 거절하지 않고 그를 따라 과수원으로 향했다.전씨 가문의 산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구역마다 재배하는 과일이 달랐다.모두 지역의 제철 과일이었지만 널찍한 과수원은 정성스레 가꿔져 있었고 나무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진소아는 그 풍성한 모습만으로도 이미 배부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전유림은 과수원 관리인에게 농약을 뿌리지 않은 구역을 확인한 뒤 진소아를 데리고 과일을 따러 갔다.두 사람은 나무 아래에서 갓 딴 과일을 몇 개씩 먹어 보았다.진소아가
전유림은 진소아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사실이었다. 집안 어른들은 반드시 조건이 맞는 집안과 결혼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 전씨 할머니께서 형들에게 골라 주신 상대들은 모두 재벌가 따님이자 커리어우먼이었다.진소아의 말처럼, 하예정도 사실 재벌가의 후손이었다.지금은 하예진이 이씨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고 가주가 되어 하예정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그런데 누가 감히 하예정이 전태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잠시 침묵하던 전유림이 입을 열었다.“어쨌든 우리 부모님은 그리 까다롭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기만 하면 돼요. 저와 막냇동생은 집안에서 가장 어린 편이라 정략결혼 같은 건 우린 안 해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요.”“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도 만약 정말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유림 씨 부모님이 정말 받아주실까요?”전유림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상대방이 인품이 좋고 가치관이 올바르면 부모님께서도 동의하실 거예요. 돈이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집은 이미 충분히 부유하니까 제가 굳이 회사 이익과 연관된 결혼을 할 필요가 없어요.”게다가 전유림이 좋아하는 진소아는 매우 훌륭했다.그와 잘 어울리는 상대였다.진소아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지금은 연애도 안 하고 여자 친구도 없으니까 부모님이 결혼을 재촉하느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정말로 연애하고 상대방의 조건이 좋지 않으면 부모님의 말씀이 달라질 거예요.”사람들은 다 그렇다. 없을 때는 생기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막상 가지게 되면 더 나은 것,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욕심이란 채우면 채울수록 더 큰 야망과 탐욕이 싹트는 법이다.“지금 말로만 하는 건 확실히 소용없겠죠. 나중에 제가 연애하여 여자 친구를 데리고 인사드리면 그때 부모님의 반응을 보면 되죠. 그러면 제 여자 친구도 제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전유림은 지금 자신이 진소아에게 무슨 말을 해도 그녀가 믿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때가 되어
하예정이 깨어났을 때는 다음 날 아침이었다. 눈을 뜨자 침대에 누워 있는 자기 모습에 하예정은 잠시 혼란스러워했다.‘차로 오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얼마나 잔 거지?’고개를 돌리니 곁에 잠들어 있는 전태윤이 보였다. 하예정은 몸을 돌려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살며시 만졌다.‘이렇게 멋진 남자가 내 남편이라니!’이 생각에 하예정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전태윤의 얼굴에 입을 맞추려고 다가가려는 순간, 전태윤이 눈을 떴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전태윤이 다시 눈을 감았다.하예
하예정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언니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예정은 정말 바빴다. 자신의 사업에 몰두해야 하고, 전태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는 데도 도움을 주어야 하며, 시어머니로부터 맡은 소소한 일들까지 처리해야 했다. 능숙한 큰 사모님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하예정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만약 하씨 가문과 전씨 가문이 동등한 가문이었다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부담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예정은 이모가 계획적으로 언니를 이씨 가문의 대표 자리에 올리려 하고
방금 서현주가 그녀의 두 외손자를 악독한 말로 저주한 데 대해 김은희도 매우 화가났지만 서현주가 배를 끌어안고 아프다고 소리치자 얼른 다가가서 부축하며 잔뜩 긴장한 채 말했다.“어서 앉아. 아니면 방에 들어가서 누워있던가.”“엄마, 쟤 그냥 꾀병이야. 쩍하면 배 아픈 척하는 게 어디 한두 번이야?”서현주의 배 아프다는 말을 주서인은 아예 믿지도 않았다.“서인아...”김은희는 딸한테 그만하라고 눈치 주며 서현주를 부축해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눕혔다. 주서인한테 맞은 뺨이 벌겋게 퉁퉁 부어오른 걸 보고 그녀는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 딸
성씨 집안 큰 사모님이 임신 후 고생하는 것을 보고 전태윤은 하예정도 그럴까 봐 걱정됐다.“진작에 생각 접은걸요. 스트레스 그만 받으려고요. 나 예전의 하예정으로 돌아가 내 삶을 살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요.”굳이 말하자면 그녀는 남편의 신분이 자신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고 생각했다.둘 사이의 차이는 너무 컸다.그녀는 투자한 프로젝트가 돈을 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비록 남편과 같은 레벨에 서 있지는 못해도 최소한 차이를 줄일 수는 있을 테니.“잠깐 쉬러 갈게요.”“그래.”그는 아내와 함께 병실로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