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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무언
예은채는 구정남을 차갑게 바라봤다.

구정남은 그 시선을 보고 급히 핸드폰을 거두었다.

“아니다. 내가 먼저 당신 데려다줄게.”

“괜찮아. 일이 더 중요하잖아. 기사님이 데려다주시면 돼.”

예은채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구정남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쳤다.

그는 차 옆에 쪼그려 앉아 예은채의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아가야, 오늘은 얌전히 있어야 해.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예은채는 좋은 아빠인 척하는 구정남의 모습을 보자 비웃음이 났다.

곧 구정남은 고개를 들고 예은채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집에 가서 푹 쉬어. 내일 아침에 맛있는 거 사 갈게.”

예은채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정남이 말을 더 하려던 때,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그가 화면을 내려다본 얼굴에는 들뜬 기색이 떠올랐다.

예은채는 그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구정남을 밀어내고 차 문을 닫았다.

“사람 기다리게 하지 말고 빨리 가.”

그렇게 말한 뒤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했다.

구정남은 예은채의 말에 뼈가 있는 듯 느꼈다.

하지만 조해린이 보낸 사진은 이미 구정남의 이성을 흐려 놓았다.

예은채가 멀어지기도 전에 그는 참지 못하고 호텔 안으로 돌아갔다.

...

예은채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앞좌석의 기사는 룸미러로 예은채의 표정을 계속 살폈다.

기사는 구정남을 10년 동안 모신 사람으로, 구정남의 측근이나 다름없었다.

예은채는 그 시선을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비웃듯 웃었다.

“운전이나 해 주세요. 구 대표가 지금 뭘 하든 상관없어요.”

“사모님, 알고 계셨습니까?”

기사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제가 알면 안 되는 일이었나요?”

예은채가 차갑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기사님이 왜 사과하세요?”

“제가 더 일찍 말씀드려야 했습니다.”

기사의 목소리에는 죄책감이 짙게 묻어 있었다.

예은채는 눈썹을 살짝 올렸다.

기사는 이어 말했다.

“사모님은 저한테 늘 잘해 주셨습니다. 좋은 분이시니까요.”

“네.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이나 당하는 좋은 사람이죠.”

예은채는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을 보며 자신을 비웃었다.

“조해린 씨는 대표님이 어느 모임에서 알게 된 여자입니다. 임강훈 씨의 먼 친척이라고 들었습니다.”

기사가 갑작스레 말을 꺼냈다.

그가 말한 임강훈은 예은채도 아는 사람이었다.

일도 안 하고 집안 돈만 쓰는 부잣집 아들, 구정남의 오래된 친구였다.

예은채는 구정남에게 임강훈과 거리를 두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구정남은 알겠다고 해 놓고도, 뒤로는 계속 임강훈과 어울리고 있었다.

‘대체 구정남은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숨겼을까?’

예은채가 답하지 않자, 기사는 혼잣말하듯 말을 이어 갔다.

“조해린 씨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임강훈 씨가 대표님께 부탁해서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고요.”

“처음에는 대표님이 조해린 씨가 사모님과 닮았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자존심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게 비슷하다고요. 그런데 조해린 씨는 사모님처럼 단단하지 않아서 더 신경 쓰인다고 했습니다.”

“제가 두 분의 관계를 눈치챘을 땐 이미 꽤 오래된 뒤였습니다.”

“대표님은 제게 그저 조해린 씨가 안쓰러워서 돌보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사모님께 해가 되는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절대 말씀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밤 일도 대표님은...”

기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예은채는 기사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차는 천천히 집 앞에 멈춰 섰다.

예은채는 차에서 내리며 기사에게 말했다.

“제가 알고 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기사의 걱정 어린 시선 속에서 그녀는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모님,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대표님은 같이 안 오셨나요?”

가사도우미가 예은채를 보고 급히 다가와 외투를 받아서 들었다.

“방금 대표님이 전화하셔서 저녁 제대로 못 드셨을 테니 밥 준비해 두라고 하셨어요. 두 분이 같이 오실 줄 알았는데요.”

예은채는 지친 얼굴로 웃었다.

“바쁘대요. 뭐 준비했어요? 마침 배가 고프네요.”

“사모님 좋아하시는 매콤달콤한 등갈비찜이랑, 부담 없게 드실 수 있는 반찬 몇 가지 준비했어요. 사모님 임신 중이시잖아요.”

예은채는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늘 다정했다. 여주인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내려다본 적도 없었다.

가사도우미들도 그런 안주인을 좋아했다. 그래서 다이닝 룸으로 안내하며 자연스럽게 말을 붙였다.

“사모님, 기운 내세요. 대표님도 참... 아무리 일이 바빠도 어떻게 임신한 사모님 혼자 보내시다니요.”

예은채가 기운 없어 보이자, 가사도우미는 구정남이 일 때문에 늦는 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대표님이 사모님 정말 잘 챙기세요. 방금 선물도 잔뜩 보내셨고요. 꼭 사모님 식사 잘하시는지 지켜보고 영상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하셨어요.”

식탁 위에 가득 쌓인 선물과 정성껏 차린 음식을 보며 예은채는 입맛이 썼다.

예은채와 구정남은 5년을 함께했다.

구정남은 늘 그랬다.

선물을 끊임없이 보냈고, 예은채를 세심하게 돌보았다.

하지만 그 배려는 이제 다른 여자에게도 나눠지고 있을 것이다.

‘구정남과 조해린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벌써 한 침대에서 서로에게 빠져 있을까?’

예은채는 밥을 몇 숟가락 뜨다 말고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방으로 올라갔다.

그때 구정남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구정남의 머리끝은 반쯤 젖어 있었다.

그가 방금 무엇을 했는지 숨기지 못하는 흔적이었다.

[여보, 밥을 많이 못 먹었다며. 아기가 또 힘들게 했어?]

예은채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정남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쪽 일 거의 끝났어. 지금이라도 갈까?]

그때 핸드폰에 조해린이 보낸 영상이 도착했다.

영상 속 구정남은 상의는 멀쩡하게 갖춰 입고 있었지만, 하의는 속옷뿐이었다.

그는 벽 쪽 의자에 앉아 전화를 하고 있었다.

예은채는 그의 상의가 지금 영상통화 화면 속에서 입은 옷과 똑같다는 걸 알아보았다.

그녀는 그제야 전부 이해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하며 자신을 기만하는 구정남이... 이제는 우습기만 했다.

예은채는 전화를 끊으려 했다.

“괜찮아, 바쁘면 됐어. 나 피곤해서...”

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조해린의 메시지가 다시 도착했다.

[정남 오빠 표정 잘 봐. 우리 이제 ‘게임’을 할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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