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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Author: 쌍춘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4-17 10:54:31

그날 저녁, 촬영을 마친 세 사람은 촬영장 근처의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나눴다.

밖엔 소복히 눈이 쌓이고 있었다.

지아는 독고춘을 보며 말했다.

“오빠, 오늘 진짜 고생했어요.”

"...너도."

“오, 뭐야?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지희가 웃으며 말했다.

“...피곤하군.” 

독고춘은 한숨을 쉬며 커피를 내려놨다.

눈이 살금살금 내리는 창밖을 보니 문득 명옥이가 생각났다.

식사는 잘 하고 계시는지.

분명 눈이 쌓일텐데.

"지금 무슨 생각해요?"

한동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독고춘을 보며 지희가 물었다.

그 물음에 지아가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그윽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저 눈빛...혹시 첫사랑 생각?"

"오, 그런거야, 꼬춘씨? 심심한데 첫사랑 얘기좀 해줘봐. 궁금하네. 산속에는 언제부터 살았어? 그 할머니랑은 무슨 관계야? 친할머니야, 외할머니야?"

"...말이 많으면서도...짧군."

독고춘이 인상을 쓰며 한마디 던지자 갑자기 지희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Yo,Yo! 넌 저번부터 말이 짧았지. 하지만 난? 찌질하게 참았지. What? 나는 말 짧으면 안돼라는 법이 있나? Ye, 그게 우리나라 법인지, 다른 나라 법인지 Ha? 알고보니 그냥 니가 범인. YO, 너는 내게 말이짧다고 지껄이지 No, 그게 바로 한심한 짓거리. 창밖엔 눈이 내리고 너의 눈엔 화가 내리고. Ah, 이건 단순한 사고일 뿐이고 지금 너의 사고는 멈춰 있을 뿐이고. 넌 항상 고개를 끄덕여. 그 덕에 내 기분? 완전 꾸덕. Yeah~"

"오오, 대박! 랩퍼 본능 미쳤다 언니! 이래서 내가 언니한테 반했다니까! 역시 랩하는 아이돌 출신은 확실히 달라!"

"괜찮았어?

"네, 언니! 완전!"

지아는 또 신이나서 박수를 치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다행히 카페에 손님은 세사람 뿐이었고 카페 사장도 지희의 열렬한 팬이라 '앵콜'을 외치며 박수치기 바빴다.

독고춘은 급격하게 텐션이 올라버린 두 여자의 장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대로 목을 뒤로 젖히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한시간 동안이나 커페 안의 웃음소리가 눈 내리는 밤공기 속에 번졌다.

묘하게 따뜻하고,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그들의 ‘이상한 동행’이 막 시작되었다.

---

CF 촬영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스탭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조명과 반사판, 카메라가 쉼 없이 움직였다.

그 한가운데, 지희는 완벽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햇살을 머금은 미소로 렌즈를 바라보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광고였다.

하지만, 조용히 구석에 서 있던 독고춘의 눈은 불안으로 가득찼다.

지희의 하얀 원피스에 검은 연기가 조금씩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희미했지만, 곧 연기가 살갗을 스칠듯이 느껴질 정도로 짙어졌다.

독고춘은 얼굴을 찡그리며 지아를 불렀다.

“…지금 촬영 중단해.”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옆에서 모니터를 보던 지아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왜요?”

그는 심각한 눈빛만으로 대답했다.

“...아기가 깨어날거다.”

그 말을 들은 지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언니… 괜찮아 보이는데요?”

“지금은.”

지아가 말릴 틈도 없이, 그는 그대로 촬영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카메라에 왠 불청객이 잡히자 깜짝 놀란 카메라감독이 소리쳤다.

“거기 뭐야?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거기 스탭 아니죠!”

그러나 독고춘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촬영 멈추세요. 당장.”

그 한마디에 순간, 공기가 멈춘 듯 정적이 흘렀다.

지희가 놀란 얼굴로 돌아봤다.

“꼬춘 씨? 무슨 일이에요?”

독고춘은 대답대신 진지하고 다급한 표정으로 주희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을 읽은 지희의 숨이 잠시 멎었다.

그녀는 스탭들에게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1시간... 아니, 30분만 시간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감독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주연 배우의 호소에 결국 촬영은 멈췄다.

---

세 사람은 대기실로 들어왔다.

문이 닫히자마자, 지희의 몸이 움찔하며 떨리기 시작했다.

복부에서부터 서서히 번져오는 고통.

“…왔어요.”

그녀는 소파에 기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번엔 좀, 하아…배가 찢어질거 같아요. 으으윽...”

독고춘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의 오른손이 천천히 지희의 아랫배 위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검은 기운이 이전보다 훨씬 짙었다.

울음소리가 겹겹이 들려왔다.

한 아기가 아니라, 수많은 아기들의 울음처럼 느껴질 정도로 절규에 가까웠다.

지희는 이를 악물며 실신하지 않기 위해 버텼다.

“아, 아파…!”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지아가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언니, 힘내요!”

독고춘은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고 집중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고통 속에 떠도는 그 울음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기억 속에 떠올랐다.

아직 어린 시절,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던 자신에게 명옥이 자장가를 불러주던 그 밤.

그때만큼은 세상이 고요했고, 그녀의 목소리만이 따뜻하게 세상을 감쌌었다.

그는 조용히 숨을 고르더니,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잘 자라, 우리 아가…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그러나 그 안엔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울림이 있었다.

지아는 그 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노래 하시는거에요? 이거… 대박인데?”

그녀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그 말조차 조용히 묻혔다.

독고춘의 목소리가 대기실 공기를 감싸며 흔들렸다.

“달님은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 보내는 이 한 밤…잘자라 우리 아가. 잘 자거라.”

고통으로 구겨져 있던 지희의 얼굴이 서서히 풀어졌다.

숨이 고르고, 손끝이 떨리던 긴장이 사라졌다.

지희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이번엔 고통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이제 괜찮아요.”

독고춘은 천천히 노래를 멈추고, 손을 거뒀다.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지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나까지 잠들뻔 했네요. 대박.”

독고춘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위험할 뻔했군.”

그는 담담했지만, 그 목소리는 긴장으로 살짝 떨렸다.

지희는 소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오늘 스케줄도 얼마 안남았어요. 다음 스케줄이마지막이니까...그때까지만 잠들어 있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아랫배를 어루 만졌다.

“그나저나 꼬춘씨 다시 봤어요. 노래 잘하던대요?”

지희의 칭찬에 독고춘은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그날 밤, 촬영장은 다시 분주히 돌아갔지만, 그 세 사람의 사이엔 묘한 신뢰가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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