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천재 가수이자 연인 강현우가 실종된 지 3년. 은재는 그가 죽었다는 세상을 비웃으며 환청 같은 목소리를 쫓아 낯선 바닷가 마을에 당도한다. 그곳에서 마주한 라이브 가수는 현우의 얼굴, 음색, 기타 치는 손가락까지 소름 돋게 닮아있다. 하지만 그는 다정한 미소로 자신을 윤해솔이라 소개하며 초면이라 선을 긋는다. 지독한 그리움이 만든 환상일까, 나를 밀어내기 위한 처절한 연기일까. 은재는 그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위태로운 삶 속으로 파고든다. “안녕, 나의 도플갱어. 이제야 널 찾았어.”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얼굴로 가장 낯선 안부를 묻는 남자. 당신, 정말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맞아?
View More끼이이익—!
비명보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막을 난도질했다.
빗물에 젖은 아스팔트 위를 거대한 쇳덩어리가 비릿하게 미끄러지는 소리.
뒤이어 들려온 건, 사람의 뼈와 살이 짓이겨질 때나 날 법한 둔탁하고 기괴한 파열음이었다.
차체를 타고 올라온 잔혹한 진동이 은재의 발바닥을 타고 뇌수까지 짜릿하게 파고들었다.
“어머, 저게 뭐야! 사람 친 거 아니야?”
“피…! 피 나와요, 어떡해!”
방금 전까지 빗줄기를 뚫고, 품 안에 무언가 소중한 것을 꼭 감춘 채 해맑게 손을 흔들던 현우의 실루엣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높은 버스 창문에 매달린 은재의 눈앞엔 오직 죽음처럼 회색빛인 장대비만이 유리창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완벽한 지옥이었다.
보이지 않기에, 은재의 머릿속에선 현우의 몸이 차갑게 식은 도로 위를 굴러가는 환영이 수천 번씩 재생되며 그녀를 찢어발겼다.
‘현우야. 안 돼, 현우야…!’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심장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라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버스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고, 은재는 과부하가 걸린 회로처럼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직 덜덜 떨리는 손끝으로 유리창을 긁어내릴 뿐이었다.
그 순간, 찰나의 환상 같은 기억들이 비릿한 빗물 속으로 처참하고도 형체 없이 번져가고 있었다.
‘금방 올게, 은재야. 먼저 타서 기다려.’
오직 은재 앞에서만 가면을 벗고 무방비하게 웃던 남자.
은재에게 들려줄 마지막 선물이라며 수줍게 미완성 곡을 흥얼거리던 그 눈부신 눈동자.
그 모든 찬란함이 지금, 역한 타이어 타는 냄새와 비린 쇠 냄새가 섞인 빗물 속으로 처참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추는 소리는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소음이 단숨에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괴한 고요였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소리조차 지워진 채, 발바닥을 타고 흐르는 비릿한 진동만이 은재를 난도질했다.
망막을 채우던 선명한 풍경들이 까만 먹물처럼 녹아내렸다.
은재는 그 질척이는 어둠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다.
“하아, 하…!”
은재는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거칠게 상체를 일으켰다.
3년째 반복되는, 단 1프레임의 오차도 없는 악몽의 재방송이었다.
현실의 은재는 여전히 3년 전 그 터미널의 습한 공기 속에 고립되어 있었다.
식은땀에 젖은 티셔츠가 등 뒤에 기분 나쁘게 달라붙었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목에 걸린 펜던트를 꽉 쥐었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만이 이곳이 현실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감각이었다.
“…또 같은 꿈을 꾼 거예요? 현우 오빠 꿈?”
정적을 깬 건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민 소망이었다.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눈으로 소망이 미지근한 물컵을 내밀었다.
“언니 식은땀 좀 봐. 진짜 이러다 사람 잡겠네. 현우 오빠가 무슨 귀신도 아니고 3년 내내 따라다닌대요?”
투덜거리는 목소리 끝에 진득한 걱정이 매달려 있었다.
은재는 소망이 건넨 컵을 받아들었지만, 마시지는 않은 채 멍하니 수면을 바라보았다.
“꿈 아니야, 소망아. 그냥… 내가 끝나지 않은 하루를 사는 것뿐이지.”
“에휴, 그놈의 하루. 언니, 그 하루 끝난 지가 1000일이 넘었어요. 이제 그만 좀 해요, 제발.”
소망은 짐짓 밝은 척 은재의 어깨를 툭 쳤다.
하지만 은재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 어디쯤을 헤매고 있었다.
***
그 시각, 비린 바닷바람이 들이치는 어느 낡은 테라스.
한 남자가 어둠에 잠긴 검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만이 정막을 메우는 가운데, 남자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는 빛을 잃고 산화된 은색 반지 하나가 위태롭게 들려 있었다.
“… 금방 간다고 했었는데.”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힘없이 흩어졌다.
남자는 움찔하며 자신의 입술을 만졌다.
방금 제 입에서 나간 말이 무슨 뜻인지, 누구에게 하려던 약속인지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혀끝이 먼저 기억해 낸, 낯선 주문 같았다.
그는 반지를 주머니 깊숙이 쑤셔 넣고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새벽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
새벽 4시.
잠시라도 손을 멈추면 매캐한 경유 냄새가 코끝을 파고드는 것 같아, 은재는 도망치듯 자판을 두드렸다.
뻑뻑한 눈을 비비며 잠시 고개를 젖혔을 때, 알고리즘이 무심하게 영상 하나를 띄웠다.
[강현우 싱크로율 100% 이름은 윤해솔이랍니다.]
“…말도 안 돼.”
심장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홀린 듯 클릭한 화면 속은 어느 시골 바(Bar).
조명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무대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캡 모자를 눌러써 얼굴은 반쯤 가려졌지만, 기타를 쥔 손마디의 실루엣과 낮은 음색이 은재의 호흡을 강제로 멈추게 했다.
[“아, 아. 들리나요? 그럼 시작할게요.”]
남자가 기타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3년 전, 대한민국 모든 음원 차트를 휩쓸었던 그 특유의 전주.
강현우만이 낼 수 있다고 알려진 그 변칙적인 코드 진행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조명 아래 살짝 드러난 턱선과 매끄러운 콧날 위로, 세상은 이미 죽었다 말했지만 단 한 순간도 보내준 적 없던 연인의 잔상이 겹쳐졌다.
은재는 식은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손으로 모니터를 움켜쥐었다.
3년 동안 멈춰있던 그녀의 심장이 기괴한 소동을 일으키며 뛰기 시작했다.
“…찾았어.”
화면 속 윤해솔의 서늘한 눈동자를 보며, 은재가 억눌린 숨을 내뱉었다.
“이제야 널 찾았다고. 강현우.”
“먼저, 지난 사고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울러 저를 둘러싼 악의적인 루머들의 실체를 이 자리에서 바로잡고자 합니다.”해솔의 목소리는 차분했다.“그동안 유포된 허위 사실들은, 소속사 선배였던 박한결 씨가 악의를 품고 선동한 가짜 뉴스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와 허위 제보 정황은 이미 모두 확보하여 수사 기관에 제출한 상태입니다.”해솔이 대형 스크린을 가리키자, 도윤이 수집해 둔 박한결의 허위 제보 메일과 IP 추적 자료들이 화면에 띄워졌다.기자들 사이에서 거대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이미 팬의 목격담으로 의심을 품고 있던 터라, 해솔의 폭로는 사실상 확인사살이었다.박한결이 꾸며낸 거짓말들의 실체가 대중 앞에 낱낱이 까발려졌다.정적을 깨고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그럼 박한결 씨가 기자회견 직전 차량으로 돌진한 이유가, 가짜 뉴스의 실체가 폭로될까 두려워 입막음을 하려 했던 게 맞습니까?”“네, 맞습니다.”해솔은 기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해솔의 단호한 태도에 분위기는 완벽하게 이쪽으로 넘어왔다.사실상 확인사살이었다.해솔은 옆에 선 은재를 바라보았다.여전히 긴장한 채 정면만 응시하는 옆모습이 보였다.해솔은 테이블 아래로 은재의 손을 찾아내어 힘주어 쥐었다.은재가 놀란 듯 고개를 돌려 마주 보았다.해솔은 가볍게 눈빛을 건넨 뒤,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은재 씨.”일주일 만에 들려온 해솔의 목소리에 은재는 눈물을 터뜨리며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해솔은 평소와 다름없이 다정한 손길로 은재의 등을 토닥였다.3년 전의 기억 같은 건 전혀 모르는 듯, 여전히 다정하고 든든한 연인인 윤해솔의 모습 그대로였다.얼마 후, 은재가 의사를 부르러 잠시 병실을 비운 사이 도윤이 안으로 들어왔다.침대에 걸터앉은 해솔과 도윤의 시선이 무겁게 맞물렸다.도윤은 문을 닫자마자 목소리를 낮춰 면담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해솔아, 의사가 외상 수술 중에 위벽 쪽에서 종양을 발견했다고 하더라. 암이 강하게 의심된대. 환자 의식 돌아오는 대로 정확한 정밀 검사부터 다시 해보자고 하더군.”도윤의 말에 해솔의 눈동자가 잔잔하게 가라앉았다.방금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이 타이밍에 찾아온, 잔인한 소식이었다.해솔은 멍하니 닫힌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문밖에는 자신을 위해 일주일 밤낮을 지새운 은재가 있었다.“……은재 씨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형.”해솔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은재씨랑 약속했거든요. 강현우씨처럼 혼자 두지 않겠다고. 우선 검사부터 조용히 받겠습니다.”도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이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딸칵, 그 타이밍에 맞춰 병실 문이 열렸다.의사를 부르러 나갔던 은재가 서둘러 들어왔다.은재의 시선이
방 안에는 각종 기계장치가 규칙적으로 내는 기계음만이 정적을 깨우고 있었다.은재는 일주일째 의식을 찾지 못하는 해솔의 침대 곁을 지켰다.마른 수건으로 해솔의 창백한 손가락 사이사이를 정성스럽게 닦아내리는 은재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툭 치면 부러질 것처럼 마른 손목을 보며 가슴이 아려왔다.소나기가 그친 뒤 맑았던 그 여름날, 혼자 두지 않겠다며 다정하게 웃어주던 얼굴이 자꾸만 겹쳐 들었다.“제발… 깨어나기만 해줘요.”은재는 해솔의 이마 위에 덮인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나직하게 읊조렸다.도윤이 골절 상처가 깊어 회복이 늦어지는 것뿐이라며 안심시켰기에, 은재는 그 말을 믿고 있었다.그의 속이 암이라는 잔인한 진단으로 부서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같은 시각, 도윤은 서울 변두리의 한 폐건물 지하로 향하고 있었다.어두컴컴한 공간의 문이 열리자 먼지 냄새가 훅 끼쳤다.방 한가운데에는 의자에 묶인 채 엉망이 된 박한결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사고 직후 도주했던 그를, 도윤이 움직인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후배들이 쫓아 낚아챈 결과였다.“어, 어욱…! 당신 이거 미친 짓이야! 당장 안 풀어? 법대로 해, 경찰 불러!”박한결은 덜덜 떠는 와중에도 악을 썼다.하지만 도윤은 대답 대신 의자 앞으로 다가와 뚜벅뚜벅 멈춰 섰다.차갑게 내려다보는 도윤의 눈빛에는 감정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법대로 처리하기 위해 경찰에 넘기는 건 쉬웠다.하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되거나 훗날 그가 풀려난다면, 눈이 돌아간 박한결이 또다시 해솔에게 어떤 미친 짓을 저지를지
빨간불이 켜진 수술실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은재는 수술실 앞 대기실 의자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있었다.옷에 묻은 해솔의 피가 비에 젖어 눅눅하게 굳어가고 있었지만, 추위를 느낄 새도 없었다.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만 응시하는 은재의 손은 여전히 잘게 떨리고 있었다.“은재 씨!”복도 끝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도윤과 소망이 달려왔다.은재의 몰골을 확인한 소망이 헉, 소리를 내며 은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이게 무슨 일이야, 언니… 해솔 씨는? 수술 들어간 거야?”은재는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도윤은 굳게 닫힌 수술실 문과 은재의 옷에 남은 핏자국을 번갈아 바라보며 턱을 짓씹었다. 박한결을 그렇게 경고하고 짓눌러 놓았는데도, 결국 사달을 내고야 만 것이다.도윤의 눈에 서늘한 살기가 스쳤다.소망이 은재를 다독이는 사이, 도윤은 쉴 새 없이 진동하는 휴대폰을 확인했다.화면에는 이미 스타더스트를 집어삼킨 억측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도배되고 있었다.[속보] 스타더스트 윤해솔, 기자회견 직전 의문의 교통사고… 정면돌파 무산?
3년 전, 고성 앞바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밤이었다.거대한 파도가 집어삼킬 듯 해변을 때렸고, 루나 바의 창문들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 비명을 질러댔다.“아, 진짜… 도와주는 게 하나도 없네.”도윤은 낮은 욕설을 내뱉으며 비옷을 걸쳐 입었다.해안가 바로 앞에 위치한 창고 뒤편의 배수구가 말썽이었다.폭풍우가 올 때마다 제대로 물이 빠지지 않아 가게 안까지 침수될 위기였다.
그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 수화기 너머 서울의 펜트하우스에서는 유리창이 깨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사… 살아있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한결은 아이폰을 쥔 손을 눈에 띄게 떨고 있었다.방금 전까지 서울의 야경을 안주 삼아 즐기던 여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는 수화기 너머의 흥신소 직원이 들으라는 듯 악을 썼다.“뉴스에서 다 그랬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붉은 노을이 고성의 바닷가를 붉게 감쌌다.은재는 창가에 앉아 타오르는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보며 해솔의 라이브를 기다렸다.낮에는 간단한 식사를 팔던 소박한 공간이 어스름한 어둠과 함께 은은한 조명으로 탈바꿈하며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유명한 유튜버 스타라는 말이 증명이라도 되듯, 라이브 시간이 다가오자 적막하던 낡은 바 안으로 손님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고요했던 공간은 금세 사람들의 낮은 웅성거림으로 채워졌다.그때, 사람들의
해솔은 그대로 등을 돌려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은재는 숨 쉬는 법조차 잊은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그런 은재의 어깨를 소망이 다급히 감싸 안으며 해솔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소망의 눈엔 분노보다 깊은 관찰력이 서려 있었다.“모른다라…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윤해솔 씨.”해솔의 발걸음이 멈췄다.소망은 비난하는 대신, 그저 팩트를 짚어내듯 담담하게 물었다. 
re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