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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Author: Yoonseul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06 13:09:35

[다시 현재 도현의 방]

자책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유라를 내려다보던 도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날 밤 김도진이 제게 뱉었던 소유욕 어린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다. 유라를 그 지옥 같은 놈의 곁에 둘 수는 없었다.

도현은 침대 옆 의자에 깊숙이 기댄 채 앉으며 낮게 읊조렸다.

“거기 그만두고 우리 병원으로 와. 너 일할 자리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니까.”

순간 유라의 마음이 세차게 흔들렸다. 시급 두 배의 꿈의 직장이라 생각했지만, 첫날부터 이런 꼴이 되었으니 겁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보육원 시절부터 이도현이라는 존재에게 받아온 지원이 너무나도 과분했기에, 더 이상 그의 인생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말씀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오빠.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 힘으로 번듯하게 독립해서 해보고 싶어요.”

그 단호한 대답에 도현의 눈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 거야?”

도현이 왜 저런 질문을 하는지, 왜 이렇게까지 날이 서 있는지 유라는 의아했다. 하지만 당장 오늘 먹고살 생계가 급급한 유라로서는, 김도진의 매니저 일만큼 돈을 많이 주는 곳을 다시 구할 재간이 없었다.

“……네. 저 잘할 수 있어요.”

유라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도현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네 뜻이 그렇다면 강요하진 않겠어.”

도현은 문가로 걸어가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마지막 경고처럼 서늘한 대사를 남겼다.

“하지만 기억해, 유라야. 네가 선택한 그 자리는 네 생각보다 훨씬 더 추악해. 다음에도 내 눈앞에 이런 몰골로 나타난다면…….”

도현의 시선이 유라의 가냘픈 손목에 잠시 머물렀다.

“그땐 정말, 네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될 거야.”

달칵.

문이 닫히고 방 안은 다시 깊은 적막에 잠겼다.

자신이 선택한 이 꿈의 직장이, 두 남자 사이의 위험한 덫이라는 것을 유라는 아직 알지 못했다.

“정말 가겠다고?”

낮게 내려앉은 도현의 목소리가 유라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네, 오빠. 이틀이나 무단결근을 한 거잖아요. 첫 출근부터 이런 사고를 쳤으니 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야 해요. 안 그러면 잘리는 것뿐만 아니라 위약금까지 물어야 할지도 몰라요.”

유라는 도현이 준비해 준 단정한 셔츠의 소매를 허둥지둥 걷어 올리며 가방끈을 꼭 쥐었다. 당장 오늘 길바닥에 나앉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공포가 유라의 판단력을 흐리고 있었다. 보육원을 나온 뒤, 제 손으로 쥐어본 가장 과분한 기회를 이대로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도현은 다급하게 움직이는 유라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미간이 거칠게 좁아진 채, 그의 시선은 유라가 멘 가방줄에 머물러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 가방을 빼앗아 던지고, 싶다는 충동이 이성과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다.

하지만 도현은 주먹을 꽉 쥐며 깊은 숨을 삼켰다. 아직은 아니었다. 억지로 주저앉히면 유라는 제게서 도망칠 궁리만 할 터였다. 그 김도진이라는 놈이 얼마나 바닥을 기는 인간인지, 연예계라는 판이 얼마나 추악한지 직접 겪어보고 제 발로 다시 부러진 날개를 이끌고 돌아오게 만드는 편이 완벽했다.

“........”

“오빠…….”

“가서 네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와. 네가 대단한 기회라고 믿었던 그 자리가 어떤 곳인지.”

도현은 더 이상 붙잡지 않겠다는 듯 한 걸음 물러섰다. 유라는 얼른 침대 위의 휴대폰을 챙겼다. 전원을 켜자마자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폭탄처럼 쏟아졌다. 그중 가장 상단에 찍힌 이름, [김도진]. 유라는 마른침을 삼키며 도현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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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이킬수 없는   146화

    [아…… 네, 우선 좌석 상황이랑 예약 내역 확인해 보고 바로 연락드릴게요.]도진의 난데없는 명령에 실장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한 뒤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진의 휴대폰이 다시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총괄실장의 이름을 확인한 도진이 바로 전화를 낚아챘다.“어떻게 됐어.”[도진 씨, 방금 확인해 봤는데요. 상황이 좀 난감하게 됐어요. 우선 이유라씨 현재 여권 자체가 없어서 신규 발급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가장 큰 문제는 그날 도진 씨가 타시는 비행기 좌석이 퍼스트부터 이코노미까지 전석 매진이에요. 정 같이 가시려면 유라 씨는 다음 날 비행기로 따로 보내야 할 것 같아요.]“다음 날 비행기라고……?”도진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 총괄실장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네, 도진 씨. 일정이 워낙 촉박해서 이것도 정말 겨우 구한 거예요. 우선 다음 날 비행기표라도 예약을 걸어둘까요?]“하아…….”도진의 붉은 입술 사이로 깊고 무거운 한숨이 거칠게 새어 나왔다.“……우선 알겠어. 그렇게라도 예약 걸고 빨리 진행해.”[네, 알겠어요! 바로 진행하고 다시 보고드릴게요.]전화가 끊기고 도진은 폰을 소파 위로 툭 던져버린 뒤,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소파 헤드 위로 고개를 툭 젖혀 기댔다.한참을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도진은 마침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오늘 예정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완벽하게 핏이 떨어지는 수트를 챙겨입은 도진은 집을 나서기 전, 유라의 침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방 안에는 여전히 은은한 향기와 함께 유라가 침대 묻혀 부드러운 숨을 내쉬고 있었다. 도진은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가 상체를 숙이고는, 유라의 이마 위에 자신의 입술을 지긋이 꾹 눌러 맞췄다. 샤워 후의 시원한 스킨 향과 낮선 감촉에 유라가 속눈썹을 가늘게 떨며 서서히 눈을 떴다.“스케줄 있어서 난 지금 나가봐야 하니까, 집에서 쉬고 있어. 연락할게.”“……네, 다녀오세요.”유라가 고개를 끄

  • 돌이킬수 없는   2화

    평소의 도현은 냉정해 보여도 유라에게만큼은 눈빛에 다정한 온기가 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내려다보는 도현의 눈은,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을 만큼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랬구나…… 죄송해요, 오빠.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근데, 제 가방이랑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회사에 연락도 못했는데....유라가 침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초조하게 묻자, 도현이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거대한 실루엣이 유라의 위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도현은 양복 주머니에서 익숙한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 들었다.

  • 돌이킬수 없는   1화

    사방이 적막에 잠긴 어두운 방.이유라는 끊어질 듯 가느다란 신음을 내뱉으며 깊은 늪 같은 잠 속을 헤매고 있었다.‘으음…….’그때, 문밖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인기척에 그녀가 힘겹게 눈을 떴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온몸의 세포가 본능적인 위기감을 맥질하며 그녀를 깨웠다.낯선 천장, 코끝을 찌르는 서늘한 약품 냄새.꿈인지 실제인지 분간하려 고개를 돌리던 유라는 당황해 몸을 일으키려다, 왼손등에 차갑게 꽂힌 링거 바늘을 보고 멈칫했다.“분명 어제…… 드라마 촬영팀 회식 후…….”필름이 끊긴 듯 그 이후의 기억은 새

  • 돌이킬수 없는   10화

    그 순간, 약기운에 온기를 찾던 유라가 몸을 뒤척이며 도진의 품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차가운 도진의 가슴팍에 그녀의 뜨겁고 가녀린 숨결이 닿았다. 도진은 밀어내는 대신, 가만히 눈을 감으며 자신의 심장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빠르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폭풍이 쓸고 간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도진은 침대 위에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 유라를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붉게 달아오른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가 못내 신경 쓰여, 옷가지를 정리해 주려 침대 머리맡에 묵직하게 얹어 앉았다.그 작은 기

  • 돌이킬수 없는   9화

    도진의 시선은 침대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붉게 달아오른 채 떨고 있는 유라에게 꽂혀 있었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옷새와 눈물로 범벅이 된 맨얼굴. 다른 남자의 손길이 닿아 붉게 얼룩진 그녀의 하얀 살결을 보는 순간, 도진의 눈동자가 흉포하게 뒤틀렸다. 피가 거꾸로 솟다 못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도의 분노와 지독한 독점욕이 그를 지배했다.도진은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이불을 거칠게 끌어당겨 유라의 몸을 목끝까지 꽁꽁 싸맸다. 그리고는 바닥에서 주춤거리며 일어나는 김건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귀공자 같은 미소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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