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사자들의 우리
대본 리딩이 열리는 청룡 필름 지하 1층, 대형 회의실의 공기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으로 팽팽했다. 길게 이어진 테이블에는 이미 대한민국 영화계를 움직이는 '왕'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인공 '오기철'의 파트너인 베테랑 형사 역의 배우 오달수, 남규만의 비리를 돕는 부패한 검사 역의 조민극, 그리고 판을 뒤흔드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연기할 여배우 김혜선까지. 이름 하나하나가 영화 한 편의 무게감을 갖는, 그야말로 '연기 사자'들의 우리였다.
그들은 서로 익숙하게 안부를 물으며 웃고 있었지만, 그 시선은 모두 회의실 입구를 향해 있었다. 오늘, 이 위대한 왕들의 영토에 겁 없이 발을 들인 이단아, '이현준'이 나타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고, 이현준이 김동진, 박성철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회의실을 채우고 있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수십 개의 날카로
*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웃음그날 밤, 현준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영화관을 찾았다. '아수라' 같은 무거운 영화가 아닌,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유치찬란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다.처음에는 어색했다.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배우들의 연기와 카메라 워킹을 분석하고 있었다.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이 바나나 껍질을 밟고 아주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장면에서, 현준은 자신도 모르게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아주 작고, 어색한 소리. 하지만 그것은 분명, '이현준'의 웃음소리였다.그는 자신의 웃음소리에 스스로가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다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에서, 아주 따뜻하고 낯선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이게... 웃는 거구나.'윤세리의 마지막 숙제. 그는 마침내, 자신을 웃게 만드는 것을 찾아냈다.영화가 끝나고,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던 그의 휴대폰이 '띠링'하고 울렸다. 김동진 실장에게서 온 문자였다.[휴식은 끝났습니다. 이틀 뒤, 촬영 재개합니다. 감독님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준비됐습니까?]다시, 지옥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현준은 휴대폰 화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이전과는 다른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두려움. 하지만 그 두려움 옆에는, '돌아올 수 있다'는 작은 희망과, 돌아왔을 때 자신을 기다려줄 한 사람의 얼굴이 함께 떠오르고 있었다.* 왕의 귀환이현준이 다시 '아수라'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낸 날, 현장의 공기
* '이현준'을 되찾는 연습"숙제를 내드릴게요."첫 상담이 끝날 무렵, 윤세리가 말했다."아주 간단해요. 하루에 한 번, '이현준'의 감각을 깨우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그녀가 내준 숙제는 연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하나, 매일 다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그 맛과 향의 차이를 노트에 적어볼 것.둘, 버스를 타고 창밖 풍경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세 가지를 그림으로 그려볼 것.셋, 서점에 가서 아무 책이나 한 권 골라, 소리 내어 한 페이지를 읽어볼 것.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이현준'을 웃게 만드는 것을 찾아볼 것."현준 씨는 지난 10년간, 그리고 최근 몇 달간 너무 많은 타인의 삶을 살아왔어요. 이제 다시 '이현준'의 삶으로 돌아오는 연습이 필요해요.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세요. 당신의 몸이, 당신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걸 다시 기억하게 만들어 주세요.“다음 날부터, 현준은 숙제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저 사람은 어떤 약점을 가졌을까' 분석하는 남규만의 시선이 튀어나왔다.하지만 그는 의식적으로, 윤세리의 말을 떠올리며 커피의 쓴맛과 우유의 부드러움에 집중하려 애썼다.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삐뚤빼뚤하게나마 노트에 그렸다. 서점에서 동화책을 골라, 낭독 부스에서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처음에는 수치스러웠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피식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아주 조금씩, 세상과 다시
* 하이에나의 후각같은 시각, 연예부 기자 강소영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현준의 10년간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마침내 유의미한 '단서'를 발견했다.그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였다. '품행이 방정하고 성실하나, 내성적인 성격으로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음.' 평범한 기록이었지만, 3학년 2학기 출결 상황에 길게 이어진 '무단결석' 기록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유는 '가정 사유'라고만 적혀 있었다."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그녀는 날짜를 기억해두고, 당시의 지역 신문 기사들을 미친 듯이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귀퉁이에 실린 작은 교통사고 기사를 발견했다.빗길 교통사고로 일가족 3명 사망, 10대 아들만 기적적으로 생존...기사에는 피해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 날짜와, 생존한 아들의 나이가 현준의 결석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했다."......이거였나."강소영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거대한 비밀의 첫 번째 조각을 맞춰낸 예감에 휩싸였다. 그가 가진 공허함, 타인과 섞이지 못하는 성격,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꿰뚫어 보는 듯한 기묘한 능력. 그 모든 것의 시작이, 어쩌면 이 끔찍한 사고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팀장님, 저 며칠 휴가 좀 쓰겠습니다. 이현준 씨 고향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깨어난 자의 공포이틀 뒤, 이현준은 자신의 오피스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약 기운 때문인지, 며칠을 내리 잔 듯 온몸이 무거웠다. 희미한 기억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폐창고의 비릿한 냄새, 날카로운 송곳의 감촉, 그리고... 누군가의 공포에 질린 비명.
이창욱 감독이 다급하게 컷을 외쳤다.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송곳을 든 채 미소 짓고 있는 현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했지만, 너무나도 위험한 연기였다.그런데, 현준은 멈추지 않았다.그는 감독의 컷 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송곳을 든 채 상대 배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그의 눈은 현실과 연기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선 듯 공허하게 빛나고 있었다."선... 선배님...?"가장 먼저 이상을 감지한 박성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선배님! 촬영 끝났습니다! 정신 차리세요!"하지만 현준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괴물이, 마침내 주인의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괴물이 주인을 삼킬 때"......선배님?"박성철의 목소리는 물에 젖은 솜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이현준, 아니, 남규만의 세상에는 오직 눈앞의 '장난감'과, 그것을 완벽하게 망가뜨리고 싶은 순수한 욕망만이 존재할 뿐이었다.그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송곳이, 공포에 질린 상대 배우의 눈동자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현장의 공기는 납처럼 무겁게 얼어붙었다. 이창욱 감독조차 감히 '컷' 이후의 말을 잇지 못했다. 모두가 직감했다. 이것은 연기가 아니다. 통제 불능의 광기다. 배우가 자신의 배역에 완벽하게 잡아먹히는, 가장 끔찍하고도 영광스러운 파멸의 순간이었다."안 돼...!"김동진이 뛰쳐나가려는 찰나, 그를 막아선 것은 안성현이었다.
하지만 이 변화는, 현준에게 또 다른 종류의 압박감으로 다가왔다.이전에는 그를 증명해야 한다는 '투쟁심'이 그의 연기를 불태웠다면, 이제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모두가 그의 연기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고, 그의 작은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 감탄사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역시... 현준 씨 연기는 국보급이야.""저 눈빛 좀 봐. 어떻게 사람이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있지?"칭찬의 홍수 속에서, 현준은 오히려 더 깊은 고독 속으로 침잠했다.그들은 '이현준'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규만'이라는 괴물을 보고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준은,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더욱 완벽한 괴물이 되어야만 했다.로드 매니저 박성철은 그런 현준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균열의 징조"선배님, 식사는 안 하십니까?"촬영이 없는 날, 현준의 오피스텔을 찾은 박성철은 식탁 위에 그대로 놓인 음식을 보고 물었다. 현준은 소파에 앉아, 태블릿PC로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아, 괜찮아. 배가 별로 안 고프네."현준의 대답은 평소와 같았지만, 박성철은 그의 눈이 모니터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그가 보고 있는 것은 낡은 흑백 영상이었다. 1940년대에 행해졌던,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정신외과 수술에 대한 기록 영상이었다.얼음송곳 같은 기구를 환자의 눈구멍으로 집어넣어 뇌의 일부를 끊어내는, 끔찍하고 야만적인 수술."선배님... 왜 이런 걸 보고 계십니까?""재미있어서."
* 5분의 쓰나미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그날 밤, 드라마 '복수의 코드' 12회가 방영되었다.스타 컴퍼니의 회의실에는 김동진과 홍보팀 전원이 모여, 실시간 시청자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모니터 앞을 지키고 있었다. 반면 현준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TV를 켜지 않은 채 남규만에 대한 자료를 읽으며 평소와 같은 밤을 보내고 있었다.드라마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마침내 현준이 등장하는 5분이 시작되었다.실시간 톡 게시판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엥? 저 배우 누구? 처음 보는데.▷ 그냥 행인 아니냐? 되게 평범하게 생겼네.▷ 강지한이랑 붙는 씬인데 신인한테 너무 큰 역할을 준 거 아닌가?초반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의 존재감 없는 연기에, 시청자들은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강지한의 목에 볼펜을 겨누는 바로 그 순간.게시판이, 폭발했다.▷ !!!!!!!!!!!!!!!!!!!!!!!!!!!!!▷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와 나 지금 현실로 소름 돋았어. 저 눈빛 뭐야??????▷ 방금 연기임? 진짜 죽이려는 거 아니었음???? 강지한 표정 ㄹㅇ 찐이던데▷ 아니 저 평범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살기가 나옴? 배우 이름 뭔데!!!! 빨리 알려줘!!!!▷ 와... 존재감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목 따는데... 진짜 킬러 같다. 카멜레온이냐고...단 1분 만에, 실시간 톡 게시판은 '이현준'이라는 세 글자로 도배되었다. 그의 이름은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악했다. 2위는 '복수의 코드 킬러', 3위는 '아수라 이현준'이었다.단 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