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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7-31 09:28:30

* 설렘이라는 낯선 감정

다음 날 아침, 이현준은 난생처음으로 옷장 앞에서 30분을 넘게 서성였다. 어제 촬영장에서 입었던 편한 트레이닝복, 10년간 그의 교복이었던 낡은 면바지와 티셔츠, 그리고 김동진이 사준 몇 벌의 비싸고 단정한 옷들.

그는 옷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몇 번이고 거울 앞에 서보았다. 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너무 편하게 입고 나가면 성의 없어 보이지 않을까.

'같이 걸어볼까요?'

윤세리의 그 한마디는, 지난밤 내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의사의 제안이 아닌, 한 여자의 초대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배우 이현준이 아닌 남자 이현준으로서 그 초대에 응하러 가는 길이었다.

수십 개의 배역을 넘나들며 단 한 번도 긴장해 본 적 없었던 그가, 지금은 고작 옷 한 벌 고르는 일에 심장이 터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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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년 엑스트라, 한류를 삼키다!   29

    눈을 감게 한 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유도했다."상상하세요. 오직 '이현준'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을요. 그곳은 어떤 모습인가요? 어떤 냄새가 나죠?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현준은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자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작은 방을 만들기 시작했다.그 방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김치찌개 냄새와, 윤세리의 상담실에서 맡았던 라벤더 향으로 가득했다. 창밖으로는 동생과 함께 뛰놀던 고향의 바다가 보였고, 벽에는 그가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던 코미디 영화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좋아요. 이제 그 방의 문을 만드세요. 그리고 그 문에, 아주 질기고 튼튼한 밧줄을 연결하는 겁니다. 그 밧줄의 다른 쪽 끝은, 항상 '이현준'인 당신이 쥐고 있는 거예요."그녀의 목소리가 현준의 의식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이제, 문을 열고 '남규만'을 초대하세요. 그를 마음껏 풀어주세요. 그가 어떤 광기를 부리든, 어떤 지옥으로 당신을 끌고 가든...당신 손에는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밧줄이 쥐어져 있습니다. 감독의 '컷' 소리가 들리면, 당신은 그저... 그 밧줄을 힘껏 당겨, 당신의 안전 가옥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그것은, 괴물을 통제하는 완벽한 항해술이었다.* 침묵을 선택한 자의 신념연예부 기자 강소영은, 이현준에 대한 기사를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대신, 그녀는 '아수라'의 제작비 증액과 클라이맥스 추가 촬영에 대한 정보 기사를 썼다. 그녀의 기사에는 이전과 달리, 작품에 대한 순수한 기대감과 배우들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었다."강 기자, 너 정말 이대로 덮을 거야? 지금 이현준 과거사

  • 만년 엑스트라, 한류를 삼키다!   28

    * 잠겨있던 문의 열쇠두 사람은 숲속의 작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조금 전의 일 때문인지, 거리가 한 뼘은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윤세리는 방금 떠올랐던 그의 과거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아까... 동화 작가 이야기했을 때, 무슨 생각 했어요? 표정이... 아주 잠시, 먼 곳을 보는 것 같았는데."그녀의 질문은 날카로웠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현준은 잠시 망설였다. 그의 내면에서, 지난 12년간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아픈 기억을 외면하는 대신, 용기를 내어 그 문을 아주 조금, 열어보기로 결심했다.그는 윤세리의 눈을 바라보며,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저에게... 여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그것은 그가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꺼내 보이는, 자신의 가장 깊은 곳의 이야기였다."아주 어릴 때... 녀석이 잠이 안 온다고 칭얼거리면, 제가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곤 했습니다. 늑대 목소리, 돼지 목소리, 공주님 목소리... 흉내 내면서요. 그럼 그 녀석은... 제 목소리가 꼭 마법 같다면서... 제 품에서 잠이 들곤 했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그는 트라우마를 고백하는 환자가 아니었다.그는 그저,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을, 소중한 사람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윤세리의 눈빛은, 그 어떤 때보다 깊고 따뜻했다. 그녀는 의사로서 그의 과거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의 추억에 조용히 동행해주고 있었다.* 새로운 지옥, 그리고 희망어느덧 해가 저물고, 두 사람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현준은 윤세리를 그녀의 차까지 바래다주었다. 어색했던 첫 만남과는 달리,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편안하고 따뜻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현준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저와... 같이 걸어주셔서요.""천만에요."윤세리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하지만 기억해요. 이건 첫걸음일 뿐이에요. 앞으로 가

  • 만년 엑스트라, 한류를 삼키다!   27

    * 설렘이라는 낯선 감정다음 날 아침, 이현준은 난생처음으로 옷장 앞에서 30분을 넘게 서성였다. 어제 촬영장에서 입었던 편한 트레이닝복, 10년간 그의 교복이었던 낡은 면바지와 티셔츠, 그리고 김동진이 사준 몇 벌의 비싸고 단정한 옷들.그는 옷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몇 번이고 거울 앞에 서보았다. 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너무 편하게 입고 나가면 성의 없어 보이지 않을까.'같이 걸어볼까요?'윤세리의 그 한마디는, 지난밤 내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의사의 제안이 아닌, 한 여자의 초대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배우 이현준이 아닌 남자 이현준으로서 그 초대에 응하러 가는 길이었다.수십 개의 배역을 넘나들며 단 한 번도 긴장해 본 적 없었던 그가, 지금은 고작 옷 한 벌 고르는 일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 낯선 감정의 이름이 '설렘'이라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될 터였다.결국 그가 고른 옷은, 가장 무난한 청바지와 흰 셔츠였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위태롭고 공허한 배우가 아니었다. 조금은 어색하고 수줍어 보이지만, 분명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를 가진, 30살의 남자였다.* 하이에나의 침묵같은 시각, 연예부 기자 강소영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밤새 정리한 취재 노트를 덮었다.노트에는 이현준의 끔찍했던 과거와, 그 상처가 어떻게 지금의 그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그녀의 분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특종'이 아니었다. 한 인간의 영혼에 대한, 너무나도 깊고 슬픈 통찰이었다."강 기자, 이현준 건은 어떻게 됐

  • 만년 엑스트라, 한류를 삼키다!   26

    강소영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하지만... 동생은 구조대가 도착하기 직전에, 현준이의 손을 잡은 채로... 숨을 거뒀습니다. 현준이는,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의 손안에서...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 죽어가는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겁니다."노교사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구조되었을 때, 현준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비명도 지르지 않았어요. 그저... 텅 빈 눈으로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죠. 그날 이후로, 현준이는 웃음과 울음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마치 자신의 모든 감정을, 죽은 동생과 함께 그 차가운 사고 현장에 남겨두고 온 아이처럼... 그렇게, 텅 빈 껍데기가 되어버렸습니다."이제야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그의 공허함, 그의 기이한 재능의 기원. 그것은 신의 선물이 아니었다. 끔찍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감정을 봉인해버린 한 소년의 처절한 자기 방어기제였던 것이다.강소영은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특종 기사'로 쓸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것은 한 인간의 영혼에 대한, 너무나도 아프고 신성한 기록이었다.* 제어된 광기, 완벽한 사냥다시, '아수라'의 촬영 현장.오늘의 촬영분은, 자신을 배신한 조 검사(조민극)를 남규만이 직접 처단하는 장면이었다.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장 격렬하고 위험한 씬이었다. 이창욱 감독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카메라 뒤에서 숨을 죽였다."액션!"남규만은 도망치려는 조 검사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없었다. 오직, 아끼던 장난감이 고장 난 것을 보는 어린아이 같은, 차가운 실망감만이 어려 있었다."제가... 검사님을 얼마나 믿었는데."

  • 만년 엑스트라, 한류를 삼키다!   25. 만년 엑스트라, 한류를 삼키다!

    *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웃음그날 밤, 현준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영화관을 찾았다. '아수라' 같은 무거운 영화가 아닌,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유치찬란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다.처음에는 어색했다.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배우들의 연기와 카메라 워킹을 분석하고 있었다.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이 바나나 껍질을 밟고 아주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장면에서, 현준은 자신도 모르게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아주 작고, 어색한 소리. 하지만 그것은 분명, '이현준'의 웃음소리였다.그는 자신의 웃음소리에 스스로가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다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에서, 아주 따뜻하고 낯선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이게... 웃는 거구나.'윤세리의 마지막 숙제. 그는 마침내, 자신을 웃게 만드는 것을 찾아냈다.영화가 끝나고,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던 그의 휴대폰이 '띠링'하고 울렸다. 김동진 실장에게서 온 문자였다.[휴식은 끝났습니다. 이틀 뒤, 촬영 재개합니다. 감독님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준비됐습니까?]다시, 지옥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현준은 휴대폰 화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이전과는 다른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두려움. 하지만 그 두려움 옆에는, '돌아올 수 있다'는 작은 희망과, 돌아왔을 때 자신을 기다려줄 한 사람의 얼굴이 함께 떠오르고 있었다.* 왕의 귀환이현준이 다시 '아수라'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낸 날, 현장의 공기

  • 만년 엑스트라, 한류를 삼키다!   24

    * '이현준'을 되찾는 연습"숙제를 내드릴게요."첫 상담이 끝날 무렵, 윤세리가 말했다."아주 간단해요. 하루에 한 번, '이현준'의 감각을 깨우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그녀가 내준 숙제는 연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하나, 매일 다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그 맛과 향의 차이를 노트에 적어볼 것.둘, 버스를 타고 창밖 풍경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세 가지를 그림으로 그려볼 것.셋, 서점에 가서 아무 책이나 한 권 골라, 소리 내어 한 페이지를 읽어볼 것.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이현준'을 웃게 만드는 것을 찾아볼 것."현준 씨는 지난 10년간, 그리고 최근 몇 달간 너무 많은 타인의 삶을 살아왔어요. 이제 다시 '이현준'의 삶으로 돌아오는 연습이 필요해요.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세요. 당신의 몸이, 당신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걸 다시 기억하게 만들어 주세요.“다음 날부터, 현준은 숙제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저 사람은 어떤 약점을 가졌을까' 분석하는 남규만의 시선이 튀어나왔다.하지만 그는 의식적으로, 윤세리의 말을 떠올리며 커피의 쓴맛과 우유의 부드러움에 집중하려 애썼다.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삐뚤빼뚤하게나마 노트에 그렸다. 서점에서 동화책을 골라, 낭독 부스에서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처음에는 수치스러웠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피식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아주 조금씩, 세상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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