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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눈빛 속의 약속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들어오거라.”

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

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

“언제 오셨나요?”

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

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

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무심한 듯 물었다.

“손은 좀 괜찮아졌느냐?”

“예, 다 나았습니다.”

강유영은 짤막하게 답했다.

심한 화상도 아니었고 화상 연고를 바로 발랐기에 아무런 흉터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나았다.

조원철은 말없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강유영은 그 시선에 불안감을 느끼며 조심스레 용건을 물었다.

“손수건 돌려주러 왔다.”

조원철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기다란 손가락 위에 어울리지 않는 연분홍색 손수건이 걸쳐져 있었다. 선이 깔끔하고 유려한 손가락에 손등에는 옅은 청색 핏줄이 선명하게 비쳐 보였다. 참으로 보기 좋은 손이었다. 마치 저 손에 무한한 힘이 담긴 듯, 모든 것을 손에 장악하고 있는 듯했다.

이 손이 그날 자신의 손에 깍지를 끼고 자신을 벽으로 밀치던 것을 생각하면,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뻗어 그날 밤 비밀의 장소에 같이 있었던 손수건을 가로챘다.

하지만 조원철은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강유영은 흠칫하다가 힘껏 잡아당겼다.

마침내 손수건이 그녀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려 당장이라도 이걸 어딘가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결국 종종걸음으로 다가가서 장롱을 열고 아무렇게나 던져 넣었다.

장롱을 닫은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조원철을 힐끗 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오라버니, 이만 돌아가셔야죠.”

단비가 주방에 밥을 가지러 갔는데 그가 이곳에 계속 버티고 있다가는 이따가 돌아온 단비에게 들킬지도 모른다.

“약 발라야지.”

그가 다가오더니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에는 여전히 백옥병이 들려 있었다.

강유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거절하지 않고 약병을 받아 병풍 뒤로 들어갔다.

거절한다면 스스로 한다고 손을 뻗어올지 모른다.

그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게다가 약효가 좋아서 통증이 많이 가라앉은 터라, 이번에 한번 바른 후에는 더 이상 필요 없을 듯했다.

그녀는 재빨리 약을 바른 후에 병풍 밖으로 나와 약병을 조원철에게 돌려주었다.

이제 볼 일이 끝났겠지?

조원철은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라버니, 오늘은 이만 쉬고 싶네요.”

강유영은 용기를 내어 축객령을 내렸다.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어 마음이 착잡했다.

낮에는 왕연령과 맞선을 보더니 밤중에 찾아오다니. 설마 몰래 자신을 외실로 두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괜찮은 게냐?”

그가 또 물었다.

“예, 다 나았습니다. 앞으로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강유영은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용기를 내어 선을 긋기로 했다.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다정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속으로 그런 느낌을 부정해 버렸다.

조원철에게 다정을 기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강유영, 착각하지 마!’

“연화 아씨, 사예 아씨, 저희 아씨는 지금 막 쉬시려고 누우셨어요.”

밖에서 단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유영은 화들짝 놀라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조연화와 조사예가 지금 둘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어찌 해명한단 말인가?

“이쪽으로 오십시오.”

위기의 순간, 다른 것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조원철의 손을 확 잡아당겨 장롱 쪽으로 데려갔다.

손에 부드럽고 말캉한 감촉이 닿았다. 가녀린 손가락이 안쓰러워 힘을 주기에도 아까웠다.

그녀가 이렇게 먼저 다가와 손을 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원철은 흠칫하더니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움직일 수 없었다.

“어서 들어가세요.”

강유영은 당황한 얼굴로 그를 장롱 안으로 밀쳤다.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 예법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장롱에 쑤셔 넣기에는 그의 키가 너무 컸다.

허둥대는 사이, 그의 이마가 장롱 모서리에 부딪치고 말았다.

조원철은 겁내지 말라는 말을 조용히 삼키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몸을 낮춰 장롱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으세요?”

강유영은 당황한 마음에 그의 이마를 문질렀다.

지금의 그녀는 이미 깊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고 오직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 두려우냐?”

조원철은 장롱 안에서 검고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두렵죠. 전 오라버니와는 처지가 다르니까요.”

강유영은 허둥지둥 장롱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갔다.

조원철이라면 당연히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 진국공의 장남이자 집안의 세자, 삼군 원수인데다 이제는 어전 지휘사의 자리까지 오른 몸이고 온 가문의 영광이었다.

사태가 벌어지면 진국공부는 분명히 그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이 일을 덮겠지만, 그 과정에서 제거되는 것은 힘없는 그녀가 될 것이다.

장롱 문이 닫히자, 조원철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이마를 살짝 만져보았다.

한편 강유영이 나가서 문을 열자, 문을 밀치고 들어오려는 조연화와 조사예가 보였다.

“강유영, 이 뻔뻐한 것! 오라버니가 좀 불쌍하게 여겨준다고 고새를 못 참고 부용원에 옮겨달라고 요구하다니! 너 따위가 이런 좋은 곳에 어울린다고 생각해?”

진국공부 넷째인 조사예는 서출이었다. 평소 조연화에게 붙어서 아부하며 그녀의 수족 노릇을 했다.

강유영을 보자마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비아냥거렸다.

조사예는 풍만한 몸매에 볼에 젖살이 덜 빠져서 순박한 인상이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강유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막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사예 아씨는 부용원이 무척이나 욕심나나 봅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국공 부인께 가서 거처를 옮겨달라고 간청하지 그러셨나요?”

언제 돌아온 건지, 서유가 다가와서 조사예를 반박했다.

강유영과 단비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예전에는 한 번도 대놓고 강유영의 편을 들어준 적이 없는 서유였다.

요즘따라 뭔가 이상했다.

조사예는 흠칫하더니 서유를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년이 정녕 미쳤구나! 내 이것을 그냥….”

예전에 강유영을 비꼴 때도 늘 투명 인간처럼 존재감이 없었던 시녀였다.

오늘은 뭘 잘못 먹었길래 감히 이런 식으로 반발하는 걸까?

“닥치지 못해?”

조연화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화를 끊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강유영을 바라보며 다가와서 냄새까지 맡았다.

맑은 고양이상 눈매에 굉장히 사랑스러운 외모의 소유자였지만 한씨가 너무 애지중지 키운 탓인지 성격은 굉장히 괴팍했다.

조사예는 억울했지만 감히 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 서유를 힘껏 노려보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강유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왜 이러는 거지?

“네 몸에서 왜 회춘고의 냄새가 나지?”

조연화는 매서운 눈초리로 강유영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녀는 회춘고의 향기를 너무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열두 살 나던 해, 나들이를 나갔다가 부주의로 넘어져 얼굴을 다쳐 흉터가 생긴 적이 있었다. 온 집안이 이에 안달이 났지만 완전히 흉터를 제거할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어머니 한씨가 황후께 부탁하여 겨우 회춘고를 하사받아 세 번을 발랐는데 흉터도 사라지고 전보다 더 매끄러운 피부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회춘고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황실의 하사품인 회춘고를 강유영이 어떻게 가지고 있었을까?

강유영도 그 말을 듣고 표정이 굳었다.

조원철이 준 연고가 최상급 연고인 줄은 알고 있었다. 통증이 신속히 완화되고 몇 번 안 발랐는데 상처가 거의 다 나을 정도로 효과가 빨랐다. 그런데 그게 그 귀하다는 회춘고일 줄이야!

“이년이 무슨 수로 황실 연고를 구했겠어요?”

조사예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지난달에 쪽문으로 어딜 다녀오는 걸 봤는데 내가 보기엔 저 요망한 얼굴로 어디 귀한 분을 홀려서 얻어낸 거겠죠. 생긴 게 딱 여우처럼 생겼잖아요.”

그녀는 증오에 찬 눈으로 강유영을 바라보았다. 조사예는 예전부터 외모가 자신보다 빼어난 강유영을 질투했다.

“사예 아씨도 첩실의 자식 아닌가요? 호박만한 얼굴이 그리 마음에 안 드셨나 보죠? 그래서 저희 아씨를 질투하시는군요.”

강유영이 뭐라 하기 전에 서유가 비아냥거렸다.

정곡을 찌르는 서유의 말에 조사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년이 보자보자 하니까….”

그녀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서유에게 달려들었다.

“조용히 좀 있어!”

조연화가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쳤다.

조사예는 진심으로 짜증이 난 조연화의 눈치를 보고 분노를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네가 내 처소 바로 옆으로 이사 온 거, 굉장히 기분 나빠. 원래는 쫓아버릴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네? 네가 하는 거 봐서 결정해야겠어.”

조연화는 의자로 다가가서 앉더니 교만하게 강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춘고 말이야. 네가 스스로 내놓을래? 아니면 내가 수색할까?”

마치 회춘고는 당연히 자신의 소유여야 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강유영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제멋대로이고 의심이 많은 조연화이니 없다고 해도 쉽사리 믿지 않을 것이다.

조연화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탁자를 치며 일어섰다.

“여봐라, 당장 안을 수색해서 연고 같은 것들은 모조리 꺼내서 가져오거라!”

그녀의 한마디에 수십 명의 시녀와 어멈들이 우르르 방 안으로 몰려들어 이곳저곳 뒤지기 시작했다.

“그만해!”

서유가 다급히 그들을 막아섰다.

단비도 굳은 표정으로 조연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화 아씨, 이러시면 저희가 세자께 알릴 수밖에 없어요. 그 뒷감당을 어찌 하시려고 이러십니까?”

조연화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 쳤다.

“큰 오라버니를 들먹여도 소용없어. 오라버니께서 강유영을 감싸는 건 그저 진국공부의 평판을 위해서야. 친동생은 나라고! 내실도 뒤지거라!”

강유영은 장롱 속에 숨긴 조원철을 떠올리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녀는 급하게 달려가서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아 금세 밀려서 문이 열리고 말았다.

단비와 서유도 어멈들에게 제압당했다.

시녀들이 몰려가서 저녁에 금방 정리한 방을 엉망진창으로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강유영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달려가서 장롱 문을 열려는 시녀를 밀쳐내고 두 팔을 벌려 장농 앞을 가로막았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이 이상 무례를 부리신다면 저도 큰 오라버니를 찾아가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습니다. 큰 오라버니 성격은 아씨께서도 잘 아시겠지요. 그분은 가족의 정보다 공정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강유영은 당황한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겉보기에는 침착해 보이지만, 사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한씨는 지나칠 정도로 조연화를 편애했고 진국공은 집안일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무법천지인 조연화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는 조원철뿐이었다.

강유영은 그를 내세워 겁을 줘서 이 소란을 그만두게 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조연화는 강유영의 뒤에 있는 장롱을 노려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러더니 마침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계속 뒤지거라! 고작 사흘 정도 사당에 갇히는 것밖에 더하겠어? 누가 두려워할 줄 알고?”

사흘 정도 사당에 갇히는 대가로 회춘고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이득이었다.

시녀들이 몰려와 좌우에서 강유영을 붙잡았다.

조연화가 장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 돼!”

강유영은 다가오는 그녀를 보며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자신의 장롱 안에 숨어 있는 조원철 생각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해도 오해를 사기 십상이었다.

하물며 그들은 완전히 결백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장롱 문이 열리는 순간, 강유영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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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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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희
책 잘 안읽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청소도 접고 이거 보고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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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주
우와 ~몇년만에 느끼는 설렘의 소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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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을 내려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현지인인 장위봉이 지름길로 안내했지만 그럼에도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강유영은 기진맥진했다. 태어나 이토록 고생해 본 적이 없었다.온몸의 근육이 시큰거리다 못해 감각마저 무뎌졌지만, 끝내 눈을 붙이지는 못했다.대나무 가마가 불편하기도 했거니와, 자칫 졸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체면을 구길까 봐 겁이 났다.그녀는 반쯤 눈을 감은 채, 장위봉이 조원철에게 호주의 사정을 낱낱이 보고하는 소리를 잠자코 들었다.호주 부사인 장위봉은 태자의 처형인 하기정 다음으로 직급이 높은 자였다.그러니 호주 관아의 썩어빠진 내막을 잘 알았다.그는 조원철의 질문에 한 치의 막힘도 없이 대답했다.알고 보니 호주 지부 하기정은 동광산 은닉하고 반년이 넘도록 몰래 채굴해 왔다고 한다.그렇게 캐낸 동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태자에게로 보냈다.강유영은 몽롱한 정신으로 그들의 대화를 주워들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기력이 없었다.마침내 산을 다 내려왔다.고개를 들어 저 멀리 호주성이 보이자, 그녀는 그제야 조금 기운을 차렸다."대인, 집안이 가난하여 거처가 몹시 누추합니다. 부디 너그러이 헤아려 주십시오."장위봉은 미안한 얼굴로 허름한 대문을 열어주었다.초라한 마당과 집을 본 강유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무리 그래도 장위봉은 어엿한 오품 관료였다.못해도 호주성 내의 번듯한 기와집에는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성 밖의 이토록 외진 곳에 살고 있을 줄이야.허름한 지붕을 보니 평범한 백성들이 사는 집보다 못했다.아무리 청렴하다 한들 오품 부사의 거처가 이리 한미할 수 있단 말인가.다른 연유가 있는 듯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조원철을 바라보았다.조원철은 무심한 얼굴로 가마에서 내려 장위봉에게 걸어갔다.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다친 다리로 향했다.놀랍게도 그의 걸음걸이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반듯했다. 전혀 다친 사람 같지 않았다.부상을 입는 순간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청류가 새로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42화

    강유영은 가만히 그를 살피고는 천천히 긴장을 풀었다.조원철을 대하는 태도가 깍듯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악의는 없는 듯했다.청운은 고개를 돌려 조원철의 눈치를 살폈다.조원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허락이 떨어지자 청운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장 대인, 우리 주군의 신분을 어떻게 아셨습니까?""저는 호주 지부 하기정이 사사로이 동광을 캔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허나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지요. 어젯밤 하 지부가 이 산으로 사람을 올려보내는 걸 보았습니다. 소리가 좀 컸어야지요.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조 대인께서 호주에 오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소집할 수 있는 인력을 모조리 소집하고 대인을 도우러 왔습니다. 밤새 산을 뒤진 끝에야 겨우 이리 찾아뵙게 되었지요."고개를 푹 숙인 장위봉은 몹시 간절한 어투로 호소했다.사정을 듣고 보니 장위봉은 그들과 한통속이 되기를 거부하다 배척당한 모양이었다. 썩어빠진 호주 지부에서 유일하게 청렴함을 지킨 관리인 셈이다.뜻밖의 조력자가 생겼으니 좋은 일이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조원철을 바라보았다.장위봉을 잠시 응시하던 조원철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장 대인이 청렴하다는 명성은 익히 들었소. 반갑소."그가 운을 떼자 청운 일행은 지체 없이 고개를 숙이며 양옆으로 물러났다.강유영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이곳은 경성에서 멀리 떨어진 호주인데 조원철은 어떻게 일개 부사를 안다는 걸까? 고작 5품 부사에 불과한 자의 명성이 경성까지 닿았을 리는 없었다.하지만 그런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조원철은 이곳에 오기 전 호주 관리들의 행적과 인품에 대해 사전 조사를 미리 했을 것이다.장위봉에 대해서도 그때 어느 정도 요해한 듯했다.장위봉은 공손히 예를 갖춘 후, 간곡히 청했다."모두 과장된 소문일 뿐입니다. 당치도 않지요. 대인, 광산은 여전히 붕괴할 위험이 다분합니다. 누추하지만 저의 거처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거기서 이곳 상황을 상세히 보고 올리겠습니다."조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41화

    하지만 그녀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결국 한 걸음 내디디려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뒤에 있던 조원철이 재빠르게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았다.강유영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조원철을 본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오라버니…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오셨습니까?"그녀의 시선이 다친 그의 다리로 향했다.상처를 동여맨 상아색 속적삼은 이미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너 혼자 보내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조원철은 덤덤하게 대답했다.강유영은 눈시울이 뜨거워져 황급히 몸을 숙여 상처를 살폈다."아씨, 소인에게 붕대가 있습니다."청류가 황급히 붕대를 건네며 말했다."소인이 하겠습니다."강유영은 일단 조원철을 부축해 앉혔다. 그러고는 옆에 서서 청류가 상처를 치료하고 붕대를 감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마음속으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했다.그가 그녀더러 혼자 산에 올라 구원병을 부르라 한 것은 담력을 키워주기 위함이었다.그는 그녀가 겁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산속은 위험하니 몰래 뒤따라오며 그녀를 지켜준 것이다.매정한 사람이라고 하자니, 자신을 구하려다 다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게다가 부상을 입은 몸으로 산길 내내 뒤에서 보호해주었으니 이보다 더 다정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다정하다고 하자니, 화가 났을 때는 그녀의 의사를 깡그리 무시하고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다.당장 어젯밤 일만 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게다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던 사랑의 말까지 생각하면 더 서러움이 치솟았다.눈앞의 상황과 지난날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강유영은 가슴이 먹먹하고 쓰라렸다.'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서왕의 흔적은 찾았느냐?"조원철이 물었다."서왕은 어젯밤 산을 내려갔습니다."청운이 답했다."수하들을 붙여두었으나 아직 별다른 보고가 없습니다.""무너진 광산의 위치는 확인했느냐?"조원철이 다시 물었다."예. 직접 확인해 보니 동광이었습니다."청운은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2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꾸나.”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유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정신은 아찔해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문이 열리면 둘 다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온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조원철의 어깨를 밀었다.그녀는 안간힘을 쓴 것이었지만, 조원철에게는 그저 간지러울 정도였다.투명한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길게 말린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축 처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화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화

    “기특하기도 하지.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한씨는 웃으며 강유영을 향해 손짓하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밖에서 강유영에게 잘해주는 것은 인자한 진국공 부인의 명성을 위해서였다.강유영은 약상자를 장 의원에게 건네고는 고분고분 그쪽으로 다가갔다.장 의원은 그녀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유영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다. 장 의원은 손을 뻗어 한씨의 손목에 대고 진맥을 시작했다.한씨의 옆에 앉은 강유영은 불안하게 병풍 뒤쪽을 힐끔거렸다.조원철은 탁자 앞에 마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화

    “유영아? 얘네가 다 어디로 갔지?”한씨가 병풍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어머니, 오지 마세요. 제가 부주의로 우유차를 옷에 쏟아서 닦고 있었습니다.”다급한 마음에 강유영은 아무 핑계나 둘러댔다.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한씨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네 오라비는?”강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애원에 찬 눈길로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조급한 나머지 맑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조원철은 그날 밤 그만하자고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겨 단단히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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