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독박육아 10년. "집에서 애나 봤지, 뭘 했어." 남편은 그 말과 함께 이혼 서류를 던졌다. 도장을 찍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회장님, 이사회 전원 도착했습니다." 무능한 여자라 손가락질받던 나는, 사실 잠적했던 JL그룹의 후계자였다. 버림받은 그날, 나는 회장으로 돌아간다. 나를 버린 남편도, 나를 무시한 시댁도, 뒤에서 끌어내리려는 적들도. 이제 내 발밑에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View More"도장 찍어. 나도 이제 너 같은 여자랑은 못 살겠으니까."
강민호가 식탁 위로 서류를 툭 던졌다. 이혼 합의서. 잉크 냄새가 아직 가시지도 않은 새 종이였다.
서지안은 행주를 쥔 손을 멈췄다. 10년이었다. 결혼하고 10년 동안 이 집에서 그녀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고, 시어머니 한약을 달였고, 남편이 승진할 때마다 회사 사람들 밥을 차렸다. 그리고 혼자 아이를 키웠다.
"…이유가 뭔데."
"이유? 넌 10년 동안 집에서 애나 봤지, 뭘 했어. 나는 밖에서 죽어라 버는데. 집에서 노는 여자랑 사는 게 이젠 창피해."
집에서 논다. 그 말이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했다.
"민호 씨, 우리 서아는....."
"애는 내가 키워. 우리 엄마가 키운다고. 너 같은 무능한 엄마 밑에서 크면 애 인생 망쳐."
그때였다. 식탁 위에 엎어두었던 그녀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화면이 켜졌다. 강민호의 시선이 무심코 그쪽으로 향했다.
영어로 된 메시지 한 줄.
[회장님, 이사회 전원 도착했습니다. 귀국 일정만 확정해 주시면 됩니다.]
"…회장?"
강민호가 피식 웃었다.
"뭐야 이건. 너 또 무슨 스팸 문자야? 영어 읽을 줄은 알고?"
서지안은 천천히 행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10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봤다.
"읽을 줄 알아."
그녀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미끄러졌다. 그리고 짧게, 영어로 답장을 보냈다.
[Tell them I'm coming back. (돌아간다고 전해.)]
강민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서지안은 식탁 위의 이혼 서류를 끌어당겼다. 펜을 들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장? 줄게."
사인이 끝나는 순간, 그녀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대신 민호 씨, 한 가지만 기억해. 오늘 이 사인, 당신 인생에서 제일 후회할 결정이 될 거야."
물류창고의 밤이 지나고, 판세는 분명 서지안 쪽으로 기울었다.붙잡힌 사내들 중 하나가, 결국 입을 열었다. 서영애 측 중간 관리책에게서 직접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이었다. 물론 서영애는 그 관리책과의 연결을 완전히 잘라 낼 것이 뻔했지만, 적어도 '증인을 없애려 사람을 보냈다'는 사실만은, 이제 영상과 음성으로 또렷이 남았다."이걸로, 유언장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았어요."법무팀장이 모처럼 밝은 얼굴로 보고했다."상대가 증인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려 했다는 정황은, 재판부의 심증에 결정적입니다. '떳떳한 사람은 증인을 죽이려 들지 않는다'… 이 한 줄이면 충분하죠."서지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 서영애는, 궁지에 몰릴수록 더 위험해지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 다른 칼을 갈고 있을 터였다.그리고 그 예감은, 오래지 않아 최악의 형태로 들어맞았다.***이틀 뒤, 늦은 오후.회장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서지안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집안일을 돌봐 주는 가정부였다."사모님. 저… 서아가, 하원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 집에 오질 않아서요. 통학 차량은 벌써 다녀갔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가…"순간, 서지안의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곧장, 유치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아, 서아 어머님. 서아는 아까, 아버님이 오셔서 데리고 가셨는데요?"교사의 태연한 목소리에, 서지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아버님이요?""네. 친권자시고, 서류도 다 갖추고 계셔서… 저희는 당연히, 사모님과 얘기가 된 줄로만 알았어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쿵. 심장이, 발밑으로 떨어졌다."…강민호가."이혼한 전남편. 서아의 친아버지. 유치원이 그를 막을 명분 따위, 애초에 없었다. 바로 그 허점을, 그가 파고든 것이다."…선생님. 그 사람, 저와는 아무 얘기도 없었어요. 지금 당장 CCTV 확인하시고, 경찰에도 신고해 주세요. 제가, 곧 갑니다."전화를
"…죽은 줄 알았던 쥐새끼가, 아직 살아 있었구나."서영애의 낮은 목소리가, 텅 빈 집무실에 서늘하게 깔렸다.15년 전, 그녀는 분명 한무현을 끝장냈다고 믿었다. 협박 한 번에 짐을 싸 들고 사라진 겁쟁이. 그런 자가 다시 기어 나와, 하필 지금 조카의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그 인간이 쥐고 있는 자료가, 어디까지지."서영애의 손끝이,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유언장은 표식 하나에 발목이 잡혔고, 이제 15년 전 비자금의 산증인까지 살아 돌아왔다. 종이로도, 돈으로도 완벽했던 판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오래 흔들리지 않았다. 곧 입가에, 익숙한 냉소가 번졌다."…뿌리를 뽑으면 그만이지."15년 전에도 그랬듯이. 방법은, 언제나 같았다.***한편, 서지안의 회장실.강도현은 한무현과의 만남을 전해 듣고,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창밖을 응시하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위험해. 서영애가 한무현이 살아 있다는 걸 알면, 15년 전처럼 손을 쓸 거야. 이번엔, 협박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고.""저도, 알아요."서지안은 담담했다. 오히려 그 담담함이, 강도현을 더 불안하게 했다."한무현 씨는, 15년을 숨어 살았어요. 이제 겨우 세상 밖으로 나왔죠. 그런 분을, 다시 위험 속에 방치할 순 없어요.""그래서, 어쩌려고."서지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눈빛에는, 이미 결심이 서 있었다."한무현 씨를, 가장 안전한 곳에 숨길 거예요. 그리고 동시에… 서영애가 그분을 찾아 움직이도록, 미끼를 던질 거예요."강도현의 미간이, 깊게 좁혀졌다."미끼라니.""한무현 씨가 '결정적 자료'를 들고 특정 장소로 움직인다는 정보를, 일부러 흘리는 거예요. 서영애는 분명, 그 자료를 없애려고 사람을 보내겠죠. 그 손을 잡으면… 서영애가 한무현 씨를 노렸다는 증거가 돼요."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15년 전, 서영애는 완벽하게 빠져나갔어요. 증거를 남기지 않았으니까. 하
약속 장소는, 도심에서 한참 벗어난 한적한 찻집이었다.손님이라곤 거의 없는 구석 자리. 그곳에,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가 먼저 와 앉아 있었다. 단정한 회색 정장에, 세월이 깃든 차분한 눈매. 서지안이 다가가자,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여울 아가씨군요. 많이, 컸습니다."순간, 서지안의 발걸음이 멈췄다. '여울'.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남지 않았다."…저를, 아세요?"노신사는 옅게 웃으며,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앉으시죠. 저는, 한 무현이라고 합니다. 오래전… 사모님 밑에서, 자금을 관리하던 사람입니다."장주련. 어머니의 이름이 나오자, 서지안의 심장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사모님은, 보기보다 훨씬 꼼꼼하고 치밀한 분이셨습니다."한무현이, 식은 찻잔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회장님 곁에서 늘 한 발 물러나 계셨지만… 회사의 돈줄이 어디서 새는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계셨죠. 그게, 사모님의 무서운 점이었습니다."그는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15년 전. 사모님은 제게, 은밀한 일 하나를 맡기셨습니다. 서영애 부회장이 빼돌리는 돈의 흐름을… 전부 추적해 달라고."서지안의 손끝이, 찻잔 위에서 가늘게 떨렸다."그래서… 찾으셨나요.""찾았습니다."한무현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서영애 부회장은, 단순히 회삿돈을 조금씩 빼먹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유령 회사를 몇 개나 세우고, 바다 건너로 돈을 빼돌려… 제 것으로 키우고 있었죠. 사모님은 그 증거를, 거의 다 손에 쥐셨습니다. 주주총회에서, 그걸 터뜨릴 작정이셨고요.""…그런데."
며칠 사이, 시장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JL 주가가, 까닭 모를 출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큰 악재가 터진 것도 아닌데, 누군가 매일 일정한 양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었다. 그것도,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외국계 펀드 이름으로."회장님. 아무래도, 정상적인 매집이 아닙니다."자금팀장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긴장된 목소리로 보고했다."이름은 다 다른데… 매수 패턴이 똑같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서지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고모님이군요."유언장 위조가 들통날 위기에 몰리자, 서영애가 전혀 다른 칼을 빼 든 것이다. 법정에서 종이로 안 되면, 시장에서 지분으로. 주주총회 표 대결을 앞두고, 우호 지분을 끌어모으려는 속셈이었다.문제는, 그 자금의 규모였다."팀장님. 저 펀드들… 어디서 돈이 나오는지, 추적이 됩니까."자금팀장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그게… 조세 회피처를 몇 단계나 거쳐서, 끝이 안 보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회장님 개인 자금이라기엔… 규모가 너무 큽니다. 이건, JL 부회장 한 사람이 굴릴 수 있는 돈이 아니에요."서지안은 알고 있었다. 그 돈의 정체를.수십 년간, 서영애가 JL의 살을 갉아먹으며 빼돌린 비자금. 그것은 이미 오래전, 바다 건너 정체불명의 거대한 투자회사로 자라나 있었다. 표면의 서영애는 그저 지분 12퍼센트의 부회장이었지만, 그림자 속의 그녀는 굴지의 대기업에 견줄 자본을 손에 쥔 사람이었다.***같은 시각, 서영애의 집무실.서영애는 여러 대의 모니터 앞에 앉아,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있었다. 각각의 화면에는, 서로 다른 펀드 명의로 들어가는 매수 주문이 실시간으로 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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