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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일설연우
유소영은 이곳에서 밤을 자겠다는 고장훈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게다가 마치 큰 은혜를 베푸는 듯한 그의 거만한 태도가 더 불쾌했다.

정말로 자신을 지고지상의 존재로 여기는 것인가?

그녀는 차라리 그가 밤낮으로 청우각에 머물며 임유정과의 사이에서 하루라도 빨리 귀한 자식을 보길 바랐다.

고장훈은 그녀가 침묵하는 것을 보고 너무 기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년이나 이날을 기다렸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그러나 고개를 든 유소영의 얼굴에는 그 어떤 희열도 느껴지지 않았고 눈은 죽은 호수처럼 평온하여 아무런 파동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버님의 시신이 나날이 부패하고 있으니, 장군께서는 응당 모든 정력을 형님께 집중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사려가 깊은 사람이었다니.

하지만 왠지 모르게 고장훈의 마음에는 묘한 불편함이 일었다.

그는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꽤나 풍성한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삼계탕, 굴비 구이 등등 그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값비싼 요리들까지 없는 게 없었다.

그러나 시녀는 그의 앞에 수저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난향원 사람들은 참으로 눈치가 없구나.’

그는 청우각에서 먹었던 음식상을 떠올렸다. 비교를 해보니 그야말로 조촐한 음식상이었다.

고장훈은 순간 불만이 치밀었다.

“당신이 형수께 보양품을 사주려 한다는 얘기는 어머니께 들었소. 형수는 동산방의 제비집을 좋아하니 많이 사두게. 그리고 앞으로 청우각의 식사도 부인의 처소와 똑같은 격식으로 차리게. 다른 사람이 보면 부인만 호사를 누린다고 오해받을 수 있고 또한 후작부가 과부가 된 형수를 박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아민은 듣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살림살이는 모두 마님이 주관하고 매달 각 처소에 배정하는 예산이 그 정도였다. 난향원의 음식이 풍성한 것은 유소영이 자신의 지참금을 보태서 마련한 것인데 청우각이 무슨 자격으로 끼니마저 난향원이 책임지라고 한단 말인가.

“장군, 예산이 그렇게 충족하지 않습니다.”

유소영은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했다.

고장훈이 언성을 높였다.

“그럴 리가!”

“믿지 못하시겠다면 장부를 확인해 보십시오.”

“내 알기로 늘 여윳돈이 남는 줄 아는데?”

유소영은 담담히 답했다.

“장군께선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으나, 사실 흑자가 나는 쪽은 모두 제 명의로 된 점포들입니다. 후작부의 점포는 간신히 적자를 면했을 뿐이지요. 한 달 전에 아버님께서 남하 순방을 명 받으시어 큰돈을 가져가셨고 지금은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 시종들에게 녹봉마저 지급하기 어려운….”

고장훈은 이런 계산적인 것들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소. 가족끼리 이런 사소한 것들까지 계산해야 한단 말이오? 후작부 예산이 부족하면 부인의 개인 예산으로 맞추면 되지. 먼저 부족한 예산을 메꾸고 나중에 갚으면 되지 않소. 지금은 형수가 가장 중요하오.”

유소영은 온화한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장군께서는 아직 모르시나 보군요. 제 개인 예산은 이미 아주버님의 한옥관과 얼음을 사는데 다 써버렸습니다.”

고장훈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가 뭐라 하기도 전에 유소영이 말을 이었다.

“그 외에도 몇몇 고위 관원들에게 장군의 승진을 도와달라 예물도 바쳤지요. 해서 지금은 남은 예산이 정말 얼마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고장훈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형님을 위한 관을 산 건 그렇다 치고, 당신이 무슨 고위 관원들을 만나 예물을 건넨단 말이오! 관가의 일을 당신 같은 상인의 딸이 뭘 안다고! 그 헛돈을 쓰느니 차라리 임 재상께서 폐하께 몇 마디 해주시는 게 더 낫거늘! 하물며 내 진급 문제는 재상의 도움이 있어 이미 내정된 수순이니, 당신이 굳이 헛돈을 쓸 이유가 뭐가 있다고!”

유소영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렇네요. 장군 말씀이 맞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니 고장훈도 더 이상 추궁하기 어려웠다.

“앞으로 모르는 게 있으면 제때에 어머니와 형수께 여쭤 보시오. 당신은 후작부의 작은 마님이자 내 장군 부인이니 상인들이나 쓰는 옹졸한 행세는 삼가야 하오. 형수처럼 사예(四藝: 악기, 바둑, 서예, 그림 등 교양 있는 규수와 문인의 상징)에 능통하고 약학을 통달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세울 수 있는 하나의 특기는 가져야 하지 않겠소. 스스로 할 일을 찾아 배우도록 하고 엉뚱한 짓은 이제 하지 마시오.”

아민은 반박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냈다.

유소영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어릴 적부터 유명 악사와 현인에게 거문고와 바둑, 서예, 그림 등을 배웠는데 그 조예를 어찌 임유정 따위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유소영은 단지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약학에 관해서는 유소영은 약왕 설 신의의 수제자였다. 평소에 잡다한 서적으로 약학을 배운 임유정이 약학을 통달하다니, 우스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유소영이 장부를 관리하지 않았더라면 후작부가 무슨 수로 지금의 부유함을 누렸을까?

아민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이를 악물었다.

유소영도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는 거지?”

고장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유소영의 눈빛에 싸늘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을 알 수 없어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장군께서 곧 작위를 하사받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뻐서 웃음이 나왔네요.”

고장훈은 그 말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다.

“곧 입궁하여 폐하를 알현해야 하니, 식사는 나중에 같이하도록 하지. 밤에는 비록 여기서 머물지 않더라도 부인을 보러 오리다.”

말을 마친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문을 나설 때까지도 유소영은 같이 식사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고장훈이 떠난 방 안.

아민은 드디어 참지 못하고 울분을 터뜨렸다.

“아씨! 세상에 무슨 저런 사람이 다 있답니까? 말끝마다 임유정 얘기에서 벗어나질 않으니,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임유정이 장군 부인인 줄 알겠어요! 게다가 동산방의 제비집이라니, 참으로 입이 고급지네요! 저들은 아씨를 재물신으로 알고 매일 은화를 뿌려주길 기대하나 봐요! 아씨도 정말 대단하세요. 말 몇 마디로 벌어들인 은화를 다 써버렸다고 믿게 하였으니, 앞으로 후작부에서 더 이상 이득을 취할 수 없게 되었네요.”

유소영은 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속한 재물은 자신이 쥐고 관리해야 한다는 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차 한 모금 들이켜고는 담담히 말했다.

“장부 담당자에게는 다 말해두었겠지?”

“어제부터 아씨의 분부대로 더 이상 그 관원들에게 은화를 보내지 말라고 전했어요. 아씨의 도움이 없이 장군께서 무슨 수로 진급할지 두고 보자고요!”

유소영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저녁부터 세자에게 침을 놓아줄 테니 준비하거라. 운이 좋다면 곧 청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야.”

아민의 눈빛이 기이하게 빛났다.

“그럼 장군과 임유정이 밤에….”

생각만 해도 흥분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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