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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균열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6-01 09:16:14

은하의 하루는 늘 같은 순서로 흘러갔다.

아침에 일어나고, 남편의 셔츠를 다리고, 식탁을 정리하고, 문 앞에서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는 언제나 짧았고, 남편은 늘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은하는 오히려 불안했다.

집 안이 조용해지자 은하는 소파에 앉았다.

TV를 켜지 않았고, 라디오도 틀지 않았다.

소음이 있으면 생각이 흐려질까 봐서였다.

어제 이수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은 아직 버티고 있잖아요.

버티고 있다는 말은 위로처럼 들리면서도 책임처럼 남았다.

그 말 이후로 은하는 스스로에게 자꾸 질문하게 됐다.

‘나는 정말 버티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멈춰 있는 걸까.’

부엌으로 가 컵을 하나 꺼냈다.

물을 따르다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컵 가장자리에서 물방울이 넘쳤다.

은하는 급히 닦았지만, 바닥에 남은 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 자국을 보며 은하는 잠시 멈췄다.

아주 작은 흔적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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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해드립니다.   133. 처음으로 받지 않은 밤

    미정은 그날 밤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미용실을 나서며 이수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도망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거예요.그 문장은 생각보다 오래 붙잡혔다.미정은 그 말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버스를 탔다.버스 안은 조용했다.저녁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휴대폰 화면 속으로 고개를 묻고 있었다.아무도 미정을 보지 않았다.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버스에서 내려 작은 모텔 간판 앞에 섰을 때, 미정은 잠시 멈춰 섰다.손이 가방 끈을 놓지 못한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오늘 하루뿐이야.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문을 밀었다.그 시간, 장미 미용실에는 이수와 하빈만 남아 있었다.영업을 마친 뒤에도 불을 바로 끄지 않았다.어둠이 들어오기 전의 애매한 시간대는 둘에게 익숙했다.하빈은 창가에 기대 서서 밖을 보고 있었다.“연락 올 것 같아?”그가 물었다.“올 거야.”이수는 서랍을 정리하며 말했다.“오늘은.”“왜.”“처음으로 집에 안 들어간 날이니까.”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았다.“이번 남편.”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전보다 위험해 보여.”“응.”“술 때문만은 아니야.”“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눈이야.”이수는 손을 멈췄다.“그 사람도 그랬어.”그 이름이 나오자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하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괜히 말을 얹으면 이수가 더 멀어질 것 같았다.“미정 씨 남편은.”이수가 말을 이었다.“밖에선 완벽한 사람이야.”“그게 더 문제지.”“응.”“그래서 균열은 안에서부터 생겨.”하빈은 이수 쪽으로 돌아섰다.“이번엔.”“네가 직접 나서야 할 수도 있어.”이수는 이미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알아.”“근데 이번엔 그게 무서워.”하빈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왜.”“겹쳐 보여서.”“미정 씨 남편이 민준 씨랑.”그 말은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이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계속 말했다.

  • 불륜해드립니다.   132. 숨을 고르는 폭력

    미정은 그날 밤 거의 잠들지 못했다.눈을 감으면 남편의 손이 어깨를 밀치던 감각이 다시 살아났고,잠깐이라도 의식이 가라앉으려 하면 ‘기록해 보라’던 그의 비웃음이 귀에 남았다.아침이 왔을 때, 그녀는 이미 깨어 있었다.정확히 말하면 잠든 적이 없었다.부엌에 나가 물을 마시다 싱크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눈 밑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고, 입술은 이유 없이 갈라져 있었다.화장은 하지 않았다.그럴 여유도, 용기도 없었다.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셔츠는 다려져 있었고, 구두도 정리되어 있었다.“오늘 일찍 나가야 해.”그는 신문을 넘기며 말했다.어제와 이어진 말은 아니었다.그래서 더 잔인했다.“아침 안 먹어?”미정은 고개를 저었다.“안 먹어.”“그래.”“요즘 입맛 없더라.”그는 그 말을 던지듯 하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묻지 않는다는 게 배려가 아니라는 걸 미정은 이미 알고 있었다.현관문이 닫히고, 그의 발소리가 사라지자 미정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휴대폰을 꺼냈다.메모 앱을 열었다.08:12아침,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 어제 일 언급 없음적으면서 손이 떨렸다.사소해 보이는 장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이수의 말이 떠올랐다.-폭력은 늘 다음 단계를 준비해요.-전날보다 오늘이 평온하면, 그건 멈춘 게 아니라 숨 고르는 거예요.미정은 메모를 저장하고 가방을 챙겼다.오늘은 미용실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장미 미용실은 평소보다 조용했다.이수는 가위를 손에 쥔 채 머리를 자르고 있었지만,손님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오히려 공간을 편하게 만들었다.미정이 문을 열었을 때, 종이 울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이수는 거울을 통해 미정을 봤다.어제보다 조금 더 굳은 얼굴.“어서 오세요.”미정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머리는… 다음에요.”“오늘은 그냥.”이수는 의자를 가리켰다.“앉으세요.”하빈은 카운터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다미정을

  • 불륜해드립니다.   131. 22시 17분의 기록

    미정은 집에 들어오기 전 현관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손잡이를 잡은 채, 문을 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집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TV 소리도, 발소리도. 이런 정적은 언제나 불길했다.미정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문을 열었다.거실 불은 꺼져 있었고, 주방 쪽에서 희미한 냉장고 불빛만 새어 나왔다.술병이 열려 있다는 뜻이었다.“왔어?”남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소파에 누운 채였다.“응.”미정은 괜히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괜히 가방을 천천히 내려놓았다.이건 습관이었다.그의 기분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몸의 기억.“오늘은 늦었네.”“병원 갔다가.”거짓말은 아니었다.다만 설명을 덜 했을 뿐이었다.남편은 고개를 돌려 미정을 봤다.눈빛이 이미 조금 흐려져 있었다.“병원?”“어디 아파?”“아니.”“그냥.”그의 시선이 미정의 얼굴에서 목으로, 어깨로 내려갔다.“근데.”“왜 화장했어?”미정의 손이 순간 굳었다.“했나?”“그냥… 립밤만.”“아니.”“했어.”그는 몸을 일으켰다.술 냄새가 확 끼쳤다.“누구 만났어?”미정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이수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설명하지 마세요.“아무도.”짧게 말했다.그 짧음이 남편의 신경을 건드렸다.“아무도가 뭐야.”“말을 그렇게 해?”“피곤해서.”“피곤하면.”“집에 바로 와야지.”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왜 꼭 밖에서 시간을 써.”미정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그만해.”그 말이 선을 넘었다.남편의 표정이 순간 바뀌었다.술을 마시기 전과 후,그리고 이 순간 미정은 그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그만?”“지금 나한테 그만하라고 했어?”그는 탁자 위의 술병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너.”“요즘 말투가 달라졌어.”미정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아니야.”“아니긴 뭐가 아니야.”“나를 무시하잖아.”그는 미정의 팔을 잡았다.

  • 불륜해드립니다.   130. 설계

    미정은 이수의 말을 듣고도 한동안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이 명령처럼 들렸기 때문이 아니라,그 말이 너무 오랜만에 자기 편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다.“제가…”미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뭘 해야 하죠.”이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대신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미정 앞에 놓아주었다.손이 조금 덜 떨리게 하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단계였다.“아무것도 새로 하실 필요는 없어요.”이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말투는 차분했고,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지금까지 해오던 걸 조금만 다르게 하시면 돼요.”미정은 고개를 들었다.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남편분은,”이수가 말을 이었다.“술을 마시면 미정 씨를 의심하죠.”“네.”“그리고, 그 의심을 말로 풀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요.”미정의 손이 다시 수건을 쥐었다.“그건 폭력이고,”이수는 단정적으로 말했다.“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이유예요.”미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불안했다.“그런데,”이수가 말을 이었다.“그 사람은 자기 행동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하빈이 그 말을 받았다.“정당화하고 있지.”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술 때문이라고 하고,”“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고,”“미정 씨가 말을 안 들어서라고 하겠죠.”미정은 그 말을 듣는 동안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이미 수없이 들어온 말들이었다.“그래서,”이수가 말했다.“이 경우에는 설명이 아니라 기록이 필요해요.”“기록이요?”“네.”이수는 테이블 위에 있던 노트를 열었다.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페이지였다.“미정 씨는 이제부터 하루에 한 가지만 하시면 돼요.”“뭐죠.”“시간.”이수는 펜으로 노트 위에 ‘시간’이라고 적었다.“남편이 술을 마시기 시작한 시간.”“집에 들어온 시간.”“말투가 바뀌는 시간.”“눈이 달라지는 순간.”펜 끝이 종이를 누를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그리고, 그때마다 무슨 말을 했는지.”미정은 조

  • 불륜해드립니다.   129. 유혹이 아니라 함정이어야 했다

    미정은 말을 멈춘 채 손에 쥔 수건만 바라보고 있었다.수건은 이미 젖어 있었고, 그 위로도 물이 조금씩 떨어졌다.비 때문인지, 손 때문인지는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이수는 서두르지 않았다.이런 순간에 질문을 먼저 던지면 사람은 설명을 하게 되고, 설명을 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변호하게 된다.지금 필요한 건 변호가 아니라 고백이었다.“술은…”이수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자주 드세요?”미정은 고개를 저었다.아주 작게.“남편이요.”그 말에 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예상과 다르지 않았다.“처음에는,”미정이 말했다.“회사 회식 때문이라고 했어요.”“그 다음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고요.”미정은 웃으려다 말았다.웃음이 아니라 습관처럼 올라온 표정이었다.“이제는 이유를 말하지도 않아요.”그 말이 방 안에 오래 남았다. 하빈은 한 발짝 뒤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필요할 때만 개입하는 거리. 이수는 그 존재가 지금은 든든했다.“금주 센터도 다녔었어요요.”미정이 말했다.“병원도요.”“몇 달은 괜찮았어요. 정말로.”그녀는 그때를 떠올리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근데,”“술을 안 마시는 게 괜찮은 게 아니라…”“술이 없으면 불안해져요.”미정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자기도 모르게 몸 어딘가를 달래는 움직임이었다.“잠을 못 자고,”“괜히 화가 나고,”“제가 뭘 하고 있든 다 의심해요.”이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정리했다.알코올 의존.금주 실패.그리고 통제 욕구.가장 위험한 조합이었다.“오늘은,”이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왜 더 심했던 것 같아요?”미정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제가,”“술 좀 그만 마시라고 했어요.”그 말은 너무 평범해서 그래서 더 무서웠다.“그게…”미정은 고개를 숙였다.“그 사람한테는 도발이었나 봐요.”그 순간, 이수의 기억 어딘가가 아주 낮게 울렸다.말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괜찮을 거라고 믿었던 말.그 한마디가 폭력을 불러왔던 순간들.“그때,”미정

  • 불륜해드립니다.   128. 폭우

    비는 갑자기 내리기 시작했다.예보도 없었고, 그럴 기색도 없던 하늘이었다.한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에는 앞이 흐려질 만큼 굵어졌다.이수는 유리창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이런 비는 대개 사람을 집 안에 붙잡아두거나, 아니면 어디로든 밀어내버린다고.“이 정도면,”하빈이 말했다.“오늘은 문 닫아도 되겠다.”이수는 대답하지 않았다.괜히 고개만 끄덕였다.아직은 닫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그때, 문 위에 달린 종이 한 번 크게 울렸다.조심스러운 소리가 아니었다.문이 반쯤 밀리며 억지로 난 소리였다.둘 다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여자가 서 있었다.비에 흠뻑 젖은 채였다.머리카락은 얼굴에 붙어 있었고, 옷은 물을 먹어 무거워 보였다.신발에서 떨어진 물이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여자는 문을 완전히 닫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숨을 고르는 것도 잊은 사람처럼 가슴이 빠르게 들썩였다.“저기…”목소리가 떨렸다.너무 떨려서 말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이수는 말없이 다가갔다.이런 사람에게 처음부터 질문을 던지는 건 늘 잘못된 선택이었다.여자는 이수를 보자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거의 무너진 목소리로 말했다.“살려주세요.”그 말이 비 소리보다 먼저 공기를 갈랐다.“남편이…”여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입술을 떼었다 붙였다 하다가 끝내 참지 못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남편이 저를 죽일지도 몰라요.”그 순간, 이수는 움직이지 못했다.얼굴에 남은 붉은 자국. 급히 닦아낸 듯 번진 화장.소매 끝 아래로 보이는 손목의 멍.설명하지 않아도 너무 많은 것이 보였다.하빈이 먼저 움직였다.아무 말 없이 수건을 가져와 여자에게 건넸다.“일단…”그가 낮게 말했다.“좀 닦으세요.”여자는 수건을 받아 들었지만어디에 대야 할지 몰라 잠시 멈춰 있었다.손이 떨리고 있었다.“앉으세요.”이수가 말했다.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여자는 그 말에 그제야 다리가 풀린 듯 의자에 주저앉았

  • 불륜해드립니다.   6. 오늘은 안 돼

    비는 새벽에 그쳤다가, 아침에 다시 내렸다.내리는 방식이 비슷해서 더 지쳤다.젖는 게 새롭지 않은 날이었다.이수는 카페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종이 울렸고, 안쪽 공기는 눅눅했다.커피 냄새가 평소보다 무거운 건, 아마 습기 때문일 것이다.습기는 냄새를 붙잡고 오래 놓아주지 않았다.진상은 이미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오늘은 기계를 닦고 있었고, 천천히 닦는 손이 어딘가 과했다.바쁘지 않은데도 서두르는 사람처럼. 그런 날은 보통,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쉰다더니, 어떻게 왔어요?.”그가 말했다.물음이 아니라 확인이

  • 불륜해드립니다.   5. 흔들림

    아침 공기는 전날보다 무거웠다.비가 그쳤다는 사실보다, 언제든 다시 내릴 수 있다는 기척이 먼저 느껴졌다.습기는 벽에 남아 있었고, 냄새는 아직 빠지지 않았다.이수는 카페 문을 열며 잠시 멈췄다.안쪽에서 나는 소리가 어제와 달랐다.머신이 돌아가는 소리,컵이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사람의 움직임이 섞여 있었다.진상은 이미 나와 있었다.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다.“오늘은 왜이렇게 일찍 왔어요?”이수가 말했다.말끝은 가볍게 올렸지만 의미를 묻지는 않았다.“잠이 안 와서요.”그는 그렇게 답했다.변명처럼 들리지 않게,

  • 불륜해드립니다.   4. 닿은 손등

    비는 밤새 그쳤다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아침이 되자 길 위엔 물기가 남았고, 공기는 묘하게 가벼웠다.무언가 씻겨 내려간 뒤의 냄새였다.이수는 카페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일찍 왔네요.”어제와 같은 말이었다.하지만 어제와는 조금 다른 눈빛이었다.말보다 먼저 인식하는 방식.그건 습관이 아니라 선택에 가까웠다.“네.”이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손이 앞치마 끈을 묶는 동안,진상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손을 따라갔다.손목, 손가락, 매듭.이수는 그 시

  • 불륜해드립니다.   3. 틈

    카페의 아침은 생각보다 빨랐다.문을 열기도 전에 커피 향이 먼저 퍼졌고,기계가 예열되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진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셔터를 올렸다.매일 같은 시간, 같은 순서였고 그래서 더 생각하지 않는 동작들이었다.이수는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문을 열자 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일찍 왔네요.”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계는 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네.”이수는 짧게 답했다.목소리는 낮았고, 불필요한 온도는 없었다.앞치마를 두르는 동안 그녀는 카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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