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전 남편과 이혼한 지 어언 1년, 뜸했던 단톡방에서 뜬금없이 나를 태그한 반하준. [냉전도 이만하면 됐으니까 그만 돌아와. 다시 시작하자.] 나는 쌀쌀맞게 답장했다. [지금 제정신이야?] 눈치 빠른 사람들이 냉큼 분위기를 파악하고 화해를 종용했다. 반하준이 참지 못하고 또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뭘 하고 지냈어?] 나는 아기를 토닥이는 다정한 남편을 슬쩍 보고는 답장을 보냈다. [산후조리 중.] 시끌벅적하던 단톡방이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반하준이 108통의 전화를 걸어왔지만, 나는 싸늘하게 외면했다. 한때 그를 목숨처럼 사랑했던 여자는 이제 그의 곁에 없었다.
Lihat lebih banyak커튼 틈으로 스며든 새벽빛이 침실의 나무 바닥 위에 내려앉아 방안은 온통 흐릿한 빛으로 감돌았다.강민아는 아주 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엄마, 엄마’하고 애타게 불렀으나, 짙은 안개에 갇힌 그녀는 끝내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지 못했다.눈을 떴을 때, 강민아는 한참 동안 멍한 상태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했다. 그저 따스한 햇살의 온기와 베개에 희미하게 남은 타인의 향취만이 낯설게 다가올 뿐이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베개에 얼굴을 살짝 비벼보았다.코끝으로 은은하면서도 시더우드와 민트가 절묘하게 뒤섞인 듯한 향기가 스며들었다.뒤이어 잊고 있던 현실이 거센 파도처럼 머릿속을 덮쳐왔다.민이가 실종되고 강나현이 끌려갔던 일, 반씨 가문 사람들에게 감금당했던 기억과 찬 바람 속에서 경찰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다.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정신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던 탓인지 그녀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밀려오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잠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강민아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침실에는 오직 그녀뿐이었다.협탁 위에는 마시기 좋게 미지근해진 물이 담긴 보온병과 펜 한 자루에 눌린 레몬색 메모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강민아는 조심스레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날카롭지만 거칠지 않고 끝이 살짝 굴려진 필체, 그것은 심은호 특유의 서체였다.[만두는 냄비에, 두유는 냉장고에 뒀으니 데워 드세요. 두유는 2분만 끓이면 됩니다. 오늘 많이 추우니까 나갈 때 외투 꼭 챙겨 입으세요.]그녀는 어젯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심은호는 소파 옆 낮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흐릿한 스탠드 노란 불빛 아래 그의 옆얼굴 선은 한없이 부드러웠으며 말없이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그녀는 이미 너무 졸려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다만 희미한 의식 속에서 그가 손을 뻗어 흘러내린 담요를 다시 여며주던 기억, 그의 손끝이 약간의 한기를 품은 채 그녀의 턱을 스쳐 지
비서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대표님, 경찰 쪽 진행 상황은 계속 주시하고 있습니다. 수색대가 밤새 산을 뒤졌지만, 반현민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경찰은?”심은호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의 말에 비서가 대답했다.“배신한 운전기사가 강나현과의 공모 관계는 전부 털어놓았지만, 화물차에서 반현민을 빼돌려 데려간 사람은 본인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습니다.”심은호는 차에 앉아 가볍게 핸들을 두드렸다.“배후에 다른 지시자가 있다고 했나?”“없다고 합니다. 저희는 지금 반현민을 진짜로 데려간 사람을 추적 중입니다.”비서가 대답을 기다렸으나 수화기 너머로는 한동안 정적만이 흘렀다.“대표님?”그제야 심은호가 입을 열었다.“최근 한 달간의 해외 송금 내역을 조직적으로 조사해. 7~9자리 금액, 특히 익명 자금이 암호화폐 지갑으로 흘러 들어간 건을 집중적으로 파헤쳐.”수화기 너머의 비서가 당황하며 다급히 말렸다.“대... 대표님, 그건 데이터가 너무 방대합니다만...”심은호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두운 차 안, 그의 옆얼굴은 조각처럼 입체적이었다. 미간에 서린 서늘한 기운은 마치 한겨울 호수 위를 덮은 얼음 같아 겉으론 고요해 보여도 그 아래로는 거센 격류가 흐르고 있었다.“24시간 쉬지 말고 조사해. 100명이 부족하면 1,000명이라도 동원해.”비서는 더 묻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으나 결국 해서는 안 될 질문임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심은호는 입꼬리가 차갑게 비틀렸다. 그는 비서가 무엇을 묻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다.친아들도 아닌 반현민을 찾기 위해 정작 반씨 가문조차 쓰지 않은 막대한 인력과 물력을 쏟아붓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 아이를 찾지 못하는 한, 강민아는 앞으로 단 하룻밤도 편히 잠들지 못할 터였다.심은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그 안에는 일말의 의심도 허용치 않는 확고함이 서려 있었다.“뒤에서 어부지리를 노리는 자가 단 한 번으로 만족할 리 없어. 반드시 다시 꼬리를 드러낼 거다!”“아
반우정은 강민아의 다리에 기대어 엎드린 채,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엄마의 옷자락을 꼭 쥔 채 고르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치 밤새 겪은 놀라움과 걱정을 모두 꿈속에서 부드럽게 흘려보내는 듯했다.심은호는 떠나지 않았다.그는 욕실에서 더운물을 조심스레 대야에 받아와 온도를 가늠해 본 뒤,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바닥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잠든 강민아의 얼굴을 따뜻한 수건으로 부드럽게 닦아주기 시작했다.따뜻한 수건이 얼굴에 닿자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으나, 다행히 잠에서 깨지는 않았다.심은호의 손길은 마치 쉽게 깨져버릴 유리잔이라도 다루듯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물수건이 그녀의 이마를 따라 부드럽게 훑고 지나가자, 밤바람이 남기고 간 서늘한 한기가 서서히 녹아내렸다.아늑한 주황빛 조명이 그의 옆얼굴에 내려앉자 본래도 입체감 있던 얼굴선이 한층 더 깊고 그윽하게 살아났다.우뚝 솟은 눈썹뼈 아래로 깊게 자리한 눈매와 그 밑으로 짙게 드리운 속눈썹 그림자는 마치 가냘픈 나비가 날갯짓하듯 아련하게 아른거렸고 곧게 뻗은 콧대 아래 굳게 다문 얇고 매력적인 입술선에는 절제된 다정함과 지극한 정성이 고스란히 서려 있었으며 날렵한 턱선과 길게 뻗은 목덜미를 지나 살짝 흐트러진 셔츠 깃 사이로 살며시 드러난 쇄골 라인은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밤을 지새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의 모습은 오히려 그 피로함 덕분에 더욱 아련하고도 위태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그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 아주 느리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강민아의 외투를 벗겨내었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던 끝에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양말까지 부드럽게 벗겨내 주었다.은은한 조명 아래로 드러난 가녀린 발목과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를 마주한 순간 그의 손끝이 찰나간 굳어버렸고 이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반우정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들어 심은호가 안아 들어 올릴 때도 깨지 않았다.침대에 아이를 부드럽게 눕힌 그는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긴
강민아는 반우정을 품에 꼭 끌어안고 딸의 머리 위에 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제 탓에 이 어린것이 감당해야 했을 숱한 일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졌다.문득 반씨 저택에 나타났던 반우정의 모습이 떠올라 강민아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엄마 말 들어봐. 우리 정이는 그렇게 애써서 강해지지 않아도 돼.”강민아가 입을 열자 반우정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들어 물었다.“그 말은 여자애는 여자애다워야 한다는 뜻인가요?”강민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넌 엄마 딸이니까...”그녀는 반우정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속삭였다.“넌 아직 아기 새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이 날개 품에 너를 꼭 안아 지켜줄 거야.”“엄마도 모든 일에 다 강해질 필요는 없어요.”반우정의 말에 강민아는 멍해졌다.아이는 멈추지 않고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엄마라고 해서 매번 나서서 내 앞을 막아줄 필요는 없다고요.”반우정은 앳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내가 지금 몇 살이든 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어린이가 될 거예요. 난 원래 그런 아이니까요!”강민아의 눈동자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앞 좌석에서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심은호의 눈빛에서도 따스한 온기가 일렁이고 있었다....차가 강민아의 아파트 건물 앞에 멈춰 섰다.차에서 내린 심은호는 뒷좌석 문을 열고 반우정을 안아 올리려 했지만 강민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직접 카시트에서 딸을 안아 들었다. 반우정은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은 채, 앳된 얼굴을 엄마의 어깨 사이에 묻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위까지 바래다줄게요.”심은호의 말에 강민아는 거절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위로 움직이며 숫자가 하나씩 깜빡였다. 세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폭풍전야와도 같은 고요함이 좁은 공간을 짓누르듯 가라앉아 있었다.현관 앞에 이르자 강민아는 아이를 안은 채 한 손을 빼내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렀다.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의 모습은 문 앞에서 사라졌고 3분 후 웨이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들어와 물었다.“음식을 올려도 될까요?”반하준은 물었다. “왜 아무나 들어오게 했죠?”방 안의 분위기는 반하준의 존재로 인해 완전히 싸늘해졌고 웨이터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사람이 형사증을 제시해서...”말하며 웨이터는 반하준을 슬쩍 쳐다봤다. 그가 경찰에 의해 연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의미일 테니 들어와서 바로 요리를 올려도 되는지 물은 것이다. 그는 이 손님을 빨리 내보내고 싶었다.반하준은 말했다.“음식 올려요
손을 뻗어 골프채를 어루만지는 그의 머릿속에는 강민아가 막대기로 신호 수신기를 내리치는 장면이 떠올랐다.플라스틱 파편이 튀었지만 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반하준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에 피가 끓어오를 것만 같았다.무인 화물차가 실험장 벽에 부딪히면서 불꽃이 튀었고, 불이 순식간에 타오르자 그는 타는 냄새를 맡은 동시에 타오르는 불길을 등지고 자신의 쪽으로 걸어오는 강민아를 보았다.여자는 풀어헤친 긴 머리를 흩날리며 살짝 흐트러진 잔머리가 고온의 열기에 곱슬곱슬했다.깨끗한 얼굴과 검은 눈동자는 길들지 않은 치타처럼
반하준의 시선이 강민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그의 입술이 살짝 올라가며 웃음이 번졌다.“그럼 네가 책임지고 불을 끄면 되겠네.”강민아의 모든 행동이 그를 유난히 끌어당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빙하처럼 차갑던 그의 심장은 강민아 때문에 뜨거운 용암을 분출하기 시작했다.과거 강민아는 절대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그가 식사를 제안하면 강민아는 동의하는 것도 모자라 그를 위해 음식을 차려주고, 새우를 까주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 그의 그릇에 올려주곤 했다.하지만 지금 강민아는 그와 함께 앉아서 식사하는 것조차 원하
강나현은 그에게 소리치며 말했다. “하준 씨 만나게 해줘요!”뭐가 됐든 임신한 여자였기 때문에 엄규민도 보안 요원을 시켜 강나현을 강제로 끌어내지 못했다. 그는 돌아서서 VIP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강나현은 그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잠깐만요!”엄규민은 닫기 버튼을 미친 듯이 누르며 경비원들에게 소리쳤다. “저 여자 잡아요!”두 명의 경비원이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서 강나현의 앞을 막았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엄규민은 엘리베이터 안에 서서 계속 올라가는 숫자를 지켜보았다.엘리베이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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