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열일곱, 은하의 세 번째 전학.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사건 이후,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은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평범하게 졸업하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지만, 전학 첫날부터 모든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한다. 자꾸만 도발하며 흔들어 대는 백이현, 그리고 그런 은하의 상처를 덮어주고 싶은 정태하. 하지만 은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첫사랑이 아니다. 지워진 기억, 감춰진 진실, 그리고 반드시 잊혀야만 했던 그날의 사건. 과거가 현재를 집어삼키기 시작한 순간, 세 청춘의 운명도 걷잡을 수 없이 얽혀들기 시작한다. 사랑과 비밀 사이에서, 은하는 마침내 자신의 잃어버린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View More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치는 어느 가을날, 희뿌연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은하는 옷장에 걸린 새 교복을 바라보았다. 단정하게 걸려 있는 교복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속삭이는 듯했지만, 은하에게는 그저 낯설고 무거운 천 조각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벌써 세 번째 전학. 이제는 익숙해야 할 것 같은데도, 여전히 이 순간은 낯설었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고등학교 생활은 아직도 1년도 넘게 남아있었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다른 아이들은 아마 달랐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거나,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와 불안 속에서 잠을 설치기도 했겠지.
하지만 은하에게 그런 감정은 사치였다. 지금 은하의 인생에서는 11살 차이가 나는 오빠가 세상의 전부다. 언제나 곁에서 챙겨주고, 감싸주는 유일한 가족. 강우주.
“은하야. 괜찮아. 다 괜찮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응.”
오빠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따뜻했지만, 은하는 알고 있었다. 오빠는 누구보다 자신을 걱정하고 있고,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를, 이번 만큼은 제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짧은 대답과 함께 교복을 꺼내 입었다. 차가운 옷깃을 여미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 봐도 늘 낯설기만 한 모습. 그저 이번에는 정말, 버티고 싶다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학교로 향하는 길, 우주는 조수석에 앉은 은하를 한 번 슬쩍 바라보았다.
창밖을 응시하는 은하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오랜 시간 은하를 지켜본 우주는 알고 있었다. 은하가 지금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 지를.
“잠은 잘 잤어?”
“응, 그냥… 평소처럼.”
말투는 담담했지만, 손끝이 살짝 움츠러든 걸 보니 역시나 거짓말같았다. 새로운 학교로의 첫 등교를 앞두고 있던 은하가 잘 잤을 리 만무하고, 매일 밤 불을 키고 자기까지 하니까.
우주는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참으며 은하를 다독였다.
“오늘 하루만 무사히 넘기면 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
“너무 애쓰지 마. 주목 받을 필요도 없어. 그냥 무사히, 무사히만 지나가자.”
은하는 오빠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맞다. 새로운 친구를 사귈 필요도 없고, 주목을 받을 필요 역시 없다. 조용히, 아무 일 없이 그저 평범한 학생처럼 살아가는 것. 그조차도 버겁고 어려운 일이다.
잠시 후, 차가 송화고등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
우주는 기어를 주차 상태로 돌리고 은하가 앉아있는 조수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혹시나 불편한 일 있으면 꼭 오빠한테 말하고.”
은하는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지만, 그건 어색한 흔적만 남긴 채 이내 사라졌다.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는 그런 은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주었다.
“가자. 첫날부터 지각하면 곤란하지.”
천천히 차에서 내린 은하는 눈앞에 펼쳐진 송화고등학교를 바라보았다.
높은 담장, 붉은 벽돌 건물, 운동장 너머로 보이는 학교의 상징적인 커다란 은행나무. 앞으로 매일 마주할 풍경이겠지.
송화 고등학교는 명문고는 아니지만 꽤나 큰 학교였다. 우주가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성적 중심의 입시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가 유지된다는 이유.
학생들의 특기와 취미를 찾을 특별 활동이 많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들었다. 우주에게 은하의 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은하가 이곳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는가.
은하는 여전히 학교 건물을 낯설게 바라보았다. 멀리서 뛰어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는 듯 보였지만, 은하는 그 안으로 스며들 자신이 없었다. 아니, 스며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우주는 조용히 손을 뻗어 은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잘 다녀와. 파이팅. 강은하!”
“알겠어.”
은하는 어색한 우주의 응원에 한 번 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차분히 학교 정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에 은행나무 가지가 살짝 흔들렸다.
유난히 추운 가을의 끝, 은행 나무는 가지만 남아 있지만, 언젠가 이 나무도 초록빛의 잎이 자라고, 또 언젠가 노랗게 물들겠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등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자,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건물 안으로 향했다. 은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가방끈을 더욱 꼭 쥐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교무실로 향했다.
그러다 교무실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종이 넘기는 소리, 커피를 따르는 소리.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오는 긴장감이 엄습했다.
조용히 문을 밀어 열었다. 교무실 안에는 여러 명의 교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고, 몇몇은 커피를 들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한 명, 단정한 안경을 쓴 젊은 남자 교사가 쭈뼛쭈뼛 서있는 은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강은하 학생?”
은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반갑다. 나는 2학년 3반 담임, 이지훈 선생님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네.”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은하는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런 은하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고, 이내 자리에서 서류 한 장을 챙겨 들고, 살짝 미소 지었다.
“교실로 같이 가자.”
찬희와 친구들은 성인이 된 이후 더 과감해졌다. 가출 청소년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주며, 그들을 이용해 돈까지 벌기 시작했다.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그리고 화면 너머로 전송되는 수많은 컨텐츠들.누군가는 찍었고, 누군가는 소비했고, 누군가는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날 밤, 찬희네 집에 모인 그들은 서서히 계획이란 걸 세우기 시작했다.“오래들 기다렸다. 이제 걔네도 다 성인이잖아?”“그치. 이제부턴 보호 받는 애들이 아니라는 뜻이지. 캬.”“최소라, 강은하 어떻게 하고 싶어?”“뭘 어떻게 해. 나랑 똑같이 만들어 줘야지.”“푸하하.”방 안에 얄팍한 웃음소리가 가득 퍼졌다.누군가는 피자를 씹었고, 누군가는 맥주를 입에 털어 넣었지만 소라만은 입꼬리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무리 중 한 명이 히죽 웃으며 소라를 바라보았다.“강은하는 너처럼 바닥까지 떨어지진 않을 걸? 집도 잘 살고, 의사 오빠도 있고, 남자친구도 있고… 완전 그림책 속 인생 아니냐?”“…그래서 더 부숴야 돼.”소라의 대답이 사뭇 진지했다.눈은 테이블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손끝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그 떨림이 불안인지, 기대인지, 증오인지조차 알 수 없는 미세한 진동이 이어졌다.그때, 드디어 자신의 계획을 전하기 시작하는 찬희.“일단, 그 뭐야. 정민희. 걔를 좀 이용하는 게 좋겠어.”“정민희?”“응, 걔네가 정민희 집을 갔던 적이 있던가?”“아마 없을걸? 백이현네 집이 아지트임.”“확실해?”“확실함. 쭉 같은 패턴임.”“그럼 일단 모아둔 돈으로 정민희네 아파트에 월세부터 얻자.”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굿. 우리도 더 넓은 곳이 필요하긴 해.”“콜.”찬희가 웃었다. 그 미소는 사람을 향한 게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장악하고 있다는 쾌감에 가까웠다.무리들의 말이 이어졌다.이번엔 약간의 걱정이 담긴 뉘앙스였다.“근데 백이현이랑 정태하 건드는 건 좀 그렇지 않냐?”“그건 안돼. 드베르랑 한성기업은 진짜
시간이 흐를수록 슬슬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웃고 떠들던 분위기는 조금씩 흐려졌고, 대화는 눈에 띄게 느긋해지고.이현은 여전히 술잔을 들어 올리는 은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좀 적당히 마시지? 어?”“뭐, 니네는 어른 되기 전부터도 마셨잖아.”“어쨌든. 이제 그만 마셔.”“싫어!”은하는 민희와 술잔을 부딪히며 짠을 외쳤지만, 그건 아주 잠시였다.곧 넉다운이 된 듯 상체를 흔들며 헤헤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뭐냐? 얘네?”“…갈대냐?”그때, 은하의 입에서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웃음이 흘러나왔다.“푸헤헤…”태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야, 나 은하 이런 모습 처음 봐.”“야 강은하. 정신 좀 챙겨라”“푸헤헤…. 백이현… 정태하, 그리고 정민희!”“….”“나느응, 니네를 만나서 정말 너~무 너무우 행복해앵.”“…완전 맛탱이 갔다.”“미치겠네. 정민희도.”“가자….”태하는 민희를, 이현은 은하를 부축했다.민희를 먼저 택시 태워 보낸 태하는 손을 흔들며 자리를 피했다.“은하 잘 데려다 주고 와라. 먼저 간다.”“야! 정태하!”도움의 외침이 버럭 튀어나왔지만, 눈치 빠른 태하는 이미 떠난 후였다.이현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은하의 허리를 감싸안고 집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괜찮아? 적당히 마시라니까.”은하는 여전히 어깨를 흔들며 웃어댔다.“나아 이런 기분 처음이야앙. 진짜 좋다아! 끄으치?”“하….”“히잉! 왜 한숨 쉬어? 나는 지금 기부니 좋타니까!”처음 보는 애교에 이현은 스르륵 녹아내렸다. 꿈틀거리는 입꼬리,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꼬리.“알겠어. 알겠으니까 집에 가자요.”“…우응응.”애교는 좋은데, 왜 이렇게 몸을 흔들어 재끼는지.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그 위태로운 몸짓에 이현은 결국 자세를 낮췄다.“휴… 일단 업혀.”“시타요오.”“야이…!”“힝. 화내지마용. 구럼 업힐게용.”‘하, 미치겠다. 진짜….’기어코 은하를 업고 터벅터벅 걷기 시작한 이현.등 뒤로 느껴지는 숨소리. 그
다음 날 아침.겨울 햇살은 유난히 부드럽게 창가를 타고 흘러들었고, 은하는 거울 앞에서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나…?”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립밤을 덧발랐다.코트 깃을 여미고, 가방을 맸을 뿐인데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딸깍.방문이 열리고, 거실에서 은하를 기다리던 이현이 환하게 웃었다.“어디 가려고 이렇게 예쁘게 차려 입었어?”“장난치지 마.” “진짜거든? 너무 예뻐서 말이 안 나옴. 말 문이 막힘.”“참나. 말만 많구만 뭘!”이현이 우주를 향해 90도로 고개를 바짝 숙였다.“형님~ 저희 다녀오겠습니다.”“그래. 운전 조심하고! 늦지 않게 들어오고!”“네!”오랜만에 단둘이 즐기는 데이트였다.카페, 영화관, 맛집까지. 한참을 돌아다닌 두 사람.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이현의 차는 남한산성 초입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차창 밖으론 겨울 나무들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든 미약한 햇살이 반짝였다.“진짜 예쁘다… 나 여기 처음 와봐.”“내려서, 좀 걸을까?”“응. 좋아.”은하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이현은 그 발걸음을 꼭 맞춰 걸었다.한참을 걷다 보니, 작은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그곳에 나란히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코트 주머니에서 작은 파우치 하나를 꺼내는 이현. 커다란 손이 조금은 떨리고 있었다.“강은하.”“응?”파우치가 열리고, 그 안에는 얇지만 빛나는 팔찌 하나가 놓여 있었다.작고 섬세한 은행잎 모양의 펜던트가 달려 있는 너무도 은하 다운, 단정한 디자인이었다.“짜잔.”“이거… 은행잎이잖아?”“응. 이제 우리 졸업하면 학교 은행나무 자주 못 보잖아.”“……너무 예쁘잖아! 진짜 너무 너무 예뻐.”이현은 은하의 손목에 팔찌를 조심스레 채워주었다. 은행잎 펜던트가 가느다란 손목 위에서 반짝이며 작게 흔들렸다.“고마워. 백이현.”“앞으로 놀러도 많이 다니고, 추억도 더 많이 쌓고, 못 가본 곳도 더 많이 가자.”“응. 그러자.”“그리고… 우리 둘 다 한국대 꼭 붙었으
그날 이후 소라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먼저 웃었고, 스스로 그들 곁으로 거리낌없이 다가갔다.“최소라, 너 요즘 텐션 뭐냐?”“이래서 떡 맛이 무섭다니까. 푸하.”그리고 찬희는 완전한 소유물이 되어버린 소라를 보며 무언가를 떠올렸다.“애들 좀 더 모아볼까? PC방 알바도 슬슬 지겨운데. 돈도 안되고.”“배달도 존나 추움.”“그니까 좀 더 쉬운 쪽으로 가자고.”“텔그렘이랑 오픈 톡방 파기 시작해?”“일단 빨리 방부터 파봐.”“오키.”이제는 단순한 일탈을 넘어 명백한 범죄의 영역으로 발을 들인 그들.소라 역시 무력감과 혐오를 넘어 모든 걸 함께 하고 있었다.“야 최소라, 애들 관리 잘만하면 강은하 눈 앞에 데려다 줌.”“콜.”감정이라곤 없는 목소리였다. 마치 거래라도 하듯 무심코 흘러나온 대답.그 대답을 들은 찬희는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은하와 이현, 태하와 민희는 너무나도 다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마지막 기말고사마저 끝내고 완전한 해방감에 놓인 그들. 이제 남은 건 대학교 원서 접수 결과였다. 민희가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와! 드디어 끝났다! 다 끝났다고!”은하 역시 활짝 웃으며 책가방을 끌어안았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오고 가는 대화는 한결같이 따뜻했고, 그 말들 속엔 평범한 청춘의 겨울이 담겨 있었다. 길을 걷다 눈을 맞고, 편의점에서 따뜻한 어묵 하나를 나눠 먹고, 밤 늦게 까지 톡방에서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일상.그 안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불신도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주말.완전히 해방된 기분으로 하나둘 모인 그들 앞에 하얀색 새 차 한 대가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등장했다.“얘들아~ 가즈아~!”운전석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고, 뿌듯한 표정의 이현이 밝게 웃고 있었다.태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뭐냐? 면허 딴 거냐?”“당연하지. 내가 누구냐?”“와, 미쳤다…”민희가 감탄을 흘리며 뒷좌석으로 먼저 뛰어 올랐다. “와 백이현
조심스럽게 은하를 안아들고 보건실로 향해 걸음을 옮기는 태하. 팔에 안긴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숨소리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민희 역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뒤를 따르며 은하의 핸드폰을 꽉 쥐고 있었다.보건실로 향하자마자 은하를 조심스레 침대 위에 내려 놓았다.놀란 보건 선생님이 급히 다가와 은하의 상태를 살폈고, 담임 선생님 역시 소식을 듣고 보건실로 달려왔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큰 소리에 갑자기 놀란 듯 하더니… 가방에서 약을 꺼내 먹었어요.”“약? 무슨 약?”민희는 서둘러 은하의 가방을 뒤적여 은하가 먹었던
뒷문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태하가 은하를 향해 다가왔다. “괜찮아? 보건실 데려다 줘?”목소리엔 왠지 모를 걱정이 담겨 있었고, 눈빛에는 분명한 진심이 서려 있었다. 이현은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느릿하게 입술을 깨물었다.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 뒤에 감춰진 감정은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까지가 흥미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아니… 나… 먼저 가봐야겠어. 담임 선생님께 말 좀 전해줘.”그 말과 함께, 은하는 가방을 들고 자리를 피하려는 듯 행동을 취했다. 하지만 태하는 쉽게 수긍하지 않는 표정이었다.“은하야
잔뜩 인상을 찌푸린 이현이 투덜거렸다.“뭐야, 너는 왜 또 여기 앉아?”“자리가 남길래.”태하는 담담하게 국을 떠먹었다. 태도는 가벼워 보였지만, 그 속에는 '적당히좀 해라' 라는 의미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갑작스러운 태하의 착석에 은하와 민희 역시 적지 않게 놀란 듯 했다.모두가 퍽 어이없는 상황, 이현이 은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야 전학생.”“…….”“넌 좋겠다. 정태하가 매번 나서서 도와주네?”도발적인 말이 떨어지고, 은하보다 태하가 먼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백이현.”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시작된 학교생활.우주는 한결같이 동생 은하의 등교를 챙겼고, 교문을 지나던 은하는 커다란 은행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이틀이나 잘 해왔잖아. 이대로만 하면 돼.’ 다행히 은하의 생각대로 오늘은 별일 없이 무난한 시간이 끝나가는 듯 했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되자,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은하는 이번 주, 교실 청소 담당이었다.표정 없이 칠판을 닦고 있던 은하가 잠시 손을 멈추고 손에 묻은 분필 가루를 털어냈다.그리고 그 순간, ‘쾅—!’누군가 철제로 된 청소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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