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비밀 문은 방과 그 공간을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세계로 갈라놓았다.강루인의 경호원이 문을 강제로 차고 들어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것은 텅 빈 방뿐이었다.경호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주영도는 이미 이런 상황까지 예상했고 미리 경호원에게 지은우의 시선을 분산시키도록 지시해 두었다.강루인이 보이지 않자 지은우는 경호원을 바라보며 물었다.“저희 엄마는요?”강루인이 사라진 방에는 이미 주영도의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다.경호원은 지은우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실을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사모님은 이 방에 들어오신 뒤 사라지셨어.”현장에 있는 주영도의 사람들은 이 방 안에 비밀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다만 그가 경찰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런 선택을 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감히 경찰이 보는 앞에서 사람을 납치하다니, 정말 거침없고 두려움이라고는 없는 행동이었다.결국 선두에 있던 경찰은 잠시 뒤로 물러나 상급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지시를 받기 위해서였다.비밀 공간이라면 지은우에게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그는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이런 공간을 자주 드나들었다.해외에 있는 집에도 이런 공간이 여러 개 있었고 지수현은 그곳은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라고 말해주었다.‘아저씨가 엄마를 비밀 공간에 숨긴 거야?’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지은우는 화가 치밀었다.그는 누군가 강루인을 빼앗아 가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설령 그 사람이 지수현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삼촌, 여기 다 부숴버려요.”지은우가 말한 삼촌은 경호원 중에서도 가장 앞에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그는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고 오히려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강루인의 경호원들은 곧바로 방안을 부수기 시작했다.쨍그랑!우당탕!던져서 소리를 낼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바닥으로 내던졌다.던져도 깨지지 않은 물건은 뜯어서라도 두드려 부쉈다.눈에 보이는 모
주영도는 강루인을 정말 많이 그리워했다.그녀에게 이곳의 모든 것은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견디기 힘든 공간이었다.그때 쨍그랑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진경자의 손에 들려 있던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조각났다.“귀신이야!”진경자는 두 눈을 크게 부릅뜬 채 공포에 질린 얼굴로 눈앞에 서 있는 강루인을 바라보았다.들떠 있던 주영도의 기분은 진경자의 고함과 함께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갑자기 소리는 왜 지르시는 거죠?”“저, 저...”진경자는 강루인을 가리킨 채 입술만 달싹이며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아주머니.”강루인의 냉정한 목소리에는 미세한 온기가 섞여 있었다.“사, 사모님...”진경자는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러다 문득 시야 한쪽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서야 눈앞에 있는 강루인은 귀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강루인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진경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모님이라는 세 글자는 주영도의 마음을 다시 한번 들뜨게 했다.진경자가 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그때 강루인이 차갑게 선을 그어 말했다.“아주머니, 저는 이제 주씨 가문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과 결혼 했거든요.”주영도의 들뜬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강루인의 차갑고 단호한 태도에 그의 뜨겁게 달아오른 마음은 이내 식어버렸다.계속 이어지는 충격적인 소식에 진경자의 머릿속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졌다.그러다 문득 또 하나의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설마 지금 데려온 아이가... 사모님의 아들인 건가? 그렇다면 이 아이가 혹시 대표님 아이일지도...’그 생각에 이르자 진경자의 얼굴은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듯 여러 가지 색으로 변해갔다.놀람과 당혹감, 혼란이 한꺼번에 뒤섞인 표정이었다.“은우야.”강루인의 부름에도 지은우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그때 주영도가 조심스럽게 나서며 말했다.“아이는 위층에서 자고 있어.”강루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속으로
주영도는 더 이상 지은우의 비위를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그는 아이의 맞은편에 앉아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린 채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그럼 내가 너를 납치한 거라는 걸 알면서도 왜 따라온 거야?”지은우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제가 안 따라와도 되는 거였어요?”주영도는 담담하게 말했다.“아니.”이미 지은우를 데려오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그는 반드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지은우는 비록 어린아이였지만 생각하는 방식과 논리만큼은 누구보다 분명했다.“엄마가 그러셨거든요. 사내대장부라면 일단 위기부터 피해야 한다고요.”강루인이 한 말이면 뭐든 잘 듣는 착한 아이였기에 그는 당연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지은우는 강루인이 반드시 자신을 데리러 올 거라고 믿었기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따라온 것이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차갑고 무뚝뚝하던 주영도의 얼굴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그는 강루인의 영리함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곧 씁쓸함이 내려앉았다.‘이렇게 아이는 잘 가르치면서 왜 나한테는 고집을 조금만 내려놓으라고 말해주지 않은 거야.’만약 그때 강루인이 조금이라도 상황을 더 살피고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두 사람은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서로를 잃고 지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때 문밖에 있던 경호원이 안으로 들어오며 보고했다.“대표님, 경찰이 찾아왔습니다.”지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소파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더니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엄마가 왔어요.”아이는 짧은 다리로 멀리 달려가기도 전에 주영도의 손에 뒷덜미를 붙잡혔다.지은우는 작은 몸을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뭐 하시는 거예요? 이거 놔줘요.”하지만 주영도는 그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데리고 올라가서 놀아.”경호원을 향한 말이었다.지은우는 작은 병아리처럼 그대로 들린 채 2층으로 끌려 올라갔다.경호원에게 들린 지은우는 큰 소리로 외쳤다.“나쁜 사람! 빨리 내려줘요! 저희 엄마는 아
지은우는 동그란 눈동자에 의문을 가득 담은 채 물었다.“저희 엄마가 키우던 고양이가 왜 아저씨한테 있어요?”주영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여기가 네 엄마 집이거든.”지은우는 눈을 깜빡이며 다시 물었다.“저희 엄마가 아저씨랑 어떤 사이인데요?”주영도는 여전히 부드러운 태도로 말했다.“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이야.”지은우는 하얗게 된 그의 옆머리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아저씨가 저희 엄마의 아빠예요?”주영도는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고 바로 대답을 이어가지 못했다.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진경자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그녀는 아이의 나이만 따져봐도 그의 엄마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최소 스물네 살은 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주영도는 올해 서른다섯이고 해가 바뀐다고 해도 고작 서른여섯밖에 되지 않았기에 이렇게 큰 손자를 둘 나이는 절대 아니었다.‘도대체 얼마나 늙어 보였으면 아이가 대표님을 할아버지 세대로 착각한 걸까.’진경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주영도에게 향했고 특히 그의 머리 위에 듬성듬성 자리 잡은 흰머리에 오래 머물렀다.‘그러고 보니... 확실히 젊어 보이는 모습은 아니네.’주영도는 이 아이가 지수현 같은 사람한테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말하는 법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했다.지은우는 가장 순수한 표정으로 주영도가 듣기 싫어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하지만 엄마가 그러셨어요. 엄마는 고아라서 부모가 없다고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저희 엄마 아빠일 리는 없잖아요. 그럼 혹시 제 두 번째 아빠가 되고 싶은 거예요?”강루인이 인기가 많다는 사실은 지은우도 이미 알고 있었다.지수현 역시 그 일 때문에 지금까지도 질투하곤 했고 강루인은 그를 질투 쟁이라고 불렀다.아이는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강루인이 말한 말이면 언제나 맞는다고 생각했다.“두 번째 아빠?”주영도는 순간 멈칫했다.지은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네. 엄마를 좋아하는 남자가 엄청 많거든요. 하지만
강루인은 곧바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선생님과 강루인의 표정은 모두 어두워져 있었고 한 사람은 두려움으로 다른 한 사람은 분노로 굳어 있었다.어린이집이라는 곳은 아이가 하원할 때 반드시 보호자에게 직접 인계해야 하는 장소였다.그런 곳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으니 강루인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선생님 역시 죄책감과 걱정이 뒤섞인 상태였다.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자리 잡은 감정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은우를 데려간 사람이 어머님 친구분이라고 하셨어요. 두 분이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주셨고요. 제가 어머님께 연락드렸는데 받지 않으셔서...”말을 이어갈수록 선생님 스스로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느끼는 듯했다.아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결국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어린이집 측의 실수였다.강루인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물었다.“상대는 남자였나요 여자였나요? 어떻게 생겼죠? 어린이집 CCTV를 확인하고 싶습니다.”이 순간 그녀 역시 마음은 다급했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었다.“남자였어요.”선생님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숨김없이 강루인에게 털어놓았다.그녀는 상대가 풍기는 남다른 분위기와 온몸에서 느껴지는 부유한 기품 때문에 경계를 늦춘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했다.CCTV를 확인한 강루인은 지은우를 데려간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냈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속으로 외쳤다.‘주영도!’주영도는 마치 강루인이 CCTV를 확인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떠나기 전 어린이집 정문에 설치된 카메라를 잠시 올려다보며 입술을 움직였다.그녀는 화면 속 입 모양을 통해 그가 한 말을 정확히 읽어냈다.‘기다릴게.’강루인의 눈동자에는 차가운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그녀는 곧바로 영상을 복사한 뒤 경찰서로 향했다.권력도 배경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신고하면 대부분 돌아오는 것은 형식적인 대응이나 소홀한 태도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의 강루인은 더 이상 평범한
강루인 역시 지수현을 안고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됐어. 이제 그만하고 얼른 가.”지수현은 마지못해 강루인을 품에서 놓아주었다.그러나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강루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더니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이걸로 퉁친 거야.”강루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그는 정말 한 치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다.지수현을 배웅한 뒤 그녀는 곧바로 상인 그룹으로 향했다.점심 무렵, 함지율에게서 연락을 받은 강루인은 상인 그룹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나가기 전 업무 전화를 받는 바람에 강루인은 약속 시간보다 몇 분 늦게 도착했고 함지율은 이미 먼저 와 있었다.“혼자 왔어? 아이는?”강루인의 물음에 함지율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아이한테 엄마만 있는 건 아니잖아. 아빠도 있어.”그녀에게 있어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무책임한 아빠는 존재할 수 없었다.강루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최 변호사님이 이렇게 책임감 있는 아빠일 줄은 몰랐네.”함지율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책임감 없으면 바로 해고야.”그 말에 강루인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네. 최 변호사님은 여전히 네 손아귀에서 꼼짝도 못 하는구나. 네가 하는 말이 곧 법이지.”아이까지 낳았음에도 함지율이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최지호는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이다.그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함지율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는 직업 특성상 평범한 부부들이 마지막에 어떤 모습이 되는지 너무 많이 봐왔잖아. 혼인 서류 한 장이 두 사람 사이를 보장해 주는 가장 무의미한 장치일 수도 있어. 결국 결혼이라는 건 마지막에는 양심의 문제인 거지.”진심으로 잘해주고 싶은 사람은 애초에 결혼이라는 형식에 집착하지 않는다.중요한 것은 서류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였다.함지율은 평생 어떤 관계라는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