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임신 8개월 차, 양수가 터진 날은 하필 남편이 입양한 아들, 박시우의 생일이었다. 내 아이가 그 아이의 생일과 겹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그는, 자정이 넘어야 출산할 수 있다며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나를 차가운 지하실에 가두었다. 박태준은 음울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진나미, 정말 대단해. 하필 시우 생일에 맞춰 애를 낳으려고 하다니.” 나는 축축한 바닥에 엎드려 양수로 흠뻑 젖은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제발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애원했다. 당장이라도 아이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공포에, 여기서 더 지체했다간 큰일이 나겠다는 절박함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서린 것은 걱정이 아닌, 비릿한 실망감이었다. “아직도 날 속이려고? 양수 좀 터졌다고 바로 애가 나오는 줄 알아? 의사한테 다 들었어. 사흘을 버티다 낳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이미 박씨 가문 안주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시우랑 생일까지 겹치게 해서 네 입지를 더 굳히겠다고? 정말이지, 머리 굴리는 데는 도가 텄어.” 나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절망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 배 속의 아이도 당신 아이잖아! 태준 씨, 제발 부탁이야.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나 좀 살려줘. 아기만 무사히 낳을 수 있게 해 준다면 다시는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내 애원에 박태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내 턱을 거칠게 움켜쥐더니 잔인하게 읊조렸다. “가증스럽게 밀당할 생각 마. 자정 넘길 때까지 여기서 조용히 기다려. 그럼 약속대로 병원 보내줄 테니까. 네가 아이만 무사히 낳는다면 박씨 가문 안주인 자리는 확실하게 보장되는 거야.” 그 후 내가 극심한 자궁 수축 통증으로 비명을 지를 때조차 박태준은 시끄럽다며 박시우 모자를 데리고 밖으로 생일 파티를 하러 가버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내 존재를 겨우 떠올린 그가 아들인지 딸인지 물었을 때, 비서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모님은... 떠나셨습니다.”
View More그 말을 들은 박태준의 얼굴에 상처받은 기색이 가득하더니, 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나미야, 내가 널 왜 죽여. 난 널 너무 사랑해서, 네가 아주 작은 생채기 하나 나는 것도 죽기보다 싫은 사람이야.”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쳐내며 고함을 질렀다.“그럼 날 왜 찾아온 건데! 당신 지금 수배 중인 범죄자 신세라는 거 몰라?”박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다는 듯 답하더니, 이내 광기 어린 집착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나미야, 너 서예나 싫어했잖아. 걔 이제 죽었어. 박시우도 내가 호적에서 완전히 파내서 보육원에 처넣어 버렸고. 이제 우리 사이를 방해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어. 오직 너 하나만 보고 여기까지 온 거야. 내가 한 모든 일은 다 너를 위해서였어. 우리 아기의 복수를 하려고! 서예나 그 나쁜 년만 없었어도 내가 널 오해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우리 소중한 아기도 죽지 않았을 거야! 그랬다면 우린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가족이었겠지!”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아, 나는 겁에 질린 채 서서히 뒤로 물러섰다.박태준은 도망치려는 내 팔을 거칠게 움켜잡으며 말을 이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회사 자산을 싹 다 처분하고 신분도 완전히 세탁해 뒀어. 이 낯선 타국에서는 우리를 아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어.”뱃속 깊은 곳에서 구역질과 혐오감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는 가까스로 극심한 두려움을 억누르며 단호하게 말했다.“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어, 박태준. 당신이 내 눈을 속이고 서예나를 집안에 기어들이고 시우를 양자로 입적했던 그 순간부터 우리 사이는 끝난 거야! 당신은 오로지 서예나만 탓하는 거야? 정작 당신 자신에겐 아무런 문제도 없고? 나를 믿지 못하고 지하실에 가둔 건 바로 당신이야! 도대체 무슨 염치로 내가 당신과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데!”박태준은 내 매서운 다그침에 눈가가 붉게 물들더니, 무너지듯 바닥에 무릎을 꿇고
페인트는 이미 오래전에 다 쓰고 말라붙어 있었기에 통 내부에는 아주 얇은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고 지하실에는 오직 피비린내만이 진동하고 있었다.그 지옥 같은 밤에 진나미가 홀로 얼마나 참담한 고통을 견뎌냈을지,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녀의 애원을 가차 없이 짓밟았고 결국 제 손으로 자식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자책감이 엄습했다.방안에 굴러다니던 정체불명의 약병을 떠올린 박태준은, 마지막 실낱같은 진실을 규명하려는 듯 다급히 주도윤을 찾았다.“이 안에 든 약이 뭡니까? 조산을 유도하는 약이 맞나요?”주도윤은 박태준을 망설이듯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답했다.“박 대표님, 이건 엽산입니다. 임산부들이 보편적으로 복용하는 보조제예요.”언제나 꼿꼿하던 박태준의 등줄기가 마침내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제 머리칼을 거칠게 쥐어뜯으며 완전히 붕괴했다.‘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내 손으로 직접 내 소중한 아기를 죽인 꼴이잖아!’주도윤은 미쳐버린 듯 실성한 그의 모습에 겁을 먹고 서둘러 저택을 빠져나갔다.박태준은 곧장 최경애를 찾아내 저택 지하실에 포박해 두었다. 그리고 진나미가 몰래 조산 약을 사고 약을 바꾼 것을 언제 보았는지 사실대로 대라며 윽박질렀다.공포에 질린 최경애는 전부 서예나가 사주한 짓이라고 자백했다. 서예나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을 뿐, 자신은 실제로 아무것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분노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박태준은 서예나를 저택으로 불러냈다.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서예나는 진나미가 떠났으니 이제 드디어 자신이 이 저택의 안주인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 기쁜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끝없는 지옥일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작은 오빠, 무슨 일 있어?”그때 나는 학교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출국한 후, 나는 평소 하고 싶었던 디자인 공부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나미야, 박태준이 지명수배자가 되었어.”내 움직임이 순간 뚝 멈췄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벼락같은 소식에
“진나미! 너 방금 한 말... 다 거짓말이지? 그렇지? 나 골탕 먹이려고 또 장난치는 거잖아! 맞잖아! 제발 말 좀 해봐!”발광하듯 울부짖는 박태준을 보며 나는 손을 치켜들어 그의 뺨을 매섭게 갈겼다. 그리고 가슴속 분노를 모두 터트리며 고함을 질렀다.“박태준! 네 눈으로 저 안을 똑똑히 봐! 저 안에 누워 있는 게 누구인지! 그저께 밤에 네가 매몰차게 버렸던 네 진짜 자식이야! 네가 태어나지 못하게 짓밟았던 네 핏줄이라고! 내 배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던 가엾은 아기였어! 그런데 넌 병원에 보내주기는커녕 날 지하실에 잔인하게 가둬놨잖아!”박태준이 기계처럼 천천히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그곳에 놓인 작은 관 속에는 형체마저 흐릿해진 핏덩이 아기가 차갑게 굳은 채 누워 있었다.힘을 완전히 잃은 그의 다리가 맥없이 흙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너무나 거대한 충격 앞에 그는 완전히 넋을 잃었고 가슴을 갈기갈기 헤집는 극심한 슬픔에 감정이 완전히 붕괴하기 시작했다.“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지? 네가 날 속이는 게 분명해... 거짓말이야, 다 거짓말이라고...”박태준은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 무릎으로 기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아이에게 거의 손을 뻗으려 한 바로 그 순간, 나는 그의 손을 세차게 쳐냈다.나는 타오르는 분노의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뼛속 깊이 사무치도록 그가 증오스러웠다.“박태준! 네까짓 게 감히 누굴 만지려고 들어! 저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우리를 얼마나 쏙 빼닮았는지 알아? 그런데 네가 죽였어! 그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손을 대! 넌 아빠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인간쓰레기야!”박태준의 얼굴에 절망의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고 이 순간 마침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가슴을 짓누르는 후회와 뼈를 깎는 고통이 뒤엉켜 그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관 위로 흙을 덮기 시작했다.박태준은 울부짖으며 온몸으
“내일 아침 아홉 시, 청산 공원묘지. 그곳이 당신이 아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말을 마치고 내가 돌아서려 하자, 박태준은 나를 붙잡고 확실히 따져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사방에서 예닐곱 명의 경호원들이 들이닥쳐 그를 제자리에 가로막았다.세찬 빗속에서 밀려나며 꼴사납게 차량으로 밀려 들어가는 그를 지켜보면서도, 진윤수는 여전히 울화가 치미는 듯 툴툴거렸다.“나미야, 정말 저 자식을 이렇게 그냥 곱게 보내줄 거야? 아기의 마지막 얼굴을 볼 기회까지 줘가면서?”나는 쓸쓸한 눈빛으로 창밖의 칠흑 같은 어둠을 응시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어쨌든 아기의 아빠니까, 진실을 알 권리가 있어. 저자를 이렇게 보내줄 거냐고? 천만에. 저런 인간은 평생 가슴에 대못을 박고 속죄하며 살아야 해. 밤마다 아이 생각에 잠 한숨 못 자고, 평생을 지옥 같은 죄책감 속에서 허우적대야 한다고! 내가 저 인간을 그렇게 쉽게 놔줄 성싶어!”청산 공원묘지.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고 빗줄기는 약해질 기미 없이 갈수록 굵어졌다.나는 검은 상복을 입은 채 묘지 입구에서 박태준을 기다렸다.아홉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박태준이 서둘러 당도했다. 나를 발견한 그는 다급히 뛰어오더니 내 손에 들린 우산을 대신 받쳐주려 하며 투덜거렸다.“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애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산후조리도 안 끝난 사람이 왜 비를 맞으며 서 있어? 산후풍이라도 들면 평생을 고생할 텐데, 어떻게 제 몸 하나 아낄 줄 몰라. 아기는 산 위에 있어? 애를 데리고 묘지에는 왜 온 거야?”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몸을 돌려 산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내 뒤를 쫓는 박태준의 가슴속으로 묵직한 불안이 엄습했다. 마치 오늘 하늘처럼, 아침부터 그의 감정은 한없이 가라앉아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별안간 그가 내 팔뚝을 거칠게 쥐어 잡아 세웠다.“진나미, 머리에는 왜 하얀 꽃을 꽂고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건데?”그의 안색이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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