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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참새
태라의 부모님은 딸이 이렇게 시원하게 단번에 승낙할 줄 몰랐던지, 둘 다 조금 놀란 눈치였다.

[정말 마음 정한 거야? 그럼 언제 내려올 거니? 결혼식은 우리가 준비할까, 아니면 네가 먼저 와서 상대부터 만나 보고 의논할까?]

태라는 이런 것까지 생각할 기력이 없어, 되는대로 답했다.

“두 분이 알아서 정하세요. 여기 일 정리되는 대로 바로 내려갈게요.”

부모님도 딸의 목소리에서 피로를 읽었는지, 몇 마디 당부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방 안이 다시 고요해졌다.

태라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갔다.

다시 나와 문을 열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던 성혁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는 왜 인사도 없이 먼저 갔어?”

태라는 숨이 턱 막혀서 고개를 숙여 빨개진 눈을 감췄다.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 먼저 왔어.”

건성으로 둘러댄 핑계였지만, 성혁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태라를 품으로 끌어당기고, 가볍게 잡아당기는 것만으로 허리를 묶은 목욕 가운의 끈을 풀어 버렸다.

태라는 틈을 주지 않고, 안으로 파고들려는 그 손을 붙잡았다.

“라운지에서 몇 번이나 했잖아? 겨우 몇 시간 지났다고.”

성혁은 그 말투에 담긴 거부를 알아채지 못하고, 오히려 태라의 손을 마주 잡아 깍지를 꼈다.

“몇 시간이 뭐가 짧아? 누나만 보면 난 참을 수가 없는 거 몰라? 누나, 나 누나 너무 좋아해.”

그 뻔한 작업 멘트를 다시 들으니, 태라는 그저 조롱처럼 느껴졌다.

‘좋아한다고? 연습이라며?'

‘5년 동안 천 번은 넘었을 텐데, 아직도 모자라?'

태라는 고개를 틀어 다가오는 입술을 피하고,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그래? 그럼 앞으로 영영 나한테 손도 못 대게 되면?”

성혁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멈칫했다.

“누나는 날 사랑하고, 나도 누나를 사랑하잖아. 서로 사랑하는데, 왜 손을 못 대?”

‘서로 사랑한다니, 참 가관이네.’

태라는 대답 없이 입꼬리만 비틀어 올리고, 소리 없이 화제를 돌렸다.

“그냥 해 본 소리야. 오는 길에 비 맞아서 몸이 좀 안 좋아. 쉬고 싶어.”

창백한 안색을 보고, 성혁은 더 조르지 않았다. 고개 숙여 이마에 몇 번 입을 맞추고 나서 태라를 안아 침실로 옮기려 했다.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테이블 위 핸드폰이 울렸다.

성혁이 무심코 집어 들어 확인했다.

태라의 곁눈에 ‘초아’라는 저장명이 들어왔다.

“선배, 저 귀국했어요. 근데 지금 밖에 비가 너무 많이 와요. 택시가 안 잡히는데 어떡하죠?”

메시지를 다 읽은 성혁은 태라를 소파에 내려놓고 곧장 일어섰다.

“누나, 나 좀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갈게. 먼저 쉬어. 기다리지 말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쾅 닫혔다.

태라의 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말없이 침실로 돌아갔다.

머리를 말리고, 이불 속에 몸을 파묻고 불을 껐다.

눈은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성혁과 함께한 지난 세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쉼 없이 스쳐 지나갔다.

십수억을 호가하는 목걸이를 낙찰받아 직접 목에 걸어 주며, 평생 다이아몬드를 사 주겠다고 약속하던 성혁.

바닷가에서 사흘 밤낮으로 불꽃을 쏘아 올려 생일을 축하해 주며, 자신의 전부를 남김없이 태라의 손에 쥐여 주겠다고 환하게 웃던 성혁.

백 년에 한 번 온다는 유성우가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며, 이 세상 끝 날까지 곁을 지키겠다고, 절대 손을 놓지 않겠다고 말하던 성혁...

맹세는 아직 귓가에 맴도는데, 이제야 알았다.

그 말들은 전부 태라를 어르고 넘기기 위한 것이었음을.

성혁은 애초에 태라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이 없었다.

비몽사몽간에 태라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뼛속과 살갗에선 한기가 솟아, 쉴 새 없이 몸이 떨렸다.

밤이 새도록, 식은땀이 침대를 흠뻑 적셨다.

돌아온 성혁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태라의 얼굴을 보고, 졸음이 삽시간에 달아났다.

허둥지둥 태라를 안아 들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로비에 막 도착했을 때, 태라가 몽롱하게 깨어났다.

“내가 왜 여기 있어?”

“고열로 정신없었잖아. 검사받으러 온 거야. 다 큰 사람이 어떻게 제 몸 하나 못 챙겨?”

성혁의 말투엔 다급함과 안쓰러움이 배어 있었다.

태라를 의자에 앉히고, 접수하러 몸을 돌렸다.

그런데 몇 걸음 못 갔는데, 임초아가 눈에 들어왔다.

성혁이 의아해했다.

“초아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가 방금 집에 데려다줬잖아.”

하얀 원피스 차림의 여자애는 청순하고 사랑스러웠다.

한없이 여려 보였다.

“집에 가서 죽 끓이려다가, 실수로 손을 데었어요. 치료받으려고 병원에 왔어요.”

발갛게 부어오른 손등을 본 순간, 성혁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성혁은 바로 태라의 일을 머리에서 지워 버리고, 서둘러 초아를 데리고 접수하고, 검사받고, 약을 타러 다녔다.

방금 하려던 일은 까맣게 잊은 채였다.

태라는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성혁이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알기에, 자조하듯 웃으며 힘겹게 일어나 혼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진료를 마치고, 수액실로 가서 링거를 맞았다.

3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다.

태라는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잠들어 버렸다.

일러주는 사람이 없어서 링거 바늘로 피가 역류해 수액 병까지 붉게 물들었다.

간호사가 허겁지겁 달려와 태라를 흔들어 깨웠다.

“왜 혼자 병원에 오셨어요? 같이 온 사람 없어요? 가족은요, 남자친구는요?”

태라는 시퍼렇게 변한 손등을 내려다봤다.

“가족은 이 도시에 없고, 남자친구는... 없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혁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태라 누나!”

수액을 갈던 간호사가 그 모습을 보고 얼른 말했다.

“이분이 남자친구세요? 그런데 왜 옆에서 안 지키셨어요? 방금 피가 역류해서 큰일 날 뻔했어요.”

부어오른 손을 보고, 성혁이 급히 감싸 쥐었다.

“미안. 방금 친구를 만나서 얘기가 좀 길어졌어. 정신 차려 보니 누나가 안 보여서 찾느라 시간이 걸렸어.”

“응.”

태라는 성혁의 거짓말을 굳이 들추지 않고, 조용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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