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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참새
링거를 다 맞고, 성혁이 태라를 부축해 집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막 들어섰을 때, 태라는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초아를 발견했다.

초아를 보는 그때, 성혁은 거의 반사적으로 태라의 손을 놓았다.

“초아야, 아직 안 갔어?”

초아는 대답하려다 태라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도 희미해졌다.

“선배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요. 선배, 이분은...”

두 사람은 진작부터 비밀 연애를 약속한 사이였기에, 성혁은 거리낌없이 늘 하던 대로 태라를 소개했다.

“우리 누나의 제일 친한 친구야. 아파서 누나가 나더러 병원 동행해 주라고 해서 따라왔어.”

성혁의 대답에 태라의 가슴에 뭔가 칭칭 감기는 듯 숨이 막혔다.

지난 몇 년, 태라는 두 사람이 왜 비밀 연애를 해야 하는지 줄곧 알지 못했다.

처음엔 성혁이 누나인 성연이 알까 봐 그러는 줄 알았다.

그 오랜 의문이 이제야 바로 이 자리에서 풀렸다.

5년을 몰래 만나며 그 많은 사람을 속인 건, 정말 숨겨야 할 사람이 딱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임초아에게만은... 알리고 싶지 않았다.

태라는 입꼬리를 당기며 나직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강태라예요.”

그 말에 초아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그녀는 자기소개를 마친 뒤에야 본론을 꺼냈다.

“친구들이 제 귀국 환영회를 열어 준대요. 선배, 같이 가요. 태라 언니도 오셔서 같이 어울려요. 친구 사귄다고 생각하시고요.”

태라는 반사적으로 거절하려 했지만, 성혁이 한발 앞서 마음대로 승낙해 버렸다.

열린 차 문을 보며, 태라는 몸을 숙여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가는 내내 성혁은 쉬지 않고 화제를 찾아 초아와 옛일을 떠들었다.

“선배, 차에 아직도 딸기 사탕 챙겨 다니네요? 고등학교 연말 축제 때 기억나요?”

“저 무대에서 피아노 치는데 너무 떨려서, 선배가 어떻게 하면 긴장이 풀리냐고 물었잖아요.”

“제가 딸기 사탕 먹고 싶다니까 그 폭우를 뚫고 사다 줬죠. 그 뒤로 절 만날 때마다 딸기 사탕을 꼭 두 알씩 줬고요.”

“어? 이 차량용 피규어 눈에 익네요. 제가 전에 카톡으로 좋아한다고 했던 그 도라에몽 아니에요? 선배도 샀을 줄은 몰랐어요.”

“선배, 향수 냄새 진짜 좋아요. 제가 지나가는 말로 남자가 이런 향수 뿌리면 설렌다고 했는데, 정말 쓰고 있네요.”

“...”

태라는 말 없이 초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제야 알았다. 자기 앞에선 언제나 심드렁하고 제멋대로던 성혁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 앞에선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남몰래 상대의 취향을 하나하나 좇는 사람이라는 걸.

고개를 들자, 백미러 너머로 빨개진 성혁의 귀가 보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설레는 거야?'

‘하긴. 첫사랑이자, 마음속에 뜬 달 같은 존재니까.’

...

라운지 바에 도착한 뒤, 태라는 구석 자리를 골라 앉았다.

성혁은 습관처럼 초아 곁에 앉아, 겉옷을 벗어 그 애의 흰 다리를 덮어줬다.

룸 안의 무리가 대번에 괴성을 질러 댔다.

“5년 만에 봐도 성혁인 여전히 신사네? 이따 초아가 걸리는 술은 그냥 너한테 부으면 되는 거지?”

“말해 뭐 해? 성혁인 여자친구도 없겠다, 잔소리할 사람도 없겠다. 초아 말 한마디면 오늘 여기서 술 먹고 뻗어 죽어도 기꺼이 마실걸.”

그 말에 성혁이도 무의식적으로 태라 쪽을 흘끔 봤다.

태라는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께름칙했는지, 성혁은 참지 못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 다들 우리 사이를 모르니까 저렇게 놀리는 거야. 마음에 담아 두지 마.”

“오늘은 초아 환영회라 좀 그렇고, 다음에 기회 봐서 내가 모두에게 우리 사이 공개할게.”

‘다음?'

‘다음은 없어.'

곧 게임이 시작됐다.

첫판에서 태라가 졌다. 벌칙은 술 석 잔.

성혁이 대신 마셔 주려 손을 뻗었지만, 누군가 가로막았다.

“어허, 우리 룰은 흑기사도 본인 동의가 있어야 하는 거 몰라? 태라 누나, 이제 곧 서른이시죠? 사회생활 짬이 몇 년인데, 겨우 석 잔쯤이야 문제없으시겠죠?”

일부러 나이를 들먹이는 소리에, 태라의 가슴이 따끔했다.

떠나기 전에 성혁에게 더 빚지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술잔을 들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거북함을 억누르며 다 비우자, 사방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두 번째 판, 초아가 졌다. 초아가 성혁을 흘끗 보자,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벌주를 성혁의 잔에 부었다.

성혁은 망설임 하나 없이 단숨에 비웠다.

이후 내리 몇 판을 초아가 졌고, 성혁의 잔은 빌 새가 없었다.

얼마도 지나지 않아 성혁은 곤죽이 되도록 취해 화장실로 갔다.

1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태라도 룸을 나섰다.

계단참에서 성혁을 찾았다.

태라를 보자마자, 성혁이 와락 품에 끌어안고 낮게 웅얼거렸다.

“초아야, 나 너무 기뻐. 드디어 널 다시 만났어. 난 평생 너랑 함께하고 싶어. 너한테 안 좋은 경험은 하나도 주기 싫어.”

“남들이 가진 건 우리 초아도 다 가져야지. 그래서 5년을 배웠어. 이제 난 여자친구 기분 맞추는 법도 알고, 무슨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고, 키스하는 법도 알아.”

“너한테 정말, 정말 잘해 줄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줄게. 나랑 사귀자. 나 정말, 정말 너 좋아해...”

한 마디 한 마디가 칼처럼 태라의 가슴을 베었다. 마음속에서 피와 살이 낭자했다.

태라는 눈앞의 그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눈엔 감출 수 없는 비통과 아픔이 고여 있었다.

이가 입술을 깨물어, 비릿한 피 맛이 입속에서 번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권성혁. 네 마음속에서 나는 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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