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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람 돌아버리게]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2 14:50:48

스틸은 군중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광장을 둘러싼 대리석 건물들은 마정석의 푸른 빛으로 반짝였고, 학생들은 걸어서 이동하는 반면 귀족들은 마차에 올라탄 채 지나갔다.

이곳 건물은 현대 건축 양식처럼 꽤 잘 정비된 데다가 전기라는 개념은 없는 대신 마정석이라는 마력을 이용하여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레투카 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눈앞의 풍경에서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

현생의 이 몸이 지닌 기억 따윈 전혀 없었기에 스스로 이 상황을 살펴야 하니 그건 머리가 복잡했다. 

전생의 기억과 비교하여 경제적 물가 가치는 비슷했다.

1쿠퍼가 밀빵 한 개 값인 2실링, 100쿠퍼가 은화 1실버, 100실버가 금화 1골드라는 설명을 들었다. 실링은 거의 부르지 않고 대부분 쿠퍼 명칭을 많이 사용한다고 하였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운동장 공터 쪽으로 발길을 옮기고 나서야 스틸은 벤치에 자리를 잡고 한숨 돌리게 되었다.

 

미소녀 엘프는 당연하다는 듯 제 옆에 앉아서 생글생글 미소만 지어댔다.

‘이게 새 인생이라니.’

스틸은 이왕 이렇게 된 거 복수나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 레벨이 5라니까 앞으로 노력을 해서 올릴 거야. 새로 주어진 삶이니 최선을 다해 살아 봐야겠어.”

“주인님. 잘 생각했어. 레벨을 빨리 올리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변화는 생길 거야.”

“이 세계에서 온 초월자 버프 그런 것은 없나?”

“글쎄. 두고 봐야지. 그래도 난 주인님이 목걸이를 주워줘서 너무 좋아. 램프 안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거든. 빨리 나도 요정계로 가고 싶어.”

스틸은 현재 아무것도 아닌 이런 자신이 누군가를 건사할 수나 있을지 엘프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의 평판도 그렇고 구유통에 비친 제 심각하게 민주적으로 자유분방한 얼굴도 그렇고.

앞으로의 삶도 밑바닥부터 출발이라 걱정만 되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아마 넌 주인 잘 못 만난 것일 수도 있어. 이 몸은 최악이야. 외모도 가진 것도 뒷배도 평판도 아무것도 난 내세울 게 없어 보여.”

“인간들은 100년도 못 사는데 뭘 그리 신경 써? 주인님은 의협심도 넘치고 머리도 좋아 보이는 데. 그것이면 됐지.”

엘프는 의연하게 굴었지만 스틸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도 중요한 거야.”

“난 안 보이는 게 더 중요하던데. 주인님은 그래도 헛간에서 도망치지 않고 불도 껐잖아? 정의로운 모습에 반했어.”

엘프의 말에 위로가 되어야 하겠지만, 지금의 스틸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사실 전생에서 스틸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본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간이었다. 몇 번의 회귀를 했으니 복수만 꿈꾸느라 허튼 짓은 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얼굴도 잘나지 못했고 여성에게 숙맥이라 이성과의 연은 거의 없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하면서 반지라도 한번 줘 보고 죽었으면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싶어 싱겁게 웃어 보았다.

현생에서는 무겁게 자신에게 책임을 지워주는 가주의 반지가 오른손 검지에 끼워져 있었다.

붉은 바탕에 검은색이 휘몰아치는 빛깔에 꽤 눈에 띄는 캔도르 대공가 반지였다.

그때 갑자기 엘프는 스틸의 손을 덥석 잡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리 보고 저리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인님, 아무리 봐도 고위 귀족 가문의 가주 같은데 본인이 어떤 상항인지 궁금하지 않아?”

“···뭐 알 방법이 있어?”

“램프에게 물어보면 돼.”

램프? 이게 뭘 물어보면 답도 해주나?

스틸은 아직도 제 손에 들린 목걸이를 꺼내 들어보았다. 

그러자 엘프는 스틸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었고, 활짝 웃으며 스틸의 손을 그 램프 모양의 펜던트에 갖다 대었다.

“주인님, 램프를 문지르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봐.”

믿거나 말거나.

스틸은 엘프가 시키는 대로 램프에 손을 대고 질문을 던졌다. 

“램프여, 내 현재 상황을 좀 알려 줘!”

그러자, 목걸이 주변에 다시 황금빛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상태창이 열리며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 이름 : 스틸 반 가드 캔도르(20세).

★ 가문 : 캔도르 대공가에 현존하는 유일한 생존자.(황위 계승 서열 4위)

★ 주소 : 레투카 아카데미 기숙사 C동 지하 1층 109호.

★ 재산 : 가르나르 영지 소유. 1 골드 미만 금액의 재산은 추정 불가.

★ 빚 : 황태자 아쳐에게 2 골드를 빌린 상황. 1 골드 미만 금액의 빚은 추정 불가.

★ 기타 1 : 전쟁으로 인해 10년 전부터 가신 및 영지민 0명. 

★ 기타 2 : 아카데미 입학 300명 중 300등.

***********************************

“젠장, 이 무슨 개같은 꼬라지인지.”

스틸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나자 희망이라고는 깃털 하나라도 찾아볼 수가 없어 욕만 튀어나왔다.

“주인님, 대단하다. 대공이래, 황위 계승 4위!”

아무리 인간을 초월한 엘프라도 그렇지. 어찌 이리도 보는 관점이 다른지.

대단하긴 개뿔!

“다른 건 안 보여? 이 몸뚱이는 완전 거지야! 그리고 아쳐와 원수지간이라고!”

황당해서 열불만 터질 뿐이었다. 어째 회귀할 수록 더 최악인 것인지 앞날이 캄캄했다.

“그게 뭐 어때? 그래도 지위가 높은데. 경제력이야 뭐 극복될 수 있는 문제 아니야? 와, 우리 주인님 대단하다! 대공이래!”

이 초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어쩜 좋은가. 극복도 극복 나름이지.

“대공이 밥 먹여주진 않아.”

“인간들도 참 잔혹하네. 대공 전하를 함부로 말하다니 말이야.”

“무시당할 만하니 그렇겠지. 성적도 300명 중 300등? 머리까지 나쁜가? 이런 돌아버리겠네.”

기어이 스틸 입에서는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엘프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그게 뭔 대수냐고 자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뭔가 시야가 닿는 저 멀리서 어수선한 기운이 몰려들고 있었다. 

철갑을 두드리는 발굽 소리가 점점 커지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선두에 선 기사가 허리에서 롱소드를 뽑아 들자 칼날이 서늘하게 빛났다. 

“게 섰거라! 스틸 대공! 저 마구간 방화범을 잡아라!”

“이 아카데미의 원흉! 스틸 대공!”

그들은 스틸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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