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30대 중반의 노련한 호위 기사단장, 세도르는 한쪽 눈을 가린 검은 안대를 거칠게 휘감은 채 말을 달리던 중이었다.
묵직한 말발굽 소리를 뚫고 은발의 젊은 부하 기사가 다급하게 다가와 앞을 가로막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고삐를 홱 잡아챘다.
“세도르 단장님! 방금 이스트 마구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황당할 데가. 세도르는 황망함에 굵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황실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아카데미 안에서 화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버 경, 지금 뭐라고 했나?”
“진화는 방금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도 없고, 고가의 군마들도 모두 무사하다고 합니다.”그나마 천만다행이기는 했으나, 대체 어쩌다 이 엄격한 기사단의 감시망을 피해 불이 나고 구경거리가 되었단 말인지.
세도르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마구간지기들은!”
“그게······ 마침 그 시간에 단체로 배탈이 나는 바람에, 자리를 비웠다고 합니다.”이토록 기막힌 우연은 대개 조작된 필연이기 마련이었다. 세도르가 가고 있던 방향이 마침 이스트 에어리어 강의동이었기에 화재 현장과 그리 멀지 않았다.
“일단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군! 다들 따라와라!”
레투카 제국의 고귀한 황족들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고위 귀족 가문의 영식들과 이 나라를 이끌어갈 천재 인재들이 바글거리는 황립 아카데미였다. 그런 곳에서 일어난 화재는 단순한 사고로 치부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아카데미 호위 기사단장인 세도르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은 것은, 제국 황태자의 애마가 바로 그 이스트 마구간에 묶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장 조사를 비껴갈 수 없었다. 본래 마구간은 마찰이나 인화 물질이 없어 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었기에, 의구심은 더욱 짙어만 갔다.
*** 순찰 부대를 이끌고 한달음에 도착한 이스트 마구간은, 다행히 외관상으로는 크게 무너지지 않은 상태였다.안에서 새어 나오는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발구름을 들으니 말들은 무사해 보여 세도르는 간신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에서 내린 그는 매의 눈을 번뜩이며 검게 그을린 마구간 내부를 샅샅이 살폈다. 다행히 독한 연기만 자욱할 뿐 건초 더미 몇 개만 까맣게 타들어 갔을 뿐이었다. 황태자의 애마를 비롯해 다른 귀족들의 명마들도 가뿐 숨을 몰아쉴 뿐 다친 곳은 없었다.
“단장님, 일단 목격자가 있는지 주변 탐문부터 시작할까요?”
세도르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이버 경, 당장 이 마구간 주변을 드나든 자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목격자들을 샅샅이 조사해!”
“넵! 알겠습니다!”이버가 대원들을 데리고 급히 나가고 나서도, 세도르는 텅 빈 마구간에 홀로 남아 미련 가득한 시선으로 사위를 둘러보았다.
화재의 명확한 원인이 분명히 이 내부에 숨겨져 있을 터였다.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던 그는 짙은 재를 뒤집어쓴 채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건초 더미를 가죽 장갑 낀 손으로 거칠게 뒤지기 시작했다.
*** “아윽······! 하으, 앗······!” “쉿, 리나. 조용히 해. 기사들이 바로 위까지 들이닥쳤잖아.”탄식과도 같은 신음이 새어 나오는 곳은 마구간 바로 아래, 은밀하게 숨겨진 지하의 비밀 아지트였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눈부신 금발을 흐트러뜨린 청년이 갈색 머리의 여인을 침상 위에 거꾸로 엎드려 놓은 채 뒤에서 뜨겁게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남자의 손길이 여인의 얇은 허리를 부서뜨릴 듯 단단히 붙잡고 짓누를 때마다, 여인은 쾌락에 몸을 잘게 떨었다.
“제국의 작은 태양······ 아쳐 가를리아 폰 레투카 황태자 전하······. 으읏!”
“쉿, 주인 전하의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우는 종달새에게는······ 벌을 줘야겠네.”아쳐는 리나의 풍만하고 둔덕한 엉덩이를 한 손으로 꽉 쥐어 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하얀 살덩이가 삐져나올 정도로 악력을 가하더니, 이내 넓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매섭게 찰싹, 소리가 나도록 내리쳤다.
살결이 붉게 달아오르는 자극과 함께, 그는 뒤에서부터 뜨겁게 부풀어 오른 자신의 거대한 남성을 내벽 깊은 곳까지 찌걱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삽입해 들어갔다.
“아읏······! 전하, 오늘은 이만하시는 것이······.”
“그래도 이렇게 만난 김에······ 서로 할 일은 확실하게 하고 가야지, 안 그래?”사실 오늘 온종일 레투카 제국의 황립 아카데미 이스트 에어리어 마구간은 지독하게도 어수선했다.
마구간지기들이 청소를 한답시고 먼지를 피우며 난리를 부린 데다가, 심지어 아카데미 호위 기사단까지 조사라는 명목 아래 머무르고 있었으니 사위가 온통 난장판이었다.
“그럼, 들키기 전에 빨리해 주세요······.”
“리나, 넌 몸 따로 말 따로 노는군. 네 은밀한 곳은 내 아랫도리를 절대로 빼지 못하게 꽉 물고 힘을 주고 있잖아?”아쳐는 오늘 하루 쌓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교음은 언제 들어도 아쳐의 정복욕을 자극했다. 주근깨투성이인 못난 얼굴을 마주 보지 않고 뒤에서 즐길 수 있어서, 그는 오히려 이 자세가 더 관계할 맛이 났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아래로 이어지는, 탄력 있고 둥글고 하얀 엉덩이는 제 손자국대로 붉게 물이 들 때마다 묘한 가학적 흥분을 휘몰아치게 만들었다.
게다가 제 남성을 뭉근하게 조여 오는 그녀의 여성은 심각할 정도로 뜨거웠고, 한 치의 틈도 없이 달라붙어 아찔하리만큼 짜릿한 극상의 쾌락을 안겨 주었다.
아쳐는 상체를 숙여 엎드려 있는 리나의 풍만한 가슴을 밑에서부터 한껏 움켜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터질 듯 흘러나오는 말랑한 살덩이가 손놀림을 더할 때마다 폭신하게 감겨와 그를 더욱 감질나도록 만들었다.
“후······ 리나. 너를 품고 쑤셔대니 이제야 겨우 화가 진정이 되는군.”
기분이 고조된 아쳐는 리나의 가느다란 허리를 성마르게 잡아끌어, 더욱 거칠고 맹렬하게 뒤에서 제 남성을 찌걱찌걱 움직여댔다.
제 변덕스러운 취향대로 고분고분한 리나를 조금만 더 장난감처럼 곁에 두기로 마음먹었다. 비밀리에 만나는 관계인 데다 아무도 모르는 비천한 신분이었고, 뒷배도 없는 것 같아 뒤탈 없이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황태자······ 전하, 며칠 동안은 조심하심이······.”
그는 들이칠 때마다 출렁이는 리나의 두 가슴을 뒤에서 움켜쥔 채 양손으로 꾹꾹 문지르며, 그녀의 귓가에 밭은 숨을 불어넣으며 속삭였다.
“리나, 내일 밤도 오늘처럼 이 마구간 지하로 와.”
“영 불안해서······ 이번엔······ 안 올래요······.” “명령이야.”그는 붉게 부풀어 올라 열기를 뿜어내는 리나의 엉덩이 양쪽을 두 손 가득 잡아 쥐고 허리를 크게 돌렸다. 그리고 제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거칠고 밭은 숨을 그녀의 목덜미에 크게 뱉어내었다.
“아읏!”
“후······ 내일은 금화 두 개를 주지.” “······아윽! 그럼 그럴게요······.”저 멀리 지상 위 마구간에서는 불길에 놀란 말들의 투레질 소리와 발구름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쳐는 온몸의 신경을 타고 퍼지는 짜릿한 사정감에 취해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갑자기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워냈다.
“그나저나······ 여기 불은 대체 누가 마법으로 껐지? 내가 알기로 스틸 그 새끼는 마법을 전혀 못 쓰는데······.”
그의 움직임이 아주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척추를 타고 내리꽂히듯 천천히 읊조렸다.
수위가 조절되어 수정을 하였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잘 즐겨 주세요.
“제논, 나쁜 놈! 그놈이 지껄이는 소리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악마이자 괴물이지. 미친 새끼인 건 확실하지만.”제논이 흘린 기이한 언사들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렘브란트에게도 딱 하나 확실하게 각인된 사실이 있었다.제논이 스틸의 시녀, ‘지니’라는 존재를 집요하게 쫓고 있다는 것.그 시녀만 갖다 바치면 풀어주려나. 대체 어쩌다 자신과 레무르가 이 끔찍한 연옥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오게 된 걸까.옆에 누운 레무르는 여전히 도른 제국의 지독한 한기 속에서 흐느끼며 칭얼거렸다.“황녀님의 데뷔탕트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 마티어스 경이나 황태자 전하와 춤을 추고······ 나중에 누구에게 청혼장을 받게 될지······ 흑흑, 그런 달콤한 꿈을 꿨는데.”사실 렘브란트 역시 다르지 않았다.아버지인 기니그 밀레 백작은 황녀의 에스코트를 렘브란트가 맡게 될지도 모른다며 은밀히 바람을 잡았었다.훗날 어찌 될지 모르니 황태자의 최측근인 안젤루스와 살갑게 지내라는 조언까지 덧붙였으나, 결과는 잔혹한 파멸뿐이었다.그 와중에 아쳐 황태자는 타바를 판매할 판로를 개척하라며 자신을 압박해 댔고, 그사이 스틸은 보란 듯이 사교계의 주인공이 되어 만인의 시선을 독차지했다.왜 그리 허우대는 멀쩡해졌는지, 이제는 자신이 보기에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수려하고 묵직한 기품을 풍기는 대공이 되어 있었다.귀부인들이 모였다 하면 캔도르 대공가의 신비의 꽃과 스틸의 외모와
낡은 흰색 튜닉을 걸친 지니가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투명한 빛의 조각들이 어른거렸다. 이윽고 눈을 뜬 지니는 입가에 눈물과 미소가 뒤섞인 표정으로 스틸을 향해 가녀린 손을 뻗었다.“지니!”지니는 가볍게 손등으로 제 눈가를 비비더니, 울컥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스틸에게 인사를 건넸다.“주인님······ 보고 싶었어.”그가 한 걸음 내딛자, 발밑의 꽃잎들이 바스러지며 황금빛 먼지로 변해갔다.지니의 실체가 온전히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스틸의 가슴이 터질 듯 거칠게 소동쳤다.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달려들어 단단한 팔로 가느다란 허리를 휘어잡았다. 그녀의 애틋한 체온이 피부에 닿는 순간, 오랫동안 마비되었던 모든 감각이 무서운 속도로 되살아났다.“지니, 그래······. 나도 너무 그리웠어.”그의 젖은 목소리에는 맹목적인 갈망과 안도가 거칠게 뒤섞여 있었다.그는 그녀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지니의 은은한 향기가 폐부를 가득 채우자, 마치 메마른 영혼에 생명수를 들이켠 듯한 지독한 충만함이 차올랐다.***뜨겁던 정사의 열기가 한 차례 가라앉은 후, 스틸은 제 품에 무력하게 안겨 있는 지니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현실이 아닌 꿈만 같아, 그는 그녀의 살결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지니의 가느다란 숨결이 제 가슴팍을 스칠 때마다 짜릿한 전율이 피어올랐다.“주인님, 이건 꿈일까? 꿈이라면·&middo
지니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 입자들이 빛을 머금고 공중으로 흩어지듯, 그녀의 실체는 희미하게 부유하며 사라져갔다.그러나 바로 그 순간, 강렬한 인력이 그녀를 붙잡았다. 보이지 않는 뜨거운 손길이 온몸을 구속하듯 압박해 오자, 그녀는 이것이 스틸의 완강한 의지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주인님이 나를 품 안으로 들이고자 소환한 것이 분명해.’대체 어떻게 스틸의 마력이 이토록 대단하게 성장한 것일까.도른의 결계를 부수고, 제논의 강력한 주술마저 극복할 정도로 그가 힘을 기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즉, 자신이 스틸을 그리워했던 것만큼 그 역시 지니를 원했다는 사실이 영혼 깊은 곳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심연 속에서 의식만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는데, 이토록 구체화된 인간의 육체를 갖추게 되다니.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황홀하여 지니는 그저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하지만 얼마나 현신해 있을 수 있을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반복된다면, 자신은 얼마나 더 제논에게 휘둘려야 하는 걸까.무섭고 두려웠지만, 기왕 이렇게 온전한 인간의 모습이 된 김에 단 1초라도 빨리 스틸을 만나고 싶었다. 분명 자신에게 허락된 이 육체는 일시적인 방편일 터였다.어느 순간 통제력을 잃으면 또다시 제논에게 끌려가거나 허공으로 흩어져 버릴지도 몰랐다.지니는 눈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지만, 제 손으로 제 몸을 만질 수 있는 바로 지금, 스틸이 나타나 주기만을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주인님! 보고 싶어······. 어서 와줘!’이제 지니가 빌어 마지않는 대상은 신(神)이 아니
그는 제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렘브란트와 레무르의 마력이 별 대수롭지 않은 듯 감흥 없는 눈빛으로 고문을 자행하던 마법사들을 멈추게 했다.그리고 자신 곁에 선 샤나에게 무심하게 가벼운 한숨을 뱉으며 질문을 건넸다.“아, 심심하군. 지금 레투카 제국의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스틸 반 가드 캔도르 대공이 그 지역을 틀어막고 있습니다.”그러자 샤나가 마법의 지팡이를 휘둘러 제논의 앞에 커다란 상태창을 띄워 올렸다.짙은 검은 연기 사이로 어두컴컴한 불바다가 되어가는 부르도 영지의 전경이 펼쳐졌다. 불기둥이 치솟고 마법사들이 무차별적으로 마력을 퍼붓는 참상을 보며, 제논은 천천히 화면을 훑었다.“음, 제법이네. 그래서?”그 짧은 한마디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샤나가 설명을 덧붙였다.“현재 이번 침공은 실패로 보입니다.”제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면 속 불기둥이 점차 사그라들고, 오히려 자신이 보낸 마법사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듀라한 유령 기사들이 전장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의 파란 눈동자가 잔혹하게 반짝였다.“스틸 대공이 선전을 했군.”제논의 감미로운 음성이 지하실에 은은하게 울렸다.특히 마법력이 막강한 유령인 벤시들이 500체에 가까운 규모로 결집한 것을 보자, 제논의 붉은 입꼬리가 절로 매혹적으로 호를 그렸다.그는 천천히 샤나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며 깊게 입을 맞추었다.비명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이 지옥도 속에서, 은빛 망토를 두른 사내와 어둠을 닮은 여인의 극명한 대비는 기괴할 정도로 아름다운 정경을 연출했다. 주변에 다섯 명의 대마법사와 고문당하는 이들이 버젓이
“스펙터, 듀라한들을 산발적으로 흩어놔 줘! 해가 뜨고 후작가의 원군이 올 때까지만 최대한 버틸 수 있게 지원을 부탁해!”그러자 스펙터는 껄껄거리며 손으로 다른 쪽을 가리켰다.“아침이 되어도 벤시들이 알아서 널 지켜줄 거다.”“아, 벤시. 그래, 다행이군!”적의 눈을 피해 아군을 숨기는 것도 전술이지만, 본진을 비워둘 수는 없었다. 전쟁의 기본은 방어와 공격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는 뜻이기에, 스틸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그러고 보니 지니를 따르는 벤시들이 그동안 가르나르도 지켜주고 있었다.혹시 지니의 인벤토리 안에 있던 벤시들까지 이곳 합류에 힘을 보태려는 걸까?“스펙터! 벤시들의 병력은 어찌 되고 있는 거지?”“반은 가르나르, 반은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 같다.”스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가슴 속에서 망치질하듯 고동치는 맥박이 귓가를 울렸다. 지니가 어딘가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도른의 침공을 손쉽게 막을 수 있겠어!”그의 목소리에는 결의와 함께 희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그래. 네 엘프가 제 모습은 직접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벤시들은 운용해 준다는 뜻이다. 오직 널 위해서.”스틸은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르도 영지의 리나 로테 공작가의 초라한 나무 저택 앞, 검은 첨탑이 달빛에 젖어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곳에서 그는 눈을 감았다.지니의 투명한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는 것만 같았다.그때 스펙터가 스틸의 정신이 번쩍 들 만한 말을 건넸다.&ldquo
리나는 떨리는 손으로 스틸에게 통신할 마도구를 움켜쥐고, 이 다급한 상황을 전하고자 마력을 흘려 넣었다.하지만 스틸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절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스틸 대공이 받지 않아!”“스틸 대공 역시 다급한 일이 닥쳤을지도 몰라! 리나, 어쨌든 정신 차려! 어떻게든 이겨내야 해!”불기둥이 수십 곳에서 솟구치며 하늘을 집어삼켰고, 세찬 빗줄기 속에서 울부짖는 피난민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그들의 발걸음은 절박함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하늘은 그저 무심한 비만 쏟아낼 뿐이었다.그나마 마티어스가 그녀의 영지에서 함께 밤을 보내며 방어에 힘을 보태지 않았더라면, 이미 온갖 화염과 토석 공격을 받아 이 나무 저택은 무너지고도 남았을 터였다. 진즉에 그녀 또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리나는 뭐라도 해보고자 저택 밖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죽을 때 죽더라도 싸울 거야! 내 눈으로 똑똑히 볼 거라고!”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나약한 평민의 눈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영주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좋아! 그럼 내 옆에 꼭 붙어 있어!”“그런데 가르나르는 정말 뚫린 거야?”빗속에서 나무 저택을 나와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던 리나와 마티어스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확실히 가르나르 영지 쪽은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분명 지금 부르도 영지 주변으로만 하늘에서 불 폭탄이 쏟아지는 중이었다.쿠구구궁, 콰아앙!마정석에 화염의 기운을 담은 공격용 마도구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검은 망토에 검은 모자까지 깊게 눌러쓴, 사신과도 같은 마법사들이 오싹한 기운을 풍기며
마구간 아래, 공기가 무겁게 감도는 비밀스러운 지하 공간.황태자의 은밀한 아지트인 침대 위에서, 아쳐는 억눌린 짐승 같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리나를 제 육체 아래로 뜨겁게 가두었다. 그는 옷가지가 채 다 벗겨지지도 않아 날것의 살결과 옷감이 뒤엉킨 그녀의 몸을 거칠게 뒤돌려 세웠다. 매끄러운 척추 라인이 쾌락의 예감으로 잘게 떨렸다.질척, 찌걱.밀폐된 정적을 깨는 노골적인 파찰음과 함께 리나의 하얀 둔덕이 아쳐의 손자국대로 붉게 달아올랐다. 아쳐의 뜨거운 손길에, 그녀의 가녀린 신음은 축축한 지하의 공기 중으로 애처롭게 흩어졌
극단의 조치!“지니, 너는 요정이잖아? 소원 같은 거 당장 못 이뤄주나?”이건 사심을 품고 물어 보게 되었다.“당연히 마력이 높으면 주인님 원하는 것을 많이 들어줄 수 있지.”어쨌든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든 천일야화 판타지든 간에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지니, 이왕이면 돈이나 외모를 어찌해 봐야겠어.”인간에게 가장 필요한게 아니겠는가.“어머, 드디어 주인님! 욕망이 생긴 거야?”지니는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스틸에게 더욱 바짝 의자를 붙였다. 보통 다들 그렇지 않나? “그래. 너와 힘을
스틸은 죽음과 동시에 이세계로 떨어졌다. 환생을 겪으면서 이렇게 기사들에게 끌려가 본 적은 없었는데 그 대단한 경험을 지금 하게 되었다. 스틸을 체포하러 왔을 때만 해도 살기등등하던 기사들은 그가 순순히 항복하자 머쓱한 듯 거리를 좁히며 따라붙었다.나름 고위 귀족이라 그런지 포박은 안 하고 수 미터 거리만 둔 채 걷는 수준이었다.전생에는 죄짓고 산적이 없어 이런 자들도 만난 기억이 없었다.스틸은 현재 자신이 마구간 방화범으로 몰려 있긴 하지만, 사실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딱 봐도 건초만 탄 정도지 어디가 무너져 내린
스틸은 군중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광장을 둘러싼 대리석 건물들은 마정석의 푸른 빛으로 반짝였고, 학생들은 걸어서 이동하는 반면 귀족들은 마차에 올라탄 채 지나갔다.이곳 건물은 현대 건축 양식처럼 꽤 잘 정비된 데다가 전기라는 개념은 없는 대신 마정석이라는 마력을 이용하여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레투카 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눈앞의 풍경에서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현생의 이 몸이 지닌 기억 따윈 전혀 없었기에 스스로 이 상황을 살펴야 하니 그건 머리가 복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