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자신의 기업과 아버지를 위해 세계 최고 글로벌 기업의 주인 류에게 자신을 팔았다. 그리고 3년을 그의 인질로 살았다. 그런 남자에게 지쳐 버린 유진. 불과 결혼을 3주 앞 두고, 의과 대학 수석이자 고아인 에구치와 술에 취해 하룻밤을 보낸다. 과연 유진의 진짜 운명은 누구일까? 결국 그 하룻밤으로 유진은 류와 이별하고 새 남자 에구치는 그녀의 첫사랑이 된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유진은 자꾸 류가 떠오르는데... 그때 그녀의 기업이 부도 위기를 맞이한다.
Lihat lebih banyak유난히 까만 밤.
별빛마저 없는 유난히 칠흙 같은 제주도의 밤.
유진은 프라이빗 빌라 2층 마스터 베드룸 침대 끝에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
*
“아무리 네가 내 투자금의 담보라고 해도… 난 최소한 네가 침대에서 날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는지 정도는 봐야겠어… 그러니 어차피 할 거… 빨리 끝내 버리는 게 낫잖아”
*
무성의한 결혼 통보도 모자라, 그가 그녀에게 첫날밤을 요구했다.
순간 유진은 머리 속이 온통 하앴다.
이 밤을 피할 수 있는 변명도 달아날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이런 억울한 상황에 자신을 처 박은 아버지를 향한 원망만 치밀었다.
하지만 오늘 밤 그를 거부 했다가는...
그 화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와 KL 그룹에 번질 것을 알기에,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서늘한 인기척과 함께 류가 침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아무렇지 않게 마치 소파에 쿠션을 가지러 가듯...
일정한 보폭으로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유진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붉은 침실 조명 아래...
바쉬의 레드 코튼 아일렛 드레스를 입은 유진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한여름의 무더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위스 설산의 하얀 눈처럼 새하얀 피부...
그리고 오늘 밤을 위해 준비했다기에는 지나치게 얌전한 드레스였다.
하지만 강렬한 붉은색과 맨살의 하얗고 투명한 피부가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시각적 대비 때문일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아찔할 만큼 농익은 색기를 머금은 유진의 모습에 류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는 침대 옆 작은 테이블 위에 준비된 모엣 샹동 샴페인을 급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유진을 바라봤다.
그녀는 마치 성전에 버려진 제물 같았다.
“그동안 3년이면... 내가 너에게 충분히 시간 줬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긴장한다고? 혹시 나랑 하는게 싫은 거야? 아님 무서운 거야?”
유진은 여전히 그를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한 채, 대답 대신 고개만 작게 가로저었다.
“아니야? 알았어. 처음이라 긴장되나? 그럼 이거라도 한 모금 마셔!”
그는 그녀에게 자신이 마시던 샴페인 잔을 건넸다.
유진은 얼떨결에 잔을 받아 들었지만, 차마 마시지 못하고 손만 잘게 떨었다.
“이래서… 모범생은 재미가 없어”
그는 그녀가 들고 있던 잔을 뺏어 단숨에 남은 샴페인을 들이켰다.
그리고 떨고 있는 유진의 가녀린 허리를 가로채 듯 거칠게 낚아채,
그녀의 입술을 사정없이 집어 삼켰다.
긴장으로 꾹 닫힌 그녀의 입술이 그에 의해 강제로 열렸다.
그리고 그의 입 안에 남아 있던 샴페인이 그녀의 입 안으로 그대로 흘러 들어왔다.
그 샴페인에서 느껴지는 탄산 방울과 야릇한 느낌이 그녀의 숨통을 막았다.
이내 깊숙이 장악해 오는 그의 숨결…
유진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하지만 설렘 따윈 끼어들 틈도 없었다.
폭력적인 맹수 앞에 선 초식 동물처럼...
무서움에 심장이 날카롭게 오그라들 뿐이었다.
유진의 첫 키스.
하나도 설레이지 않았다.
설레이기는 커녕, 무서움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점점 거칠어지고 깊어지는 키스에... 그의 손길도 점점 거칠고 무례해졌다.
그의 무례한 손길이 서슴 없이 그녀의 붉은 드레스 안으로 들어와...
그녀의 떨리는 민감하고 예민한 하얀 속살을 움켜 쥐었다.
순간 유진의 몸이 당황함과 두려움으로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손길과 입술은 겁 먹은 그녀를 깡그리 무시했다.
그리고 더욱 더 거칠게 그녀를 탐했다.
짓이기듯 허벅지 속살을 파고드는 강한 악력과,
그의 뜨거운 손의 촉감에 유진의 척추가 서늘하게 굳어버렸다.
무례하고도 탐욕스러운 그의 손길이,
점점 더 은밀하고 깊은 곳을 향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원초적인 거친 손길에...
맹렬하게 휩쓸리던 유진은 숨이 막혀,
펄떡이는 본능으로 자신을 짖누르는 그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냈다.
“잠…잠..깐만…요”
"츠웁... 하...음..."
달콤한 스트로베리 맛이 났다.
유진이 뱉어낸 첫 숨결에, 류의 몸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오직 그녀만을 원하게 되는 지독한 갈증.
마치 서툰 소년처럼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통제 불능의 감정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더 거칠고 무례하게 그녀를 탐하려 했다.
그때 유진이 자신을 밀어냈다.
자신을 거부하는 유진의 손길에,
그는 얼마 남아 있지 않았던 이성을 겨우 붙잡고 그녀를 품에서 놓아 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이 들었다.
아니… 미칠 것 같았다.
여전히 그녀를 집어삼키고 싶어 하는 본능이 척추를 타고 꿈틀거렸다.
그때 하얗게 넋이 나간 유진을 봤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이별의 말을…
“죄송…해요… 좀 놀라서… 조금만… 천천히 다가와 주시면…”
마음도 몸도 거부하는데도... 그녀는 자신을 억지로 받아들이려 했다.
그 비참한 순종에... 순간 그는 분노했다.
[이게… 네 선택인 거지? 알았어. 그럼 이제 넌 아무데도 못 가. 영원히 넌 내 곁에 있게 될 거야.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싫다는 여자 안고 싶을 만큼… 네가 날 미치게 하는 건 아니라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실렸다.
잔인하도록 차가운 표정이었다.
놀란 유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비참했다.
그리고 그가 준 샴페인 맛이 입안에서 여전히 달콤하면서도 쓰게 감돌았다.
그는 눈물만 덩그러니 고인 채 굳어버린 유진을 침실에 홀로 남겨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를 떠났다.
인생 가장 뜨거웠던 그 새벽을,실수……라는 잔인한 단어로, 난도질하며 완벽하게 정리했다.돌아보면 참으로 지독하게 바보 같은 짓이었다.가문의 이권에 묶여,사랑도, 인격적인 존중도,그 어떤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정략결혼을 바로 코 앞에서 앞두고,그녀는 이미 자포자기한 인질이었다.그렇게 영혼이 온통 엉망진창으로 찢겨 나간 채, 아무런 대가 없이 묵묵히 곁에서 위로해 주던 에구치의 온기에, 스무 살의 연약한 빗장이 흔들리고 말았다.가문의 보호막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할 줄 모르는 자신이,결국 술에 취해, 책임도 질 수 없는 파멸의 불장난을, 그 남자의 침대 위에서 저지르고 말았다.3년이나 된 정혼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유진은 겨우 3개월 알고 지낸 남자에게 자신의 순결을 스스로 내던져버렸다.그렇게 쉽게 타락해버린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하염없이 뺨을 타고 후회와 자책의 눈물이 왈칵 흘러내렸다.스륵, 쾅ㅡ.그렇게 에구치의 아파트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눈물과 서러움에 엉망진창이 되었다.그때 도망치듯 걷던 유진의 발걸음이, 일순간 얼어붙은 듯 그대로 바닥에 붙어 버렸다.복도 끝. 어둠 속에서 들이치는 서늘한 아우라에, 숨통이 턱 막혀왔다.“얘기 좀 하죠. 유진양.”류의 어머니…그녀의 예비 시어머니가, 에구치의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열 여섯에 스물 여섯의 남자와 만나 사귀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난 소름이 끼쳤어요. 그런데 이렇게 결혼을 앞 두고 있는 여자가…… 외간 남자와 단 둘이 한 아파트에서 그 남자의 간호를 한다는 게……”그녀의 비난에, 유진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덜덜 떨고 있었다.“물론 유럽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유진 양의 배경으로는 별 거 아닌 것일 수도 있지만, 난 싫어요. 물론 그럼에도…… 요스케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고 해도 난 못 막을 거예요. 정신 빠진 내 아들 놈이 문제니까.”류의 어머니가 잠시 잔인한 침묵을 유지하며 숨을 고르더니, 이내 유진의 심장에 가
에구치의 아파트에서 나와,내내… 불안하게 떨리던 유진의 황금빛 눈동자는,이내 저택 입구 언덕길에,위태롭게 서 있는 에구치의 실루엣을 발견하자마자, 사정없이 흔들렸다.유진은 잠시 망설이듯 우물쭈물거리다,급하게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며 기어를 박아 넣고 차를 급하게 세웠다.끼익-, 타다닥-.“저기……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차 창문을 내린 유진이 애써 태연한 척 물었다.그때 에구치 대신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작업반장이,먼저 유진의 차량 조수석 앞으로 허겁지겁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아…… 아가씨, 그게 저, 현장에서 작은 안전사고가 조금 있어서 말입니다…….”“사고요? 누가 다쳤는데요?!”불길한 예감이 척추를 타고 내리쳤다.급하게 차에서 내린 유진은 에구치의 손에 둘둘 말린…붉은 피로 흥건히 젖은 타월을 발견하고,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렸다.“타세요.”“괜찮습니다. 택시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가씨는 걱정 마시고 들어 가세요”그때 유진이 화를 버럭 냈다.“그냥 타요! 제발!!!”처음 보는 유진의 막무가내 기세에, 작업반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에구치는 잠시 그녀를 응시하다, 조용히 조수석에 올라탔다.“여기서부터 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반장님은 현장으로 들어가세요.”유진은 거칠게 차를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언니. 창현씨… 연락 좀 해줘. 선배…… 손을 다쳤어.”“뭐?”그때 에구치가 그녀의 블루투스로 연결된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별 일 아니야. 소란 떨지마”유진은 그를 무시하고, 다시 유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언니. 연락 됐어?”“고대 병원으로 가. 거기가 가장 가까우니까… 아는 분께 연락해 놓을게. 그리고 우리도 그쪽으로 바로 갈게.”에구치는 잠시 유진을 바라봤다.그녀는 화가 잔뜩 난 채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는 잠시 한숨을 내쉬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의 손보다, 그녀에 대한 책임감으로 마음이 더 힘들었다.*
갑작스럽게 지독하게 낯선 향기가 그녀의 코끝을 자극했다.그리고 남자의 진한 스파이시 코롱 냄새에,유진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순간 등 뒤로 서늘하고 축축한 새벽의 공기가 닿았다.유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이불을 얼굴까지 거칠게 끌어당겨 온몸을 꽁꽁 감싸 안았다.곧이어 겨우 시선을 돌리자,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시트와 널브러진 베개,그리고 방 안 가득 은밀하게 얼룩진 어젯밤의 지독한 흔적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나눴던 그 외설적인 폭주를 낱낱이 보여주는 날 것의 현장.[여긴… 진짜 미쳤구나. 서유진, 너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도대체 왜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른 거야!]에구치의 비좁은 침대 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완전히 벗은 알몸의 나신으로 홀로 남겨진 자신의 낯설은 모습.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협탁 위의 휴대폰을 확인했다.오전 9시 정각.화면을 확인한 유진의 동공이 흔들렸다.[아……! 지금 시간이면, 평창동 저택에 있겠구나.]당황함과 두려움이 엄습했다.유진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의 옷을 급하게 손으로 집었다.순간 속옷을 입는 손끝이 사정없이 굳어왔다.그때 제 살결을 만지던 남자의 거친 손길과 함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요스케…….]가슴이 얹힌 것처럼 무겁고 답답하게 죄어들었다.류에게 지독하게 입었던 상흔 위로,에구치가 남긴 날것의 체온이 충돌하며 가슴을 찢어발겼다.유진은 다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도망치기 위해 발을 바닥에 내디뎠다.앗…….하지만 맨발이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는 그 순간,찌릿한 물리적 자극과 함께,여자의 가장 은밀하고 깊숙한 몸 중심부에서부터,둔탁하고 생경한 통증이 해일처럼 밀려와,유진은 순간 짦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 밑으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바르르 떨리는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어젯밤 에구치가 남겨놓은 첫 경험의 아픈 흔적이었다.동시에 몸의 중심을 관통하는, 어젯밤 가득 했던 두 사람의 뜨거웠던 열기가 생
새벽 6시.비좁은 방 안의 공기는,어젯밤 이성을 마비시켰던,그 지독하고도 외설적이었던 열기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고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에구치는 거칠게 몰아쉬던 가쁜 숨을 간신히 정돈하며,밤새 자신의 품에 하얀 이마를 기댄 채,깊은 단잠에 빠져 있던 유진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밀어냈다.스륵-.자신의 품 안에서 그녀의 가녀린 체구가,아주 잠시 떨어져 나가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도……마치 살갗이 생으로 뜯겨 나가고, 심장이 도려내지는 것처럼,지독하고 처절한 상실감이 에구치의 전신을 강타했다.바로 그때,두꺼운 암막 커튼의 좁은 틈새를 뚫고,잔인하게 비집고 들어온 이른 아침의 햇살 한 줄기가,차갑게 식어가던 방 안의 정적을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로질렀다.그 투명한 한 줄기 햇빛 아래,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유진의 새하얗고 가녀린 나신이,지독하도록 선명하게 드러났다.에구치는 굳어버린 자세로, 침대 머리맡에 우뚝 선 채,자신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녀를 그저 멍하니 내려다보았다.어젯밤 이성의 브레이크 없이,폭주했던 자신의 짐승 같은 욕정의 흔적들이,유진의 가녀린 몸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상흔으로 남겨져 있었다.순결했던 그녀의 새하얀 쇄골 줄기와 가느다란 목덜미 위로,붉게 울혈된 짙고 처절한 낙인들.그리고 자신의 거친 손길과 몸짓에,새하얀 대퇴부 살결 위로 거뭇하고 희미하게 멍이 들어버린 지독한 얼룩까지.너무나 아름답고 청초한 그녀의 육체 위에,자신이 남겨놓은, 잔인하고 난잡한 흔적들을 목도하는 순간,에구치는 목이 졸린 듯 숨이 턱 막혀왔다.쿵! 쿵!.이내 그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미친 듯이 조여들며,지독한 통증을 뱉어내기 시작했다.세상에 태어나 느껴본 적 없던,영혼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우는 강력한 심장의 통증에,덜컥 두려움이 엄습했다.이 감정은 치명적인 독(毒)이었다.자신 같은 밑바닥 인생 주제에 감히 품어서는,마음 한구석에조차 들여놓아서는 안 될 잔인한 감정이었
‘생일 축하해’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시야를 가득 채운 화려한 선물 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유진은 작은 산처럼 쌓여 있는 상자들 맨 꼭대기에 놓여 있는 작은 카드를 집어 들었다.감정이라곤 한 톨도 섞이지 않은 무미건조한 한 줄의 축하 인사.꼬박 5개월 만에 날아온 그 남자의 메시지였다.직접 찾아오는 정성과 수고를 들이기보다는,이렇게 압도적인 돈으로 상황을 해결하는 게 훨씬 편하고 익숙한 남자.물론 그와는 태생부터 장거리 만남이었으니,그가 평소처럼 일본 본사에 머물고 있었다면 백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
여전히 비몽사몽한 눈으로 시간을 확인했다.화면에 찍힌 숫자는 오전 7시.아침 잠이 유독 많아 유모가 흔들어 깨워도 겨우 일어나던 유진이 알람도 없이 7시에 혼자 눈을 떴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잠시 따뜻한 침대 속에서 뒤척이던 유진은 한숨을 푹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오전 8시 정각.유모가 조심스럽게 유진의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하지만 이미 단정한 외출복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서 있는 유진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들갑을 떨었다.“혹시 어제 못 잤어요? 대학입학 첫 날이라고 긴장했나?
“왜 벌써부터… 저 건물 공사를 하겠다는 거야? 아직 겨울도 안 끝났는데… 날씨 좀 풀리고 해도 되잖아”“회장님께서 아가씨 결혼을 서두르려고 그러시는 거죠.”유모의 덤덤한 대답에 유진은 짜증이 난 듯 팩 하고 고개를 돌렸다.“굳이… 뭘 그렇게까지.”“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맘 놓고 있을 때에요?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제일 예쁘다는 아이돌 여자애… 그 이름이 뭐더라… 암튼 그 계집애가 그렇게 류 회장님께 꼬리친다고 소문이 파다 하던데… 거기다 류 회장님 마지막으로 아가씨 만나러 제주도 오셨던 게 벌써 5개월이나 됐으니… 걱정
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칼날처럼 살갗을 에이는 초 봄의 이른 아침.작업 반장과 리모델링 공사 현장을 둘러보던 에구치는 1층 창문 치수를 무심히 확인하고 있었다.“안녕하세요?”그 순간 등 뒤에서 툭 들려온 맑은 목소리.고요한 공사 현장에서 들린 예상치 못한 여자 목소리에,에구치는 크게 놀라 창틀에서 발을 헛디디며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그리고 엉덩방아를 찧은 그의 위로 매캐한 공사 먼지가 훅 피어올랐다.“어… 괜찮으세요?”에구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무덤덤하게 벌떡 일어나 목장갑을 낀 손으로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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