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Oleh:  탄산요정Baru saja diperbarui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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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보미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살리기 위해선 아빠 하남우의 조혈모세포가 필요했다. 혈연 반일치 이식이라도 당장 진행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고은희는 수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건, 싸늘하게 식은 한마디뿐이었다. [바빠.] 그 한마디를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보미가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워하던 아빠는 그 시각, 첫사랑 여자가 낳은 딸을 위해 유리 궁전처럼 반짝이는 파티장을 꾸미고 있었다. 강변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쇼까지 준비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생일을 선물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미의 작은 손이 차갑게 식어 갈 때까지, 하남우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고은희가 장례식장을 나와 유골함을 품에 안았을 때, 번화가의 모든 전광판에서는 생일 축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딸의 목숨을 외면한 남자. 그 남자의 첫사랑. 그리고 딸의 죽음 위에서 마음껏 환하게 웃는 아이. 세 사람은 행복하게 생일 노래를 부르며, 눈부신 내일을 꿈꾸고 있었다. 한때 고은희는 하남우를 목숨처럼 사랑했다. 이제는 그 사랑보다 더 깊이... 그를 증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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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제1화

“입관 시간이 됐습니다. 아이 아버님과는 아직도 연락이 안 되나요?”

낮게 깔린 장송곡 사이로, 검은 정장을 입은 장례지도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고은희는 멍하니 부어오른 눈을 들어 입관실 안에 누워 있는 딸을 바라보았다.

하얀 천 위에 놓인 작은 몸은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조용했다.

온기는 온데간데 없이 차갑고, 또 하얬다.

몇 번이고 눌렀던 통화 버튼은 여전히 같은 안내 멘트만 들려주고 있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은희는 힘없이 앞으로 가서 아이의 작은 얼굴을 손끝으로 쓸었다.

“보미야, 우리 이제 그만 기다리자.”

수많은 마지막을 지켜본 장례지도사마저 목이 메는 듯했다.

“그래도 마지막 얼굴도 못 보시면, 아버님께서도 평생 한으로 남으실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는 게...”

“평생 한으로 남는다고요?”

은희가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찢어진 상처 밖으로 숨이 새어 나오는 소리에 가까웠다.

“우리 딸이 수술대 위에서 아빠의 조혈모세포를 기다리다가 죽었어요.”

은희의 목소리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시간에 첫사랑의 딸을 위해 유리 궁전 같은 파티장을 꾸미고 있었죠. 강변 밤하늘에 불꽃놀이를 쏘아 올리면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고요.”

장례지도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희는 다시 보미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눈물이 흘러내려, 이미 차갑게 식은 아이의 볼 위로 떨어졌다.

은희는 놀라 손등으로 황급히 닦아 냈다.

보미는 이 생에서 너무 많이 아팠다.

마지막 길까지 엄마의 눈물에 젖은 채 보낼 수는 없었다.

은희는 아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어루만진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입관 진행해 주세요.”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더는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

은희는 딸을 위해 가장 예쁜 눈꽃 공주 유골함을 골랐다.

직접 작은 꽃무늬까지 정성스레 그려 넣었다.

보미는 어둠을 무서워했다.

장례식장에서 건네준 검은 보자기를 덮는 대신, 은희는 제 외투를 벗어 유골함을 감쌌다.

초겨울 바람이 칼날처럼 살을 에고 지나갔다.

그러나 은희는 추위조차 느끼지 못했다.

택시를 불러 뒷좌석에 올라탄 그녀는... 낮게 목적지를 말했다.

차는 한적한 외곽 도로를 지나 이내 소란스러운 도심으로 들어섰다.

눈앞에는 번쩍이는 번화가가 펼쳐졌지만, 은희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처참하게만 보였다.

부모님도 떠났고, 딸도 떠났다.

이제 이 세상에 붙잡을 것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

바로 그때.

펑!

하늘에서 불꽃이 터졌다.

강렬한 빛이 눈을 찔렀다.

은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거리 양옆에 늘어선 대형 전광판들이 일제히 같은 영상을 내보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생일 축하 영상이었다.

화면 속에는 수정 성처럼 꾸며진 궁전이 있었다.

마치 동화 속 무도회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공간이었다.

하얀 공주 드레스를 입은 소맑음은 값비싼 다이아 왕관을 쓴 채, 호박마차를 타고 레드카펫 위로 등장했다.

하진그룹 대표 하남우는 세상에 하나뿐인 보물을 대하듯 눈에 애정을 가득 담고, 기꺼이 마부가 되어 허리를 숙였다.

그는 맑음의 손을 잡아 마차에서 내리게 한 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던 소영은에게 데려갔다.

열 단짜리 맞춤 케이크 앞에서 세 사람은 함께 촛불을 밝혔다.

소원을 빈 뒤, 맑음은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의 볼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화면 밖으로 흘러넘칠 만큼 달콤하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펑!

펑!

다시 불꽃이 연달아 터져 올랐다.

찬란한 빛이 밤하늘 한가운데를 눈부시게 물들였다.

택시기사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사람 팔자 참 다르네요. 저런 집 딸로 태어나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은희의 눈시울이 붉게 번졌다. 품속의 유골함을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장이 잘려 나가는 것 같았다.

“기사님, 큰길 말고 안쪽 길로 가 주세요.”

은희의 목소리는 다 갈라져 있었다. 애원에 가까웠다.

기사는 그제야 손님을 태운 곳이 화장장 앞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시끄럽게 축하하는 분위기는 지금 그녀에게 너무 잔인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했습니다.”

기사는 곧장 방향을 틀었다. 큰길을 피해 이면도로로 들어갔다.

길은 울퉁불퉁했지만 더는 전광판이 보이지 않았다.

...

한 시간 뒤, 택시는 스카이힐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 멈췄다.

은희는 감사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유골함을 품에 안은 채 새하얀 가로등 아래에 서서, 6년 동안 살았던 집을 바라보았다.

3층 피아노실에서는 아직도 딸이 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보미는 언제나 열심이었다. 몸이 아파서 조금만 연습해도 온몸에 식은땀이 났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 내가 국제 콩쿠르에서 대상 받으면 아빠가 보미를 좋아해 줄까?”

은희는 코끝이 찡해졌다. 무겁게 굳은 다리를 끌고 피아노실로 올라갔다.

유골함을 피아노 옆 의자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손끝이 건반을 눌렀다.

맑은 소리가 방 안을 채웠고, 그 소리는 고통스러운 기억과 피투성이가 된 지금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뒤로 은희는 한 번도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그건 은희의 오래된 상처였다.

하지만 오늘 보미에게만은 들려주고 싶었다.

보미가 대회에서 연주하려던 곡을 은희는 몇 번이고 반복했다.

손가락이 굳어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밤새 앉아 있다가, 다음 날 아침 은희는 유령처럼 창백한 몰골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

아침 햇살은 지나치게 밝았다.

현관 쪽에서 키 크고 단정한 남자가 빛을 등지고 들어왔다.

검은 코트에는 바깥의 찬 공기가 묻어 있었다.

하남우였다.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은희를 보지도 않은 채 코트를 벗어 걸었다. 목소리는 차갑고 건조했다.

“보미 아직 안 일어났어?”

은희는 비웃듯 웃었다.

딸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사흘이 지났다.

다른 여자 곁에서 실컷 웃고 떠들고 나니, 자신을 기다리던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쓰레기!!’

남우는 아내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듯 시선을 들었다.

은희의 얼굴을 본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곧 짙은 눈썹을 찌푸렸다.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이지?’

‘착한 척이 안 통하니, 이제 불쌍한 척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전 회의 미루고 온 거야. 보미 깨워. 피아노 레슨 데려다줄 테니까.”

‘피아노 레슨’이라는 말에 은희의 몸이 휘청였다.

보미는 일주일에 세 번, 오전 9시에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평일에는 아빠에게 말도 꺼내지 못했다. 토요일만 골라 조심스럽게 한 번 묻곤 했고, 돌아오는 대답은 늘 거절이었다.

보미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레슨은 주 세 번에서 한 번으로 줄었다.

이식 일정 전 마지막 레슨 날, 남우는 처음으로 보미를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보미는 밤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가장 예쁜 하얀 원피스를 꺼내 입고, 남우가 보낸 수행 차량에 올라탔다.

은희는 아이가 행복한 오전을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9시 반, 피아노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희가 달려갔을 때, 보미는 이미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때야 알았다.

남우는 약속을 어겼고, 비서는 보미를 레슨실이 있는 건물 앞에 내려만 준 뒤 올라가 보지도 않고 떠났다는 것을.

남우는 평생 모를 것이다.

보미가 그토록 끈질기게 졸랐던 이유가, 다른 아이들에게 아빠가 없다고 놀림받아서였다는 걸.

보미는 그저 아빠가 한 번만 나타나 주길 바랐다.

단 한 번이어도 좋았다.

하지만 남우는 피아노 레슨에도 오지 않았다.

병원 무균실에서 아빠가 자신을 살려주길 기다릴 때도, 끝내 오지 않았다.

그 어린아이가 마지막 숨을 삼킬 때 얼마나 서러웠을까?

은희는 핏발 선 눈으로 남우를 노려보았다. 목소리에는 짙은 증오가 배어 있었다.

“필요 없어. 이제 영원히 필요 없어.”

“무슨 뜻이야?”

남우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랐다.

‘나도 그날 일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고!’

‘이 여자... 또 그 일로 또 유세라도 부리려고?’

“시간 낭비할 생각 없어. 내려오라고 해.”

은희는 더 버티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죽었어! 보미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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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입관 시간이 됐습니다. 아이 아버님과는 아직도 연락이 안 되나요?”낮게 깔린 장송곡 사이로, 검은 정장을 입은 장례지도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고은희는 멍하니 부어오른 눈을 들어 입관실 안에 누워 있는 딸을 바라보았다.하얀 천 위에 놓인 작은 몸은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조용했다.온기는 온데간데 없이 차갑고, 또 하얬다.몇 번이고 눌렀던 통화 버튼은 여전히 같은 안내 멘트만 들려주고 있었다.[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은희는 힘없이 앞으로 가서 아이의 작은 얼굴을 손끝으로 쓸었다.“보미야, 우리 이제 그만 기다리자.”수많은 마지막을 지켜본 장례지도사마저 목이 메는 듯했다.“그래도 마지막 얼굴도 못 보시면, 아버님께서도 평생 한으로 남으실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는 게...”“평생 한으로 남는다고요?”은희가 웃었다.웃음이라기보다, 찢어진 상처 밖으로 숨이 새어 나오는 소리에 가까웠다.“우리 딸이 수술대 위에서 아빠의 조혈모세포를 기다리다가 죽었어요.”은희의 목소리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그런데 그 사람은 그 시간에 첫사랑의 딸을 위해 유리 궁전 같은 파티장을 꾸미고 있었죠. 강변 밤하늘에 불꽃놀이를 쏘아 올리면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고요.”장례지도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은희는 다시 보미에게로 시선을 내렸다.눈물이 흘러내려, 이미 차갑게 식은 아이의 볼 위로 떨어졌다.은희는 놀라 손등으로 황급히 닦아 냈다.보미는 이 생에서 너무 많이 아팠다.마지막 길까지 엄마의 눈물에 젖은 채 보낼 수는 없었다.은희는 아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어루만진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입관 진행해 주세요.”그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더는 기다리지 않겠습니다.”...은희는 딸을 위해 가장 예쁜 눈꽃 공주 유골함을 골랐다.직접 작은 꽃무늬까지 정성스레 그려 넣었다.보미는 어둠을 무서워했다.장례식장에서 건네준 검은 보자기를 덮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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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고은희!”남우가 처음으로 노기를 감추지 못했다.‘이 여자 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 친딸을 두고 이렇게 심한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네 딸이야. 네가 미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아이에 대해서 그런 말을 해?!”남우는 은희와 더 말싸움하고 싶지 않았다. 딸에게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남우는 그녀를 스쳐 지나 계단으로 향했다. 막 옆을 지나가려던 때,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전화를 받자 남우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영은아, 무슨 일이야?”전화기 너머에서 여자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함과 조심스러움이 섞여 있었다.[집에 갔어? 미안해. 맑음이 일어나서 아빠 안 보인다고 계속 울어서...][아빠, 아빠가 해 준 계란찜 먹고 싶어. 약속했잖아.]아이의 말랑한 투정이 죽은 듯 고요한 거실을 가로질렀다.행복하고 달콤한 그 목소리가 은희의 심장을 베었다.“맑음아, 아빠는 오늘 보미 언니랑 있기로 했잖아. 엄마가 국수 끓여 줄까?”소영은이 부드럽게 달랬다.맑음은 더 조르지 않고 작게 ‘응’하고 대답했다.그 짧은 대답 속에도 실망이 가득했다.남우는 굳은 얼굴로 서 있는 은희를 차갑게 한 번 바라보았다.그러나 전화기 속 목소리를 대하는 그의 음성은 솜털처럼 부드러웠다.“맑음이 먹고 싶은 거 먹어. 아빠 곧 갈게.”전화를 끊은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으로 향했다.잠시 뒤, 지하주차장 쪽에서 자동차 시동 소리가 들렸다. 외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만큼 급한 걸음이었다.맑음에게 계란찜을 해 주러 가기 위해서.은희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딸 보미는 단 한 자락도 받아 보지 못했다.소영은이 딸 소맑음을 데리고 귀국한 뒤, 남우는 보미와 말 한마디 제대로 섞지 않았다.보미도 분명 남우의 친딸인데...은희는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갔다.자신은 아직 쓰러질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꿀물을 한 잔 타 마셨을 때, 가사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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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은희는 앞으로 달려들어 영은의 목을 힘껏 움켜쥐었다.다음 순간, 남우가 은희의 손목을 붙잡아 거칠게 뿌리쳤다.은희는 비틀거리다 벽에 세게 부딪혔고,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남우가 멈칫하며 다가가려던 찰나, 영은이 남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손으로 목을 감싼 채 몸을 떨었다.“정말 죽을 뻔했어...”맑음도 겁에 질린 얼굴로 남우의 목을 붙잡고 숨넘어가듯 울었다.남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낮게 말했다.“고은희, 죽은 척하지 마!”통증과 어지럼 때문에 은희는 몇 번이나 휘청인 뒤에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피가 하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속눈썹 끝에 맺혔다.은희는 눈을 제대로 뜨려 애쓰며, 한 팔로 영은을 안고 다른 팔로 맑음을 안은 남자를 바라보았다.4년의 짝사랑.6년의 결혼.딸 보미는 죽었고, 은희는 만신창이가 되었다.그게 은희가 모든 걸 바쳐 사랑한 남자의 대답이었다.가슴 밑바닥에서 서러움이 치밀어 올랐다.은희는 분노와 비참함을 안고 한 걸음씩 다가갔다.남우의 앞에 선 그녀는 손을 들어 힘껏 내리쳤다.짝!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남자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붉은 손자국이 빠르게 부어올랐다.은희는 온 힘을 다해 말했다.“하남우, 나 너랑 이혼할 거야.”은희의 처참한 모습에 주변의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말을 끝낸 그녀는 비틀거리며 돌아섰다.가느다란 등, 구겨진 옷, 헝클어진 머리, 힘이 빠져 떨리는 손.비록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 했다.뒤에서 지독히 차가운 비웃음이 들렸다.은희는 알고 있었다.자기가 정말로 이혼할 거라고 마음먹엇다는 사실을 남우는 믿지 않을 것이다.남우의 눈에 은희는 자기에게 약을 먹이고 침대에 기어올라 결혼을 얻어 낸 여자였다.그런 여자가 손에 들어온 재벌가 안주인 자리를 놓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남우는 늘 그렇게 믿었다.은희는 6년 내내 설명했다.그날 밤, 약을 탄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고.그러나 남우는 믿지 않았다.남우는 은희에게 맞은 볼 안쪽을 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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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은희는 차갑게 말했다.“앞으로도 넌 못 봐. 네 물건 챙겨서 당장 나가.”남우는 잠시 굳었다가, 차가운 입술 끝을 비틀어 웃었다.“빈손으로 나가겠다면서 보미는 데려갔다? 아이 핑계로 돈 뜯어낼 생각이야? 아이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아?”딸의 유골함은 위층에 있었다.은희는 보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빠가 이토록 잔인한 말을 하는 걸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테이블 위 선물 상자를 집어 들어 밖으로 던졌다.“나가라고 했어. 못 알아들어?”남우의 얼굴이 굳었다.가벼운 튤 드레스는 비가 갠 마당에 떨어져 흙탕물이 묻었다.그가 직접 맞췄다는 왕관도 깨져, 큐빅 조각이 낡은 바닥 틈으로 흩어졌다.그가 눌러 두었던 감정이 터질 듯했다.그때 전화벨이 울렸다.그는 화면을 한 번 보고 통화를 연결했다. 일부러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하 대표님, 주문하신 피아노가 도착했습니다. 기존 주소로 바로 배송 진행하면 될까요?]남우는 은희를 차갑게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청월힐스 108동으로 변경하세요. 받는 사람은 소맑음으로 하고.”그는 전화를 끊었다.남우는 은희에게 똑똑히 보여 주고 싶었다.자신이 세워줄 수 있는 체면도, 거둬들이는 것도 모두 그의 마음이라는 걸.그리고 보미의 존재를 인정해 줄지 말지, 보미가 자신에게 어떤 위치인지 결정하는 사람도 결국 자신이라는 걸.‘그래, 어디 한번 끝까지 해 봐.’빈손으로 나가겠다며 아이까지 들먹이는 은희가, 그 끝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보자는 마음이었다.은희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창백한 얼굴은 귀신 같았고, 이마에 말라붙은 핏자국은 더 처참해 보였다.그녀는 조용히 손을 들어 문밖을 가리켰다.“이제 나가 줄래?”남우의 가슴이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했다.여러 감정이 뒤엉켰지만, 그는 굳이 이유를 따지고 싶지 않았다.차가운 턱선이 팽팽하게 굳었다. 억눌린 분노가 목소리에 얼음처럼 배어 있었다.“고은희, 앞으로 네 딸한테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해. 난 다시는 그 애 보고 싶지 않아.”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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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남우는 더 참지 않았다.그는 몸을 돌려 은희를 아래에 가두고, 턱을 붙잡아 거칠게 입술을 덮쳤다.큰 손이 허리선을 타고 올라갔고, 남자의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다.낯선 감각이 은희를 악몽에서 끌어냈다.그녀는 눈을 뜨고 흔들리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제 뜻과 상관없이 몸이 눌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흐릿하던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두 사람의 자세를 알아챈 은희는 분노로 입을 벌려 남우의 목을 세게 물었다.남자는 낮게 신음했지만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허리를 더 단단히 붙잡았다.쉰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장난처럼, 조롱처럼.“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못 버텨?”예전에도 침대에서 버거워질 때면 은희는 그를 물곤 했다.그러나 지금 그 말을 듣는 그녀에게 남은 건 수치심뿐이었다.은희는 손발을 다해 그를 밀어냈다.“꺼져. 건드리지 마.”두 사람의 옷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다.맞닿은 몸이 거칠게 스치자, 남우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그는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은희를 억눌렀다.“죽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눈이 마주쳤다.은희는 남자의 눈에 일렁이는 욕망을 보고, 비웃음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6년 전 그 밤, 남우는 은희를 자기 여자로 만들었다.그 뒤 수년 동안, 생리 기간과 출산 전후를 제외하면 그는 거의 매일 밤 은희를 찾았다.남우는 은희를 혐오하면서도, 그녀의 몸은 원했다.은희도 한때는 남우가 화가 났을 뿐, 자신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믿었다.하지만 영은이 다시 나타난 뒤, 남우는 더 이상 은희에게 손대지 않았다.은희가 샤워를 마치고 찾아간 날에도, 남우는 그녀를 문전박대했다.“고은희, 더러운 주제에.”남우는 욕망에 휘둘리는 남자가 아니었다. 다만 그쪽으로 강한 욕구를 가진 사람이었다.그가 은희를 더럽다고 느꼈다면, 다시 영은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이제 은희는 더 이상 견딜 이유가 없었다.딸 보미마저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자신이 왜 이 이기적인 남자의 모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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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은희는 영은의 말에 속이 뒤집혔다. 구역질이 날 만큼 역겨웠다.이내 지독히 비웃는 미소를 지었다.“소영은 씨, 나 그 사람 보러 온 거 아니에요. 소영은 씨의 눈엔 보물인지 몰라도, 제 눈엔 이제 서 푼어치 가치도 없으니까요.”영은은 남우의 속옷을 손에 든 채, 옆집 쪽으로 걸어가는 은희를 바라보았다.이를 악문 탓에 손에 든 속옷이 구겨졌다.남우가 자기 것이라고 과시하려던 행동이 우스운 꼴이 되어 버렸다.분을 삭이지 못한 영은은 몰래 은희의 뒤를 따라갔다.은희가 들어간 곳은 남우의 친구, 효찬의 집이었다.그 장면을 본 순간 영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그녀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은희가 안으로 들어가는 사진을 찍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남우가 맑음을 안고 돌아왔다.이미 준비를 마친 영은은 멍하니 딴생각에 빠진 척 서 있었고, 손에는 여전히 남우의 속옷을 쥐고 있었다.남우는 한눈에 그것을 보았다. 불쾌감이 눈썹 사이에 드러났다.“내 속옷이 왜 네 손에 있어?”영은은 눈을 내리깔았다.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조금 섞여 있었다.“전에 여기서 술 마시고 두고 갔잖아. 내가 챙겨 두고 있었어.”사실 그것은 남우가 술에 취했을 때, 영은이 몰래 숨겨 둔 것이었다.말을 끝낸 영은은 계속 옆집 단독주택 쪽을 흘끔거렸다. 할 말이 있는데도 애써 참는 사람처럼 굴었다.남우는 이상한 기색을 알아챘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곳은 효찬의 집이었다.효찬은 남우의 친구이자 병원장이었고, 하씨 일가의 건강을 오래 관리해 온 전담 의사이기도 했다.진씨 집안은 대대로 하씨 일가의 건강을 돌봐 왔다.효찬이 남우의 집 바로 옆에 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몸이 안 좋아? 왜 자꾸 효찬이네 집을 봐?”영은은 더 불안해 보이도록 손끝으로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이걸 말하면 은희 씨 이미지가 안 좋아질 것 같아서...”‘고은희? 이 일이 또 그 여자와 무슨 상관이지?’남우의 눈썹이 올라갔다.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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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위약금을 감당할 수 없다고?’남우는 은희를 너무 우습게 봤다.은희는 망설이지 않았다. 두 손으로 악보 원고를 움켜쥐고 강하게 잡아당겼다.두 사람이 붙잡은 악보는 그 자리에서 찢어졌다.곧 은희는 몸을 낮춰 남은 악보까지 잘게 찢었다. 하얀 조각들을 남우의 머리 위로 흩뿌렸다.“자, 가져가. 네가 원하던 악보야.”그녀는 한 글자씩 뱉었다.목소리가 떨렸다. 분노로 폐까지 아팠고, 눈앞이 어지러웠지만 버텼다.남우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우습게도 지난 6년 동안, 은희는 모든 약함을 이 남자에게 내보였다.하지만 남우는 단 한 번도 다정한 곁을 내준 적이 없었다.남우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완전히 격분했다.그는 앞으로 다가와 은희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미쳤어?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은희는 몇 걸음 물러섰다. 몸이 휘청였다.“안 미쳤어. 아주 또렷해. 이 곡은 절대 맑음이에게 안 줘.”‘보미야, 엄마가 너를 위해 쓴 곡을 다른 아이한테 주지 않을 거야.’‘절대로.’어지럼은 더 심해졌다. 속이 뒤집히듯 울렁거렸다.그녀는 벽에 기대섰다. 눈에는 여전히 남우를 향한 적의가 가득했다.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남우는 눈앞의 은희가 점점 어릴 때의 제멋대로인 모습과 닮아 간다고 느꼈다.지난 6년간 조용히 남우의 말대로 따르며 살았던 모습은 진짜 은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잠시 멈칫한 뒤에도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그래. 이제야 성질 좀 나오네?”은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입술이 떨렸다.“5천만 원은 낼 수 있어. 처음 의뢰받을 때 정한 위약금이니까.”남우는 그 말을 듣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었다.“5천만 원? 작곡가님이 계약서를 제대로 안 읽었나 봐.”그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이미 납기일을 사흘이나 넘겼어. 지연 위약벌 조항까지 붙으면 열 배야. 5억.”‘5억?’은희의 머릿속이 하얘졌다.그래도 억지로 웃었다.그런 돈은 은희에게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굴복하면 보미에게 죄를 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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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전화기 너머에서 영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맑음이 아빠 보고 싶대요. 계속 아빠 보고 싶다고 울어요. 와서 같이 좀 있어 줄 수 있어요?]말이 끝나자, 곧이어 어린아이의 말랑한 목소리도 흘러나왔다.[아빠, 맑음이 아빠 보고 싶어.]남우의 눈빛이 곧장 부드러워졌다. 입꼬리도 저절로 올라갔다.“그래, 우리 공주님. 아빠 금방 갈게. 얌전히 기다려. 정말 금방 갈게.”전화를 끊은 뒤, 그는 은희를 돌아보았다. 눈에 담겼던 부드러움은 빠르게 사라졌고, 명령조만 남았다.“죽 먹어. 안 먹으면 여기서 못 나가.”‘정말 얼굴을 바꿔 끼우는 재주라도 있는 건가?’남우의 놀라운 태세 전환 속도에 은희는 심장이 식는 것 같았다.같은 딸이었다. 맑음은 그저 보고 싶다고 했을 뿐인데, 남우는 ‘우리 공주님’이라 부르며 당장 달려가려 했다.하지만 보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빠를 보고 싶어 했다.그 작은 소원조차 이뤄지지 않았다.죽을 때까지 아빠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그 생각을 하자 은희의 가슴 한가운데가 또 찢어졌다. 숨이 막힐 만큼 아팠다.남우의 편애는 은희의 심장에 박힌 가시였다. 시도 때도 없이 깊숙이 파고들었다.“하남우, 빨리 꺼져. 내 앞에서 위선 떨지 마. 걱정하지 마. 난 안 죽어.”은희는 눈물을 참으며 차갑게 말했다.남우는 짜증스럽게 미간을 좁혔다. 혀끝으로 뺨 안쪽을 밀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외투를 집어 들고 문으로 걸어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은희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끝내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4년의 짝사랑과 6년의 결혼.그녀가 10년 동안 사랑한 남자였다.어찌 쉽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하지만 은희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남우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혼자 꾸미고 혼자 연기했던 사랑의 무대는 이제 막을 내려야 했다.반드시 자기 힘으로 용한그룹 파산의 진실을 밝히고, 남우와 이혼할 것이다.효찬이 옆에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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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그 시각, 남우는 서둘러 영은의 집으로 향했다.맑음을 보자마자 그는 아이를 꼭 안고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맑음이 아빠 보고 싶었어? 우리 맑음이 착하게 있었나 볼까?”맑음은 남우에게 안겨 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도 아빠 보고 싶었어. 아빠가 엄마 손도 잡아 줘.”아이는 통통한 손을 영은 쪽으로 흔들며 두 사람이 손을 잡게 하려 했다.영은은 옆에서 볼을 살짝 붉히고 수줍게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그러나 남우는 보지 못한 사람처럼 맑음을 안고 가볍게 한 바퀴 돌았다.“우리 맑음이 또 장난친다. 아빠랑 비행기 탈까?”“좋아!”맑음은 신나게 손뼉을 쳤다.남우는 아이를 어깨에 얹어 목말을 태우고 거실 안을 돌았다.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영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지난번도 그가 자신의 접촉을 피한 건 우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번에는 분명했다.맑음이 ‘아빠랑 엄마’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남우는 아마 가차 없이 선을 그었을지도 모른다....공항.남우의 할머니인 민영순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화면에 ‘할머니’라는 이름이 뜨자, 은희의 눈에 복잡한 빛이 스쳤다.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받았다.“은희야, 할미 돌아왔다. 내리자마자 너한테 전화하는 거야. 너무 보고 싶었다. 너랑 남우는 요즘 어때?”민영순의 목소리를 듣자 은희의 눈가가 또 붉어졌다.은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를 냈다.[할머니, 저도 보고 싶었어요. 저랑 남우 씨는... 좋지 않아요. 저 그 사람과 이혼하려고요.]그 말을 들은 민영순은 얼어붙었다. 따뜻하던 목소리가 곧 높아졌다.“이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놈이 또 널 괴롭혔니? 할미가 당장 혼내 줄게.”은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홍빛 입술에 하얀 자국이 남았다.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용기를 내 말했다.[저와 남우 씨 사이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어요. 제가 더는 버틸 수가 없어요. 게다가...]또 말이 멈췄다.보미를 떠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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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안 돼. 이 일은 할미가 반드시 간섭할 거야. 너희 둘이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 기다려. 내가 지금 당장 그 녀석 불러서 너한테 사과하게 할 테니까.”민영순은 은희와 전화를 끊자마자 남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벨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가 연결됐다....영은의 집.민영순은 비행 내내 쌓인 화를 한꺼번에 쏟아냈다.[하남우, 이 못난 놈아! 밖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또 은희를 괴롭혔어?][그 애가 너랑 이혼하겠다고 한다. 네가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니?]남우는 맑음과 놀아 주고 있었다.민영순의 목소리는 핸드폰을 멀리 떼어 놓아도 들릴 만큼 컸다.품 안의 맑음은 갑작스러운 고함에 몸을 움찔했다. 물기 어린 눈에는 겁이 가득했다.남우는 아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몇 마디 달랜 뒤, 소파에 앉혔다.그는 핸드폰을 들고 구석으로 걸어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할머니, 일단 진정하세요. 할머니가 생각하시는 그런 일 아닙니다.”[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고? 네가 은희를 어떤 꼴로 만들었는지나 봐라. 보미는 해외로 치료받으러 갔다는데, 너는 네 딸 일에 관심이나 있니?][그런데 넌 다른 여자와 그 여자 딸한테 붙어 있어? 양심을 어디에 팔아먹었어!]민영순은 점점 더 격앙됐다.애초부터 민영순은 소영은을 좋게 보지 않았다.은희와 남우의 결혼을 흔든 사람이 소영은이라고 여겼다.남우는 불쾌했지만 꾹 참고 설명했다.“할머니, 보미가 해외에 간 건 저도 방금 알았습니다. 영은이와 저는 아무 사이 아닙니다. 맑음이 곁에 잠시 있어 주는 것뿐입니다.”‘아무 사이 아니라고?’영은은 그 말을 예민하게 들었다. 눈에는 질투를 감추지 못했고, 얼굴도 보기 흉할 만큼 굳어졌다.그녀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손에 들고 있던 접시가 감정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졌다.쨍그랑!깨진 도자기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거실에 선명한 소리가 울렸다.[변명하지 마! 지금 당장 은희한테 가. 제대로 사과하고 일을 해결해. 네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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