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하지만 서두르면 아마 임지민이 바로 알아채고 빠져나갈 수 있어. 그러니 좀 더 기다려, 임지민이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들 완벽한 기회를.”분개한 윤슬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아무리 억울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강시원이 언젠가 반드시 임지민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아니나 다를까 서정 그룹의 로봇이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게다가 눈에 띄는 외형 덕분에 많은 대기업들의 관심을 받았고 앞다투어 임지민에게 조언을 구했으며 서정 그룹과 협력하여 로봇을 제작하기로 결정한 사람들도 있었다.모든 이의 주목을 받은 임지민은 자만심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서정혁은 그 틈을 타 회장을 빠져나와, 강시원을 찾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녔다.그러다가 마침내 복도 끝에서 정수기 앞에 서서 종이컵으로 물을 마시고 있는 강시원을 발견했다.강시원은 하얀 목을 뒤로 젖히며 차가운 물을 꿀꺽꿀꺽 한 컵 다 마셔버렸다. 맑은 물방울이 입가에 맺히며 아름다운 턱선을 따라 흘러내리자 시원시원하면서도 꽤 매혹적이었다.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 서정혁은 정교한 사파이어 커프스 아래의 두 손이 무의식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최근 들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도는 그 모습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갔다.한 컵을 마셨지만 강시원은 가슴이 여전히 답답했다. 다시 한 컵 가득 물을 받아 들려고 할 때 갑자기 남자의 손바닥이 그녀의 시야에 나타나며 컵 입구를 덮었다.깜짝 놀라 고개를 든 강시원은 봉황 같은 서정혁의 눈과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컵을 쥔 손을 놓아버렸다.큰 손으로 종이컵을 잡은 서정혁은 이내 종이컵을 구겨버렸다. 그러면서 컵에 가득했던 물도 밖으로 쏟아져 나와 그의 고급스러운 검은 구두 위로 튀었다.“뭐 하는 거야?”강시원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서정혁과 거리를 두었다.눈빛에는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경계심이 담겨 있었다.온몸에 물이 튄 서정혁은 평소 같았으면 벌써 불쾌해했을 텐데 오늘 따라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아주 태연했다.“너 위장이
강시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알아. 하지만 오늘 밤에 어쨌든 단둘이 얘기를 나눠야 해. 어떤 목적으로 내게 접근하든, 배강 그룹의 대표이사니까, 소홀히 대할 수 없어. 게다가 나도 배강 그룹과 협력할 수 있길 바라고. 배강 그룹이 영원 테크에 투자해 준다면 그게 10, 20억이라도 영원 테크의 급한 불을 끄는 데 도움이 될 거야.”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문제들이 줄줄이 닥쳐왔다.영원 테크의 대표이사 자리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남성들이 좌지우지하는 비즈니스 무대에서 늘 부정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남성들의 그런 시선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엄마도 영원 테크를 창업하셨을 때 이런 고민이 있으셨을까? 정말 힘드셨을 텐데...’그래서 강시원은 어떻게 해서든 영원 테크가 강용호의 손에 망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대표님, 정말 너무 힘들 것 같아요...”바로 그때, 윤슬의 시선이 멈췄다.“대표님, 저기 보세요. 저 금색 로봇!”고개를 든 강시원은 무심코 윤슬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서정 그룹의 흑금색 로봇을 본 순간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지며 온몸이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윤슬은 곧바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대표님, 이거 서정 그룹 연구 개발팀에 계실 때 로봇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면서 제출하셨던 로봇 디자인 아니에요? 그때 대표님의 디자인을 보고 정말 고급스럽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때 양서연이 대표님을 짓누르려고 대표님의 디자인을 깎아내려서 채택되지 않았잖아요.”그 로봇을 바라본 강시원은 불쾌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눈빛이 한껏 어두워졌다.흑금색 로봇 외형 디자인 초안은 매일 밤 아들을 재운 후, 한 달 동안 밤을 새우며 간신히 디자인해 낸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이 수정하고 버전을 업그레이드한 끝에 마침내 이 이미지와 이 색상으로 확정했다.전 세계에서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것이었다.그런데 그 로봇이 지금, 오
“와... 서정 그룹 로봇, 너무 예쁘잖아! 나도 하나 사고 싶어!”“외관만 좋으면 뭐 해? 실제로 써봐야 알지!”“서정 그룹에서 만든 건데 나쁠 리가 없지! 재작년에 낸 전기차도 대박 났잖아. 배강 그룹, 심현 그룹도 이 분야에서는 허리도 못 펴. 그게 바로 실력 아니겠어!”오늘 심지경도 심현 그룹 자체 개발 로봇을 가져와 경기 대회에 참가했지만 모양이 좀 둔해 보이는 것이 서정 그룹에 한참 못 미쳤다.심지경은 흑금색 로봇을 살펴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지민아, 이 로봇 디자이너 누구야? 센스가 너무 앞서나가는 거 아니야?”임지민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때 서정혁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이 모델의 로봇은 칩 개발부터 외형 디자인까지 모두 지민이 전담했어.”임지민을 바라본 서정혁은 얼굴에 그녀를 칭찬하는 기색이 가득했다.자랑스러워하는 서정혁의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내가 직접 고른 사람답군,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어.’“정말? 지민아, 이렇게 번쩍이는 걸 정말 네가 디자인한 거야?!”심지경이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네.”얼굴이 살짝 붉어진 임지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옆에 있던 서정혁이 눈썹을 찌푸렸다.“번쩍이긴 뭐가, 우리 서정 그룹 제품 품격을 떨어뜨리지 마.”심지경이 웃으며 물었다.“지민아, 시간 되면 우리 심현 그룹 연구 개발팀에 와서 잠깐 지도 좀 해줄 수 있어? 며칠 동안이라도 디자인 특별 고문을 해주면 좋겠는데?”임지민은 부끄러운 듯 곁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아니나 다를까 임지민이 입을 열지 않아도 서정혁이 본인의 ‘소유욕’을 내비치며 차갑게 대꾸했다.“네 심현 그룹은 망했냐? 내보낼 만한 사람 하나 없어서 내 사람까지 뺏어 가려고?”‘내 사람...’짧은 세 글자에 임지민은 기분이 붕 떴다.임지민이 이 말에 도취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서정혁이 아주 단호하게 덧붙였다.“지민이는 서정 그룹의 사유 재산이야. 내게 매우 중요해, 빌려줄 수 없어.”하지만 심지경은 포기
배명욱은 강시원이 그동안 접촉해 온 흔한 여자들과는 달리, 겉은 부드럽지만 내면은 강한 여자이며 권세에 아부하지 않는 청렴함과 항상 담담한 태도를 지녔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챘다.그래서 경박하고 바람둥이 같은 모습을 감추고 비교적 진지한 어조로, 마치 정말 강시원과 협력하고 싶은 듯 초대했다.화려하고 요염한 장미에 익숙해져 있던 배명욱의 앞에 갑자기 이렇게 티 없이 깨끗하고 남들과 완전히 다른 백합이 나타났으니 강시원에게 깊이 매료된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강시원은 임지민처럼 억지로 점잖은 척하는 여자와도 달랐다. 임지민이 먼저 배명욱에게 접근했을 때 그는 단번에 그녀의 속내를 간파했다.배명욱은 여자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있었다.서정혁처럼 스스로 품행이 단정하다고 자처하는 위선자만이, 그리고 여자라고는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신병'만이 임지민 같은 여자를 대단하게 여기고 어디를 가든 데리고 다니며 보물처럼 여겼다. 하지만 그럴수록 본인만 더 우스워질 뿐이었다.다만 배명욱은 그런 광경을 꽤 보고 싶어 했다.만약 서정혁이 정신을 차리고 강시원의 진가를 깨닫게 되어 그와 경쟁하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귀찮은 일인 것이다.배명욱이 먼저 러브콜을 던졌지만 강시원은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그저 우연히 만난 사이였고 전혀 알지 못했으며 아는 것이라곤 윤슬이 전해준 가십거리뿐이었다.그리고 바로 그 가십거리들 때문에 강시원은 배명욱에게 경계심을 품게 됐다.하지만 상대는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배강 그룹의 대표이사로 앞으로 비즈니스 자리에서 자주 마주칠 것이기에 어느 정도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오성 과학 기술 서밋이 끝나면 주최 측에서 호텔에서 대규모 만찬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공식적인 자리를 이용해, 개인적인 업무를 논하는 것이다.합리적이고 어느 정도 분수도 있으며 상대가 만약 부정한 의도가 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배명욱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TV 화면으로 쏠렸다.동시에 고개를 든 서도훈과 배다울도 동시에 굳어졌다.다만 두 사람의 표정은 완전히 달랐다.감동과 기쁨에 젖어 있는 배다울은 강시원이 TV에 나온 것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반면 당황한 표정의 서도훈은 완전 충격에 빠졌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힘껏 눈을 비볐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하지만 확실히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쓰레기처럼 여기고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오성 과학 기술 서밋 현장에 있다니, 그것도 지민 이모와 같이 첫 줄에 앉아 클로즈업 샷을 받고 있었다. 용모, 옷차림, 기품 모두 임지민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다.심지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지민 이모보다도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강시원에게 화면이 비춰질 때 그녀 옆에는 한 줄의 소개글이 떴다.[영원 테크 회사 대표이사, 강시원.]“와! 이게 웬일이야? 배다울 엄마도 과학자셔?”“배다울 엄마는 대표이사야! 여자 대표이사라고! 완전 대단해!”배다울은 넋이 나간 채 화면 속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시원 이모를 바라봤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눈과 마음 모두 강시원뿐이었다.“대표이사라니... 말도 안 돼... 안 돼!”화면을 쳐다보던 서도훈은 눈시울이 빨개졌다.엄마와 지민 이모가 같은 자리에 나타난 것도 충격이었지만 엄마가 회사 대표이사라니?서도훈은 아빠처럼 엄청나게 똑똑하고 강한 사람만 대표이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민 이모도 아직 대표이사가 되지 못했는데 멍청하고 쓸모없는 엄마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대표이사가 된단 말인가!아이들이 배다울의 ‘엄마’에 대해 칭찬하자 임지민의 인기가 조금 전에 비해 확실히 낮아졌다.마음이 불편해진 서도훈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배다울은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서도훈은 어찌나 화가 났는지 가슴까지 들썩였다.게다가 배다울은 강시원과의 관계를 친구들에게 해명하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그 모습에 더욱
윤슬은 강시원과 배명욱이 갑자기 가까워진 모습을 보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처음 만난 남자가 여자에게 유난히 친절하다면 분명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배명욱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며 이 남자가 무슨 부적절한 행동을 하기만 하면 반드시 강시원 앞을 막아서며 보호하리라 다짐했다. 자기 대표는 자기가 지킨다는 마인드로!강시원이 그동안 충분히 힘든 인생을 살아온 만큼 그 누구에게도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오성 과학 기술 서밋에 참석한 모든 참석자들이 회의장으로 입장했다.임지민은 자연스럽게 서정혁의 옆자리, 맨 앞줄의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앉았다.주변에 모두 남자들이라 한가운데 있는 임지민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처럼, 별을 받드는 달처럼 주목받았다.매년, 임지민은 초점이 되었다.하지만 올해는 배명욱의 강력한 초대로 강시원이 배명욱의 옆자리에 앉게 되면서 임지민 혼자만 받던 관심과 주목이 반으로 줄었다.강시원 쪽으로 눈을 흘긴 임지민은 질투가 치밀어 오름과 동시에 마음속에 증오심이 불타올라 눈동자까지 붉게 물들었다.오성 과학 기술 서밋, 현장에는 언론사들이 뉴스를 생중계하고 있었다.한편, 서도훈과 배다울이 다니는 초등학교도 때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매일 오후 쉬는 시간이 되면 학교에서는 교실 TV에 뉴스를 틀어줬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시사, 과학 기술, 민생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어릴 때부터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바로 그 순간, 생중계되고 있는 것은 오성 과학 기술 서밋 뉴스였다.“와! 저기 봐! 저 예쁜 아줌마!”한 학생이 놀라며 화면을 가리켰다.“저 사람 서도훈 엄마 아니야?”장난감 비행기 모형을 만지작거리던 서도훈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뉴스에 임지민의 클로즈업 샷이 비치는 것을 보자 눈빛이 반짝이더니 얼굴에 설레는 미소가 번졌다.정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지민 이모였기 때문이었다.“맞는 것 같은데? 저번에 서도훈이랑 학교 가족 행사에도 참여했잖아, 2등이라는 좋은 성적도 거뒀고, 꽤 대단하시더라!”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