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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9화

Author: 경옥
계연수는 휘장을 걷고 나와 고준안의 손을 바라보았다. 상대편 마차에서도 기다리는 이가 있으니 사촌 오라버니의 호의를 마냥 사양하며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손 위에 조심스레 자신의 손을 얹었다.

막 마차에서 내려선 순간, 문하가 멀지 않은 곳에서 미소를 띤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문하가 이곳에 있다면... 그렇다면 저 마차 안에 있는 이는...

계연수의 시선이 자연스레 굳게 드리워진 맞은편 마차의 휘장으로 향했다.

뒤에서는 고씨 역시 고준안의 부축을 받아 내려섰다.

그때, 고준안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수야, 먼저 고모를 모시고 들어가거라. 나는 짐을 내리겠다. 저쪽 마차 안에 계시는 분은 신분이 높은 듯하다. 게다가 먼저 길을 양보해 주셨으니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니를 부축해 길가로 비켜섰다.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문하가 다가와 물었다.

“계 아가씨께서는 이곳에 머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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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817화

    손끝이 조심스레 닿자 품 안의 사람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닿은 곳이 아직도 아픈 것이 분명했다.심서준은 계연수를 품에 꼭 끌어안고 나직이 달랬다. 원래라면 다시 관아로 돌아가야 했지만, 이번만큼은 처음으로 예외를 만들었다. 책상 위에는 처리해야 할 공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나, 지금은 그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오히려 집으로 돌아온 뒤 계연수가 먼저 걱정을 내비쳤다.“아직 정오도 안 됐는데 일은 괜찮으세요? 이렇게 시간을 비워도 되는 건가요?”심서준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되물었다.“내가 곁에 있어 주는 건 싫은 것이냐?”평소 심서준이 계연수와 함께하는 시간은 턱없이 적었다. 낮에는 얼굴 보기도 어려울 정도였고, 그만큼 그는 늘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물론 계연수도 그가 곁에 있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손에 얼마나 많은 일이 쥐어져 있는지 알기에, 자신이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그녀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오후에만 조금 일찍 돌아와 주세요.”심서준은 말없이 그녀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사람을 시켜 연고를 가져오게 한 뒤, 직접 계연수에게 약을 발라 주었다.*그날 밤.서재 의자에 앉은 심서준은 계연수를 품에 안은 채 앞에 놓인 공문을 훑어보고 있었다. 한참 그의 품에 기대어 있던 계연수는 문득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헌데 부군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고씨 부저에 와 계셨던 거예요?”심서준은 시선을 공문에서 떼지 않은 채 담담히 대답했다.“네가 어디를 가든 나는 알고 있다.”잠시 말을 멈춘 그는 고개를 숙여 품 안의 계연수를 내려다보았다.“다 너를 위한 일이다. 영청 후작부 사람들은 모두 형부에 압송됐지만, 사건이 완전히 종결된 건 아니다. 태후께서 대놓고 손을 쓰지는 않으시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움직임은 경계해야 한다.”계연수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지난번 경축연에서 위씨 가문의 둘째 부인… 그러니까 최 세자의 여동

  • 주문춘귀   제816화

    심서준은 계연수의 말을 듣고 눈썹을 치켜올렸다.“내가 보기엔, 너는 틈만 나면 게으름을 피우려는 것 같은데?”계연수는 괜히 뜨끔했다. 쉬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지만, 심서준의 짐을 덜어 주고 싶은 마음 또한 진심이었다.“가끔 그런 거예요…”심서준이 옅게 웃었다.“앞으로는 관사 몇 명을 더 붙여 주겠다. 내가 직접 고른 사람들이니 믿고 쓰면 된다.”계연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어린 말을 하면서도 심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담담하고 냉정했다. 표정만 봐서는 그의 세심한 배려를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계연수의 마음이 문득 흔들렸다.그녀는 조심스레 심서준의 무릎을 짚고 몸을 기울이더니, 그의 옆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이런 행동을 먼저 한 것은 처음이었다.입술이 닿는 순간,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긴장한 마음은 갈피를 잃고 흩어졌고, 얼굴마저 달아올랐다.급히 몸을 떼려는 찰나, 단단한 팔이 허리를 감아 왔다.심서준은 그녀가 물러나지 못하도록 품 안으로 깊숙이 끌어당겼다.계연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시선은 갈 곳을 잃고 흔들렸고, 손에 쥔 상아 부채는 몇 번이고 꼭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손가락 마디가 희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갔다.차마 고개를 들어 지금 심서준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때 손 하나가 다가와 그녀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계연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눈을 마주했다.심서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 시선은 마치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차분하고도 집요했다. 계연수가 기대했던 기쁨이나 미소는 어디에도 없었다.그 사실에 그녀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가느다란 눈썹도 힘없이 내려앉았고, 귓가에는 자신의 심장 소리만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심서준은 그렇게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긴 침묵이었다.계연수는 점점 어찌할 바를 몰랐고, 끝내는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그의 시선을 더는

  • 주문춘귀   제815화

    계연수는 심서준의 말에 서둘러 다시 마차에 올랐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마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마차 안에는 관복 차림의 심서준이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고귀하면서도 단정한 기품이 몸에 밴 모습이었다. 계연수는 그의 곁에 앉아 흐트러짐 하나 없는 옷매무새를 바라보다 문득 그의 품에 기대고 싶어졌다. 하지만 혹여 관복에 주름이라도 생길까 싶어 끝내 그 마음을 꾹 눌러 삼켰다. 심서준은 곧 다시 관아로 돌아가야 했다. 지금은 무엇보다 단정한 용모와 차림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문득 계연수는 자신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자꾸만 심서준의 품에 기대고 싶었고,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가끔은 그런 자신의 변화가 두렵기도 했다. 그녀가 가장 두려운 것은 언젠가 심서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될까 봐, 또다시 한 사내 때문에 마음 졸이며 일희일비하게 될까 봐였다.조금 전 고씨 부저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심서준을 본 순간도 그랬다. 가슴 깊은 곳에서 기쁨이 밀려왔고, 당장이라도 그의 품으로 달려가 안기고 싶었다. 그래서 계연수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진심 열 가지가 있다면, 적어도 하나만큼은 자신을 위해 남겨 두고 싶었다.심서준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계연수를 보더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품으로 끌어당겼다.“고씨 부저에 간다는 말을 왜 하지 않았느냐? 나도 함께 갈 수 있었는데.”계연수는 그의 품에 기대며 오늘 있었던 일을 차분히 들려주었다.“오늘 오전에 편지가 왔어요. 영국공부에서 제 셋째 여동생과의 혼사를 의논하고 싶다고 해서, 그 일로 모두 모인 거예요.”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저는 영국공부가 진심으로 이 혼사를 추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어요.”심서준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무슨 가능성?”계연수도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마주했다.

  • 주문춘귀   제814화

    계연수는 이제 앞으로는 외가를 찾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며, 설령 와도 더는 예전 같은 마음으로 오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고씨 노부인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 일은 제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큰외숙모의 일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드린 말씀도 큰외숙모 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씨 가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괜한 화가 미칠까 염려됐을 뿐입니다. 헌데 지금에 와서 어떻게 할지는 결국 큰외숙모께서 직접 결정하셔야 합니다.”잠시 말을 멈춘 계연수는 외조모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덧붙였다.“사람은 직접 벽에 부딪혀 보기 전에는 좀처럼 돌아서지 않습니다. 더 말해 봐야 원망만 살 뿐입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예를 올렸다.“오늘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더 머물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할머니, 앞으로는 큰외숙모 댁 일은 제게 말씀하지 마세요. 저도 더는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조용하고 담담한 그 목소리에 고씨 노부인의 눈가가 붉어졌다.평생 친손녀들에게조차 크게 정을 주지 않았던 그녀였다. 오직 계연수만은 각별히 아끼고 사랑했다. 그런 아이의 눈빛에 깊은 실망이 어린 것을 보자 가슴이 저려 왔다.고씨 노부인은 떨리는 손으로 계연수의 손을 꼭 붙잡았다.“이 할미는 네 마음이 언제나 바르다는 걸 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더는 신경 쓰지 말거라. 너는 네 일이나 하렴. 앞으로 그들의 일로는 다시는 너를 번거롭게 하지 않겠다.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있는 법이니.”계연수는 세월이 고스란히 새겨진 외조모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순간 마음이 저며 왔다.“앞으로 할머니께서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지를 보내세요. 저는 할머니와 단 한 번도 마음이 멀어진 적 없습니다.”고씨 노부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고씨가 다가와 계연수의 곁에 섰다.“모처럼 왔는데 이 어미랑 조금 더 이야기하다 가지 않겠느냐?”계연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 주문춘귀   제813화

    며칠 지나지 않아 계연수는 고씨 집안에서 보낸 편지 한 통을 받았다.편지는 외조모인 고씨 노부인이 직접 쓴 것이었다. 집안에 중대한 일이 생겼으니 반드시 고씨 부저로 와 함께 의논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도 올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여져 있었다.계연수는 부저를 다녀온 지도 꽤 오래된 터라, 마침 잘됐다 싶어 길을 나섰다.고가로 향하는 마차 곁에는 호위 무사 일곱, 여덟 명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모두 지난 일을 겪은 뒤 심서준이 그녀를 위해 새롭게 엄선해 붙여 준 사람들이었다.부저에 도착해 대청으로 들어서자, 안에는 이미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계연수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방 안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예전 사씨 가문에 시집가 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의 계연수는 얼굴빛부터 한결 윤기가 돌았다. 고귀한 가문의 귀부인들에게서나 볼 법한 차분한 기품이 눈매에 어려 있었고, 손에는 상아 부채를 쥔 채 금실로 짠 고급 유운사를 걸치고 우아하게 걸음을 옮겼다.그 단아한 자태에 방 안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계연수는 모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한 뒤 한 사람씩 예를 갖춰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몇 마디를 속삭인 뒤, 고씨 노부인의 손짓을 받고 외조모 곁에 자리를 잡았다.주위를 둘러보니 고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모여 있었고, 고준까지 자리하고 있었다.오늘 모임이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고씨 노부인은 먼저 계연수와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야 본론을 꺼냈다.며칠 전 영국공부의 백씨 큰부인이 직접 찾아와 많은 예물을 보내며 혼담을 꺼냈다는 것이었다. 상대는 지난해 진사에 급제한 영국공부의 둘째 도련님이었다.고씨 가문에서도 이미 사람을 보내 그를 알아보았다. 용모는 뛰어나고 인물도 훤칠했다. 비록 첩의 소생이기는 했지만, 영국공부 큰방 후손 가운데 유일하게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었다. 빈둥거리기만 하는 백씨 가문의 장남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이

  • 주문춘귀   제812화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쓸모없는 딸을 키웠는지 모르겠구나!”백씨의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늘 강인하기만 하던 그녀였지만, 어머니 앞에서만큼은 애써 억눌러 온 피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힘껏 움켜쥔 채 한참 침묵하던 그녀가 낮게 입을 열었다.“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정말 쓸모없는 딸이지요. 그런 쓸모없는 딸을, 어머니는 무엇 하러 찾아오셨습니까?”백씨 노부인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창백한 백씨의 얼굴을 바라보다 깊게 한숨을 삼킨 뒤, 목소리를 낮췄다.“내가 널 보러 온 줄 아느냐? 심씨 노부인과 정을 쌓아 네 동생 일이나 이야기해 보려고 온 것이다. 그리고 너한테 다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고 일러 주기 위함이기도 하고.”“지금은 계연수가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다. 네 아버지 성정이 어떤지는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또 일을 벌었다가 화리를 당해 친정으로 돌아오는 일만큼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가서 큰 화를 자초하면 평생 산에 들어가 비구니로 살아야 할 테고, 나 역시 널 찾아가지 않을 테다!”백씨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더니 비웃듯 웃었다.“제가 심태숙에게 시집간 뒤 다섯째 도련님께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 이상 저에게 기대를 걸지 않으셨지요. 점점 냉담해지셨고, 심태숙은 머지않아 심가에서 버림받아 돌려보내질 사람이라 여기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버려진 패가 되었어요. 총애받지 못하는 서자의 부인이었으니, 당연히 관심조차 받을 가치가 없었던 거겠죠. 친정에 처음 인사드리러 갔던 그날, 저를 마치 남이나 되는 사람처럼 차갑게 대하시던 얼굴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러고는 모든 기대를 제 여동생에게 걸었죠. 여동생은 이부상서 적장자에게 시집보내고, 혼수도 제 것보다 훨씬 넉넉하게 챙겨 주셨고요. 헌데 나중에 심태숙은 심가에서 내쳐지지 않았습니다. 대감께서는 의리를 중히 여기고 약속을 지키는 분이셨기에 심태숙을 족보에 올려주셨고, 이후에는 심씨 노부인께서 집안 살림까지 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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